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춤의 도시 뉴욕, 무용 프로듀서로 10년 살기 4 - 미식의 도시 뉴욕 I
다양한 식음 문화의 뉴욕에 흠뻑 젖다
박신애_코리아댄스어브로드 대표

투어나 해외 초청공연을 떠올리면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먹거리가 아닐까. 간혹 해외 공연을 통해 인연을 맺었던 아티스트들과 사적인 자리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 ‘아… 우리 그때 뉴욕에서 먹었던 그 피자, 그 스테이크…’ ‘그 식당 있잖아요. 너무 다시 가고 싶어요’ 등 늘 빠지지 않는 대화 주제가 ‘그때 먹었던, 그것!’이 되곤 하니 말이다.

‘밥은 먹었니?’로 시작하는 우리 문화도 큰 몫을 하겠지만 꼭 한국인들뿐 아니라 해외에서 만난 다양한 국가의 아티스트에게도 한국에 대한 기억이 주로 ‘먹는 것’인 것을 보면 인간에게 ‘음식’에 대한 기억과 추억은 그 시공간에서 느꼈던 감각을 생생하게 불러오는 좋은 매개체가 되는 것 같다.

새 관객을 개발하고 국제적인 문화 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순기능 이외에도 해외 공연(또는 투어)은 예술가 개인에게도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것을 통해 예민하고 감각적인 아티스트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여행이라는 것을 통해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스토리를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인도 여행을 갔다가 대기업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직업을 택하게 되었다”고 하고, 또 ‘1년간 신혼여행 중이라는 부부’의 이색적인 삶의 이야기를 텔레비전에서 본 적도 있다. 이렇게 우리가 떠나는 춤 여행, 해외 공연도 또 어떤 아티스트에게는 예술가로서 새로운 도약을, 변화를 꾀하는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것이 해외에 공연을 오신 아티스트에게 나도 모르게 ‘이곳이 맛있다!’ ‘여기는 꼭 가보세요’라며 민박집 사장님 같은 오지랖을 떨게 되는 이유인 것 같다.

뉴욕으로 공연차 온 아티스트들에게는 무슨 음식이 가장 기억에 남았을까?

많은 사람이 뉴욕 하면 떠올리는 대표적 길거리 음식이 1달러짜리 피자일 테다. 나도 뉴욕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던 시절 ‘99센트’ 피자에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정말 맛도 맛이지만 압도적인 크기에 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맨해튼 블록마다 자리한 델리(Deli, 한국으로 치면 음식을 파는 작은 슈퍼마켓)에서 스페니쉬(Spanish) 아저씨들이 무심하게 구워내는 1달러 피자는 가난한 여행객이나 현지에서 지내는 유학생들에게 큰 힘이 되는 음식임이 틀림없다. 이탈리아 이주민들에 의해 유명해진, 한 조각이 접이식 부채 하나 크기인 뉴욕 스타일 피자. 그래서 홀파이를 주문하면 가게 주인도 당황하고, 지나가던 관광객이 사진을 찍자고 덤비는 상황도 종종 연출되곤 한다.






99센트 피자 ⓒnytimes.com / vice.com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는 여성들의 영원한 사랑 베이글! 뉴욕의 베이글이 맛있는 이유는 1급수인 수돗물 때문이라는 설이 있는데 정말로 뉴저지(맨해튼 바로 옆 허드슨강 건너편에 자리한 뉴저지주)에서 먹는 베이글과 뉴욕 베이글 맛이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베이글은 유대인들이 먹던 빵인데 그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다. 19세기 후반 동유럽 유대인들이 미국과 캐나다로 이주하면서 확산하였는데 어려웠던 시절 식량을 보관하기 쉽게 밀도가 높고 팍팍한 빵을 만들어 꿰어 보관하느라 지금의 모양새가 되었다고 한다. 뉴욕에는 엄청난 규모의 베이글 공장과 판매점들이 있고, 현지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베이글 가게는 유대인 밀집 지역에 주로 자리한다. 돈 없는 유학생 시절 아침 일찍 일어나 베이글 가게에서 핫 베이글(Hot Bagel, 갓 구운 베이글을 칭하는 말)을 더즌(dozen, 12개 한 판)으로 사다 놓으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뉴욕 베이글 ⓒcooking.nytimes.com




다인종이 공존하는 뉴욕은 식음(食飮) 문화가 다양하게 발달해 있다. 이 때문에 미식의 도시라 불리기도 하는데 미국 음식의 대표로 알려진 햄버거, 피자, 스테이크 등은 물론이고 이민자들의 도시답게 에스닉푸드(ethnic food: 히스패닉, 아시아 및 인도, 중동, 동유럽 등의 음식) 또한 현지 퀄리티로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쉽게 타코나 브리또 같은 히스패닉 음식이나, 타이푸드, 베트남 음식 등을 접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한국에 와 있으면 미국 음식이 아니라 뉴욕서 자주 먹던 에스닉푸드가 그리웠던 아이러니한 기억도 있다. 참 재밌는 것은 늦은 밤 음주 후 찾던 할랄가이즈, 한국식(?) 해장을 하겠노라 길거리에 서서 벌벌 떨면서 할랄푸드에 매운 칠리소스를 범벅 해서 먹던 추억도 이제는 한국에 프랜차이즈로 경험할 수 있다.




