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판문점선언 이후 평화 시대
남북 춤 교류,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 올해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의 ‘판문점선언’을 계기로 향후에 남북 교류가 다방면으로 활성화될 것 같다는 전망이 일반적이다. 가까운 장래에 남북 교류가 실현되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금 북미정상회담 같은 큰 과정을 남겨둔 시점이어서 향후 추이를 지켜볼 점이 많고 그래도 큰 흐름으로는 남북 춤 교류가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춤계에서 이에 대비하는 작업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춤비평가협회 내부에서도 이를 정리하고 뒷받침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제기되어 일단 이번에 방담 형태 모임부터 갖게 되었다. 이번 방담은 ‘남북 평화를 여는 시대에 적절한 남북 춤 교류 사업’을 주제로 진행된다. 지난 70년 동안 교류가 더러 있었지만, 2010년대 후반에 이르러 남북 춤 교류라는 말은 참 오랜만의 말이다. 과거에 있은 남북 춤 교류, 그리고 북한 춤에 관한 그간의 관찰, 당면 과제 등등을 생각하면서 길게 남북 교류에 대해 체계적으로 방담을 진행할 필요가 있겠다. 다만 오늘은 최근의 흐름을 신속히 고려해서 남북 춤 교류에 관한 생각들을 교환하고 준비 방안을 제시하는 차원에서 방담을 진행하려고 한다. 밑그림을 그려가는 마음으로 의견들을 나눠 보기로 하자.




남북 춤 교류, 세부 프로그램을 짚는다


- 얼마 전 문화부로부터 남북무용교류 프로그램에 대한 자문을 요청하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문화부에서는 판문점선언 이후 곧 교류가 이뤄질 것에 대비해서 사업들을 준비하는 단계에 있는 것 같다. 저의 경우 남북무용교류와 관련해서는 오래전부터 구체적으로 프로그램을 제안하기도 했다. 2007년 전후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 소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남북문화예술교류에 대한 연구를 이 소위원회에서 함께 한 적이 있다. 동·서독이 통일하기 전에 600여개의 문화예술프로그램이 시행되었다고 들었다. 그 프로그램 중에는 동에서 가장 바이올린을 잘 수리하는 장인이 서독에서 가장 바이올린을 잘 수리하는 장인에게 가서 기술을 함께 공유한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런 구체적인 교류의 사례들이 공유되는 것도 도움이 될 것다. <춤웹진>에도 북한무용에 관련된 기사가 소개된 적 있었는데, 국립국악원에서 북한무용에 관한 학술회의를 마련한 것이었다.
(http://koreadance.kr/board/board_view.php?view_id=183&board_name=dance_scene​


- 일단 남북 교류 프로그램 제안시 세 가지 정도의 큰 틀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북한이 자신 있는 분야를 우리가 먼저 제안하는 것이다. 둘째는 남과 북 모두 거부감이 없는 프로그램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실질적으로 같이 작업한 결과물이 제3국을 통해 발표되는 것이라면 북쪽에서는 더욱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도 있을 거다. 첫번째에 해당되는 것으로 최승희가 남긴 춤 유산들을 활용하는 것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남북에 최승희의 제자들이 생존해 있고, 북쪽이 남쪽보다는 최승희의 작품을 많이 보유하고 있고 최승희가 만든 무용기본동작 등이 잘 전수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북쪽에서 유일하게 춤 관련 국제 학술교류를 하고 있는 부문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이용해서 만든 자모식 무용표기법이다. 자모식 표기법 관련해서 연변대 박영란이 연구했고, 지난번 국악원에서도 발표했었다. 라반노테이션 연구자들을 북쪽에서 직접 초청해 가고 우리 쪽에서도 무용표기법 연구자들이 있으니 함께 하면 좋을 것이다. 한글 자모를 이용한 표기법은 우리에게는 라반노테이션보다 훨씬 더 쉽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북쪽이 우리보다 앞선 것이 무용음악이다. 최승희가 월북할 때 뛰어난 연주자들을 데려갔고 악기개량 사업을 적극 추진했다. 남쪽보다 악기개량이 잘 되어 있을 뿐더러 음악을 아는, 무용을 아는 작곡가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쪽에서 무용극 등의 공연 작업을 할 때 그 음악을 북쪽에 의뢰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 작품 공연보다 인적 교류를 먼저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북한 무용수들과 남한 안무가, 반대로 남한 무용수와 북한 안무가가 함께 작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북한이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최승희가 주창한 동양무용론을 다시 살펴보는 것이다. 학술 세미나 관점에서 다시 접근해 남북한 춤의 좋은 요소들을 모아 동양무용의 우수성을 새롭게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최승희가 남북한 민속무용을 연구해서 뭔가를 만들어냈듯이 함께 연구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차제에 한라에서 백두까지 한반도의 춤을 조망해보는 작업을 시도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 서울시에서 지원해서 하는 매년 10월의 아리랑 페스티벌이 있다. 올해 6회째인데 주제가 ‘춤추는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제주에도 있고 해서 아리랑 등 북쪽에도 있다. 아리랑은 남북한이 같이 국제 행사 등에 참가할 때 사용했던 공식 음악이다. 남북이 춤으로 함께 할 수 있는 대상 작품으로 아리랑도 적합할 것이다. 스포츠에 남북 단일팀을 만들듯이, 남북 합동 무용단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아리랑으로 작품을 만들어 해외무대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 안무가와 밀양아리랑 작업, 남쪽 안무가와 해서 아리랑 작업도 가능하다.

