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춤 관객은 어떻게 개발되는가
문화 바우처… 고대 그리스 테오리카
김채현_춤비평가

1960년대, 70년대 우리 문화예술계에서 대학 동아리가 아주 높은 비중을 차지한 사실을 지금 세대들은 짐작할 수 있을까. 당시 대학마다 있은 예컨대 연극과 탈춤 동아리들이 문화예술계에 활동가들을 배출하고 이후 그들이 그 방면에서 중진으로 입신한 경우는 흔하다. 그 만큼 당시 대학에서 비전공자들의 동아리 활동은 문화예술계의 활력소였다. 뿐더러 대학생들이 지적 교양을 갖추기 위해 수많은 공연을 관람함으로써 공연예술계에 기여한 바도 예상 외로 컸었다.
 지금 대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이나 취미 활동이 문화예술계에 대해 어느 정도 비중을 가질지 생각해볼 점이 있지만, 30, 40년전과 비교해서 그 비중이 떨어져온 것은 진즉부터 체감해온 바다. 그동안 국내 문화예술계가 규모가 커지는 동시에 활동가 충원 면에서 전문성을 더 높여왔고 장르마다 예능계 전공자들이 다수를 점하며 관객층이 다변화되고 또 공연 전시가 다양성을 기하는 방향으로 진척됨으로써 예전과는 사정이 아주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학생들, 문화생활 지출 비용 부담스럽다

그런데 얼마전 발표된 어느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대학생 98.3%가 영화, 연극 등 문화생활에 지출되는 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즐겨 관람하는 문화예술행사로는 상대적으로 관람 비용이 훨씬 저렴한 영화(89.5%)가 첫손에 꼽혔다. 이러한 수치는 대개들 감지하듯이 얼마간 예상되는 바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 실정을 재확인해주는 수치로서 의미가 있다. 대학생들이 장래의 관객이어서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교양과 식견 함양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 조사는 여러 면에서 경종을 울린다. 특히 이는 예술 정책 면에서 검토 과제로 여겨지고, 동시에 그러한 부담감 때문에 혹시 가까운 컴퓨터 게임에 끌리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일이다.
 올해 반값 등록금이 사회 전체의 화급한 이슈로 부각되면서 대학생과 청년들의 생활상을 좀 솔직하게 소개한 기사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심지어 짧은 여가마저 반납하고 학비를 벌려다 생명을 잃은 안타까운 사연도 보도된 바 있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생활상의 이면에서 대학생과 청년들이 짐작 이상의 고충을 겪고 있고 또 소득 계층별 차이가 나날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터에 문화생활은 그들에게 일종의 사치 혹은 나와는 먼 이야기로 치부됨직하다. 그러므로 얼마전 발표된 그 조사 결과는 현실을 정직하게 반영했다고 본다. 우리가 그들에게 만들어주고 싶은 사회는 결코 이런 사회가 아니다.


학부모도 청소년도 마찬가지? 


대학생과 청년들만 이런 고충을 겪는 것은 아니다. 이미 근 10년 전 일이지만, 지금이라서 상황이 그다지 호전된 것 같지는 않다. 그때 어느 신문은 “돈 없으면 자녀들 방학숙제조차 제대로 해줄 수 없다”는 어느 학부모의 처지를 보도한 바 있다. 보도된 여러 사연 가운데 하나만 들어보자. 결혼후 15년 동안 변변한 미술관 한번 가보지 못했던 어느 학부모가 남매의 방학숙제를 위해 여러 문화체험을 하였는데, 당시 서울의 대형 공연장에서 열린 ‘청소년 문화체험 음악회’를 관람하는데 4만원, ‘청소년 클래식축제’를 감상하기 위해 3만원, 지방의 박물관을 견학하며 10만원을 쓰는 등 두 남매의 방학숙제를 위해 30여만원을 지출하여 살림살이가 그만큼 빠듯해졌다는 것이다.
 이 보도는 교육인적자원부가 2000년부터 학생주도형 학습을 강조하는 제7차 교육과정을 도입하면서부터 독후감, 그림그리기, 탐구학습 풀기 등 과제물 위주의 방학숙제가 문화공연을 관람한 후 감상문을 쓰는 등의 현장체험 위주로 크게 바뀌는 통에, 학생들에게 현장체험 학습을 지도할 만한 시설이나 교사가 태부족한 상태에서 강행되어 현장체험 비용과 지도가 학부모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갔다고 진단하였다. 

