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시나브로 가슴에 〈Docking Project〉
휴식과 변신의 경계에서
방희망_춤비평가

비평가가 몇 마디 단어로 예술단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어리석거나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단어로도 수사(修辭)하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여간한 작품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이고 어떤 지향점을 갖고 가는지 자각하지 못해 혼란스러운 활동을 보여주는 경우도 많은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규정이 가능하도록 명확한 색채와 개성을 띠는 단체가 있다는 것은 차라리 다행스런 일일지도 모른다.
 ‘시나브로 가슴에’에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필자가 그들에게서 떠올리는 것은 오롯이 ‘건강함’이다. 삶과 춤에 대한 고민은 진지하되 쓸데없이 현학적이지 않고,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현명하게 판단하는 편이다. 관조와 열정이 놀랍게 융화를 이루었던 〈해탈〉, 영광된 순간이 아닌 과정의 긴장감에 천착해 한 시간을 꼬박 채웠던 〈히트 앤 런〉과 여타 작품들을 보더라도, 이들은 잡기에 눈 돌리지 않고 정직하고 솔직한 몸짓으로 자신들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할 줄 안다고 생각된다.
 그런 시나브로 가슴에가 코로나로 인한 자의반 타의반의 휴식기 동안 외부안무가를 초청해 신작을 올리면서 공연의 이름을 〈Docking Project〉(9월 10~11일,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 평자 11일 관람)라고 붙인 것은 이 작업의 성격을 드러낸다. 자신들의 개성을 확보한 단체가 자신들의 좌표를 확인하고픈 욕구는 스스로에게서 벗어나 타인의 손길로 재조립되는 모습을 마치 유체이탈하듯 떨어져 바라볼 때에 채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Docking’이라는 작명에 걸맞으려면 신뢰할 수 있을 만한 실력과 섬세함이 전제되어야 하기에 한때의 실험적인 작업으로서는 사뭇 자신만만한 선언과 도전이기도 하다.






김호연 〈억울한 누명〉 ⓒ류진욱




 그 첫 번째, 댑댄스프로젝트 김호연 안무가의 〈억울한 누명〉은 먼 미래 지구를 들여다볼 어떤 생명체의 입장에서 도대체 이 동물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많은 뼈(화석)가 발견될까, 그것이 지구 멸종의 주범이 아닐까 의문을 갖게 된다는 역발상으로 출발한다. 그 관찰 대상이 되는 동물은 바로 닭이다.
 왜 하필 닭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이유를 들자면 셀 수 없이 많겠지만 그렇다고 안무가가 친절하게 안내하는 것도 아니다. 안무가는 짐짓 모른 체 하며 상상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다. 닭의 해가 될 때면 잠깐 신문 지상에서 인간이 그의 발톱과 벼슬에 미덕을 투사하여 칭송할 뿐 조류독감이 유행할라치면 수만 마리가 손쉽게 폐사되고야 만다는 것?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씨암탉을 잡던 우리와 남부 농장에서 흑인 노예들에게 인심 써 던져주던 것이 오늘날 치킨의 유래가 된 미국의 문화적 간극도, 이제는 모두 그것을 공장식 축산으로 소비하는 현실로 수렴된다는 것? 작년 말 출간된 임야비 작가의 〈클락헨〉 같은 소설은 인류가 더 많은 달걀과 살코기를 얻기 위해 지난 4천 년간 함부로 손 대온 이 종의 역습을 예언하기도 했다.






김호연 〈억울한 누명〉 ⓒ류진욱




 아무튼 차고도 넘치는 이유 속에 안무가는 이러한 현실을 무겁게 그릴 생각은 없다. 엽기닭 소품, 무용수가 〈월레스와 그로밋〉의 도둑 펭귄마냥 장갑을 벼슬처럼 뒤집어 쓴 복장은 이 작품이 명백한 B급 정서를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많은 링을 얽거나 펼치는데 집중하는 초반의 동작들은 다채로운 잔재미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역시 기존 시나브로 가슴에의 굵고 힘찬 춤선과 상반되어 그런지 무용수들의 몸짓은 조심스러운 편이었다. 그래도 저예산으로 동원할 수 있는 인형 소품과 작은 프로젝터 등이 가세하며 후반부의 동작들은 닭의 피라미드를 두고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뻔뻔하게, 점점 대담한 유희가 되어갔다.
 외계인의 시선으로 지구 종말을 탐색하는 이 놀이가 원래부터 30여분의 길이로 완성된 것인지 확장을 앞두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왜 작품의 소재로 닭을 택했으며 이 난장을 통해 비판하고 싶은 지점이 무엇인지 안무가의 중심 생각은 내내 숨겨져 있는 탓에 이것이 시나브로 가슴에의 신작이라는 느낌은 거의 나지 않는다. 아마도 원래의 시나브로 가슴에라면, ‘돌려 말하기’엔 익숙하지 않으리라. 대체로 호쾌한 선과 활달한 움직임을 유지하는 이 단체 안 여성무용수들에게는 첩첩이 관절을 구부렸다 펴는 데 주안점을 둔 김호연 안무가와의 작업이 새롭기는 하였을 터이지만 새로움을 넘어서 어떤 가치와 의미를 획득했는지 궁금하다.






