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연구

서평_ 『승무의 미학』
함께 읽는 승무
송성아_춤비평가

『승무의 미학』, 이애주 지음, 개마고원, 2022




한국인의 삶과 더불어 면면히 이어진 전통춤은 역사성과 가치성을 갖는다. 이 점에서 전통춤꾼은 유파에 따른 계보의 명시는 물론이고, 여타 춤과의 사적 관련성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그 속에 내재된 역사적, 형식적, 내용적 가치에 대한 탐색이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 故이애주(1947-2021)는 평생 이 문제에 천착한 예술가이다. 지난 오월, 이애주문화재단(이사장 유홍준)은 그가 남긴 글을 모아 세권의 책을 발간했다. 그 중 하나가 『승무의 미학』이다.


승무의 역사

승무의 미학은 12편의 유고를 발췌‧정리한 것으로, ‘우리 춤의 선구 한성준’, ‘우리 춤의 정수 승무’, ‘한영숙류 이애주 맥 승무 무보’로 구성된다. 이 중 ‘우리 춤의 정수 승무’는 춤의 역사, 형식, 의미에 관해 논하고 있다. 먼저 역사와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승무>는 불교의식무(나비춤, 바라춤, 법고)와 깊은 관련성이 있다. 작법이라고도 하는 이것은 불교의식과 민속춤의 역동적 교류의 결과물이다. 통일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진 의식의 춤은 민간과의 교류를 통해 세속화되고, 여러 다양한 형태의 민속춤과 음악으로 분화(分化)한다. 탈춤의 <사상좌춤> <노장춤> <먹중춤>, 한량무의 <중춤>, 서도지방과 전라도지방 무가 따위가 여기에 해당한다. <승무> 또한 이 과정에서 기본 골격을 형성한다.

둘째, 19세기 중‧후반에 이미 여러 형태의 <승무>가 연행되었다. 춤과 음악의 대가 한성준(1874-1941)은 당시 민간에서 행하던 이들을 집대성하여 무대화한다. 이것이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의 시작이고, 그 맥이 예능보유자 한영숙(1920-1989)과 이애주로 계승되었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기본 줄기인 불교의식무가 민속춤에 기초하며, 이후 민간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승무>가 탄생한다. 때문에 이 춤은 종교적 함의를 넘어, 이 땅 민중의 오천년 삶의 몸짓이 응축된 것이며, 특히 한성준에 의해 잘 다듬어진 명무라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승무의 형식과 의미

형식 논의의 일차적인 문제는 짜임새(構成)에 대한 체계적 규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승무>는 장단을 중심으로, 염불과장, 타령과장, 굿거리과장, 법고과장, 굿거리과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둘째, 각 과장은 마루로 구성된다. 다소간 생소한 마루는 공연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춤을 재구성할 때, 기본이 되는 단락이다. 즉 낱낱의 동작을 중심으로 춤을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마루를 중심으로 재편한다는 것이다. 35분가량의 긴 <승무>의 경우, 염불과장은 6개 마루, 타령과장은 4개 마루, 굿거리과장은 4개 마루로 구성된다.1) 반면, 20분가량의 <승무>는 염불과장이 3개 마루, 타령과장과 굿거리과장이 각각 4개 마루로 구성되는데, 이외에도 여러 변형태가 존재한다.

셋째, 각각의 마루는 언어의 단어 또는 구(句)에 유비해 볼 수 있는 어휘적 춤사위로 구성된다. 예컨대 염불과장의 첫 번째 마루의 경우, ‘엎드려 숨고르기’, ‘합장 절하기’, ‘몸 좌우 틀기’, ‘일어나 돌기’와 같은 4개의 어휘적 춤사위로 구성된다.

넷째, 어휘적 춤사위로 구성된 마루는 춤 구성의 기본단락인 동시에 완결된 의미를 확보하는 최소단락이다. 앞서 예시한 염불과장 첫 번째 마루는 ‘인사하고 일어나기’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삼재사상(三才思想)에 기초하여 ‘천지인합일(天地人合一)의 절 드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상에 기초하여, <승무>는 마루의 유기적 연속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전통연희 일반의 짜임새가 각기 다른 제재(題材)를 가진 단락의 연속(連山構造)이라는 채희완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2) 그런데 이애주는 이 속에 ‘서정적 서사 또는 서사적 서정’이 내재한다고 본다. 즉 정서적인 이야기 구조가 있다는 것으로, 염불과장은 발단(起), 타령과 굿거리과장은 전개(承), 법고과장은 절정(轉), 뒤 굿거리과장은 대단원(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전통춤 구성에 대한 체계적 규명은 오랜 동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할 때, <승무> 구성을 ‘과장>마루>어휘적 춤사위’로 체계적으로 정리‧예시한 것과 서정적 서사가 존재함을 지적한 것은 매우 유의미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승무의 무보

