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SIDance 해외초청작_ 메테 잉바르첸 〈to come(extended)〉
일상적 삶의 추동력으로서 섹슈얼리티와 댄스를 다시 보기
김혜라_춤비평가

메테 잉바르첸(Mette Ingvartsen)은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정치 미학적 담론으로 꾸준히 작업을 하고 있는 덴마크의 안무가이다. 대표적인 작품은 〈69포지션〉(2014), 〈일곱 가지 쾌락〉(2015), 〈21개의 포르노〉(2017)가 있다. 이번에 공연한 〈to come(extended)〉(9.21.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은 2005년 5명이 초연한 것을 다수의 퍼포머로 확장한 작품이다. 사실 몸과 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나 실제 우리 춤계에서는 적극적으로 다뤄지지 않는 대상이다. 지난 시댄스에서 선보인 〈69포지션〉(2019, 서강대메리홀)도 섹슈얼리티와 자본주의 권력과의 관계를 탐색한 의미 있는 작품이었으나, 우리 현실(정서)에서는 다소 공감하기 쉽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이번 작품도 안무가만의 기본적인 논조가 변한 것은 아니나 전작의 정치적인 색깔보다는 성(sex) 행위와 춤(스윙 댄스)이 인간 삶의 추동력이 되는 본질적인 행위 자체로 더욱 부각된다는 인상이다. 혼자가 아닌 상대와 관계를 통해 얻어지는 이 본능적인 ‘즐거움’이 금기시(taboo)되고 휘발되어 버리는 욕망으로 치부되기보다는 삶의 활력이자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건강한 소통방식임을 보여준다.






메테 잉바르첸 〈to come(extended)〉 ⓒ2022 SIDance/최인호




작품은 크게 세 단계의 장면으로 전환된다. 섹스를 연상시키는 집단적인 행위가 첫 상황이고 이어 동작이 배제된 벗은 몸으로 신음소리를 내는 행위로 연계되고 신나는 음악에 몸과 마음이 혼연일치된 스윙 댄스로 마무리 된다. 머리부터 발끝가지 밀착된 파란 타이츠를 입은 댄서들의 첫 장면부터 강렬한 인상을 준다. 상대의 성감대에 최대한 가깝게 붙어 섹스를 연상시키는 직설적인 포즈로 집단 난교의 이미지를 방불하게 한다. 퍼포머들은 때로는 정지된 상태로 때로는 유연하게 물 흐르듯이 군무 형태로 성교 이미지를 이어간다.




  

메테 잉바르첸 〈to come(extended)〉 ⓒ2022 SIDance/최인호




얼굴과 온몸을 가린 의상 때문이기도 하고 작정하고 살피지 않는다면 남녀, 계층, 나이 같은 외형적인 차이가 구별되지 않는다. 30여분 정도 느리게 움직이는 퍼포머들이 공간을 점유해 가는 전체 풍경은 추상적인 형태감이지만 개별 동작은 성교 행위로 보여 전체와 부분적 형상이 충돌하게 된다. 그 충돌의 틈에서 사적인 일련의 행위들이 공적인 공간과 안무의 영역에서 재조직되며 자기 발언의 의미를 얻게 된다. 이를테면 익명의 집단적 형상(안무가는 플라스틱이나 3D이미지, 기계적인 사회라고 밝힘)으로 퍼포머들을 위계 없이 배치시킨 안무가는 젠더 간의 문제나 성적 배타성 내지는 우월성이 만연한 사회를 무장해제 하려는 의지이지 싶다. 작품 제목처럼 앞으로의(to come) 열린 가능성을 지향하며 정체성이 없는 생명체들의 운동성(행위)만이 도드라지는 전체 형상에서 (불가능하겠지만) 평등한 사회이자 성적 유토피아를 상상하게 한다. 이어지는 두 번째 상황에서도 목소리의 성적 이미지와 물성 자체가 병치되며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킨다.




