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알티밋무용단 2·3회 정기공연
실험성과 안정감이 돋보인 춤판
최찬열_춤비평가

2019년 창단 후 3년 차에 든 올해 2021년에 Altimeets(알티밋)무용단은 〈단편모음집〉(9월 18~19일/9월 25~26일. M극장)과 두 번의 정기공연을 통해 모두 13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등 비할 데 없이 의욕적인 창작 활동을 펼쳤다. 한국춤에 동시대성을 입히고자 애쓴 공연은 젊은 세대의 열정에 중견 세대의 노련함이 보태져 안정감이 있었다. 두 번의 정기공연에서는 총 6편의 작품이 선보였는데, 이 중 4편은 젊은 세대가 그리고 2편은 선배 세대가 안무를 맡았다.

제2회 정기공연(8월 28~29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두 젊은 안무가 김원영, 배진호는 발랄하면서도 도발적인 공연을 선보인다. 김원영은 〈Am o te, am a me〉(아모 테 아마 메)에서 정신분석학의 나르시시즘적 자아의 무의식을 강렬하면서도 표현적인 몸짓 언어로 나타내 보여준다. 공연은 한 춤꾼이 투명한 물에 비친 자기 모습에 반한 나르키소스(Narcissos)처럼 무대 바닥을 응시하며 서성이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이와 동시에 무대 뒤쪽에서는 착 붙는 비니형 모자로 목과 머리를 다 가린 채 얼굴만 드러낸 춤꾼들의 군무가 펼쳐진다. 춤은 주로 으스대는 몸짓, 불안한 몸짓, 과시하는 몸짓으로 변주되며,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애착을 갖거나 자신이 리비도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묘사하는 데 치중한다. 구성과 전개가 투박하지만 젊은 감각이 살아 있는 작품이다.






김원영 〈Am o te, am a me〉 ⓒ윤보람




배진호는 〈SALIVA OR BLOOD〉에서 성적 행위를 걸러내거나 빼냄 없이 보여준다. 스킨십이 난무하고 남과 여, 남과 남, 여와 여의 섹스 체위와 자위행위, 그룹으로 하는 섹스 행위 등이 적나라하고 노골적으로 묘사된다. 공연은 마치 섹스 행위의 무대화 혹은 춤화로 보일 만큼 관능적인 몸짓 기호들이 범람한다. 하지만 이 작품을 젊은 안무가의 성적 판타지가 투영된 치기 어린 작품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춤 만든 이가 성적 행위를 여과 없이 묘사하는 자극적인 장면 배후에서 은밀하게 작동하는 세속적 인간 군상의 씁쓸한 관계성을 슬며시 보여주는 재치를 발휘하기 때문일 것이다. 표현이 다소 과하고 거칠은 면이 있어도 패기와 실험성이 돋보이는 예사롭지 않은 작품이다.






배진호 〈SALIVA OR BLOOD〉 ⓒ윤보람




제3회 정기공연(12월 8~9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선보인 백진주의 〈무무(無:舞)〉와 추세령의 〈맴〉은 젊은 안무가의 의욕과 열정이 넘치는 작품이다. 백진주는 세계에 내재한 다양성과 이질성을 감각적인 몸짓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같은 시공간에 속한 다른 것들이 충돌하거나 교차하면서 긴장을 축적하듯, 또 어떤 파열음이 생성하듯, 군무 위주의 춤은 공연 내내 시종일관 무대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며 빠르게 전개된다. 춤의 역동성을 살리면서 의도를 형상화하고자 애쓰지만, 쉼 없이 나열되는 춤과 지나치게 자극적인 음악과 조명이 부담스러운 공연이다.






백진주 〈무무(無:舞)〉 ⓒ윤보람




추세령의 〈맴〉에서 모든 춤과 퍼포먼스는, 작품의 맨 마지막 장면에서 나무-인간이 토해내듯 내뱉는 단 한 번의 의성어, 곧 ‘맴~’이라고 외치는 매미의 울음에 동조하기 위해 수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나무로 온몸을 감싼 나무-인간을 상수 뒤쪽에 배치한 도입부는 안무 의도에 부합하는 꽤 인상적인 장면이다. 하지만 춤 만든 이는 이를 계속 살려 나가지 못하고, 공연은 앞으로 나아갈수록 긴장감을 점점 잃어간다. 의도를 미장센으로 구축하는데 서툴다는 말이다.






