시평

2011년 1~3월의 한국 춤계
춤 제작 환경이 바뀌고 있다
장광열_춤비평가

 신년들어 한국 춤계는 달라지고 있는 공연제작 환경을 반영한 흐름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우선 한국공연예술센터 등 공공 극장과 상주단체를 두고 있는 극장, M극장과 창무춤터, 두리춤터 등 춤 전용극장을 중심으로 한 기획 공연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안무가 육성을 내세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국립현대무용단의 지원 프로젝트도 잇따라 시행되었다. 문래예술공장의 MAP 프로젝트, 그리고 국립현대무용단의 창단공연도 관심을 모았고, 젊은 무용인들의 공연 무대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 가운데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전막 공연과 가족 단위 관객을 겨냥한 무용상품화 공연도 눈에 띄었다.


문래예술공장의 MAP 프로젝트 - 모던테이블, On & Off

 MAP(Mullae Arts Plus)은 2010년에 처음 시행한 서울특별시가 운영하는 창작공간인 문래예술공장의 예술가 지원 프로젝트명이다. MAP은 기존의 공공 지원기관이 시행하는 지원체제와는 다른 새로운 틀을 표방하고 있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아티스트들에게 제작비와 공간, 네트워크를 지원해주고, 준비과정에서 멘토를 활용하도록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모두 8개 부문으로 나누어 진행되었으며, 무용 부문은 지난해 공모를 통해 2개 단체(모던테이블과 On & Off) 가 선정되었고, 이들 단체들의 공연이 1월 문래예술공장에서 있었다.
 김재덕이 안무 및 총연출을 맡은 모던테이블의 〈kick〉(부제:차인 사람들의 러브 노트, 1월 14-15일, 박스 씨어터)은 현대무용과 콘서트가 함께 어우러진 장르탈피 공연을 표방했다. 공연자들이 직접 노래를 부르는 점, 노래의 비중이 통상적인 춤 공연의 범위를 넘어서면서 단순히 음악이 움직임의 보조수단이 아닌 공연의 중심 요소로 접목되고 있는 점, 그리고 음악 선곡과 편곡 등에서 판소리 등 한국의 독창성을 버무렸다는 점에서 여타 춤 공연과는 차별적인 구성의 틀을 갖추고 있다.
 


모던테이블 <킥>


 
 그러나 이 같은 안무가의 컨셉트는 Work Process 형태로 선보였기 때문인지 구성이나 출연자들의 앙상블 구축에서 비슷한 컨셉트로 만든 안무가의 전작 <다크니스 품바>에 비해 밀도가 떨어졌다. 구성과 앙상블에서의 부진, 음악과 춤의 융합에서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한 점, "사랑"이란 주제가 작품 전편을 통해 자연스럽게 표출되지 못한 점은 예술적인 완성도의 미진함으로 이어졌다.

 On & Off 무용단의 〈in between〉(1월 21-22일, 박스 씨어터)은 현대무용과 설치미술, 영상 등으로 이루어진 크로스오버적 공연을 표방했다. 두 남성 무용수의 즉흥성이 가미된 움직임은 그 차체로 음미할만 했으나 무대 가운데 위치한 물이 담긴, 탄성이 있는 줄을 활용한 설치미술과의 만남에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다소 소극적이었다. 이 설치미술은 여러 형태로 조우의 가능성을 열어놓았으나 무용수들은 단조롭고 유사한 형태의 반복으로 접근, 소통에 아쉬움을 남겼다. 조명 등에 비해 영상 부문의 융합 작업이 미약했고, 그러다 보니 춤이 중심이 되면서 여러 장르가 융합해서 만들어지는 크로스오버 작업의 묘미도 그만큼 반감되었다.
 


On & Off 무용단 <사이>


 
 두 단체 모두 당초 지원 신청시 제출했던 것과 다른 내용의 사업을 시행한 것은 MAP 프로젝트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더구나 이 사업은 준비 과정에서 멘토에 의한 협력 작업이 수행되도록 되어 있는 만큼 그 같은 노력들이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운영에서의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그러나 댄서들과 공간과의 소통,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 등 공간과 네트워크 지원이란 MAP 프로젝트의 취지가 반영되었다는 점에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2010년이 시행 첫해 임을 감안할 때 앞으로 더욱 많은 성과가 기대되는 프로젝트이다.
 새로운 개념의 지원 프로젝트인 MAP은 공간과 네트워크, 멘토 프로그램 등 프로세스에서의 계속적인 지원 등 그 차별성을 부각하는 노력과 함께 주최 기관에서 제작 과정을 계속 점검하고 제작에 동참하는 노력이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선정 단체들 역시 프로젝트의 시행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진정성 있는 작업을 추구해야 한다. 공공 지원금을 받는 예술가들은 신청자에 비해 지원 대상자로 낙점 받는 비율이 턱없이 적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수혜 대상자란 것만으로도 영예이여, 그 영예만큼 책임감이 뒤따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타켓형 춤 제작 상품 - 김선희 발레단 <인어공주>

