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제무용협회-국립아시아문화의 전당 공동 제작 〈공허와의 만남(Picture a Vacuum)〉
동시대의 비극과 공명하고자 한 한독 협업 레퀴엠
김혜라_춤비평가

국제무용협회와 국립아시아문화의 전당(이하 ACC)이 제작한 〈공허와의 만남〉(10.14~15.ACC)은 한국과 독일 공동 합작으로 독일 무부아르(Mouvoir) 단체와 민혜경 만신(황해도 만구대탁굿 전승교육사), 장혜림(99Art Company)이 공동으로 창작한 작품이다. 그리스 음악가(Martha Mavroidi), 스페인 무용수 겸 가수(Juan Kruz Diaz de Garaio Esnaola), 브라질 출신의 무용가이자 가수(Julien Ferranti), 프랑스 무용수(Manon Parent)와 한국(민혜경, 장혜림, 김경무)의 퍼포머들이 한국의 굿을 중심으로 동서양 공동체의 추도의식을 추적하는 실험적인 작업인 것이다. ‘한’이란 비탄의 감정을 드러내는 작품에서는 시대와 문화마다 죽음을 대면하는 모습은 다르나 상실의 감정은 동일함을 보여준다. 대상의 부재에서 밀려오는 미증유된 감정이 흥건한 무대에서 고대와 오늘의 시간을 횡단하며 애도의 굿판이 펼쳐진다.

독일의 안무가인 슈테파니 티어쉬(Stephanie Thiersch)는 2000년 무부아르무용단을 창단했고, 춤, 음악, 시각예술, 비디오 아트가 결합된 융합적인 작품을 추구하는 예술가이다. 이번 작품과 유사한 〈Hello to Emptiness〉(9.24~25.CJ토월극장)도 지난달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선보인바, 고대 그리스의 애가(哀歌)인 ‘모이롤로이’를 바탕으로 합창과 연기와 춤으로 고대 제의를 상상하게 한 작품이었다. 〈Hello to Emptiness〉는 춤보다는 독일의 민속극인 징슈필(Singspiel)이나 바그너 식의 총체연극(total theatre)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여러 민족성이 투영된 노래에서 공허한 마음이 짐작되었으나 정확한 시적 표현을 알아차릴 수 없어 듬성하게 그들의 감정을 엿볼 뿐이었다. 춤, 합창, 연기 여기에 아마추어 코러스까지 연합된 극의 진행 방식에서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나 장르적 성격이 다소 익숙하지 않았고, 방대한 감정의 스케일을 따라가는 것이 역부족이었다. 이번 공연작인 〈공허와의 만남〉에서는 전작에서의 코러스와 안무가이자 출현자인 슈테파니가 빠졌고, 그 자리에 민혜경 만신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김경무가 합류했다. 댄서로서도 말할 것이 없고 정가를 부르는 장혜림은 제사장 같은 분위기로 다재다능한 퍼포머로서의 재능을 재확인시켰다. 한국에서는 스트릿 춤을 추었고, 유럽에서는 20여년 프리랜서로 컨템퍼러리 작업을 해온 김경무도 반가운 발견이다.






국제무용협회-국립아시아문화의 전당 공동 제작 〈공허와의 만남〉 ©Sang Hoon Ok




〈공허와의 만남〉에서 상실감의 원인인 죽음의 이유나 내용은 정면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구체적인 서사와 플롯보다는 상실로 인한 감정의 폭력성에 잠식된 퍼포머들의 고통에 몰두한다. 무대 중앙에는 물웅덩이(샘?)가 중심을 잡고 있고 이를 둘러싼 퍼포머들이 마치 장례의식을 하는 것 같은 데 때론 고요하게 때론 발작적으로 반응한다. 무대는 고대 신전 제사장을 연상하게 하는 의상과 연출 그리고 시와 노래와 춤이 분리되기 이전 시대의 분위기이다. 죽음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했던 공동체성이 강조되는 퍼포먼스는 공연시간 내내 함께 염하고 공감하는 일관된 모습을 보인다. 만신은 무리에서 나와 자신만의 굿풀이 방식으로 연민과 위로의 메시지를 건넨다. 만신의 등장으로 전작(〈Hello to Emptiness〉)에서 공감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어느 정도 해소되며 전체 퍼포머들의 토로까지 폭넓게 이해하게 한다. 산자의 고통을 들어주고 망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며 그들의 이별을 주선하는 그녀의 역할로 작품의 의미가 명확하게 자리매김하게 된다. 만신은 샤먼으로서의 행위를 재현하면서도 전체 무리가 그들만의 방식으로 연기할 때는 이내 무리로 합류하여 연기자가 된다. 샤머니즘적 요소와 총체성 연극이 적절하게 배치된 안무와 연출은 동서양 제의의 원류를 상상하게 하였다.




