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무용단 〈더블빌〉
한국 풍류, 컨템퍼러리댄스로 되살리다
김채현_춤비평가

국립무용단은 두 가지의 공연을 하나로 묶은 프로그램으로서 〈더블빌〉을 선보였다(국립극장 달오름극장, 4월 21~24일). 이번 공연에서 도드라진 점으로서, 국립무용단 외부의 컨템퍼러리댄스 전문 안무가들에게 안무를 맡긴 사실이 들어지고 이는 공연 전부터 관심의 표적이 되기도 하였다. 〈더블빌〉은 고블린파티의 세 공동안무자가 올린 〈신선〉(神仙), 콜렉티브 에이의 차진엽이 올린 〈몽유도원무〉(夢遊桃園舞)의 2편으로 구성되었다. 그런 결과 한국무용 계열의 춤 바탕을 컨템퍼러리댄스 시각으로 구성하는 작업이 무난하게 진척된 것으로 보인다. 2편의 공연작은 이에 머물지 않고 소재로 채택된 풍류의 세계를 한국적 느낌의 풋풋함과 오묘함에 기대어 비교적 운치 있게 풀어내고 관객과 공감하는 장을 제시하였다.






국립무용단 〈신선〉 ©국립무용단




먼저 올려진 〈신선〉은 스탠드 마이크에서 어느 출연자가 ‘술 한 잔 하며 맺고 어르고 풀어나가는 춤무대’라는 요지로 선언하는 듯한 소개말로 시작한다. 통큰 바지에 무채색조 슈트를 걸친 여덟 사람들은 이미 차림새에서부터 술 마시는 그 마음을 엿보게 한다. 느리게 젓는 상체를 중심으로 전신을 일렁이는 사람들은 무대를 여러 모양으로 선회하며 서서히 주선(酒仙)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비취색 술잔을 들고서 주거니 받거니 할 동안 그들의 취기는 돋워지고 각자 개다리소반을 들고와서는 자기만의 술상을 갖는다. 술잔과 개다리소반을 출연자들은 음주 현장을 구성하는 소품으로 남기지 않고 자신들의 움직임과 연계된 놀이 도구로 전화시켰다. 다양한 소품들을 그렇게 활용하는 작업은 고블린파티가 남다르게 성취해온 바이고, 그간의 작업은 우리 춤계의 한 성과로 보아 무방하다.






국립무용단 〈신선〉 ©국립무용단




고블린파티스러운 놀이는 〈신선〉에서 주선들끼리 느슨해진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구실을 하였다. 소박한 음률의 민요 같은 ‘받으시오 받으시오 이 술 한잔을 받으시오’ 노랫가락의 권주가가 한참 울려 퍼지고 이에 곁들여 3대의 스탠드 마이크로 취기에 젖은 웃음소리들도 간혹 들린다. 들뜬 순간들이 물들이는 질펀한 현장에서 주선들은 술잔을 부딪고 사물북을 두드리듯이 개다리소반을 두드리며 개다리소반을 머리에 이고서 행렬을 지어 무대를 돌고 또 그 소반 위에 올라서서 몸을 일렁이는 등 여러 가지 일탈의 행동들을 이어간다.








국립무용단 〈신선〉 ©국립무용단




끝부분에서 술이 깬 한 출연자가 주선 무리를 빠져나오면 막이 내리고 막에 비친 조그만 둥근 조명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면 극장은 암전된다. 마치 주선들의 일탈이 마무리되었다는 신호처럼... 대개 춤 무대에서 음주 관련 소재의 형상화가 암묵적으로 터부시되는 관행과는 대조적으로 분명 〈신선〉의 발상은 일단 파격적이며, 그것도 공공무용단의 무대에서 구현된 사실은 다소 색다르게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신선〉에서는 신선이 은유함 직한 일상적 긴장감의 해소에 초점이 맞춰졌는데, 재미를 살리는 한편으로 출연진들의 움직임은 단조로웠고 움직임들 간의 연결성도 약한 편이었다. 개다리소반을 갖고 진행하는 부분에서 단편적인 소도구 놀이 말고 춤이라 할 부분이 있었을까? 이런 점이 놀이에 중점을 둔 구성에서 기인하는 문제는 아닐 것 같다. 크게 보아 고블린파티 시각의 놀이를 통해 국립무용단의 움직임을 재조명 발굴하고 출연진들의 춤으로 구성해내는 과정이 과연 얼마나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되물어져야 할 것이다.




