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들숨무용단 〈농가월령가〉
부분들 간의 균형으로 전체를 이루어야
김채현_춤비평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가 지어진 것은 200년 전 일이다. 잘 알듯이, 농경 생활의 지혜와 풍속을 달과 절기에 맞추어 어떤 농사 교본처럼 읊도록 지어 효율적인 농경을 유도한 시가(詩歌) 모음집이다. 5월령조에는 남쪽 바람으로 기후가 더워지니 보리 추수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일러둔다. “귀밝히는 약술이며 부름삭는 생률(생밤)이라, 먼저 불러 더위 팔기 달맞이 횃불켜기 흘러오는 풍속이요 아이들 놀이로다”는 정월령조의 일부이다. 전통사회 생활상과 정서를 자못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고 자연 친화의 기조를 띠고 있어 〈농가월령가〉는 한국적인 것의 예시로 수용되곤 한다.

〈농가월령가〉가 통할 세상은 이미 지났고 사실 관심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이에 편승하지 않고 오히려 거슬러 들숨무용단의 장현수는 〈농가월령가〉를 소재로 안무하였다(8월 26~28일, 국립극장 하늘극장). 몇 해 전부터 장현수는 목멱산 59라는 이름의 공연을 발표해왔다. 남산 국립극장의 옛말 주소를 나타내는 목멱산 59는 장현수가 오래 재직한 국립무용단의 터를 시사하는 동시에 자신이 추구하는 실험적인 창작춤의 보금자리를 나타내는 것 같다. 일테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지향하는 장현수 식의 춤 시리즈가 목멱산 59이겠다. 지지난달 말의 22 목멱산 59의 공연작이 〈농가월령가〉였다는 뜻이다.




들숨무용단 〈농가월령가〉 ⓒ김채현




장현수의 〈농가월령가〉는 지신밟기, 달맞이, 화전놀이, 연날리기, 씨름, 닭쌈놀이, 모심기, 기우제, 강강술래, 섣달그믐 그리고 지모신의 기원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소개되었다. 지난해 목멱산 59도 〈농가월령가〉를 소재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때는 사랑을 노래하는 서가, 정월대보름의 봄, 모심기 등의 여름, 칠월칠석의 가을, 동백나무의 겨울, 지모신의 출현 순으로 구성된 것으로 소개되었다. 지난해에는 묘사되는 각 절기에 어울리는 영상 이미지를 곁들이고 부분적으로는 캐릭터를 설정하여 서사 전개가 명료하도록 도운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하여 올해 〈농가월령가〉에는 영상 이미지가 등장하지 않고 구성 소재와 전개 면에서도 상당히 차이나기 때문에 서로 다른 공연작이다.




들숨무용단 〈농가월령가〉 ⓒ김채현




공연 초입에서 대나무를 양손으로 치켜든 여인의 둘레를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계속 뛰어 돌면서 동그라미를 반복해서 재현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둥근 모양의 뜀박질로 진행되던 대열은 느린 걸음으로 움직임을 바꾼다. 우리 문화에서 대나무는 지조와 절개뿐 아니라 잡귀를 쫓고 복을 부르며 역경을 이겨내고 다산을 부르는 상징으로 여겨진다. 이 의미망으로 미루어 동그라미 돌기 부분은 일단 지신밟기 의례로 풀이될 것이다. 이어지는 부분에서 어느 여인이 정면이나 위쪽으로 머리를 향하면서 갈구하는 듯한 움직임을 다양하게 전개하는데, 달맞이에서 소원을 비는 풍속을 나타낼 것이다.






