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무형유산원 이수자뎐 춤판
전통춤의 품격을 보여준 주연희의 춤
송성아_춤비평가

우리 춤의 최초의 문헌 기록은 중국인 진수의 『삼국지』 위지 동이전이다. 나라 안의 큰 모임(國中大會)을 설명하는 가운데 수록된 짧은 문구 “구기상수 답지저앙 수족상응 절주유사탁무”(俱起相隨 踏地低昻 手足相應 節奏有似鐸舞)가 그것이다. 연구자들의 여러 해석 속에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였던 고 이애주는 “답지저앙 수족상응”을 전통 춤움직임 구사원리로 설명한다. 즉 답지저앙을 무릎 굴신으로, 수족상응을 손과 발의 조화로 각각 풀이하여, 우리 춤의 기본은 굴신에 기반을 두고 상‧하체를 조화롭게 움직이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서양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민속춤에서도 무릎을 굽혔다 펴는 굴신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상‧하체의 조화로움 역시 세계 보편적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글과 강습을 통해 누누이 강조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전주 국립무형유산원 얼쑤마루 소공연장(8월28일)에서 펼쳐진 주연희 춤판은 이 같은 의문을 풀 단초를 제공한다.
 경북 김천 소재의 직지사 은선암은 고 한영숙의 위패를 오래 동안 모셨던 곳이다. 이곳에서 성장한 주연희는 중학교 시절 이애주를 만나 춤을 배우기 시작했고, 스물을 넘기면서 본격적으로 입문한다. 지난 오월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난 이애주 선생과 삼십년 넘는 세월을 함께 한 애제자로, 그의 춤판(2019년 10월27일 서울돈화문국악당 이애주류 주연희 춤)의 사회를 맡아 흐뭇해하던 생전 모습이 필자에게도 생생히 남아있다.
 공연은 주연희의 솔로 춤 〈향가의 혼, 시대의 몸짓〉으로 시작되었다. 우리 춤 원형 찾기에 천착한 이애주의 두 논문1)에 제시된 몇몇 춤동작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이후 한성준, 한영숙, 이애주로 이어진 〈승무〉와 〈태평무〉가 소개되었고, 김순주와 박성희의 〈쌍처용무〉, 우희자의 가곡 〈월정가〉, 김순주의 〈달구벌 입춤〉이 사이사이에 배치되었다. 이 중 으뜸은 단연코 〈승무〉와 〈태평무〉라고 할 수 있다.




주연희 〈승무〉




 한영숙류 〈승무〉는 이 땅에 편재한 여러 승려춤을 집대성한 명무로, 근대시기 무대화‧예술화된 전통춤이라고 할 수 있다. 크게 염불과장, 타령과장, 굿거리과장, 법고과장, 당악과장, 굿거리과장으로 구분되고, 이 각각은 몇몇 단락(=마루)으로 구성된다. 이애주에 따르면, 염불과장은 봄, 타령과장은 여름, 굿거리과장은 가을, 법고와 당악과장은 겨울을 상징한다. 그리고 춘(春), 하(夏), 추(秋), 동(冬)에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喜怒哀樂)가 담겨 있다고 한다.
 주연희에 의해 추어진 〈승무〉 염불과장은 5개 단락으로 구성된다. 핵심적인 내용을 기술하면, 몸을 세워 천지신명에게 인사하고 좌우를 살펴 일어난다(단락1). 본격적인 춤의 시작을 알리는 삼진삼퇴(三進三退)를 거듭한 다음(단락2), 땅에 엎드려 어르고(단락3), 장삼을 울러 맨 채 서서 어른다(단락4). 이어 온 몸을 땅에 던져 어르고, 모든 시름을 벗어던지듯 양손을 뿌려 북 앞에 선다(단락5).
 도입부라 할 수 있는 인사하기와 삼진삼퇴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어르기이다. 장단타기, 지수기, 어깨춤이라고도 하는데, 선율을 타고 노닐며 일정한 정서를 표출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장단을 꽉꽉 채우며 짙고 무겁게 이어지는 주연희의 어르기는 땅의 기운(地氣)과 하늘의 기운(天氣)을 지극히 섬기는 모습을 표현하는 듯하다. 이 점에서 염불은 계절의 첫 시작인 봄을 맞이하여 천지기운을 안으로 수렴하는 장(場)이라고 하겠다.