에스닉푸드 ⓒwamu.org




뉴욕의 음식문화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TIP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카페든 식당이든 종업원의 손을 거쳐 전달되는 모든 음식에는 팁이 뒤따른다. 각 주, 도시마다 약간의 물가 차이가 있지만, 뉴욕은 대게 음식값의 20% 정도(세금의 약 두 배)의 팁을 지불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많은 관광객이 패기 있게 ‘나는 TIP 문화를 모른다!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관광객이니 내지 않겠다!’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이 부분의 오해는 이 글을 통해서 꼭 풀어드리고 싶다. 대부분 웨이터, 웨이트리스들이 이 팁으로 생활을 유지하고, 많은 식당이 종업원들에게 기본급도 없이 팁만 제공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만약 팁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고된 일을 하고도 임금을 못 받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뉴욕에 사는 대부분의 젊은 무용가들이 웨이터나 웨이트리스로 생계를 꾸려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되도록 팁에 후한 인심을 써주시라 당부하고 싶다. 또 모르지 않나, 어제 스튜디오에서 같이 춤춘 그 ‘친구’가 오늘 나의 서버일지 모르니 말이다. 이젠 나도 처음 뉴욕을 찾은 손님들과 식사를 하고 나면 팁이 제대로 놓였는지를 저절로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처음 내가 뉴욕에 왔을 때 이민자 친구들과 식당을 가면 숙제 검사하듯 내가 내놓은 계산서에 팁을 몇 불씩 더 끼워놓곤 하는 의아한 행동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뉴욕’하면 스테이크를 가장 먼저 떠오르게 한다는 사람도 많은데, 대명사처럼 쓰이는 ‘뉴욕 스테이크’, 한국식으로는 채끝살에 해당하는 뉴욕-스트립과 티본스테이크가 적당한 지방함량과 식감이 뛰어나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에 왔으니 ‘뉴욕 스테이크’ 한 번은 먹고 가야 한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가장 대표적인 유명 스테이크 레스토랑으로는 윌리엄스버그(브루클린)에 있는 ‘피터 루거 스테이크(Peter Luger Steak House)’, 맨해튼에 있는 ‘킨스 스테이크(Keens Steakhouse)’, ‘울프강 스테이크(Wolfgang's Steakhouse)’ 등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뉴저지 저지시티(New Jersey, Jersey City)에 살았기 때문에 맨해튼에 있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스테이크 가게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로컬 느낌이 살아있는 호보켄(뉴저지에서 맨해튼 서쪽의 전경을 볼 수 있는 뷰 포인트)의 ‘얼서스 스테이크(Arthur's Steak House)’를 추천하고 싶다. 24oz짜리 ‘Our Steak’가 가장 인기 있는 메뉴인데 40불대 중반이고, 혼자서 먹기엔 무리가 있는 크기이다. 울프강이 디너 타임에 한 사람당 50불대 후반에서 70불 정도 하는 걸 생각하면 가격 대비 성능비가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덤으로 1905년에 설립된 아름다운 호보켄역을 볼 기회이기도. 맨해튼에서 호보켄으로 가는 방법에는 페리(배) 또는 패스(Path, 해저터널을 통해 운행되는 기차)가 있다.




호보켄 터미널(Hoboken Terminal) ⓒwikipedia.org




아이러니하게도 뉴욕에 와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을 물었을 때 한국 사람들이 K타운에서 먹었던 한식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은데, 어떤 이들은 한국에서 먹는 한식보다 뉴욕 한인타운 한식이 더 맛있다고도 한다. 요 몇 해 사이에 뉴요커들에게 가장 핫한! 유흥지로 K타운이 떠오르고 있는데, 사실 2000년도 중반 내가 처음 뉴욕에 갔을 때만 해도 한인타운은 그야말로 한인들만 주로 이용했고 이따금 외국인들이 식당에 들어와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마치 한국에서 외국인을 보는 것처럼 신기해하곤 했다. 요즘은 K문화의 국제적 인기에 힘입어 맨해튼 내 가장 핫플레이스가 K타운이 됐다. 주말이면 인기 있는 한국 레스토랑과 술집에 들어가려고 줄을 서고 기다리는 진풍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또 이제는 막걸리, 소주를 모르는 외국인 친구들이 없을 정도다.

뉴욕은 전 세계에서 이주해온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곳인 만큼 춤도, 맛도 다양하다. 내가 마음먹기 따라서 오늘은 미국식 전통음식인 바베큐(미국 흑인들에게서 탄생한 음식, 통숯불로 오랜시간 익혀만드는 요리)와 함께 앨빈 에일리 아메리칸 댄스 시어터를 관람하며 그야말로 아메리칸 스타일로 하루를 보낼 수도 있지만, 그날의 컨셉에 따라서 지중해식 Greek Food를 디너로 즐기고 이스라엘 안무가의 작업을 보러 브루클린에 갔다가 K타운에서 팥빙수를 디저트로 먹을 수 있는 그야말로 다문화, 다인종의 도시이다. 여행이 인생이 되어버린 나의 삶에서 뉴욕을 가장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도시의 ‘여행스러움’이 아닐까 한다.

박신애

민간무용단체의 해외진출을 돕는 비영리기관인 코리아댄스어브로드의 박신애 대표는 무용 국제교류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국제프로듀서이다. 2014년부터 최근까지 뉴욕92Y 하크니스 댄스센터에서 아시아/코리아 릴레이티드 프로그램의 게스트 큐레이터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국제 솔로 페스티벌 모노탄츠서울의 예술감독, 프랑스 파리 SOUM 페스티벌의 큐레이터를 맡고 있다.​​​

2021. 9.
사진제공_박신애, nytimes, vice, wamu, wikipedia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