김선희발레단의 <인어공주>(1월 21-23일, 토월극장)는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는 공연을 염두에 두고 제작한 타켓형 상품이란 점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같은 시도는 1회성 공연에 그치는 대부분의 춤 공연 제작 관행을 타파하고 춤 상품의 유통 시장을 확대한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특히 국립발레단이나 유니버설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가 갖고 있는 대중성 있는 레퍼토리가 모두 대형 작품인데 비해 <인어공주>는 중극장 규모에서도 공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구민회관 등을 무대로 어린이, 청소년 대상의 발레 공연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는 조승미발레단이나 와이즈발레단보다 작품의 세련도나 무용수들의 전반적인 기량 등에서 우위에 있다는 점에서, 향후 새로운 춤 시장 확장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창작 발레 <인어공주>는 또 다른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아카데미와 전문 공연 영역을 잇는 무용수들의 플랫폼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출연 무용수들의 대부분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과 이 학교를 졸업한 성인 무용수들이 어우러져 있다. 안무자(김선희)는 주역에서부터 군무에 이르기까지 특유의 캐릭터를 가진 무용수들을 적재적소에 캐스팅했고, 춤애호가 뿐 아니라 발레 지도자, 춤비평가 등에게도 이들 준비된 무용수들은 그들의 존재를 선명하게 각인시킬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된다
 <인어공주>가 작품을 매년 업그레이드 시키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질 좋은 춤상품을 만들겠다는 제작진들의 의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올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오케스트라가 함께 공연에 참여했다. 적지 않은 경비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발레가 갖는 극장예술의 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시도란 점에서 돋보였고, 이는 언론과 일반 관객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촉매 역할을 했다.
드라마적인 구조와 디베르티스망의 다양성을 보완하고 공연 시간을 좀더 늘리는 작업이 뒤따른다면 장수 레퍼토리가 될 가능성이 높은 작품이다.


김선희 발레단 <인어공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는 각 장르별로 자체적으로 기획 운영하는 지원 프로젝트가 있다. 무용 부문은 안무가 집중육성 프로젝트가 이에 해당한다. 이 프로젝트는 매년 시행 주체가 바뀌면서 계속 이어져오고 있으며 2010년에는 차세대 안무가 인큐베이팅이란 프로그램으로 명명되면서 (사)한국현대무용진흥회와 공연기획 이오공감이 주관사로 선정되었다. 하나의 사업을 2개의 업체가 나누어 진행한 셈이다. 

 이 사업에 참여한 젊은 무용인들이 자신들의 안무 작품을 선보이는 무대를 연속으로 마련했다. 한국현대무용진흥회는 “서울 꼬레오 점프(Seoul choreo.jump) 우수 안무가 공연”이란 이름으로 1월 29-30일 기진령, 김하예린, 장인선 3명 젊은 안무가의 작품을 아르코 소극장에서 공연했다. 공연기획 이오공감은 “로드 투 피플 젊은 안무가 5인 공연”이란 이름으로 2월 11-12일 변소연, 성한철, 안주현, 이재영, 한지은 5명 젊은 안무가들의 공연을 메리홀 소극장 무대에 올렸다.
 안무가 양성이란 단 기간에 어떤 교육에 의해 그 목표가 달성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학 교육 과정에서의 획일화 된 커리큘럼과 실기교육에의 의존도가 높은 교육을 받은 젊은 무용인들이 대다수인 점을 감안하면, 안무가 양성이란 타이틀 아래 안무 작업에 필요한 여러 체험과 교육 프로그램을 두루 접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문제는 안무가 집중육성이란 큰 프로젝트가 해마다 시행 주체가 바뀌면서 표류하고 있는 점이다. 시행 첫해인 2007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직접 외부 인력에 의뢰했고, 이듬해에는 운영위원회를 구성해서 시행했으며, 2010년에는 공모에 의해 2개 단체에 사업을 분담시켰다. 특히 지난해에는 시행계획 마련에서부터 시행자 선정까지 우여곡절 끝에 7월에야 참여자를 선정하는 등 파행을 거듭했다.
 이 프로젝트는 참가한 안무가들의 교육 내용에 대한 만족도와 체험의 감도에 의해 그 성취도가 달라질 것이다. 사업 참가자들이 발표한 안무 작품의 좋고 나쁨에 의해 사업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2억여 원에 이르는 공공 지원금이 집행되는 프로젝트인 만큼 수시로 그 진행과정이 공개되고 예산 집행도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자체 기획사업에서 민간보조사업으로 바뀐 만큼 본래 취지를 살리면서 효율적인 사업 집행이 될 수 있도록 주관 사업자 선정도 보다 엄정한 잣대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는 사업인 만큼 전문 교육기관에 의뢰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공 기금의 집행은 공공성을 획득하는 것과 함께 그 사업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 무용 위원이 선임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무용부문 지원 사업은 현장과의 소통을 보다 강화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춤 상주단체 극장 공연- 두산아트센타와 서강대메리홀