주연희 〈승무〉




 타령과장은 4개 단락으로 구성된다. 무거운 볏단을 울러 메며 앞으로 나아가고, 노동의 흥겨움을 표현하듯 앉아 어른다(단락1). 상하를 힘껏 치는 가세치기(단락2)와 좌우치기(단락3)를 한 다음, 2박1보의 큰 걸음, 1박1보의 보통걸음, 1박에 세 걸음 정도 걷는 잔걸음, 투스텝에 해당하는 겹디딤을 다채롭게 변주하며 전진한다(단락4).
 여름을 상징하는 타령은 볏단 울러 메기, 사방치기, 전진하는 여러 디딤새를 통해 노동의 고단함 속에서도 생기를 잃지 않는 건강함을 이미지화한다. 그런데 앉아 어르는 대목(단락1)이 너무 짧아 노동의 흥취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승무〉 동영상 자료(1998)에서 이애주는 10장단 동안 앉아 어르며 생산적 정취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굿거리과장 또한 4개 단락으로 구성된다. 꽃봉오리가 피어나듯 양손을 살포시 벌리며 어른다(단락1). 타령의 가세치기처럼 상하를 친 다음, 꽃봉오리가 되어 어른다(단락2). 타령의 마지막과 유사하게 각종 걸음으로 진진하고, 또 다시 꽃봉오리가 피어나듯 어르기를 반복한다(단락3). 가장 맵시를 강조하는 대목으로, 빙글 돌아 꽃 위에 날개를 펼친 나비처럼 양손을 펼쳐 어르고, 이내 어여쁜 작은 새가 되어 앉아 어른다(단락4).
 가을을 상징하는 굿거리는 곳곳에 피어나는 꽃봉오리, 나비, 작은 새를 통해 결실의 풍요로움을 화사하게 표현한다. 다만 절정이라 할 수 있는 나비 대목(단락4)이 다소간 느슨하게 진행됨으로써 시청각적 즐거움을 배가시키지 못한 측면이 있다 하겠다.






주연희 〈승무〉




 법고과장은 무대 뒤편에 놓인 큰북을 치는 것이다. 웅장한 북소리가 다채로운 가락으로 변주되며 이어지는데, 한 해 동안 일어난 갖가지 인간사를 마무리 짓는 듯하다. 이어 휘몰아치는 당악과장이 시작되고, 바라가 합세한다. 한배가 빠른 이 과장은 5개 단락으로 구성되는데, 모두 맺힌 살을 풀어내듯 강렬하게 앞으로 나왔다가 뒤로 물러난다. 겨울을 상징하는 법고가 한해를 마무리 짓는 것이라면, 당악은 그 속에 켜켜이 맺힌 액을 풀어 또 다른 봄을 예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짧은 굿거리과장을 하는데, 격렬하게 두들기던 북채를 장삼 안에 넣고, 판을 감싸 도는 연풍대하며 전체 춤을 맺는다.