- 북한에서 그간 무용교육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궁금하다. 북한 모든 학교에서 무용교육을 한 것으로 알고 있고, 북한의 대규모 축하행사에 집단으로 춤추기도 한다. 최승희가 일찍이 교육 무용에 대한 책도 냈다. 각급 학교에서 어떤 교육적 목표를 두었고, 어떻게 실행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승희의 동양무용 즉 북한의 장편 무용극과 우리가 만든 국립무용단의 무용극을 비교하는 연구도 행해졌으면 한다. 그리고 월남한 전통춤들이 여럿 있는데, 탈춤이나 민속의 놀이춤, 기녀들의 춤, 검무 등을 말한다. 현지에 어떻게 자료가 보관되어 있고 어느 정도 흔적이 남아 있는지를 확인한다면 우리 전통춤의 지형도를 좀 더 분명하게 그릴 수 있을 것이다.

- 판문점선언이 평화협정까지 긍정적으로 전망하게끔 해주었기 때문에 춤만이 아니라 사는 것 자체가 어떤 식으로 최소한의 동질감을 가질 수 있으며 또 상호 차이점을 인정하면서 서로 공생할 것인가가 향후 가장 큰 문제가 될 것 같다. 연관해서 문화예술은 어떻게 될 것인가, 북한에서 해방 이후 얻었던 연행 예술의 성과를 남북이 어떤 식으로 공유할 것인지 과제로 떠오르는 것 같다.

- 개인적으로 북한의 무보 작업에 관심이 있다. 무보가 발달했다는 것은 무용 연구의 기본 베이스인 움직임, 매체 연구가 상당히 진척되었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있다. 단순히 북한의 무보가 궁금하다는 그런 접근이 아니라 그들의 무용학적 시스템 체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연변에서도 무보에 대한 말들이 있을 뿐 그 시스템 전반에 걸친 원론적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라반노테이션에서도 기본 액션은 어떻게 설정한다는 것에서 출발하는데 북한 무보에 대해서는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평양 가서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만약 세미나가 열린다면 그런 근본 물음에서부터 북한에서 익힐 것은 익혔으면 한다.

- 무보 관련하여 북한에서는 아마 ‘백학’이라는 이름의 소프트웨어를 만들은 줄로 안다. 해외에서 그걸 찾아보려고 애썼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무보 소프트웨어인 ‘백학’을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북한이 베이징국립발레단을 초청해서 김정은 위원장도 참석해서 보고 자주 공연해 달라 했다고 한다. 최근 삼지연관현악단 현송월 단장이 왔을 때 국립발레단 공연을 보고 강수진 단장에게 북한에서도 공연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전했다. 북한에 발레가 없기 때문에 교류할 때 우선적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질적 춤 환경 넘어설 작업과 궁금증들


