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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 다큐멘터리 〈두 번째 날개〉 제작 후기
경험하라, 찾아라, 도전하라
이단비_방송작가. 무용칼럼니스트
방송가에서 은퇴와 인생 2모작에 관한 주제가 뜨겁게 떠오른 시점이 있었다. 베이비붐 세대가 사회 일선에서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한 때였다. 2020년이 되면 700만 명의 베이비부머 은퇴자들이 등장하고 그것은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것이란 의견이 나오고 있다. 더군다나 이 시점에 100세 시대에 진입해버렸다.
 이런 상황에 무용수들은 어떤가.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은 신데렐라처럼 화려한 의상과 마차는 사라지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현실을 마주 대해야 한다. 오로지 춤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왔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란 말인가.
 제작 후기라고는 하지만 뒷이야기나 에피소드보다는 미처 방송 안에 담지 못했던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하려고 한다. 무용수들에게 도움이 되고, 무용계가 조금 더 숨쉴만한 곳이 되기를 바라면서. (아리랑TV에서 방영된 무용 다큐멘터리 〈두 번째 날개(The Second Wing)〉 영상 https://youtu.be/jz4geMVD9Yc)




45년의 역사, 유럽의 무용수 직업전환 기관


이번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면서 국내에만 해당되는 특수성보다는 어느 나라에서 어떤 국적을 갖고 춤을 추고 있든 상관없이 보편적인 무용수의 이야기를 담기로 논의됐다. 그래서 해외 촬영도 진행하게 됐는데 어느 나라를 선택하느냐가 고민이었다. 영국은 이미 1973년에 무용수들의 직업전환을 위한 기관인 DCD(Dancers’ Career Development)를 세워서 가장 역사가 깊었고, 미국과 캐나다도 1985년에 무용수 직업전환센터를 설립했다. 네덜란드는 1986년 무용수 재교육 기관으로 옴스홀링스레글링(Omscholingsregeling)이라고도 불리는 ODN(Omscholing Dansers Nederland)을 세웠다.
 네덜란드는 다른 나라보다 설립 시기는 늦었지만 무용수들의 직업전환과 은퇴 문제에 대해 모범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곳으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네덜란드에는 IOTPD 사무실이 있었다. IOTPD의 폴 브롱크호스트(Paul Bronkhorst) 회장은 ODN의 센터장을 맡고 있기도 했다. 네덜란드는 이번 촬영에서 최적의 선택지였다. 

 


 이번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많은 무용수들이 지적한 부분 중 하나가, 노후와 은퇴를 준비해야 하는 것은 알겠는데 우리나라의 짧은 무용 역사 속에 모범적인 롤모델이 부재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네덜란드에서 직업전환의 좋은 사례를 찾고자 했다. 폴 브롱크호스트 회장과 상의하면서 들은 직업전환 사례들 중 몇몇 가지는 상당히 놀라웠다. 안무가, 무대감독, 디자이너, 재활치료사, 트레이너, 댄스 교사와 같이 무대 안팎에서 어느 정도 연결고리가 있는 직업들로 전환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직업을 선택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작진의 입장에서 가장 흥미를 끌었던 직업은 판사와 비행사. 무대를 떠난 그들이 전혀 무대와 상관없는 직업을 고르고 공부한 과정들이 궁금했고 당연히 섭외 1순위의 인물들로 떠올랐다. 마침 판사를 하고 있는 폴 워츠(Paul Waarts)씨도 네덜란드에 거주하고 있었다. 폴 워츠 판사와 현지 코디네이터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법원 내부 촬영까지 허가됐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싶다. 

 


 비행사로 직업 전환한 타마스 나기(Tamas Zoltan Nagy)씨의 경우, 현재 헝가리 위즈 에어(Wizzair Airlines) 소속이라 부다페스트에 거주하고 있다. 동료와 비행 스케줄을 바꿔 네덜란드까지 와서 촬영에 임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다큐 제작에 적극성을 보였는데 아쉽게도 IOTPD 사무실과 네덜란드 법원, 현지 코디네이터까지 모든 스케줄을 맞추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 촬영을 진행하지 못하게 됐다. 대신 어떻게 이렇게 전혀 다른 직업의 세계로 뛰어들 수 있었는지 타마스씨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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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수에서 비행사로, 타마스 나기(Tamas Zoltan Nagy)의 두 번째 날개

타마스 나기(Tamas Zoltan Nagy)씨는 비행사 이전에 헝가리국립발레단과 네덜란드국립발레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했고, 유럽과 아시아, 미국의 수많은 컴퍼니에서 객원 솔리스트로 활약했다. 1996년부터 2012년까지 16년 동안 프로 무용수로 생활했다. 

