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릴레이 기획_ 춤 지원금 심사(2)
우리는 선택권을 빼앗겼다
김신아_아트 프로듀서

<춤웹진> 2013년 12월호에서 비평가 이지현은 “춤 생태계는 건강한가”라는 제목으로 공공 춤 지원금 심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춤 지원금 심사위원들의 책임감과 의식 등을 거론한 이 글은 심사위원의 자질과 지원금 심사방법 등과 맞물려 지원기관과 춤계에서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춤웹진>에서는 지원심사와 관련된 춤계 현장의 생생한 소리를 듣기 위해 연속 기획으로 이 문제를 조망한다. (편집자 주)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해보았을 것이다. 심지어 약물 알레르기 때문에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포함해 각종 부작용에 대해 삼엄한 경고가 나열되어 있다. 이 서류에 사인을 받는 목적은 “사전에 충분히 내용을 고지했으니 잘못될 경우 병원이나 의료진에게 책임이 없다는 점을 명문화 해놓겠다”는 것.
 보호자가 되면 가족의 목숨을 놓고 한시도 지체할 수 없거니와 문제제기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실질적으로 선택권 없는 질문에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전문용어만 가득하니 그저 두 손 부여잡고 고개 조아리며 “살려달라”고 할 밖에. 병원에 입원한 순간부터 의사는 하늘이고 간호사는 천사니 그들이 내미는 서류는 절대 복종해야 할 계시나 다름없다. 종합병원을 예약하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선택진료’. 이상하지 않은가? 선택을 필수로 하란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 과거 국립의료기관이 의료진의 임금보존을 위해 만든 이 제도에 우리는 선택권을 빼앗겼다.

 작년 말 문예진흥기금의 연극, 무용, 음악 창작기금이 없어졌다. 그리고 매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 천 만원, 이천 만원 혹은 그보다 조금 더, 제작비 총액에 비하면 많은 돈도 아니고, 기금이 창작 전부를 책임져 주는 것도 아니지만 공공기금은 창작에 일정부분 신뢰를 부여하고 작가가 뭐라도 시도해 볼 동기가 된다.
 이것을 없앤다는 것은 결국 창작기반을 무너뜨리겠다는 매우 심각한 도전인데도 불구하고 설명회 자리에서조차 이에 관해 질문하나 없었다. 오히려 극도로 긴장해 답변을 준비했던 담당자가 허탈하다 했을 정도니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절대적인 권력이다. 권력의 달콤함을 맛 본 자에게 돈은 그래서 계시이며 당위이고 명제가 된다. 그리고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그것을 집행하는 사람은 권력자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가 범하는 오류는 공공기금으로 만들어진 권력구조에서 그 돈의 출처를 너무 쉽게 망각한다는 것인데 지금 우리는 지 밥그릇 뺏기고 찍소리도 못하던 조선시대 어린 백성, 의사 앞에 선 보호자처럼 힘을 가진 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에 저항할 의지를 잃고 그저 묵묵히 복종하는 순한 어린양이 되었다. 


 

어떻게 책일질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경쟁력, 자생력 확보. 좋은 말이다. 그래서 영화산업의 도약과 부산국제영화제의 성장이 문화예술 활동에 있어 매우 훌륭한 성공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아무리 쏟아 부어도 크게 나아지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기초예술분야 활동이 모든 것을 빨리 잘 해내는 한국인들에게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소모적으로 비춰질 것이다.
 어쩌면 도통 무슨 소리를 하자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마루에 대자로 누워 치킨을 입에 물고도 웃을 수 있는 버라이어티처럼 재미있는 것도 아닌 공연에 돈과 시간을 쓰느니 팝콘 끼고 편안한 의자에 반쯤 누워 영화 한편을 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무한정 확대재생산해 매체에 실어 시공간을 이동하는 콘텐츠와 사람이 먹고 마시며 움직여야 하는 콘텐츠를 트랙에서 같이 출발시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 경우 기적은 없다.
 물론 반 이상 하품하다 탈출하듯 객석을 빠져 나오게 하는 공연물들은 분명 책임이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을 어떻게 질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명심해야 할 것은 언제까지나 관객을 원망하며 사회적 소통 책임으로부터 도망만치는 기초예술이라면 국민의 세금으로 보호해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문화의 뿌리라는 명분은 한낮 도피처이자 비루한 구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는 아니어도 스크린을 누비는 명배우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유명 탤런트들이 자기 발전을 위해 찾는 곳이 무대라는 것도. 손에서 놓는 순간 금단현상에 빠지는 휴대폰, 이것이 공장과 유통망만 거쳐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연구개발에 엄청나게 투자해 만들어낸 성공모델 아닌가. 우리가 낸 세금이 기초예술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역사에 기록될 동시대 문화현상의 뿌리, 미래 우리문화의 밑그림이기에 포기할 수 없는 것. 구체적 실익을 당장 손에 쥐어주는 것이 아니지만 화려한 건물을 올리기 위해 지하 수 십 미터를 다져야 하는 기초공사 같은 것 말이다.