국립무용단 〈몽유도원무〉 ©국립무용단




〈몽유도원무〉는 조선 전기의 화가 안견 작 〈몽유도원도〉를 모티브로 하였다. 1400년대 후반 안견은 세종의 아들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와 흡사한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를 소재로 해서 〈몽유도원도〉를 완성하였다.

〈몽유도원무〉의 이해를 위해 먼저 〈도화원기〉의 내용을 알아둘 필요가 있으며 그 내용을 간추려 본다. 어느 어부가 길을 잃고선 복숭아나무 숲을 만났고, 그 숲을 지나 굴을 만나게 되어 배를 버리고 굴을 통과하니 농사짓는 마을이 나오는데, 그 마을 사람들은 수백년 전 진시황제 시절에 병란을 피해 이곳으로 와서 세상과 절연된 평화 세상을 일구었고, 그간 세상의 변동 사정을 어부에게서 처음 들은 사람들은 탄식하였고, 며칠 동안 융숭한 대접을 받은 어부는 고향으로 돌아와서 속세를 벗어난 그 세상을 태수(太守, 군수)에게 알렸고, 태수는 그 세상을 다시 찾으러 사람을 보냈으나 그곳을 영영 찾을 수 없었다 한다. 이 내용에 충실하여 〈몽유도원도〉의 왼편에는 현실 세계(속세)가, 오른편에는 그 세상(이상경, 낙원)이 기암준령(奇巖峻嶺)을 배경으로 그려져 있다.






국립무용단 〈몽유도원무〉 ©국립무용단




〈몽유도원무〉는 몽유도원을 그려낸 춤으로 해석된다. 어부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춤의 스토리텔링은 〈몽유도원도〉 및 〈도화원기〉와 유사하다. 춤에서 아홉 사람들은 현실계를 떠나 이상향을 찾아가고 그 이상향을 노니는 모습을 보이다가 다시 현실계로 복귀한다. 안무자가 밝히는 대로 〈몽유도원무〉에서도 현실경과 이상경이 공존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몽유도원무〉는 자칫 〈몽유도원도〉의 모작본으로 착각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몽유도원무〉는 정서적 감각, 구현 매체, 구성 방식에서 〈몽유도원도〉의 범위 내에 안주하지 않고 그것을 현대의 시각에서 그리고 춤의 시각에서 해석해낸 재창조작임이 분명하다. 〈몽유도원도〉를 넘어선 〈몽유도원무〉.




국립무용단 〈몽유도원무〉 ©국립무용단




무대 앞에 임시로 설치된 1미터 높이의 망사막(샤막)에는 그 너머에서 사람들이 무리지어 꿈틀대는 상태의 검정 실루엣이 한참 등장한다. 그러는 사이에 무대 정면 벽에는 기암괴석의 디지털 그래픽 이미지가 비춰지다가 마치 파도나 산맥 같은 모양으로 일그러지고 이어서 추상적인 도형들로 재빠르게 변형되어가는 이미지들이 연속된다. 사람들이 뭉쳐진 검정 실루엣은 현실에서의 질곡을 압축한 듯하며 도형 이미지들은 그 같은 질곡과는 거리를 둔 이상경을 나타내면서도 이상경의 흔적이 사라진 추상적인 모습을 보인다.

사람들의 실루엣이 일렁일 동안 작은 봇짐을 여러 개 얼기설기 짊어진 사람이 무대를 느리게 가로지른다. 현실 속 굽이굽이 곡절을 상징하는데, 망사막이 올라가고 풀어 놓인 봇짐들을 사람들은 하나씩 메고 수그려 행렬을 지어간다. 흑백조로 그려졌다 번지면서 수묵 담채의 질감을 확연히 전달하는 그래픽 이미지는 이상경과 현실경이 궁극에는 교차하는 느낌을 주면서 작품 전개를 뒷받침하였다. 어느새 봇짐은 벗어졌고 거문고와 신디 음향은 야트막하게 리듬을 반복하며 두 경계의 엇갈림을 환기한다. 사람들이 다다르는 세계는 점차 밝아지고 기운을 더해간다. 넉넉한 바지 차림으로 해내는 그 움직임들에는 역동성과 속도감이 더해지고 산조풍의 춤들이 짜임새를 지속적으로 번갈으며 연출되었다.