메테 잉바르첸 〈to come(extended)〉 ⓒ2022 SIDance/최인호




순간적으로 암전되며 신나는 드럼소리와 음악이 나온 후 퍼포머들 모두가 나체로 무대에 모인다. 흰 운동화와 이어폰을 착장한 이들은 나체만 아니라면 실제 행동은 음악을 들으며 반응하는 모습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벗은 몸에서 새어나오는 가빠른 호흡과 때론 격정적인 표정에서 누가 봐도 신음소리로 인식된다. 점차 이들의 소리와 몸짓표정은 자체적인 리듬으로 흐름을 타며 즐거움을 만끽하는 합창에 가까워지는 인상이다. 상대와 호흡을 맞춰 목소리의 강약을 조절하는 행위 자체와 성적인 신음소리가 중첩되며 안무적 의미가 생성된다. 무대에서 벌어지는 소리 자체의 현상과 섹스와 연계되는 경험적 인식 사이에서 발생하는 ‘차이’에 주목하게 된다는 말이다. 첫 장면에서와 동일하게 상대의 특정 부위에 몸을 가깝게 밀착시킨 동작과 난교의 이미지로 인식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마지막으로 퍼포머들은 신나는 음악에 스윙댄스를 추기 시작한다. 신음소리를 내며 퍼포머들이 느끼는 감정표현과 리드미컬한 박자에 상대와 눈을 맞추고 호흡을 가다듬는 스윙 댄스에 반응하는 양상과 유사하다. 스윙댄스를 추며 상대와 손을 잡고 몸과 몸이 접촉하는 것과 성적 접촉의 차이는 무엇인가? 성적인 행위나 스윙댄스 모두 상대와 상호 교류를 통해 교감하는 능동적인 몸의 대화이다. 작품에서는 이 두 가지 행위를 수평적인 신체 활동으로 배치시키며 살아 있는 존재들의 의욕적이고 본성적인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닌가 싶다.

흥에 겨워 춤추는 퍼포머들은 어린아이가 자신이 벗은 줄도 모르고 자유롭게 즐거워하는 모습같다. 이 순간은 어쩌면 도덕도 개념도 무의미해 진 일상을 살아갈 의지가 넘실대는 역동적인 현장 그 자체이다. 퍼포머들의 몸은 땀과 열기로 과열되고 관객에게 박수를 유도하며 소통하는 분위기를 만든다. 관객도 퍼포머들의 벗은 몸을 점차 의식하지 않게 되고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춤과 흥겨움이 넘쳐나는 상황에 호응하게 된다. 춤추고 싶은 욕망이 치솟는 순간이었다.






메테 잉바르첸 〈to come(extended)〉 ⓒ2022 SIDance/최인호




춤을 추며 느끼는 만족감과 유대감이나 성적 접촉을 통해 다다르게 되는 즐거움은 인간만이 느끼는 감각적인 향유이다. 안무자는 성적 행위가 자극적인 혹은 은밀한 사적 행위라는 통념에서 상대와 관계를 맺는 댄스와 별반 다름없는 주체적인 행위이자 유쾌한 놀이요 창조적인 충동으로 접근한다. 이를 통해 춤추기와 성행위의 접점인 몸을 토대로 몸의 행위를 둘러싼 ‘신체’와 ‘행위’의 관습적이고 기호적인 이미지를 달리 바라보자고 제안하는 것은 아닐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앞서 언급한 움직임 자체의 물성과 성적 행위 맥락으로 인식하는 경험적 인식에서 발생하는 차이를 안무로 파고든다는 생각이다. 하여 기존 춤적 틀에서 불가능했던 외설적인 동작도 충동과 쾌락 같은 느낌도 안무의 범주와 영역으로 수용하며 포괄한다. 결론적으로, 메테 잉바르첸은 〈to come(extended)〉을 통해 섹슈얼리티와 춤을 삶의 에너지(의지)를 촉발시키는 위계 없는 민주적인 소통 방식으로 제고하였고, 에로스적인 본능을 금기시하는 사회의 협소한 섹슈얼리티 인식을 공적 무대에서 환기시킨 점이겠다.

팬데믹으로 얼마간 교류가 중단되었던 해외작품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 준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에서 만난 메테 잉바르첸의 작품으로 컨템퍼러리 춤에서 논의 중인 열린 신체 개념과 안무의 경계를 확장하는 현장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앞서 말했듯, 우리 정서에서 쉽게 다뤄지지 않는 몸과 성, 섹슈얼리티와 포르노그래피라는 주제로 몸이 갖는 생성적 에너지의 자기 실천적 관계성을 다룬 〈to come(extended)〉 작품의 미학적 함의를 유심하게 볼 필요가 있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

2022. 10.
사진제공_2022 SIDance/최인호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