 


춤을 그만두고 어떤 부분이 가장 큰 변화로 다가왔나요?

라이프 스타일이죠. 무용수들에게 은퇴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입고 있던 옷을 벗는 일이니까요. 이제까지 해왔던 일상과 환경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무대에 대한 기억은 어땠나요? 후회나 두려움은 없었나요?
저는 암스테르담에서 아름다운 작별 무대를 가져서 행운이었죠. 마지막 무대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 파드되를 췄어요. 가족, 친구, 동료들과 함께한 멋진 저녁이었죠. 그것은 내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마감하는 자리였지만 새로운 출발점이기도 했어요. 변화가 시작돼서 기뻤습니다.

무용수를 그만둔 뒤 어떻게 파일럿이 되기로 결심했고, 어떤 준비를 했나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항공 분야에 대해 늘 호기심과 흥미를 가졌어요. 그래서 할 수 있을 때 경비행기 자격증을 땄고, 나중에 춤을 그만 두면 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은퇴 후에 사업용 비행사 자격증(Commercial Licence)을 따기 위한 훈련을 했고, 항공사 조종사가 됐죠. 무용 외에 제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그리고 춤을 출 때보다 보수도 높아서 행복해요.

무용수로 한창 활동을 하고 있을 때에도 은퇴 뒤에 어떤 일을 할지 계획했었나요?
직업 무용수로 사는 기간이 상당히 짧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저의 경우 무용수 이후에 무엇을 할지 생각해야한다고 저 스스로를 계속 밀어붙였어요. 다행히 네덜란드에서는 은퇴 후에 예술가들이 새로운 직업을 찾고, 사회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건강하고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시스템이 있습니다.

네덜란드 ODN을 통해서 어떤 도움을 받았나요?
무용단에 있을 때 일정 기간 ODN에 보험료를 내고 은퇴 후에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ODN은 무용수가 새로운 직업을 위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도움을 줍니다. 적합한 학교나 교육기관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고, 필요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조언을 해줘요. 학습 비용과 공부를 하는 동안 생활비를 보조해주고, 창업을 할 때 지원해주기도 합니다.

무용수들이 은퇴 후의 삶을 위해 어떻게 준비하는 게 좋을까요?
제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언은 이 변화에 대해 미리 미리 인식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예요. 프로 무용수들은 새로운 도전, 지속적인 육체노동, 공연, 상해 치료로 바쁜 시간을 보내요. 아름답지만 그 기간은 짧고,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은퇴 시기가 앞당겨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무용수 시절에 미리 기본적인 공부를 해놓는 게 좋아요. 그래야 춤을 그만뒀을 때 바로 고등교육기관에 지원하고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만들어집니다. 새로운 정보에 대해서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무용수 시절부터 미리 공부를 해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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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마스 나기씨의 경우 현역 무용수 시절부터 다음 단계에 대해 고민하고 차근차근 준비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본인도 이 점을 중요하게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젊은 무용수들은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에서 발표한 2013년 전문무용수 실태조사에 따르면 은퇴 후 진로준비 여부 조사결과, 아니다 66.2%, 그렇다 33.8%로 과반 수 이상의 응답자가 은퇴 후 진로를 준비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 준비에는 크게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직업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자금 문제. 판사나 비행사의 경우 교육을 받는 데 장기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 생활비나 학비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이게 가장 현실적인 문제였다. 우리가 인터뷰 한 네덜란드의 무용수들은 ODN의 도움으로 해결했다고 말했다. 어떤 도움을 받았고, ODN은 재정적 지원을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걸까.




은퇴 뒤의 든든한 버팀목, 네덜란드 옴스홀링스레글링(Omscholingsregeling)


네덜란드는 무용수들에게 일종의 ‘연금제도’와 같은 시스템을 적용해서 안정적으로 직업전환, 은퇴 후의 삶을 보장해 주고 있었다. 1986년, 무용수 재교육기관으로 설립된 네덜란드의 ODN(옴스홀링스레글링)이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기관은 네덜란드 교육문화부(OCW, Ministry of Education, Culture and Science)의 도움과 약 14억 원 정도의 초기 설립자금을 모금해서 문을 열었다. 무용수들에게 매달 보험료를 받아서 은퇴나 직업전환 비용으로 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무용단에 소속되는 순간 무용수는 자동으로 옴스홀링스레글링에 보험료를 납부하는 시스템이다. 매달 월급의 총 4%가 납부되는데 이 중 3%는 고용주가 지불하고 무용수 자신은 1%를 지불한다. 한 달 월급 200만 원을 받는 무용수를 기준해서 계산해보면 이렇다.
  총 납부보험료: 4% ⇒ 8만 원
  고용주(컴퍼니)의 보험료 납부비용: 3% ⇒ 6만 원
  무용수의 보험료 납부비용: 1% ⇒ 2만 원 
  5년간 무용수의 보험료 납부비용: 2만 원 × 60회 = 120만 원