 물론 이 보도만 갖고 지금도 학부모 처지가 그럴 것이라고 단정할 일은 아니다. 그간에 교육 과정이 손질되었거나 아니면 인터넷을 활용한 과제 해결 방법도 많이 개발되었을 것 같고 또 학생주도형 학습을 위해 대안 프로그램들이 더러 개발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이런 여러 변화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지난 10년간 상황이 얼마나 호전되었는지 의문이다. 

 올해 또 다른 보도를 인용해보자. 문화바우처 제도가 있다. 이 제도는 형편이 어려운 계층에게 도서 구입, 영화나 공연, 각종 전시를 관람할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이다. 정부는 문화바우처 예산을 지난해 67억 원에서 2011년도에는 347억 원으로 크게 증액하였다. 그런데, 보도에 의하면 개인당 연간 5만 원에서 가구당 5만 원으로 제도를 바꿔 개인에게 실제로 돌아가는 지원금이 줄어든 데다 공연 관람료의 50%를 지원하던 매칭 사업까지 없앴고 혼자 가기 어려운 문화바우처 대상자를 공연장까지 인솔하는 사람에게 주던 무료 티켓도 없애, 결과적으로 예산을 크게 늘렸다고 하지만 문화복지 체감지수가 뒷걸음치는 현상이 벌어졌다고 한다.


관객 지원 사업 확충되어야 


문화바우처와 유사한 지원 제도로 지난 10여 년 시행된 사랑티켓이 24세 이하 65세 이상 층을 대상으로 공연 입장권 1매당 7천원을 지원하기 위해 2011년도에는 43억원의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 나눔티켓이 기초생활수급자와 법정 차상위 계층, 초·중·고등학생, 교사, 나눔 티켓 참여 기관 · 단체 종사자 등을 대상으로 200여개 공연장 및 공연 단체가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미판매 티켓을 정가에서 50~80% 할인된 가격으로 1인당 3장까지 구매할 수 있는 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이와 같은 제도들이 있어야 하고 개선 확충되어야 할 것은 당연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점치기 힘들다. 이런 와중에 춤 공연은 문화바우처나 사랑티켓과 얼마나 가까운지, 대학생들이 부담스러워 하는 가운데서도 춤 공연을 얼마나 동경하는지, 청소년들의 방학 숙제로 춤이 얼마나 소화되는지 자문해보면 아무래도 답은 시원치 않다. 짧은 공연 수명, 낮은 선호도, 미비한 교양 학습 등으로 인해서 현실적으로 그렇다. 이를 타개하려면 아무래도 춤계의 자구책이 최우선 과제로 꼽혀지고 춤 경영의 모범 사례가 다수 개발될 필요가 크다. 

 8월 하순부터 열리는 대구국제육상경기 주최측은 중소기업청과 손잡고 대학생 5천명을 대상으로 반값 입장료 2만5천원을 내면 한 번 입장이 가능한 데에다 교통비와 여행자보험을 지원하고 또 대구 시내 야간 근대골목투어와 전통시장 방문 프로그램과도 연계할 계획이라 한다. 여기서 일반적 선호도가 훨씬 높은 국제 대회마저 이제는 맞춤형과 눈높이를 더하는 이벤트로 진화하고 있음이 다시 피부로 느껴진다. 과장되게 들릴지 몰라도, 춤 공연을 단 하루를 하더라도 또 소규모 관객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경영 기법을 도입하는 춤 공연은 다수 늘어나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공연예술의 파이가 키워져야 할 것이다. 공연예술 가운데서도 관람 희망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감이 짙은 춤의 경우, 그 파이가 작아지는 상황에서는 춤 공연의 여건이 더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공연예술의 파이가 키워지더라도 꼭 춤의 전망이 밝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역으로 전망이 어두워지는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은 기로에서는 춤 자체의 역량(그리고 경영 역량)이 핵심 관건이 될 것이다. 

