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대전시립무용단 〈천몽-단재의 꿈〉
계도적 내용으로 관객과 공감할 시대는 지났다
김혜라_춤비평가

대전시립무용단의 〈천몽-단재의 꿈〉(11,12~13. 대전시립연정국악원 큰마당)은 단재(丹齋) 신채호(1880~1936)의 소설 〈꿈하늘(夢天)〉(1916년작)을 바탕으로 무용극화한 작품이다. 새로 부임한 김평호 예술감독의 첫 작품으로 신채호 선생의 인간적 고뇌와 소설에서 등장한 ‘천관’을 결합시켜 단재의 자주 독립 의지를 조명하고자 의도했다. 판타지 성격을 띤 소설 〈꿈하늘〉 내용은 주인공 ‘한놈’이 한국사의 영웅들인 을지문덕과 강감찬을 만나며 역사의식이 고취되는 이야기이다. 무엇보다 소설의 핵심은 ‘아(我,민중)와 비아(非我,일제)의 투쟁적 역사관’으로 김평호 감독은 독립을 향한 투쟁적 결기를 춤적 요소로 풀어내고자 하였다. 사실 원작 소설에서는 주인공 ‘한놈’이 무궁화 꽃송이에 앉아 있을 때 하늘의 메신저(messenger)로 천관이 등장하여 싸움에서 이겨야 함을 전하고 바로 사라져버리지만 무용극 〈천몽〉에서는 소설과는 다소 다르게 천관의 역할을 확대하여 일제 강점기 현실과 단재의 이상을 매개하는 인물(character)로 극의 흐름을 주도하며 전개되었다.

프롤로그에서부터 신채호의 소설에서 발췌된 글을 토대로 각각의 장이 펼쳐진다. 전체적 구성은 제 1장은 괴로울 고(苦), 2장은 옳을 의(義), 3장은 싸울 전(戰), 4장은 푸를 청(靑), 5장은 가둘 옥(獄), 6장은 꿈 몽(夢) 그리고 에필로그로 이루어져 있다. 한 사람의 일대기와 소설에 투영된 신념의 축을 춤으로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고려하여 각장마다 인지하기 용이한 키워드(苦, 義, 戰, 靑, 獄, 夢)를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간결한 각 장의 구성은 춤으로 주제적 이미지를 구성하기에는 용이한 반면 서사적으로는 단선적인 전개로 보일 수 있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로 최근 대극장 공연에서 많이 활용되는 영상과 홀로그램 효과를 이용하여 시대적 배경과 내용의 흐름을 잇고자 한 점이 보였다. 전체적으로 인간 신채호의 자주독립을 향한 투쟁적 결기가 춤의 역동성과 드라마적 감정으로 펼쳐지고 자유분방한 천관이 신채호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켜 주었다. 사실 천관이 ‘한놈’의 투쟁의식을 독려하는 소설의 초반 부분 외에는 전반적으로 다른 전개가 이어진다. 예를 들면 단재가 처한 시대적 현실에서 살아낸 곧은 의지(1장)와 부인과의 연민의 정을 나누는 측면(2장, 6장)을 더욱 조명한 부분이 그것이다.




대전시립무용단 <천몽-단재의 꿈> ⓒ대전시립무용단




무대 단계적으로 살펴보면, 신채호 선생의 역사적 행적이 배경 막에 투사되며 첫 장면이 시작된다. 이어 일제 치하 고통받는 민중들의 몸짓과 단재의 정신적 갈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무대 앞뒤에서 펼쳐지며 소설과 현실이 교차되는 흥미로운 무대 구성을 이뤄낸다. 여기서 천관은 단재의 실천적인 독립투쟁을 일깨우는 정신적인 역할로 꽤나 인상적이다. 무용극으로 최적화된 표현을 살린 여러 장면 중 특히 1장 군무진의 그림자 춤과 투쟁적 결기를 보인 4장 신미경의 검무에서 확연하게 춤다움으로 드러난다. 무엇보다 3장에서 흑백으로 반목했던 사람들이 4장에서 한뜻으로 화합된 의지를 검무로 펼치며 독립투쟁의 결기가 무술적인 동작으로 잘 해석되었다. 더불어 최소한의 무대장치로 최대효과를 보이고자 한 신채호가 대련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장면도 설득력 있는 장면이다. 4개의 액자 프레임만으로 원근법의 효과를 주어 시공간의 차이를 연출하였고, 감옥의 현실과 떨어져 있는 부인을 그리워하는 상상의 장면으로 초반에 설정된 무대사용법과 동일하게 다층적인 의미로 해석될 명장면이라 할 만하다. 여기에 천관이 둘 사이를 매개하며 정서적 교류를 이은 부분도 상상력이 발휘된 장면이다.




대전시립무용단 <천몽-단재의 꿈> ⓒ대전시립무용단




신채호 선생 삶의 전환기적 사건을 구분하여 춤으로만 적절히 풀어낸 작품은 여러 장점을 획득한 반면 고려해야 할 면도 발견되었다.