국제무용협회-국립아시아문화의 전당 공동 제작 〈공허와의 만남〉 ©Sang Hoon Ok




비애감의 시적 표현이 가장 잘 묘사된 부분은 노래로 애절한 곡조가 와 닿았다. 우크라이나의 민속 노래, 그리스의 노래, 콜시카 섬의 크리스찬 애도의 노래(‘Lamentu Di Ghesu’), 템페스트의 시를 작곡한 곡(‘Picture a Vacuum’), 시인 루이스 글룩의 시를 작곡한 노래('You who do not remember’) 외에도 장혜림이 작곡과 가사까지 쓴 정가와 만신의 무가에서 불러일으키는 회상의 가락으로 무대는 애도의 공간으로 물들어진다. 여기에 생명수를 상징하기도 하고 분노로 쏟아낸 눈물로 해석할 만한 물(웅덩이)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는 정화와 치유를 소망하는 행위로 채워진다. 양수(羊水)로도 보이는 생명을 탄생시킨 물에서 주검이 된 육체를 물로 씻어내는 행동이 그것으로 물로 세례를 받기도 하고 죄를 씻어내는 구원의 종교 의식을 상징한다. 굳어 버린 육체를 안고 탄식하는 퍼포머를 외면하지 않는 무리는 그 고통에 동조하며 동행한다. 또한 물가에서 물을 마시는 행위, 강강술래와 놋다리밟기를 하는 집단놀이의 모습도 죽은 자와의 기억(추억)을 불러내며 연대와 결속의 공동체성을 들어낸다. 죽음에 동행하지 못하는 무력감에서 오는 슬픔이 아리랑의 곡조로 대신하고 있으며 다른 퍼포머들도 기꺼이 합창하며 감정을 연대한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수렴한 물가에서의 춤은 허공에 부르짖는 눈물이자 애원이며 침묵하고는 견딜 수 없는 몸짓의 레퀴엠이다. 일련의 방대한 비탄의 감정을 일으키는 사건이 중첩되는 무대는 두터운 층(layer)으로 한이 쌓인다.






국제무용협회-국립아시아문화의 전당 공동 제작 〈공허와의 만남〉 ©Sang Hoon Ok




비극적 감정의 페이소스(pathos)가 뭉뚱그려진 무대에서 만신의 행위는 마중물이 되어 오늘의 문제와 시간으로 안내한다. 그녀가 부르는 애달픈 소리와 베가름은 망자를 좋은 곳으로 천도하고, 산자는 고통에서 빠져나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끈을 꼬고 푸는 과정에서 서로 간 집착의 끈을 푸는 한풀이의 핵심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당일 현장에서는 소리와 끈 풀이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해 조마조마 했다. 민혜경이 해외 단체와 협업 경험이 있을 리 만무하고 출연진과 호흡을 맞출 환경적인 조건이 어려움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국제무용협회-국립아시아문화의 전당 공동 제작 〈공허와의 만남〉 ©Sang Hoon Ok




굿의 주술성을 중심으로 그간 극장공연에 올린 작업에서는 신명으로 소통하는 해방공간을 만드는 원리가 제의의 본질로 주로 사용되어 왔다. 이 작품도 상징적인 굿의 성격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 만신이 굿 의식의 절차를 적극 실현한다. 그렇기에 분노와 눈물을 끌어안고 위로해 주는 만신의 존재와 역할은 어쩌면 퍼포머 이상의 의미로 이 작품에서 키(key)를 쥐고 있다.(서구권 관객은 다수의 퍼포머들 중 한 명의 구성원으로 한국관객과는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민혜경이 무대에서 펼친 행동은 만신과 연기자(퍼포머)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설정하고 나가야 할지가 중요해 보인다. 그러나 19일 관람한 공연에서는 만신만이 감당할 수 있는 굿 행위에서 증폭되는 기운이 객석으로 전달되지는 않았다.(만신은 몸 상태가 최악이어서 온전한 소리와 신내림이 불가능했다고 얘기했다.) 연기자로서는 부족하지 않았으나 샤먼으로서의 그녀의 역할은 아우라만 풍기고 말았다.