- 북한에는 이른바 전통춤이라는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50년대 중반 자료를 보면 그 이전의 탈춤보다 훨씬 질이 떨어지는 창작 봉산탈춤이 있다. 봉산탈춤 전문 연행 단체는 아예 없고, 평양음악무용대학의 한 레퍼토리로 남은 봉산탈춤은 목중춤의 19가지 춤사위를 뽑아서 창작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월남한 분들이 다시 복원한 것을 기준으로 해서 보면 분량으로 쳐도 1/10도 채 안남아 있다. 함경남도 것은 노래가사를 민요 돈돌라리로 정리해서 거기에 따른 춤 동작이 있고, 서도소리에는 춤동작이라고 할 것이 별로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른바 노래춤, 소리춤에 해당하는 것은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 최승희 류의 기본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 워커힐 무대 이벤트와 흡사한 정도로 되어 있어서, 교류에서 정통 전통춤을 북한 쪽에서 얼마나 수용할지 궁금하다. 완충 지역으로 연변지역, 동북3성에 있는 한국춤의 내용을 보면 1951, 52년 최승희가 중국에 있을 때 만들어놓은 중국현대춤 기본과 한국 현대춤 기본을 거의 그대로 춤의 기본으로 하고 낭만적 혁명의식에다 내용을 입힌 춤이다. 그런 춤이 굉장히 신신파(新新派), 신신무용(新新舞踊)이어서 참 답답하고 안타까운 느낌이다. 그런 춤들은 70대 넘은 분들이 향수어린 듯한 태도로 받아들일는지 몰라도, 이질감이라기보다 정서적 바탕이 혁명적 비애감과 함께 섞여 있는 이 춤들이 남쪽과 어떤 식으로 만나질는지 궁금하다.

- 북한에서 음악을 많이 개량했다고 하지만 전통음악 가운데 궁중 계열은 다 없앴다. 민요는 존중했지만 판소리는 쇅소리라 하여서 금하였다. 사실 음악의 이질성이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춤이 문제된다는 것과 똑같은 얘기일 것이다. 춤음악은 많이 개발되어서 마을 단위, 공장 단위로 가무악단이 있고 최고 인민 작곡가들이 곡을 붙여주면 그걸 악가무 형식으로 짠 춤들이 있다.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두레춤 같은 공동춤처럼, 거기에 안무가, 작곡가, 지휘자들이 마을에 들어가 팀을 조직한 마을 단위, 공장 단위의 가무악단이 있다. 아마추어다. 거기에 센 음악을 때려주고 춤은 신신파의 것으로 해놓은 것들이 있다. 불행히도 북쪽에는 농악이 발달하지 못했다. 만약 남북이 같이 섞인다면 새삼 농악, 풍물굿이 중요한 기반으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민요 중에 서도민요 중심이지만 남도 쪽 가락이 같이 어울릴 수 있다면 그걸 바탕으로 악가무의 기본을 어느 정도 동질감으로 하면서 교류를 추진할 수 있겠다. 굳이 판문점선언 때문만은 아니고 앞으로의 전망이기도 하다.

- 판문점선언에 나와 있는 것을 보면 남북한이 공동으로 중요한 날로 되어 있는 날을 잡아 같이 놀겠다, 문화를 만들어보겠다는 대목이 있다. 남북한이 중요한 날로 잡을 수 있는 일 년의 몇 시기에 예술 행사를 같이 해보자는 것인데, 의미로 보자면 남북이 뜻을 합쳐 공동 선언문을 내놓은, 김대중 정부 시기인 2000년의 6월 15일,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7년의 10월 4일 쯤이 아닐까 싶다. 남북 교류에서 일차적으로 무엇을 한다면 그러한 날에 무엇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생각해볼 만하다.

- 예전에 북한에서 온 공연을 봤다. 그 때 본 북한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통춤이라 일컫는 춤사위나 형식을 찾아볼 수 없는 춤이었다. 체제선전을 위한 것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이는, 춤 동작이 분명하고 굉장히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 공연을 보기 전까지는 막연하게 북한이 우리 전통춤을 잘 보존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히려 정반대 현상을 본 것이다. 지금은 우선 대중문화 중심으로 남북이 문화 교류를 하고 있는데 앞으로 본격적으로 문화교류가 시작되면 순수예술의 교류가 있을 것이고 춤 교류 또한 시작될 것이다. 이에 대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통춤 쪽도 방향을 잘 잡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궁금한 분야는 북한의 컨템퍼러리 춤이다. 춤이 추어지고 있는지(체제상 불가능할 것이라 짐작되지만), 만약 있다면 외국의 어떤 무용 체제를 받아들였는지 우리(남쪽)가 추고 있는 컨템퍼러리 댄스와 어떻게 다른지, 아니면 희미하게나마 태동이 되고 있는지의 여부이다.