 때문에 공연예술의 파이 키우기는 언제라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복잡다단한 진단과 제안을 하기보다는 앞서 언급한 문화바우처 ․ 사랑티켓처럼 관객 지원을 위한 공공 기금과 매칭 펀드를 확충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관객 지원 사업을 현대적 관행으로 인식하는 것이 상식적이겠고, 따라서 그것이 고대에도 통용되었다는 사실은 생소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일례로 고대 그리스 시대에 그 제도는 꽤 오래 통용되었다. 

 아테네 제국은 그 시민권자들에게 기원전 5세기 중엽부터 공공 예술제전 혹은 이벤트 1회 입장료인 2오볼(당시 고급 노동자 1일 임금의 3분지 1 수준)을 지원했고, 그것은 테오리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었다. 기원전 472년에 아이스퀼로스가 비극 <페르시아인>으로 도시 디오뉘시아 제전에서 우승한 이래 기원전 388년 아리스토파네스가 희극 <부(富)의 신>을 발표하기까지 약 100년 동안 그 제전을 통해 공연된 작품은 수백편이었다. 도시 디오뉘시아와 레나이아 제전에서 올려진 작품들 중에서 약 40편의 비극, 희극, 사튀로스극 들이 지금도 전해오고 있다. 비극의 아이스퀼로스 ․ 소포클레스 ․ 에우리피데스와 희극의 아리스토파네스가 맹활약하던 그 시기는 아테네가 승승장구하던 때였고 아테네 민주주의가 왕성하던 때였기도 하다. 바로 이 당시에 아테네 정부는 통치자 페리클레스의 추진력에 힘입어 테오리카 제도를 수시로 임시 조처를 통해 실행하였다.


관객 확보가 춤 발전의 기본 조건, 인식 다져야 


테오리카 제도 앞에서 부자와 빈자의 구분이 없었다는 해석, 반대로 주로 빈자가 이를 수혜했다는 해석 등 여러 설이 분분하다. 그래도 아테네 정부가 상당한 재정 부담을 무릅쓰고서 아테네 시민들에게 도시 디오뉘시아 제전이 해마다 엿새 동안 열린 디오뉘소스 노천극장에 시민들이 계층 차별 없이 참여하도록 적극 배려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디오뉘소스 극장 유적, 그리스 아테네(좌), 디오뉘소스 극장 특별석(우)

 

 도시 디오뉘시아 제전은 디오뉘소스를 기리는 데서 유래한 것은 틀림없으나, 그것은 종교적 제전을 겸한 예술 축제였다. 당시로는 아테네에서 두 번째로 의미심장한 제전(가장 의미심장한 제전은 아테나 여신 제전)이자 최고급 예술제전(연극을 포함한 詩歌舞의 종합)이었던 도시 디오뉘시아 제전은 해마다 엿새 정도 열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즉 고전기 그리스)의 연극과 예술의 핵심 산실이었다. 제전 기간에는 전쟁도 휴전을 하였다. 아리스토파네스의 경우는 좀 다르지만 오늘날 남은 그리스 비극은 모두 도시 디오뉘시아에서 발표된 작품들이었으니, 그 중요성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테오리카 제도나 의미가 오늘날에도 그대로 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제도가 무엇보다도 아테네 민주주의의 상황 속에서 이뤄졌으며 아테네 민주주의와 운명을 같이 하였다는 사실은 우리가 문화바우처 ․ 사랑티켓 같은 사업을 상당히 폭넓은 명분을 배경으로 확대하고 다변화해볼 것을 권하는 것 같다.

2011.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