국립무용단 〈몽유도원무〉 ©국립무용단




(무릉)도원의 사람들은 무척 화사하다. 복사꽃 색조의 풍성한 치마 같은 드레스, 밝은 색조의 슈트 정장 등 옷차림이 달라졌고 일부는 짧은 활처럼 과장된 비녀를 머리맡에 꽂았으며 한 폭의 화초도(花草圖) 족자가 수직으로 드리워져 있고 그 둘레에서 사람들은 선경(仙境)을 꿈꾸듯 노니는 몸태들을 이어갔다. 거문고 연주자는 어느덧 무대 왼편 하수에서 모습을 드러내어 활로써 거문고를 문지르다가 손가락으로 뜯으며 때때로 크레센도와 디미누엔도를 왕래하는 거문고의 다채로운 음색과 율조로써 이상경은 깊어간다. 그러기를 한참 후, 언제 시간이 흘렀나 싶게 무대는 어두워지며 수묵 담채가 비춰지고 망사막이 하강하면서 현실계 사람들의 뭉쳐진 검정 실루엣이 다시 재연된다.

〈몽유도원무〉는 〈몽유도원도〉를 넘어섰다. 그림의 정적인 세계에서는 상상되기가 여의치 않은 것을 안무자는 자기 색깔의 감성으로 구현해내었다. 우아하며 고혹적인 자태에 더하여 멋과 운치가 깃든 움직임과 시청각적 장치들은 상당히 인상적인 순간들을 남겼다. 이에 못지 않게 출연진들이 갖춘 춤 자산을 폭넓게 활용하여 한국적 정서를 살려내면서 무릉도원과 현실을 균형 있게 묘사한 점도 놓쳐질 수 없다. 〈몽유도원도〉에서 흔히 무릉도원만 연상하는 상투적 경향이 있으나 사실 거기에는 현실계와 이상계가 공생하는 상태로 그려져 있다. 무릉도원의 환상에만 매몰되지 않으려는 안무자의 의도는 〈몽유도원도〉에서도 확인된다.






국립무용단 〈몽유도원무〉 ©국립무용단




〈몽유도원도〉에 관한 상투적 독법과 거리를 두고서 몸 움직임을 주매개체로 해서 여러 매체를 균형 있게 적용하여 상당히 입체적으로 〈몽유도원무〉는 구체화되었다. 나 개인적 느낌으로는 삶의 순환을 은유하는 전반부에 비해 무릉도원을 그려내는 후반부에서 춤성이 더 투여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무릉도원에서 노니는 사람들의 의상 색조에서 환하게 번뜩이는 느낌이 과해 보인 것이 비록 나만의 생각일지라도 언급할 대목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디지털 그래픽 이미지에 대해 더 언급하자면, 그것은 일렁이며 흘러가는 듯한 변화성으로 공연 도입부에서부터 작품이 생동감을 갖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 분명하다. 수목 담채의 고졸(古拙)스러운 형상들은 현란하지 않은 어떤 근원적인 안식처를 상상케 하는 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이 형상들이 변화무쌍한 모습을 띠면서 오히려 그러한 효과는 반감된 것으로 보인다. 변화무쌍의 정도가 과도해짐으로써 주된 그래픽 이미지가 퇴색하고 전체적으로 산만하지 않았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국립무용단이 컨템퍼러리댄스의 조류를 수용하기 위해 모색한 몇 차례의 작업은 잘 알려져 있다. 이 연장선상에서 이번 작업은 이전의 시도들에 비해 성과가 더 구체적이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이전의 시도들은 그 후의 작업들에 대해 선례인 것은 물론이며, 이번 작업은 향후의 작업에 대해 시금석이 되었으면 한다. 국내 공공무용단이 외부의 변화를 맹종할 일은 아니지만 변화에 둔감한 것은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현실이다. 국립무용단이 이를 인지하고 컨템퍼러리댄스를 비롯 변화를 알차게 뒷받침할 것들을 찾아 모색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이번을 계기로 이런 작업이 국립무용단의 공공적 지향 및 예술적 목표와 연계되어 체계적이며 전략적인 작업으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2. 5.
사진제공_국립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