 5년 동안 무용수는 120만 원의 보험료를 내는데 이런 경우 최대 € 10,000(약 1,300만 원)까지 학업비용을 받을 수 있다. 학비는 은퇴 전부터 지원받을 수 있지만, 지원받은 자금은 다음 직업전환을 위한 교육에 쓰여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무용수로서 10년 이상의 경력, 최소 120회의 보험료를 낸 경우에는 은퇴 후 연구비용이나 사업자금, 생활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옴스홀링스레글링의 홈페이지에는 96회로 나와 있지만 현재 120회로 개정됐다.
  10년간 무용수의 보험료 납부비용: 2만 원 × 120회 = 240만 원

 이 경우 무용수는 보험료로 240만 원을 내고 최대 € 60,000(약 7,90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데 평균 € 40,000~50,000(약 5,300~6,600만 원)을 지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은퇴 준비자금으로 썩 괜찮다. 일종의 퇴직금인 셈이다. 무용수 자신은 5년~10년간 120~240만 원의 보험료를 내고 은퇴 준비 자금으로 1,300~6,60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니 상당히 유용하다.
 그렇다면 프리랜서 무용수들은 어떤가. 프리랜서도 옴스홀링스레글링에 가입할 수 있다. 다만, 매달 보험료 4%를 전액 본인이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한 달에 200만 원의 수입을 올리는 프리랜서 무용수의 입장에서 계산해 보면,
  총 납부보험료: 4% ⇒ 8만 원
  5년간 무용수의 보험료 납부비용: 8만 원 × 60회(5년) = 480만 원

 무용수는 총 5년간 480만 원을 지불하고 최대 1,300만 원 정도를 지원받기 때문에 이득이다. 10년 동안 보험료를 낸다면 총 960만 원을 내고 5천만 원 이상을 받아가는 구조다. 아무리 투자와 재테크를 잘한다 하더라도 이 정도의 수익을 내기란 불가능하지 않은가.
 하지만 프리랜서 무용수는 수입이 일정하지 않고, 무용단과 프로젝트로 단기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보험료를 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2015년 10 월 1일부터는 무용단과 몇 개월 단기계약을 맺은 무용수라도 보험료 지불기간을 2배로 늘릴 수 있도록 개정됐다. 예를 들어 무용단과 6개월 간 단기계약을 맺은 경우, 보험료는 6회가 아니라 12회까지 낼 수 있다.
 네덜란드에서 이런 시스템이 가능한 이유는 활동하는 무용단이 많다 보니 무용단과 무용수들의 분담금이 상당 액수 모아질 수 있는데다 설립 이후 해마다 8억 원씩 정부 지원금을 받아서 어느 정도 재원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첫 10년 동안은 재정 문제로 고생을 했지만 그 이후 자리를 잘 잡은 사례다. 현재는 두 번째 고비를 맞은 상태이긴 하다. 몇 년 전부터 네덜란드 교육문화과학부가 ODN에 직접 지급하던 보조금을 각 컴퍼니에 지급하고, 다시 컴퍼니에서 ODN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그래서 무용수들이 보험료를 48회, 72회를 납부하면 받을 수 있던 혜택이 현재는 60회, 120회를 납부해야 받을 수 있게 개정됐다. 정부 보조금을 간접적으로 지원받는 시스템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고민은 있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네덜란드의 이 시스템은 여전히 모범적인 직업전환 프로그램으로 인정받고 있다. 연금 제도 외에도 직업전환에 관한 컨설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무용수들이 은퇴 후의 삶과 직업을 고를 때 혼자 고민하지 않고 전문적인 조언을 얻을 수 있다.