새로운 지원 프로젝트의 하나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상주단체 운영제도는 극장과 연계한 지원이란 점에서 향후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이 더욱 많다. 지난해 새롭게 매칭된 두산아트센타와 안은미무용단은 독특한 컨셉트의 공연으로 특히 주목받았으며, 이경옥무용단과 댄스시어터 까두와 매칭된 서강대메리홀은 서울과 지역의 젊은 무용인들이 참여한 한국춤발전소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두산아트센타와 안은미무용단이 제작한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2월 18-20일, 두산아트센타)는 우선 발상부터가 신선하다. 이 작품의 태동이 극장과 무용단과의 제작회의를 통해 시작된 것부터 상주단체 운영제도가 갖는 또 다른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제작진들은 전국을 순회하면 할머니들의 다양한 이른바 막춤들을 스케치했고, 그 영상들을 작품 속에서 하나의 쏘스로 활용했다.
 안무가와 극장은 이번 작업을 통해 춤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확대했고 실제 스케치 과정에서 만난 할머니들을 작품에 출연시켰다. 안무자는 할머니들의 의상과 막춤, 그리고 이미지를 전문 무용수들의 치장과 움직임으로 연계시켰고 이를 통해 차별화 된 작품의 컨셉트로 십분 활용했다. 늘 보아오던 틀과 움직임 조합에 익숙한 평자에게도 이같은 시도는 어느 일면 신선함이 분명히 있었다.
 안무가는 대중적인 요소와 예술로서의 춤의 접합을 위한 계산된 노력을 곳곳에서 시도했으나 그 접점 찾기는 그러나 온전하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노부부가 함께 손을 잡고 춤추는 장면은 그 세월의 영욕만큼이나 진솔한 인간적인 삶의 한 단면을 담아낸 기막힌 설정이었으나, 곧 바로 여러 명의 막춤 난장으로 풀어내 앞선 구성과 반복시킴으로써 관객들이 그들을 통해 따뜻한 감성과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것도 아쉬운 대목 중 하나였다.
 서민들의 삶의 흔적과 문화를 예술작품 속에 완벽하게 녹여내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이번 무대는 그저그런 작업이 되풀이 되고 있는 춤 공연의 홍수 속에서 분명한 컨셉트와 적극적인 홍보, 상주단체와 극장과의 협력을 통한 제작 과정에서의 확장이란 점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서강대메리홀과 이경옥무용단이 주최, 주관한 한국춤발전소 프로젝트는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줍니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춤 발전의 원동력인 신진 무용수들의 기량을 튼튼히 하고, 독립된 안무가 양성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20대 새 내기 안무자들을 위한 인큐베이팅 프로젝트, 30대 신진 안무자들을 위한 크리에이티브 프로젝트 두 개 프로그램에 각각 3명씩 모두 6명의 젊은 무용인들이 공연에 참여했다.
 이 프로젝트는 상주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극장이 상주단체의 공연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별개의 프로그램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하다. 극장 용과 상주단체인 사단법인 NOW무용단이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을 위한 주말 공연과 주한 외국인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병행하는 것 등과 함께 상주단체 운영에서의 차별화 시도인 셈이다.
 이 프로젝트는 향후 춤 전용극장인 M극장의 “떠오르는 안무가전”, “춤과 의식전”, 신진 안무가 NEXT전”, 창무춤터의 “드림 엔 댄스비전”, 두리춤터의 젊은 무용인들을 위한 기획전, 한국공연예술센터의 “한팩 라이징스타” 등 각 극장들이 운영하는 유사한 프로그램과 어떻게 차별성을 살릴 것인가 하는 것이 장수를 위한 과제가 될 것이다.


무용예술의 사회적 소통 - 일본 대지진 참사와 춤 공연

일본 대지진 참사는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성금 모금과 추모 공연 바람이 점점 더 거세지는 가운데 우리 춤계에서도 이들을 위한 공연이 이어졌다.
 3월 22일 오후 4시부터 문래동에 있는 On & Off 스튜디오에서는 일본 대지진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즉흥 잼이 열렸다. 프랑스와 한국을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는 즉흥 전문 그룹인 Et Aussi dance Company 멤버와 한국의 즉흥 무용인들이 참여한 이날 추모 공연은 도쿄와 타이페이에서도 동시에 이루어졌다.
 3월 27일 여의도 공원에 있는 야외무대에서는 일본을 돕기 위한 공연 'We pray for Japan-희망을 위한 행동(Acts for hope)'이 열렸다. 'Pray for Japan'(일본을 위한 기도)은 일본 지진 피해복구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터넷 사이트다. 이번 공연은 서울발레시어터가 처음 아이디어를 페이스북에 올렸고 이 발레단 단원들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여러 예술인들에게 퍼지면서 공연이 성사되었다고 한다.
 지구촌 곳곳에서 겪고 있는 아픔을 예술가들이 더불어 한마음으로 함께 위로하고 온정을 나누는 것은 그 만큼 예술의 사회적 소통을 강화하는 일이다. 이 같은 일에 이제 한국의 춤계도 적극적으로 동참할 필요가 있다. 무용이 사회와의 소통을 확대하면 확대할수록 춤 대중화의 속도도 그 만큼 빨라질 것이다.

2011. 04.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