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진영아 〈시지프스의 우화〉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춤의 존재체험
권옥희_춤비평가

자연에 춤을 풀어놓는 것이 진영아(Random art project 작은방) 춤의 존재방식이라 이미 말한 바 있다.

‘섬’처럼 떠 있는 ‘삶’의 내면을 그린 바지선에서의 작업 〈섬〉(2018)을 시작으로, 이듬해 ‘집’을 모티브로 개인의 어두운 기억들을 해변 모래사장에 춤으로 아름답게 옮겨놓은 작품 〈In cognita movement 미지의, 인식되지 않은 움직임〉(베스트작품상 수상), 그리고 지난해 춤영상작업 〈수상개화〉에 이어 올해 〈시지프스의 우화〉(부산, 화명생태공원 선착장 앞 광장, 10월 30~31일)까지. 진영아는 극장이라는 안전한 공간을 포기하고 춤 생존의 토대가 가장 무망한 자연으로 옮겨가 그곳에 자신의 춤적 의지를 세우고 있는 중이다. 이 춤적 실천을 위해 자연의 무대를 상상한다는 것은 확고한 춤 사회를 넘어서서 자신의 세계와 춤에 대한, 그 속의 인간에 대한 또 다른 이해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에서의 춤은 춤에서 눈길을 돌리게 하는 것들, 가령 붉게 지는 햇살이 비추는 잔디 공원, 공원을 뛰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기분 좋을 정도의 추위, 주머니 속 손난로, 누군가 선의로 가져다 준 뜨거운 커피, 반딧불처럼 빨강 빛을 꽁무니에 달고 날아가는 밤 비행기 등 놀랍도록 무신경한, 정돈되지 않은 것들과 춤의 혼재가 극장 무대와는 다른 아름다움의 법칙을 가지고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말하자면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춤의 존재체험. 그것을 매개하는 춤과 내가 마주치면서 어떤 장소(place)가 형성되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미적가치 말이다.






진영아 〈시지프스의 우화〉 ⓒ박병민




경계가 없는 잔디공원(무대), 흰색 그랜드피아노와 크기가 제각각인 나무 의자들이 설치미술처럼 드문드문 놓여 있는 한쪽으로 대형 나무벤치가 한쪽에 우뚝 서 있다. 무대는 의자라는 사물과 무용수들을 배치함에 있어 자연의 공간이 사물과 사람을 넘어 그 이상의 존재감을 갖게 만든다. 자연의 공간은 무용수들의 춤을 펼쳐놓는 곳이자 그들 간의 춤의 유사성이나 차이점을 드러내는 장소로 서로가 가진 춤의 비밀을 간직함과 동시에 폭로하는 친구이고, 내밀한 비밀을 간직한 춤의 신전이 된다.








진영아 〈시지프스의 우화〉 ⓒ박병민




어둠이 내리자 맵핑 조명이 황량한 잔디 바닥에 색을 입히고 길을 내면서 춤이 시작된다.

길 한 가운데 서 있는 무용수, 그 너머쯤, 저녁놀이 아름답게 넘어가던 곳, 조명이 미치지 않는 어둠속을 박은화(부산대교수)가 천천히 걷다가 사라진다. 관객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주목하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움직임이다. 춤을 보는 이의 눈에 띄고 안 띄고는 우연일 뿐이지만 춤으로 이야기를 여는 박은화의 이 걸음이 경계가 없는 무대에 전경(前景)과 더불어 입체적인 깊이의 효과, 원근을 마련해주며 무대 전체를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그가 가진 춤의 연륜이다.




진영아 〈시지프스의 우화〉 ⓒ박병민




피아노 연주의 빠른 선율에 맞춰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뒷걸음치는 이(안선희). 누워있거나 앉아 있는 이들, 의자를 끌고 지고 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의자 주위를 맴도는 이, 어둠속에 앉아 있는 이들.

남자(김동석)가 의자 다리에 자신의 발을 넣고 걷는다. 족쇄처럼 양쪽 다리에 찬 의자를 끌다가 넘어지면 일어나고 다시 넘어지고 걷기를 거듭하다 의자를 한 곳에 쌓는다. 자신이 나갈 길을 열어두지 않고 쌓은 의자더미에 갇혀 길을 잃는다. ‘시지프스’ 의 시간을 그려 보여준 좋은 춤이었다. 자유롭게 추는 춤일지라도 춤의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 춤추는 이가 그곳에 완전히 스며들어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조명이 길게 길을 내지만 길엔 아무도 없다. 어느 순간 모두 의자로 탑을 쌓는가 하면 조명이 만들어 낸 길을 약속한 것처럼 내달리다 탑처럼 쌓은 의자를 전리품처럼 두고 모두 사라진다. 의자에 앉아 있는 무용수의 다리를 비추는 조명, 빛의 파동으로 제자리에 앉아서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든지 자신만의 길(행로)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숱한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 지금 서 있는 여기에서부터 다음에 가서 닿게 될 저기까지의 움직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길이 닦여 있든지, 누군가가 먼저 길을 내야한다는 것. 누구든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걸어왔다고 여겼던 길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연스럽기만 했던 건 아니라고... 사유가 꼬리를 문다.