추세령 〈맴〉 ⓒ윤보람




전체적으로, 젊은 세대의 작품이 의도를 객관화시키는 데 미흡하거나 완성도가 떨어지는 측면을 보인 것과는 달리 선배 세대는 자기만의 색깔을 또렷이 보여주면서도 컨셉을 단단하게 구축한 작품을 선보인다. 장혜림의 〈심연〉은 제2회 정기공연에서 가장 돋보였던 작품이다. 〈심연〉에서 무대는 운무가 잔뜩 낀 망망대해처럼 보인다. 조명 바텐은 아래로 쭉 내려와 걸려 있고, 무대 바닥에는 조명에 의해 제법 큰 둥근 원이 구획되어 있다. 또 그 안에는 작은 원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검은 옷을 입은 춤꾼 한 명이 손에 작은 종이배를 부착한 채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춤 만든 이는 이를 먼바다에서 고독하고 쓸쓸하게 떠다니는 배-인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필자에게 이는, 억울하고 분하게 죽임을 당한 후 외로이 부유하는 어느 한 맺힌 젊은 넋으로 보인다. 곧이어 상수 중앙에서 흰옷을 입은 여자 사람 소리꾼이 등장에 무대 중앙을 서서히 한 바퀴 돈 뒤, 자리를 잡고 앉으면, 검은 옷을 입고 촛불을 든 5명의 춤꾼이 천천히 등장해 촛불을 소리꾼 앞에 놓는다. ‘땡그랑~“ 놋그릇을 치는 소리와 함께 조명 바텐은 올라가고 군무가 시작된다.




장혜림 〈심연〉 ⓒ윤보람




군무가 펼쳐지는 무대는 마치 억울한 넋이 떠도는 구천처럼 보인다. 소리꾼의 구음 소리는 끝없이 넓고 큰 바다에서 떠도는 원혼들을 불러들이고, 바이올린과 드럼, 건반 등으로 구성된 생음악 반주에 맞춘 춤은 이들을 달래고 위로하는 해원 상생의 춤판을 펼친다. 〈심연〉은 청신(신을 청하다), 오신(신과 함께 놀다), 그리고 송신(신을 보내다)의 순으로 진행되는 굿의 구성과 흡사하게 진행된다. 곧, 〈심연〉에서 소리꾼의 구음은 깊은 물에 잠긴 원혼을 깨워 불러들이고(청신), 드럼 소리와 함께 어울려 춤을 추며 원혼을 달래고, 남겨진 사람들과 죽임을 당한 넋을 위무하며 한을 풀고(오신), 억울한 혼들을 다시 돌려보낸다(송신). 송신 장면에서는 바이올린 연주가 천상으로 돌아가는 원혼들을 배웅한다. 이를테면 〈심연〉은 한국춤에 동시대적 감성을 입힌 몸짓으로 (장혜림은 말한 바 없지만) 세월호의 원혼을 위무하는 현대판 씻김굿인 셈이다. 고통받는 사람과 아픈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마음을 모아 똑바로 보는, 춤 만든 이의 따뜻한 시선이 작품에 잘 녹아있는 공연이다. 컨셉을 구현하는데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견고하게 짜진 공연은 한국적인 정서를 물씬 풍기고, 한국춤 동작을 현대적으로 변용해 주제에 맞게 무대화한 춤은 울림이 크고 깊다.






장혜림 〈심연〉 ⓒ윤보람




제3회 정기공연 무대에 오른 안상화의 〈RULE-말하고 있다〉는 춤과 미디어아트의 협력 작업으로 만든 작품이다. 공연의 도입부는 강렬하다. 무대 중앙에서 객석으로 쏘아대는 직사광은 관객의 보는 행위를 방해하며 시야를 가린다. 빛을 피해 간신히 시야를 확보하면, 강한 빛 이면에서 꿈틀거리고 뒹구는 운동체가 아스라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생명의 시초에는 빛과 운동이 존재한 것일까. 빛과 운동이 파동을 일으키며 퍼져나가 꼴과 형태를 이루듯, 혹은 카오스로부터 코스모스가 생겨나듯, 춤꾼들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며 무대 중앙에 바르고 가지런하니 서 있고, 무대 천장에는 13개의 투명 큐브가 매달려 있다. 무질서로부터 질서가, 카오스로부터 형태가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 빛이 거기로부터 쏟아져 나오고, 운동이 시작되는 곳, 빛과 운동으로 가득 찬 출발지는 모든 형태를 생겨나게 하는 존재론적 바탕 혹은 터일 것이다.