역사적 축적물인 전통춤은 변화하며 전승된다. 「한영숙류 이애주 맥 승무 무보」는 <승무>도 예외가 아니어서,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사이에 차이가 존재함을 지적한다. 그리고 문화재 지정 초기보다 길고 완만해진 1980년대의 것이 보다 잘 정리된 춤이라고 평가한다.

이어 1983년 한영숙이 시연하고, 이애주가 정리한 무보를 소개한다. 임성규 작가의 사진과 매 박(拍)마다 구체적 설명 달고 있는 이것은,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선생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우연히 발견된 것이다. 잘 정립된 1980년대 <승무>의 무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특히 제시된 무보는 1996년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이애주가 2년 후에 시연한 <승무> 동영상3)과 매우 흡사하다. 비록 법고과장과 (뒤)굿거리과장 일부가 생략되거나 간략하게 표기되어 있으나, 염불과장(염불 36장단, 잦은 염불 8장단), 타령과장(타령 53장단, 잦은 타령12장단), 굿거리과장(굿거리 91장단, 잦은 굿거리6장단, 굿거리25장단)의 진행절차가 동영상과 거의 일치한다. 이 점에서 제시된 무보와 동영상은 1980년대 <승무>를 이해하는 중요한 고리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춤은 전승 맥락이 복잡하고, 형식이 유동적이며, 의미 또한 다의적이다. 때문에 역사와 가치를 논하기가 쉽지 않다. 이애주는 온 생애를 다해 실타래처럼 엉킨 이 문제를 풀어내고자 노력한 예인이자, 시대를 대표하는 춤꾼이었다. 승무의 미학에서 그의 발언은 다소간 선언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전국방방곡곡의 민속춤, 궁중정재, 경기도당굿과 진도씻김굿, 불교 작법 등을 두루 섭렵한 이력4)을 고려할 때, 그 언표는 공허한 주장이 아니라, 전통춤 이해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할 것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거나, 미발표된 글을 한 곳에 모아 정리한 승무의 미학은 치열했던 사유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원 출처에 대한 명기와 발췌 및 정리의 기준점이 선명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이후 지속적인 보완 작업을 기대한다.



───────────────
1) '우리 춤의 정수 승무'는 염불과장이 5개 마루, 타령과장이 3개 마루, 굿거리과장이 4개 마루로 구성된다고 기술한다. 그러나 이애주는 본인 논문에서, 염불과장은 6개 마루로 구성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필자와의 인터뷰(2014.1.18)에서 한영숙선생 생전에는 더 많은 마루가 존재했음을 증언한 바가 있다. 이애주(1995). 「승무의 구조와 춤사위 연구: 염불과장을 중심으로」. 한국민속학회, 27. pp.290-306. 송성아(2016). 『한국전통춤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한국전통춤 구조의 체계적 범주와 그 예시』. 부산대학교출판부. p.43.
2) 채희완(1992). 『탈춤』. 대원사. pp.99-110.
3) 故정병호(1927-2011)가 주도한 <승무> 동영상으로, 전반부에 이애주가 한영숙류 <승무>를 춘다. 그리고 후반부에 故이매방(1927-2015)이 이매방류 <승무>를 춘다. 국립문화재연구소(1998). 『승무』. 비디오녹화자료. 국립문화재연구소.
4) 이애주 이력은 발간된 세권의 책 중 『춤꾼은 자기 장단을 타고 난다』(2022)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외 <종묘제례악>, <처용무>, <양주별산대놀이>, <송파산대놀이>, <봉산탈춤>, <강령탈춤>, <통영오광대>, <고성오광대>, <동래야류>, <수영야류>, <진주검무>, <승전무>, <승무>, <학무> 등 총14개 종목의 춤사위를 연구한 논문을 통해, 전통춤 일반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이애주(1976). 「춤사위 어휘고」. 관악어문연구, 1-1. pp.247-273.

송성아

춤이론가. 무용학과 미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전통춤 형식의 체계적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저서로 『한국전통춤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한국전통춤 구조의 체계적 범주와 그 예시』(2016)가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있다.​​​​

2022. 9.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