- 해외 도서관에서 북한춤 관련 소장 자료를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북한에 직접 가서 관계자들과 속시원히 이야기할 수는 없어서 북한에서 출판된 자료로 파악해 봤었다. 남북교류를 시작할 때 문제는 첫째 현황파악이 되지 않는 점, 둘째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 세계적 예술 흐름과 취향과 부합하는지 우려된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제안을 하려 해도 북한의 무용시스템 등 현황 파악이 되지 않고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신파류 같은 감성이라도 한번은 남한 사람들이 호기심에서 보겠지만 이후 춤들이 지속적으로 내보여지면서 세계에 나간다 한다면 과연 합동공연 이상의 예술적인 면을 보여줄 수 있겠는지 우려가 된다. 남북 공동작업에서 지속성이 있으려면 아무래도 가서 보고 이야기도 해보면서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 북한 공연물 중에 한국보다 앞서는 것은 서커스였고, 북한에서 중시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런 것과 춤을 연계해볼 수도 있겠다. 발레는 없는 줄로 안다. 주체사상 아래 공동성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고 민속이라고 하지만 신파적이며 신무용적이다. 그런 것들이 우리의 감성이나 생각과 이질적인 것 같다. 차이점을 먼저 인식해야 어떻게 공생하고 합동공연을 할는지, 이후에도 지속성을 가질 수 있을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 지금 거론된 여러 사업 방안이 중요해보이고 개인적으로 호기심을 품을 만한 것도 더러 있다. 그동안 북한 무용이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변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사실 자모식 표기법을 갖고 북한에서는 얼마만큼 춤을 만드는지 더욱 궁금하다. 어느 문헌에서는 김정일이 자모식 표기법을 이용해서 무용 창작을 하지 않는다고 다그친 경우도 있었다. 실제 현장에서 자모식 표기법이 사용되고 있는지 매우 궁금하다. 이 뿐만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호기심을 갖는다는 것이 곧 과도한 환상을 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할 수도 있다.

 

 




시급한 자료 공개와 남북 춤 교류 목적 설정


- 그동안 남북문화예술교류 관련 세미나는 있었지만 남북무용교류에 대한 세미나는 없었다. 한국춤비평가협회에서 앞으로 남북무용교류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해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과의 춤 교류 방안을 얘기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북한 무용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인력들이 있어야 한다. 통일부에서는 북한의 2급 자료, 예를 들어 <노동신문>까지 볼 수 있게끔 인가를 내준다. 북한에서 내보내는 자료는 통제에 의해서, 자기들 체제 선전을 위한 자료만 주기 때문에 받아보기 쉽지 않다. 매번 자료를 보고 연구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나와야 된다고 생각한다.


-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도 남북문화예술교류를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춤에 집중한 것은 아니지만 북한의 문화예술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한국춤비평가협회가 관련 세미나를 개최할 때, 한 섹션으로 북한의 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소개를 듣는 것도 좋겠다.

- 북한의 공연 예술과 춤 자료들이 남한에 처음 소개된 이래 이제 30년이 되어 간다. 북한 춤에 대한 호기심이 30년 전보다는 훨씬 덜하다. 80년대까지 폐쇄된 상태에서 품을 수밖에 없었던 환상이나 호기심은 이제 거의 수그러든 편이다. 그래도 80년대 이후 한 세대 동안 북한 춤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혹시 퇴행하지나 않았는지 어떤지 궁금하다.

- 최승희가 복권되면서 상황이 조금 호전되어 변화가 있다는 말은 듣고 있다.

- 또 통일이라는 대전제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북한에 장마당이 들어서서 시장 경제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쪽으로 변했다는 진단도 있다. 그래서 우선 기본 궁금증이라도 해소하려면 정부에 대해 2급 자료를 과감하게 공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그렇게 2급 자료로 분류해서 제한하는 것은 종전 선언을 목전에 앞둔 시대와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북한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연구자부터 제대로 정보를 가져야 한다. 잘 모르니까 갖게 되는 환상과 오류를 자료를 독점하는 정부가 키우는 면도 있다. 그러고서 어떻게 교류에 능동적으로 대비할 수 있겠는가. 2급 자료를 접촉하는 절차가 최근엔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정부가 인가 형식으로 제한하는, 방금 말씀하신 2급 자료 정도는 일반 연구자가 용이하게 접할 수 있도록 전향적 조치부터 취해 나가는 게 남한 사회 내부에서 먼저 해볼 일인 것 같다.

