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You Are Okay!〉 작품 일정기
오래된 몸과 새로운 몸의 불편하고 기나긴 만남
허성임_안무가

2015년 독일 NRW(North Rhine-Westphalia) Tanz recherche에서 안무 리서치에 대한 application call out이 있었다. 이쪽 지역 특성과 관련해 안무적 리서치를 하고자 하는 안무자에게 7주간 리서치를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독일 NRW 지역은 피나 바우쉬 무용단이 있던 부퍼탈을 비롯해, 뒤셀도르프, 쾰른, 본, 에센 등을 포함한 독일 서남 지역을 뜻한다.
 이 call out의 특징적인 부분은 7주간 안무자가 원하는 모든 것들을 지원하되 반대로 요구하는 사항은 없다는 것이다. 관계자의 말로는 모든 조건을 만들어 안무 또는 리서치의 실험성을 살리되 그 이후 프리젠테이션이나 결과물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을 주지 않아 안무자의 크리에이티브티를 더욱 보조해 주기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임신 8개월의 무거운 몸으로 이런 말은 듣던 중 반가운 말이었다. 7주에 해당되는 안무자 임금 및 극장, 스튜디오, 음악 작곡비, 콜래보레이터 임금, 숙박과 교통비 등이 모두 지급되었다.
 본으로 떠났다. 한국의 파독 광부, 간호사 분들이 반세기 전부터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던 곳, 비행기 값이 일 년 임금보다 더 비쌌던 시절, 전화 한번 하는 것이 어려워 매일 눈물 어린 편지를 써나갔던 시절, 이 너무 가난하고 배고파 독일광산에서 일한 돈으로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보살필 수 있었던 시절을 보낸 분들을 찾아서.
 그분들이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어떻게 한국을 생각하는지, 그리고 지금 그분들은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지가 궁금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방문은 그분들의 과거가 나의 미래가 되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많은 분들과 이야기, 인터뷰를 나누었다. 한국이 나의 뿌리이지만 이제는 돌아가기 너무 늦었어요. 한국이나 독일이나 어느 한 곳에도 속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고향은 이제 액자에 걸려 있는 그림과 같은 존재이지요. 만질 수도, 가까이 갈 수 없는, 융화도 될 수 없는 그림 같은 존재...
 이렇게 처음 본 한국 예술인을 위해 파독 근로자였던 분들은 꾹꾹 깊이 넣었던 옛날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어 주었다.




 협력 아티스트 이소망이 도착했다. 파독 간호사의 딸로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우리는 독일 본에 위치한 Cocoon dance의 연습실과 Theater im Ballsaal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소망의 무대 일러스트레이션은 유리 판넬 위에서 물과 물감을 이용해 만들어지는 우연성과 자연성을 프로젝터로 무대 화면에 비추어 무대안의 몸과 커뮤니케이션을 이루는 작업이다. 7주간 소망과의 작업은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도,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스트레스도 없이 순수하게 소망의 물감과 내 몸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했고 끝났다. 그리고 이렇게 그려진 무대 위의 그림이 어떻게 이 집에 대한 향수와 이질감을 동시에 만들어 낼 수 있을까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으며 이후에 대한 어떤 약속도, 어떤 계획도 없이 막을 내렸다.
 2년이 지났다. 내 옆에는 뱃속에 있던 아이가 두 돌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향수에 대한,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작업을 했는데... 나는 내 아이에게 집이 되어 있었다. 작업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벨기에와 영국에 레지던시 콜을 했고, 벨기에 정부, 한국 Arts Council, 독일 NRW KULTUR sekretariat, Cocoon dance 그리고 영국의 Testbeds / University of Bedfordshire의 지원으로 다시 작업을 연계할 수 있었다. 예산은 빠듯했지만 열정은 충분했다. 몸은 느리고 예전같지 않았지만 무엇을 해야겠다는 맘은 정확했다. 이렇게 몸과 일러스트레이션의 만남은 다시 시작되었다. 매우 이질적인 두 가지 요소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읽어갈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굳어 있었던 몸은 천천히 녹기 시작했다. 이렇게 일러스트레이션과 내 몸의 불편한 만남은 다시 2년 만에 이어지게 되었다. 무대 전체를 움직이게 하는 일러스트레이션 앞에서 나의 몸은 너무 작고 보잘 것 없이 보이기에 불편한 만남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소망의 그림은 나의 집이 되었고 멀어져 버린, 떠나간 집이 되어 있었고, 그리움이 되었고, 나의 과거가 되었고, 나를 따스하게 안아 주는 둥지가 되어 주었다.
 이렇게 2년의 긴 시간을 지나 〈You Are Okay!〉가 처음 세상에 소개되었다. 2015년 레지던스로 있던 Cocoon dance에서 개최하는 Solo Tanz 페스티벌에 프리미어를 초대받았다. 그동안 그립고 그리웠던 나의 몸, 그의 움직임과 표현 그리고 그립고 그리웠던 무대가 내 몸을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기뻤다 그리고 반가웠다. 몸의 모든 세포가 다시 긴 잠에서 깨어나는 듯했다. 작은 페스티벌이었지만 아름다운 호평과 따뜻한 반응으로 세상이 내 작품을 반겨 주었다.
 올 연초 벨기에 Bozar 왕립극장에서 연락이 왔다. 한국, 유럽 55주년 수교 기념행사를 한국과 벨기에에서 동시적으로 진행하고자 하는데 참여해줄 수 있느냐는 제안이었다. Live stream을 프로젝터를 통해 한국에서 진행되는 행사를 벨기에에서 관람하고 뒤이어 벨기에에서 진행되는 행사를 한국에서 생중계로 관람하게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유럽과 한국이 얼마나 가까이 왔는지를 기념하는 행사였다. 〈You Are Okay!〉 작품을 15분으로 줄여 선보이기로 했다.

 

 

 집을 떠나온 이민자로서의 삶과 향수를 10분 안에 표현하는 것은 무리지만 한국에 있는 관객들에게 그리고 유럽인들에게 먼 타지에서 이민자로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55주년 수교 행사에서 나눌 수 있다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여행에서 돌아온 지 3일 만에, 한국시간을 맞추기 위해 벨기에시간으로 낮 12시에 공연한다는 것에 내 몸은 의아해했지만 벨기에 한국 문화원분들의 따뜻한 배려와 격려로 한국과 유럽에 모두 의미 있는 행사로 남을 수 있었다.
 파독 근로자 분들과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매일매일 목 빠지게 편지통만 바라보고 있었던, 독일로 온지 10년이 지나서야 겨우 한번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던, 한국 맛이 그립고 그리워 양배추로 김치를 담가 먹었던 55년 전 이민자들의 삶과 live stream으로 실시간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고 비행기를 타기위해 공항을 내 집 안방같이 드나드는 변화된 지금 우리의 삶의 변화가 그저 놀랍고 또 새롭게 다가왔다. 〈You Are Okay!〉는 올해 10월 Mechelen의 Nona theater와 내년에는 De Woeker의 De Grote Post에서의 공연을 앞두고 있다. 나에게 집은 어디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이 혼자만의 기나긴 여정은 소중한 생명을 얻은 몸으로 무대에 귀환하며, 한국과 유럽의 55주년 수교 행사에 담으며 내 몸과 마음의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허성임
벨기에 P.A.R.T.S 학교 안무자 과정 졸업 후 Jan Fabre, Les ballets C de la B 와 작업을 해 왔다. 현재는 Needcompany, Abattoir Ferme 객원단원으로 활동하며 개인작업과 함께 영국에서 대학 안무 강의를 맡고 있다.

2018. 06.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