동분야 전문가를 배제한 심사 혹은 외국전문가 심사가 대안이 될 수도...
 

 지원신청 마감에 임박하면 며칠 밤을 새는 것은 예삿일이다. 지금이야 전산에 바로 입력한다지만 작성한 여러 건 서류와 첨부물을 각 5부씩 만들어 12시 직전 중앙우체국 데스크에 밀어 넣고 돌아서기를 수년, 신청서를 작성할 때 가장 큰 관심사는 “누가 심사위원이 될 것인가”였다. 신청자의 이름이 당락을 결정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니, 결과를 보면 믿음은 확신을 넘어 현실이었기에 조금은 억울한 마음으로 서류를 썼던 것 같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버릴 수 없기에 정말 열심히, 김 나는 머리를 식히려고 애꿎은 커피만 축내며 쓰고 또 썼다.
 다른 이가 쓴 서류를 심사해보니 ‘열심도 포장을 잘 해야 보인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경우 어차피 서류가 결정적 근거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힘들게 공부했다고 치자.
 서류를 봐야 하는 사람에게도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검토해 정해진 시간 안에 결론내기란 늑대를 피해 들판을 달리는 것만큼이나 숨막히는 일이었으리라. 그러니 친숙한 이름부터 골라내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변명이 엄살만은 아니라고 해두자. 그간 쌓은 실적에 대한 신뢰도 고려했을 것이라 믿고.
 그러나 심사위원 한 사람의 의지, 목소리 큰 누군가의 지지는 절망스럽게도 너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문제는 이로 인해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한 사람이 생긴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해관계까지 얽히면 억울한 피해자도 나온다. 또한 개인의 미래에 어떤 식으로 건 파장을 일으킨다면 결정에 가담하는 사람의 책임은 불과 몇 시간으로 끝나지 않는 막강한 영향력이 된다.
 그리고 시간이 쌓이며 아쉬운 입장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모시고 눈치를 살피게 되니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권력을 행사하는 기성세대가 주도하는 먹이사슬이 탄생하는 것이다.
 심사에 자주 들어가는 연극, 음악 평론가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기금 심사를 평가하기 위해 분야별로 다양한 내용이 오갔는데 “무용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며 질색하는 공무원들의 입장에 충분히 공감할 만큼 실상을 잘 아는 그들 앞에서 많은 부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동 분야 전문가를 배제한 심사 혹은 신작이 아닐 경우 외국전문가심사 수용방안을 내놓는 것 정도로 대신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공적 기금을 집행하는 기관에게는 정당한 책임모면이며 지원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권력이 되는 심사에서 친분이나 이해관계는 거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라믄 안되는 거잖아요!"
 

 의사는 병을 고쳐 많은 돈과 명성을 얻는다. 심사위원은 적은 돈을 받지만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손에 쥔다. 죽음을 면키 위해 가진 것 다 내놓고 빚까지 얻어야 하는 환자도 있다. 10년 뒤에도 무대서 서고 싶기 때문에 오늘 3군데씩 뛰어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춤꾼들에게 방학은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환자 얼굴을 보지도 않고 처방전을 던지는 의사의 금고에도 꼬박꼬박 월급과 연구비가 쌓인다. 심리적 안정을 위해 혹은 면피용으로 병원 VIP룸을 이용하는 고객은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라고 할 것이다.
 지원금 안주면 내 돈 들여 무대를 사 지인들에게 박수 받으면 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서로 절대 섞일 것 같지 않은 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으니 얄궂게도 털어봐야 나올 것 없어 절박한 약자 편에는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연극인들이 “그래도 우리보다는 낫지 않냐”고 얘기하는 춤계에 ‘혈연, 지연, 학연 짱’인 사람들만 있는가? 잘 알지 않나. 심사과정에서 누락되는 다수의 안무가와 무용수들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였음은 물론 여전히 보호받아도 모자란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처럼 남의 양보로 얻은 권력을 단단히 움켜쥐고 약한 이들을 벌초하듯 싹둑 잘라내 버린다면 그 알량한 권력을 행사할 터전은 생각보다 빨리 사라지고 말 것이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변호인>에서 송우석 변호사가 세상의 불의에 눈감는 사람들에게 얘기한다. “이라믄 안되는 거잖아요!” 그래, 맞다. 이러면 안되는 거다.

 


 - 관련글보기 -
  “춤생태계 건강한가?” 이지현_춤비평가 (춤웹진 제52호 게재)
 

김신아
​다수의 국제교류 프로젝트 및 공동제작, 서울세계무용축제, 디지털 댄스 페스티벌, 공연저널리즘 서울포럼을 비롯해 아프리카•아랍문화축전 등 다양한 축제를 기획했다. 현재 프리랜서 아트 프로듀서로 무용 및 음악 국제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심사위원, 동아시아 문화수도 추진위원, 한국일보 필진, 매체 기고가로 활동하며 중앙대학교, 동덕여자대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 ​
2014. 0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