- 그런 점을 우리가 공식적으로 제안할 필요가 있다. 궁금하니까 해제해달라고 제스처를 취하고, 행하면 되는데 남쪽에서 누구도 하지 않는다. 국내에 남북 교류 창구가 없는 현단계에서는 오히려 이런 방안들을 모아서 제안할 수 있겠다.

- 오늘 여러 사업 제안 및 구체적 방안까지 나왔다. 이처럼 제안하거나 꿈을 품을 수 있겠으나, 우리가 혹시 낭만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제안하여 교류하면 남북에서 서로 춤 자산이 풍부해지면서 좋아지려니 하는 기대가 있는데, 이런 기대가 과연 현실성이 있겠는지 묻게 된다. 예로서, 연변과 한국(남한) 사이에 그동안 교류가 상당히 많았었다. 그랬던 결과로서 그동안에 연변의 춤이 얼마만큼 업그레이드 됐는지 되짚어보면, 회의적인 느낌이다. 물론 그 교류는 대개 교류 참여자 개인의 의지에 기대는 감이 강했고 또 단편적이었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더라도, 솔직히 말해, 그간의 교류 경험은 교류에 대한 성급한 기대가 낭만적일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 교류 활동, 교류 사업은 남북 상호간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와 무관하지 않다. 다시 말해 남북의 상호 또는 각자의 발전을 돕지 못하는 교류에 대해서는 호응이 높지 않을 것이고 오래 가지도 못할 것이다. 그래서 교류의 궁극 목적이나 중장기적 목표부터 먼저 짚어질 필요가 있다. 물론 교류가 시작되지 않았고 교류 논의도 없는 시점에 그런 목적이나 목표를 묻는 게 헛되어 보일 수 있다. 판문점선언은 남북 종전 선언과 평화 체제 구축을 대전제로 했다. 이처럼 그런 목적이나 목표는 교류 이전에 전제되고 합의되어야 한다. 남북 춤 교류는 어떻게 해야 남북의 상호 또는 각자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가. 참고로, 판문점선언은 ‘한반도의 평화, 번영, 통일을 위한’ 선언임을 천명하고 있다. 이 선언문은 통일을 위한 선언문이기도 하지만, 통일로 가기 위한 전단계로서 평화와 번영을 더 강조하는 편이다. 현실적으로도 남한에서는 아랫세대로 갈수록 한반도 통일에 대한 열망이 엷어진다. 이것이 현실이다. 남북 관계에서도 과거에는 통일이 앞세워졌다면 이제는 평화가 앞세워진다는 느낌이다. 남북 사이의 평화를 다지는 방향에 교류의 방점을 찍는다면 교류 내용도 그에 준해 설정되어야 한다. 통일을 전제로 한, 남북 사이의 이질감 극복을 위한 교류는 자칫 상대방에게 자신의 춤을 강권하는 식의 체제 경쟁으로 비화할 수 있어 신중을 요하는 부분이다. 반면에, 남북 사이의 평화를 다지는 교류라면 상대방이 수용할 만한 자신의 춤을 제시하는 선에서 머물므로 상호 변화와 발전을 무리 없이 촉진할 수 있다. 또한 남북 사이의 평화는 궁극적으로 남한과 북한 각자 내부의 평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 연후의 통일 논의는 체제 경쟁심이나 이질감이 훨씬 덜한, 다시 말해 부작용이 덜한 상태에서 진행될 수 있다.

- 마지막으로 다음의 점을 덧붙이려고 한다. 어느 정부든 특히 담당 관료들은 자기 부처나 조직의 존재 가치를 위해 실적을 내고 싶어 하는 속성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적극적이고 심지어 열정적인 듯한 이런 조급증은 사업을 좁은 범위 내에서 폐쇄적으로 진행시키는 경향이 없지 않다. 이 같은 적폐는 역대 정부에서 예외 없이 겪어온 바 아닌가. 그런 때문에 춤 교류가 혹시 다른 방향으로 오도되지나 않는지 경계해야 한다. 차선책으로서 ‘민간 중심의 열린’ 교류 논의 및 추진이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한국춤비평가협회 차원에서 방향을 잡아가는 움직임이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2018. 06.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