주연희 〈태평무〉




 〈태평무〉는 마을 굿의 하나인 경기도도당굿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근대시기 한성준에 의해 창작된 것이다. 이후 전승과정에서 한영숙류와 강선영류로 분화되며 다양화되었다. 두 유파 내에서도 춤꾼에 따라 스타일의 차이가 있는데, 소개된 춤은 한성준, 한영숙, 이애주로 이어진 것이다.
 굿의 영향을 받은 〈태평무〉는 가야금의 명인 故성금연의 〈새가락 별곡〉에 맞춰 진행되는 도입부, 터벌림장단에 맞춰 진행되는 전개부, 도살풀이장단에 맞춰 진행되는 종결부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도입부에는 배틀장단, 터벌림장단, 봉등채가 있고, 전개부에는 터벌림을 비롯한 엇모리, 넘김채, 천둥채, 겹마치가 있으며, 종결부에는 도살풀이, 도살풀이몰이, 자진굿거리가 있어 장단구성이 복잡하다. 더욱이 집을 짓듯 다양한 형태로 장단이 변이되기 때문에 연주는 물론이고 춤추기가 쉽지 않다.
 도입부는 4개 단락으로 구성된다. 주요 내용을 추려보면, 한 줄기 빛 또는 신을 찾아가듯 조용히 나아가 두 손을 여며 어른다(단락1). 좀 더 가까이 다가가듯 한 손을 살포시 들고 큰걸음, 보통걸음, 자진걸음으로 전진하고 어른다(단락2). 대지의 기운을 들어 올리듯 발끝을 들어 올리고, 다채로운 걸음과 함께 전진후퇴하기를 반복한다(단락3, 4). 여기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빛으로 상징되는 신을 찾아가서 조용히 모셔 노는 앞 두 단락이라 하겠다.
 전개부는 6개 단락으로 구성되는데, 이소박(1박=♪+♪)과 삼소박(1박=♪+♪+♪)이 혼합되어 묘한 흥분감을 불러일으키는 터벌림장단으로 시작된다. 연희자는 장단을 바삐 쫓지 않고, 여유 있게 다스리며 앞으로 진진하고, 뒤로 물러나 원래자리로 온다(단락1). 이후 이어지는 단락 모두 전진했다가 원래 자리로 되돌아오는 경로(path)를 갖는데, 점진적으로 빨라지는 한배에 맞춰 정제된 걸음을 촘촘히 이어나가며 신명을 고조시킨다.
 3개 단락으로 구성된 종결부는 굿거리와 유사한 도살풀이장단으로 시작된다. 신명의 최 정점을 표현하듯 두 손을 들어 너울거리고 화평하게 어른다(단락1). 판을 크게 감싸 돈 다음(단락2), 흥겨워진 장단과 함께 태평을 기원하듯 두 손을 감고 풀어 너울거린다(단락3).




주연희 〈태평무〉




 흔히 〈태평무〉를 소개함에 있어, 다채롭고 화려한 디딤새를 강조한다. 그런데 주연희에 의해 추어진 이 춤의 백미는 발재간 그 자체가 아니라, 걸음의 변주를 통해 신명을 고조시키고, 마침내 양 손을 들어 너울거리며 태평을 기원하는 것이다(종결부 단락1). 이것은 춤에 온몸을 바쳐 마침내 접신의 경지에 도달한 춤, 즉 고무진신(鼓舞盡神)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답지저앙인 무릎 굴신에 상응하는 것으로 쁠리에(plié)를 들 수 있다. 원활한 스텝과 중심이동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춤의 리듬(박자와 악센트)을 만드는 동인이다. 주연희의 춤 곳곳에는 이 같은 무릎 벤딩(bending)이 자연스럽게 분포해 있어, 걸음과 중심이동이 명료하고 탄력적이다. 나아가 장단과 더불어 유려하게 이어짐으로써 품격 있는 리듬을 만들고, 신명을 부추긴다.
 답지저앙의 토대 위에 수족상응 즉 상‧하체의 자연스러운 조화가 두드러지는데, 2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신체 각 부위가 특정 방향을 향해 명확하게 조직화되는 서양춤과 달리, 시선이 자신을 향하듯 내관(內觀)을 하고 있어, 사지의 놀림(gesture)이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 땅의 산천, 기와, 버선코, 태극선을 닮아 있는 한국적 선(線)과 관련된다. 내관으로 인해 사지의 방향이 명확하지 않으며, 이리저리 이동하는 경로 또한 앞뒤로 단순하다. 그런데 이 모호함과 단순함 속에서 직선도 곡선도 아닌 부드러운 라인을 능수능란하게 만듦으로서 한국적 미감을 풍성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 주연희의 춤은, 생전 선생이 누누이 강조했던 답지저앙 수족상응이 세계 보편적 움직임 원리인 동시에 우리 춤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임을, 헤아려 볼 여지를 마련하였다. 오늘날 많은 전통춤이 무대화와 현대화의 명목으로 변형된다. 당대적 맥락 속에 전통춤이 변화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형식, 내용, 의미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건강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애주에서 주연희로 이어진 춤은 우리 춤 진화의 노정에서 중요한 지표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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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애주(1970). 「처용무의 사적 고찰과 그 전승문제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석사학위논문.
  이애주(1999). 「고구려 춤의 상징체계」. 서울대학교박사학위논문

송성아

춤이론가. 무용학과 미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전통춤 형식의 체계적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저서로 『한국전통춤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한국전통춤 구조의 체계적 범주와 그 예시』(2016)가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있다.​

2021. 10.
사진제공_주연희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