박성율 〈바람이 도착하는 곳〉 ⓒ류진욱




 그런가 하면 안무가 박성율은 〈바람이 도착하는 곳〉에서 그 자신 직접 참여하면서 남성무용수들에게 부드러운 흐름을 불어넣고자 한다. 박성율의 춤도 조직적으로 구상된 춤과는 결이 다르다. 개인적 교분은 없으니 순전히 관찰자의 시선으로 짐작하건대, 적지 않은 수련과 명상적 시선, 아웃사이더 기질 등이 종합되어야 나올 법한 독립적인 춤이다. 하나의 에너지 덩어리로서 등가적 상대와 어울렸다 겨루거나 풀어지는, 말하자면 즉흥 무대 같은 곳에 보다 어울리는 춤이라 생각된다.
 황금빛 들녘을 연상케 하는, 광채가 도는 의상은 아마 평자가 본 박성율의 의상 중에 가장 화려한 것이었다. 권혁, 안지형, 양진영 등 시나브로 가슴에의 주요 멤버는 잘 단련된 근육질의 몸을, 일부러라도 내버려두는 느슨한 작업에 동참했다. 무대 위에서 이완된 채로, 그냥 서서 걷거나 기다리는 동작이 시나브로 가슴에의 작품에서는 분명 흔치 않았다. 박성율의 안무로서는 새로울 것은 없지만 호흡을 응축했다 풀어내는 다른 방식을 경험한 기회로서, 시나브로 가슴에의 주요 안무자들에게 충분한 영감이 제공되었길 바란다.






임희종 〈초대〉 ⓒ류진욱




 비공개 내부 쇼케이스를 통해 선정된, 막내 단원 임희종의 〈초대〉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마술쇼였다. 개인의 방 안이라는 무대는, 무한대의 상상력을 가능케 하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자석을 단 티셔츠, 그것이 걸린 옷걸이를 무용수 본인의 몸과 함께 꿰는 안무는 철저한 계산을 통해 이뤄졌겠지만 그 이음새를 알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고 능청맞다. 코로나로 집콕놀이의 한계를 느낀 사람이라면 익숙한 사물도 놀이 상대로 끌어들여 움직임을 부여하는 임희종의 재주에 매료될 만하다. 건장한 젊은 남자가 한정된 공간 안에서 쉬지 않고 뛰어다니며 노는데, 외롭거나 그늘진 구석 전혀 없이 무한 긍정의 에너지를 내뿜는다면 전염되지 않을 도리가 있는가? 그 건강함은 안무가가 시나브로 가슴에의 단원이라는 것을 굳이 의식하지 않고 보더라도, 작품에 그들 나름의 진지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도 그 일원임은 맞구나 납득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임희종 〈초대〉 ⓒ류진욱




 공연이 끝난 후 이루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지금까지 시나브로 가슴에의 작품을 다 보았다는 한 관객은, 내려놓음을 알았던 시나브로 가슴에의 신작치고는 자꾸 채우려는 모습에 당혹스러웠다고 토로했다. 그 관객의 의견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의 편을 들어주고 싶기도 하다. 평생을 바라보고 예술 활동을 하는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길 아닌 곳으로 빠져 탐색해보는 시간도 당연히 필요하다고 말이다. 내부 토의를 거쳐 외부안무가들의 작품을 올리기로 했을 때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믿어지는, 현명함을 알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수혈이 절박할 정도로 건강을 잃은 상태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시나브로 가슴에가 지닌 정신은 젊기에, 그들의 행보는 앞으로가 더욱 궁금하다.

방희망

2013년 제1회 한국춤비평가협회 춤비평신인상을 통해 춤비평가로 등단했다. 현장 비평가로 다양한 춤 공연에 대한 비평작업을 하고 있으며, 한국춤비평가협회 정회원, <춤웹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1. 10.
사진제공_류진욱, 시나브로가슴에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