국제무용협회-국립아시아문화의 전당 공동 제작 〈공허와의 만남〉 ©Sang Hoon Ok




이 작품이 독일에서도 공연될 예정인 만큼 우리의 전통적인 굿이 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일지 여러 측면에서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만신의 정체성(샤먼과 연기자)을 분명하게 설정하여 굿 형식(주술적 상징성)만을 차용할 것인지, 실제 굿을 수행할 것인지, 아니면 그 경계를 횡단할지가 명확해지면 더욱 설득력이 있겠다. 기술적으로도 무대바닥에 물이 튀어 미끄러질까봐 제대로 날뛰지(춤추지) 못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어떤 방식(팸플릿, 영상)으로든 굿 행위의 의미를 독일 관객들에게 설명해 줄 필요도 있다. 개인적인 바람으로 한국과 독일의 의미 있는 협업이 굿을 모티브로 한 표면적인 행위의 재현만은 아니었으면 한다. 애절한 곡조의 소리와 몸짓이 관객의 슬픔에 흡착될 때 저마다의 공허의 틈이 열리지 않을까.




국제무용협회-국립아시아문화의 전당 공동 제작 〈공허와의 만남〉 ©Sang Hoon Ok




2005년 피나바우쉬와 부퍼탈 탄츠 테이터 단원들이 한국을 소재로 한 〈러프컷〉(2005년) 공연을 위해 전국을 누비며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을 체험하며 스케치한 내용의 공연을 올렸다. 전통 굿에서부터 김장하는 일상까지 체험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나와 단체의 시각 즉 서구의 시각으로 해석한 한국의 이미지에 머무르고 말았다. 반면에 한 달여를 한국에 거주하며 한국문화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무브아르 단원들과 스테파니와 한국 연행자들의 협업은 굿이라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있는 그대로 무대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다시 말해 서구의 시각에 갇히지 않고 한국적 문화와 그 삶에서 우러나는 뿌리를 통째로 이해하고 공연에 이른 효과적 한독 협업의 성과라 할 것이다. 이제는 K-컬쳐가 대세라지만 굿과 같은 전통문화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K-팝, K-드라마 등 다른 문화 콘텐츠들과 시너지를 일으켜 한국 문화의 전통적 힘을 보여주는 계기라고 생각한다. 이번 국립아시아전당과 국제무용협회의 협력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이후 국제 문화 융성을 이끌길 기대한다.

슈테파니는 공감과 애도가 공동체의 정치적 행위임을 강조하고 있다. 비통함에 잠식하는 공허가 아니라 이웃의 고통에 충분히 슬퍼하며 함께 공허함을 메꾸어 가자는 것이다. 하여 연민이라는 비극의 전형적인 성격과 공동체의 소산이었던 고대 제의 양식을 소환한 것이 아니었겠나.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적 연민이자 애도의 극치인 굿이라는 민간신앙을 중심에 두면서 말이다. 냉철하게 보면 작품이 시대감각 측면에서는 다소 거리감이 있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끌리는 이유는 동시대의 비극과 공명하며 타자의 상실감을 위무하려 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예민한 인식이 요청되는 동시대에 자본의 유동적인 흐름에 민감한 만큼 우리는 사회 공동체를 애도할 여유가 얼마만큼 있는지 자문해 본다.

 

“상실은 지역사회가 상실을 극복하지 못하는 특정 공동체 의식의 조건이자 필요조건이 되고,
지역사회는 공동체로서의 바로 그 의식을 잃지 않고는 상실을 극복할 수 없다.”
- 주디스 버틀러, 상실, 〈애도의 정치학〉 -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

2022. 11.
사진제공_Sang Hoon Ok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