들숨무용단 〈농가월령가〉 ⓒ김채현




그 다음 조금 빠르되 둔탁한 타악 리듬에 맞춰 여인들이 앉은 자세와 대열 짓기를 섞어가며 조신한 움직임들로써 약간은 분방한 상황을 펼쳐나간다. 아마도 이 부분에서의 움직임들은 팸플릿에서 소개하는 대로라면 가무를 동반하는 화전놀이와 연날리기 같은 놀이를 나타낼 테지만 굳이 그처럼 구체적인 해석이 가능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이어서 날카로운 금속성 음향이 규칙적으로 울리는 가운데 남자 한 명이 등장하는데, 상체를 벗고 샅바 같은 천을 허리춤과 몸 가운데에만 걸친 차림이다. 남자의 몸놀림은 매우 유연하고도 아크로바틱해서 움직임 자체만으로 인상적이다. 제 홀로 능란하게 전개하는 그의 연기는 객석의 시선을 모으기에 족한 감이 있다. 5월 단오에 씨름 놀이를 하였으므로 이 부분은 5월령조와 연결될 것이다.




들숨무용단 〈농가월령가〉 ⓒ김채현




22 목멱산 59의 〈농가월령가〉는 앞서 언급된 대로 〈농가월령가〉의 몇 대목을 확대해서 전개하는 수순을 보이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넉넉한 품의 붉은색 천을 드레스처럼 두른 여성이 한 사람(장현수) 등장한다. 피아노와 피리, 금속성 소리를 뒤섞어 어느 정도 웅장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음향에 몰입하는 듯한 여성은 혼자만의 움직임을 양팔을 펼쳐서 부드럽되 폭이 넓은 양태로 지속한다. 한참 후 집단이 등장하여서는 숭고해 보이는 그 여성 둘레를 넓게 에워싸서 주로 전신을 일렁이는 포즈에다 몸의 방향을 바꾸거나 느리게 돌아가는 양상을 보인 끝에 그들 집단이 여성을 향해 상체를 매우 수그린 채 돌연 거리를 좁혀서 하나로 응집되는 모습을 보이는 순간 무대는 암전된다. 이 마지막 대목은 어떤 여성 주체, 즉 말하자면 지모신의 신화에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






들숨무용단 〈농가월령가〉 ⓒ김채현




22 목멱산 59의 〈농가월령가〉는 이전의 〈농가월령가〉에 비하여 시가 〈농가월령가〉를 재현하는 정도가 매우 낮아 보인다. 시가 〈농가월령가〉를 재현하는 것 또는 그것을 벗어나는 것, 그 어느 쪽도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농가월령가〉의 움직임들은 우리 춤의 발 디딤새와 몸 놀림새를 응용하면서 그에 충실한 모습이고, 여기서 더 나아가 움직임의 양상이 정갈하되 매우 다양하여 공연에 상당한 공력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무용 계열의 전반적인 추세는 그처럼 다양성을 추구하는 변화를 지향하는 가운데 정형화된 움직임 어법을 벗어나고 있고 국립무용단에서 오래 활동한 장현수의 안무 작업 또한 현대적 의식으로 그에 힘을 보태고 있어 돋보인다.






들숨무용단 〈농가월령가〉 ⓒ김채현




이번 〈농가월령가〉는 시가 〈농가월령가〉와는 거리가 있고 여기서 시가 〈농가월령가〉를 체험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시가 〈농가월령가〉의 몇 대목을 인용하되 공연의 초점은 그 재현보다는 현대적 형상화를 염두에 둔 듯하다. 그렇다면, 주목할 점으로서, 지난해의 〈농가월령가〉에 비하여 이번 〈농가월령가〉는 진일보한 공연작에 속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다시 고려해볼 점은 일례로 씨름과 닭쌈놀이 같은 부분이 우선 지속 시간에서도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점이다. 그와 같은 비중의 해당 장면들이 전체 〈농가월령가〉의 주제 의미를 구현하는 데 있어 어떤 의의가 있는지 자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부분과 부분 간의 균형을 통해 공연작이 단일한 전체로서의 의미를 확보하는 방안은 다소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시가 〈농가월령가〉를 고수할 필요는 없고 신화적인 대목을 가미하는 것이 시가 〈농가월령가〉에 더 깊이를 줄 가능성도 있지만, 단적으로 목멱산 59의 〈농가월령가〉 고유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그 구성이 보다 조밀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

2022. 10.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