소설에서 주인공 한놈이 무궁화 꽃에서 전쟁의 승리를 이끈 한국사의 영웅을 만나 투쟁의 의지를 북돋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무용극 〈천몽〉에서는 무궁화 꽃의 정기를 받는 부분이 무용단의 군무로 대체된다. 물론 소설의 내용을 부분 발췌하든, 모티브로만 활용하든 그 영역은 창작자의 상상력에 달려있다. 하지만 독립 투쟁 의지를 결심하는 전환적인 장인 2장에서의 전개가 소설과는 전혀 다른 방향성을 취한다. 1장에서 보인 피폐해진 단재의 정신과는 대조적으로 맥락의 연결이 생경하게 펼쳐지며 서사적 궤도를 이탈했다는 판단이다. 무궁화꽃 색감의 의상을 입고 20여 분간 춘 말끔한 군무가 전체 흐름과는 다소 무관해 보였다. 선녀 같은 외모의 부인과 단재의 이인무도 연민의 춤이지 혼란한 시대 투쟁의 결기를 지지하는 춤으로는 보이질 않았다. 따라서 무용극의 흐름은 여기서부터 소설의 내용과는 상이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단재와 한놈, 한놈과 천관의 중의적 캐릭터로 흥미롭게 출발했던 것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안무가의 상상력이 뛰어난 것인지 필자의 이해력이 부족한지는 모르겠으나 〈꿈하늘〉 소설에서 발췌한 ‘무궁화의 노래’ 글과 아무리 연결시켜 보려고 해도 무리가 있는 춤적 해석이다.








대전시립무용단 <천몽-단재의 꿈> ⓒ대전시립무용단




이어지는 흑백의 옷을 입고 싸우는 현실 앞에서 투쟁을 결심하는 단재와 천관의 연기는 의연하다. 소설에서는 수나라와 싸우는 내용이 나오지만 작품에서는 항일투쟁으로 여겨진다. 제복을 입은 병사의 총 쏘는 그림자로 짐작된다. 조명을 이용한 절제된 공간사용과 웅장한 음악도 전쟁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문제는 시종일관 대립하는 장면마다 타악을 동반한 광활한 음악이 피로감을 유발시켰다. 물론 만주벌판에서 독립운동을 한 선생의 결연한 의지가 음악에 투영되었다고 이해하고 싶었지만, 오케스트라 박스에서 바이올린 5대와 첼로 플룻의 실연소리도 묻힌 채, 협연자들의 연주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가장 이해하기 힘든 점은 중원의 무사인 양 검정 복면에 붉은 천을 두른 군무에서 발견되었다. 바람처럼 등장하여 무대를 채운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몸놀림은 신미경의 결기 가득한 검무와 결을 달리하며 볼거리와 스펙터클한 무대로 변모해버린다. 비록 관객들은 박수로 화답했지만, 초반 현실과 소설의 세계를 자유롭게 유영했던 무대와는 달리 기존 대형극장에서 시각적 만족감을 주는 춤 형태 구성방식을 재현하는 데 그치고 만 것이다.




대전시립무용단 <천몽-단재의 꿈> ⓒ대전시립무용단




감옥에서 좌상(坐床)을 한 단재는 천관의 매개로 부인 박자혜 여사를 위로하고 그 절절한 감정을 전달한다. 그는 죽음을 맞았지만 단재의 애국정신은 당시 민중들과 오늘을 살고 있는 관객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지막 장면으로 결말을 보인다. 〈춘몽〉 작품은 단재의 괴로움, 투쟁의지, 기개, 의연한 죽음으로 연결되는 그의 생애 이정표를 춤으로 해석하고자 노력했으나 전체적으로 내용과 무관한 춤구성의 진부함으로 극의 서사가 모호해진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대전시립무용단 <천몽-단재의 꿈> ⓒ대전시립무용단




시대 정신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의 수준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지고 있다. 기존의 관습적인 공연구성 방식, 앞에서 언급한 내용과 무관한 보여주기 군무, 작품에 무조건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는 중압감, 내용을 가리는 과잉된 감정의 호소 같은 요소가 관객을 만족시킨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대전시립무용단 <천몽-단재의 꿈> ⓒ대전시립무용단




지역의 공공단체 작품을 보면 지역적 소재나 지역 출신 예술가를 브랜드로 혹은 콘텐츠로 구축하려는 기류가 있다(전년도 정기공연 작품 이응노를 주제로 한〈군상〉, 이응노와 신채호는 충청출신). 예술단체가 시를 대표하는 성과물 생산에 주력하기보다는 제대로 된 예술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예술감독의 예술적 상상력과 당대성이 투영된 작품을 시민들은 기다린다. 그리고 무용극이라는 가장 이해하기 용이한 양식을 택했다면 그 극의 서사적 맥락에 대한 치밀한 연구와 공감할 수 있는 현대적 해석이 요청된다. 결과적으로 문학을 근간으로 최신의 트렌드 공연요소로 융합시키려 한 무용극 〈천몽〉은 서사의 단선적 전개로 안무가의 창작의도만을 고취시킨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역사적 교훈에 예술적 상상력이 무릎을 꿇어 애국심만을 강조하는 계도적인 작품으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 ​ ​ ​​​ ​​​

2021. 12.
사진제공_대전시립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