무용수 지원 제도, 어디를 향하는가


우리나라에 이 제도를 적용할 수는 없는 걸까.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문무용수지원센터(Dancers’ Career Development Center, DCDC)가 설립돼서 무용수들을 돕고 있다. 센터가 설립된 것은 지난 2007년. 이제 11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현재 전문무용수지원센터에서는 연습이나 공연 중에 부상을 입은 무용수들에게 연간 최대 500만 원 이상 상해치료비 지원과 건강검진을 진행하고 있고,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무용수들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행정, 물리치료, 무대기술 등 무용수들이 새로운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과거에는 상해지원비를 지급했지만 현재는 하지 않고 있고, 나라별로 무용수들의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조금씩 다르다. 한정된 재원 안에서 나라별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어떤 부분을 포기하느냐는 운용의 묘를 가져가는 상황이라 볼 수 있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는 유럽의 기관들보다는 회원 가입에 대해서는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진 않는다. 전문무용수를 정의하는 기준이 모호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만큼 무용수들에게 열려있기도 하다. 영국의 DCD(Dancers’ Career Development)의 경우 전문무용수로서 총 8년을 일하고 이중 5년 이상 영국에서 활동한 무용수들에게 지원해주도록 제한하고 있다. 여기에 무용 교육을 받는 동안 무대에 선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프리랜서 무용수의 경우 매년 평균 16주 동안 무용수로 수입을 얻은 것을 증명해야 한다. 독일의 경우는 7년 이상의 경력에, 5년 이상 독일에서 일한 무용수들에게만 지원을 해주고 있다.
 이보다 중요한 차이점은 해외의 기관들은 직업전환에 중점을 두고 운영하고 있지만 전문무용수지원센터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무용수들에 대한 지원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무용수 복지에 관해 포괄적으로 사업을 펼치면서 서서히 직업전환 영역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직업전환 교육비로 최대 연 2회 50~600만 원까지 지원하는데 네덜란드처럼 매달 무용수들에게 분담금을 받고 있지는 않는 상황에서 이런 지원사업을 펼치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현재 전문무용수지원센터는 무용수들에게는 정회원 가입 시 입회비 5만 원, 연회비 3만 원을 받고 있다. 네덜란드의 사례를 볼 때도 은퇴 무용수들이 학비와 생활비 걱정을 덜고 새로운 직업을 가질 수 있게 지원해줄 수 있는 건 몇 십 년의 운영 기간 동안 마련된 안정적인 재정 때문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예술인복지법은 여전히 실효성 여부를 놓고 왈가왈부한 상태고, 문화체육관광부는 내년에 예술인고용보험과 예술인 복지금고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장의 상황이 얼마나 반영될지 걱정이 앞선다. 현실성 있는 정책을 시행하려면 예술가에게 근로자, 노동자의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제도의 시행과 개정 단계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던 프랑스의 앵떼르미땅(Intermittent de Spectacle)은 여전히 예술가들의 실업보험 제도의 가장 모범적인 케이스로 손꼽히고 있다. 앞서 시행착오를 겪은 다른 나라의 사례와 제도들을 살펴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제도로 완성해갈 수 있도록 정책 관계자와 공연예술계 현장의 목소리가 한 지점에서 잘 만나야겠다.




무용수 스스로가 선택하는 두 번째 날개


〈두 번째 날개〉가 정책 진단보다는 휴먼에 초점을 맞춘 다큐멘터리로 진행되면서 제작 과정에서 무용수들의 속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리고 촬영을 하면서 만난 전,현직 무용수들의 인터뷰들을 통해 가장 기본적인 방향을 하나 알게 된 게 있다. 그것은 많은 경험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찾아내라는 것이다. 폴 워츠 판사는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끊임없이 자료들을 찾아봤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문의를 많이 했다고 한다. 김용걸 교수의 경우,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고 어린 아들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자기 것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전효정 무용수는 현역 시절에 의상이나 소품을 직접 만들어보면서 무용복 디자이너가 자신에게 잘 맞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박귀섭 사진작가는 우연히 친구들과 작업한 패션화보 작업을 통해 사진 찍는 일이 너무 재미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무용수들은 무대에 서기까지 오랜 기간의 훈련이 필요하고 최고의 기량을 내기 위해 오로지 춤만 바라본다. 그 외에 다른 것에는 눈길도 돌리지 않거나, 돌릴 시간도 갖지 못한다. 주변을 둘러봐도 다들 그렇게 춤추고 무대에 서고 있으니 그 분위기에 편승해서 그렇게 살아간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정책이 내 삶을 온전히 책임져 주지 못한다. 무용 외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새로운 시도와 경험을 통해 반드시 찾아내고 도전하기를 바란다. 직업전환에 성공한 모든 무용수들은 이 말을 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것은 무용인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숙제이기도 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름으로


제작을 마치면서 첫 번째 날개는 나의 선택이 아닐 수 있지만, 두 번째 날개를 찾는 과정은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갈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퇴 이후에, 나이가 든 이후에, 노인이라는 대명사로 통칭되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으로 불리기를 바란다. 
이단비
KBS를 시작으로 SBS, MBC를 거쳐 다양한 매체에서 방송작가로 활동 중이다. 발레를 비롯한 공연예술 다큐멘터리 제작과 집필에 매진하고 있으며, 발레와 무용 칼럼을 쓰면서 강연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2018. 03.
사진제공_전문무용수지원센터 Paul Waarts Tamas Zoltan Nagy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