안상화 〈RULE-말하고 있다〉 ⓒ황상철




일렬로 선 춤꾼들은 큐브를 향해 두 팔을 올리며 가슴을 젖혔다가, 비스듬히 눕기도 하고, 다소곳하게 앉았다가 일어나 상체를 이용해 웨이브 동작을 하기도 하는데, 마치 물결이 일렁이는 듯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일련의 동작들은 유동성(流動性)을 강조하는 몸짓이다. 그리고 부드러운 몸의 움직임에 동조하듯 큐브들은 일제히 위아래로 운동하는데, 춤추는 몸의 곡선 운동과 큐브의 직선 운동이 서로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면서 교감하는 것으로 보인다. 몸과 큐브는 각자 자신의 궤적을 남기는 운동-이미지로서 교차하는 것이다. 몸의 액체성과 큐브의 고체성이 서로 비추어 꼭 맞게 대응하면서 어긋나거나 부딪침이 없이 잘 어울리는 장면이다. 여기서 춤은 역동성을 띠기보다는, 두 개의 꼴 곧, 신체와 물체(큐브)가 나누는 교감 활동에 활용된다.




안상화 〈RULE-말하고 있다〉 ⓒ황상철




몸과 큐브, 그리고 이들을 있게 한 빛과 운동은 더 활발하게 관계 맺는다. 무대 중앙의 둥근 조명 안에 혼자 남은 춤꾼은 무대 천장에 매달린 큐브를 응시하고, 큐브에서 반사된 빛이 무대 바닥 여기저기로 흩어진다. 무대 뒤쪽에서 객석을 향해 두 개의 직사광이 투사되면서, 솔로와 듀엣 춤, 그리고 군무가 차례로 펼쳐진다. 그와 동시에 빛은 무대 바닥에 점과 선, 면을 그리고, 원의 형상을 만들기도 하는 등, 변화무쌍한 운동성을 형태로 나타내며 생동감을 더한다.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점, 선, 면과 일렁이는 원 등, 꼴의 모양이나 차원을 바꾸고 달리하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의 운동은 마치 생명의 생성 운동을 시각화하는 듯하다. 춤과 퍼포먼스 그리고 빛이 서로 잘 어울려 다채로운 볼거리를 만들어내면서도 컨셉을 명쾌하게 표현하는 장면이다.






안상화 〈RULE-말하고 있다〉 ⓒ윤보람




타악 장단이 빨라지면서 춤은 점점 기세를 더하며 역동적으로 변하는데, 군무는 나뉘었다가 다시 합치는 등 형태를 다르게 가지며 진행된다. 이에 대응하듯 무대 바닥에는 둥근 모양의 빛무리가 함께 일렁인다. 경쾌한 타악 장단에 맞춘 춤은 빛과 큐브의 운동과 함께 절정으로 치닫는데, 한 손을 가슴에 둔 채, 상체를 튕기듯 격렬하게 움직이면서, 한쪽 발을 들어 바닥으로 강하게 털어내듯 내뻗는 춤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 춤은 마치 혼돈 그 자체 안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항상 새로운 꼴과 형태를 형성해 가는 생명의 역능을 표현하듯이, 몸의 잠재력을 응축해 일시에 밖으로 터뜨리는 듯하다. 안상화의 〈RULE-말하고 있다〉는 생명 혹은 카오스의 창조적 생성 운동, 곧 생명의 약동(élan vital)과 그 운동으로부터 생겨난 꼴들의 교감 활동을 춤과 빛-운동으로 형상화한 깔끔하고 세련된 작품이다. 기실, 생명 활동에 규칙(rule)이 있다면, 그것은 매번 다르게 반복하는 창조적 진화일 것이다.

최찬열

인류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춤과 공연예술, 미학과 관련된 과목을 강의했다. 지금은 몸의 예술과 인문학에 기반한 통섭적 문화연구에 몰두하며, 춤문화연구소에서 미학과 춤 역사를 강의한다.​

2022. 1.
사진제공_알티밋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