진영아 〈시지프스의 우화〉 ⓒ박병민




박은화의 솔로. 검정색 의상에 연미복 같은 흰색의 겉옷, 흰색망사 고깔로 얼굴과 목을 감쌌다. 슈베르트의 ‘밤과 꿈’이 흐른다. 순결하고 투명하게 추는 춤. 음악(꿈)을 춤으로 조립한 춤이 아름다운 세계 하나를 보여준다. 의자 위에서 한발로 서서 추는 춤의 균형은 끝없는 춤의 수신이 빚어낸 결과다. 의자에서 내려서서 자신이 서서 춤을 추었던 의자를 집어 멀리 던진 뒤 얼굴을 싸고 있던 흰색 베일도 벗는다. 슬픔과 위안이 교체되며 이어지는, 아름다운 춤이었다.




진영아 〈시지프스의 우화〉 ⓒ박병민




무용수들이 다시 의자를 찾아 헤매고 한 곳에 모아 쌓는가 하면, 의자에서 멀리 벗어나 우두커니 서있거나, 의자를 지키고 서있거나, 차지한 의자 위에 올라서서 멀리 바라보며 각자 자신이 해석한 ‘시지프스’의 시간을 춤춘다. 벌거벗은 삶의 주변을 만지는 듯,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의자는 누군가의 꿈과 삶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구부정한 등에 안경을 쓴 남자가(신승민) 맨발로 뭔가를 (자신을)찾듯 두리번거린다. 빈 공간에 놓인 의자에 손을 대자 다른 이가 잽싸게 의자를 잡아챈다. 부드럽고 서툰 춤. 남자가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시도를 안경과 구부정한 등으로 그려낸 절묘한 춤이었다. 


남자
(신승민)처럼 사는 방법에 서툰 이들이 있다. 다른 이들이 의자를 옮겨 가버린 뒤 혼자, 그 자리에서 때늦은 춤을 추다가 팔을 벌려 들고 멀리 길을 따라 걷는다. 눈이 걷는 이를 따라 가다보니 어느 사이엔가 박은화가 남자와 같이 팔을 벌려 들고 남자가 걷고 있는 길을 따라오고 있다. 마치 불러 세우듯, 하지만 모르고 사라지는 남자, 박은화가 망연히 서서 바라보다가 뒤로 돌아서 뛴다. 이들의 춤을 조각상처럼 서서 바라보고 있는 이들. 지켜보듯 멈춰있던 조명이 다시 움직이며 꿈을 배치하듯 길을 만든다. 습관에 갇힌 허약하고 인위적인 춤이 아닌 자유롭고 강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어느 자리에 배치하느냐에 진영아의 춤 존재 방식의 성패가 달려있다.






진영아 〈시지프스의 우화〉 ⓒ박병민




각자의 욕망에 따라 다시 의자를 머리 위로 들고 나르며 쌓는다. 열정과 회한과 좌절과 집착과 나머지 모든 인간적인 것들이 빛바랜 나무의자처럼 삭아져 내리는 시간의 춤이다. 의자 위를 걷는 여자를 들고 내리며 추는 듀오(박종수,박수인)의 도식적인 현대 춤 어법이 생경하게 번쩍거리며 뜬다. 


작품은 예술감독의 철학과 영혼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예술감독(진영아)이 춤추는 이의 춤을(의도)수정하고 필요하다면 (다른)춤 언어를 제시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지프스의 우화〉는 예술감독과 무용가에게 현실적이며 절대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무덤처럼 의자를 쌓아 놓은 뒤, 모두 자유롭게 추는 춤으로 춤현장이 축제장으로 변한다. 박은화가 쌓아놓은 의자를 밀어뜨리고 의자(장작) 더미 가운데 눕는다. 매 순간 죽음을 통해 해방과 자유의 공간을 애써 확보하려 함으로 이해되는. 마지막, 폐허 위에서의 춤은 다시 세워 올리는 삶의 의지인 듯, 그리고 큰 벤치 위를 오른다.

춤의 장소에서 진리와 아름다움을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일단 그곳에서 그런 춤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그 곳이 ‘시지프스’의 시간으로 가득하다고 믿어야 한다. 늦가을, ‘시지프스’의 시간 아래 저 세계의 특별한 시간을 잠시 누렸다.




진영아 〈시지프스의 우화〉 ⓒ박병민




자연에 또 하나의 춤을 던져 올렸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는 섬세하고 풍요로운 춤으로. 하지만 춤에 있어 중요한 것은 춤 무대로 어떤 공간을 선택하였느냐가 아니다. 문제는 작가의 의도를 표현하는 춤과 감동의 관계에 있고, 춤 에너지의 강도와 춤 언어를 선택하고 판단하는 안무자의 철학과 태도의 진정성에 있다. 다행히 진영아의 작업에서 춤 현장의 모든 기미에 시선을 조정하려는 유연함과, 이를 위해 필요한 집중력을 동원하는 강인함과 분명한 춤 세계관을 본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 ​ ​ ​ ​​​​​​

2021. 12.
사진제공_진영아, 박병민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