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9ㆍ10월 춤계 뚜껑을 열고 보니
프로페셔널리즘의 재무장이 필요하다
장광열_<춤웹진> 편집장

 대한민국에 다시 춤의 르네상스가 도래한 것일까? 9월에 이어 10월에도 춤 공연은 그야말로 봇물 터지듯 넘쳐나고 있다.
 서울세계무용축제와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올해도 어김없이 같은 시기에 맞불 작전을 펼치고 있고, 여기에 10주년을 맞은 서울공연예술마켓(PAMS)이 가세했고, 국립발레단ㆍ국립현대무용단ㆍ국립국악원무용단 등 국립 단체들의 공연이 연이어졌다.
 이렇듯 많은 수의 공연만큼이나 춤 현장에서는 탈도 많고, 걱정도 많아 보였다.


 

 발레 대중화에 찬물, 한 유명 스타 무용수의 빈약한 춤

 (사)한국발레협회가 주최했던 K Ballet World는 다른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축된 발레 안무가들에게 창작의 장을 마련해주는 것과 함께 공연이 중심이 되는 프로그래밍으로 대중과의 소통을 확장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는 국고 지원 축제이다.
 9월 5일 이 축제를 마무리하는 폐막공연을 장식한 <김주원의 마그리트와 아르망>은 평균점 이하의 공연으로 축제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안타까운 모습을 연출했다. 출연 무용수들의 앙상블은 차치하고라도, 작품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내용이나 성격조차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해 엉성한 공연이 되어버렸고, 이는 결국 대중적인 스타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김주원의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안겼다.
 이름이 잘 알려지고 고정 팬들이 많이 생길수록 스타급 예술가에게는 그만큼 철저한 자기관리와 책임이 뒤 따른다. 쉼 없이 자신을 연마하며 최선을 다해 무대를 준비하는 철저한 프로정신이 있기에 대중들은 그들을 존중하고 환호를 보내는 것이다. 행사를 주최한 한국발레협회 역시 적어도 이날 공연 만큼은 스타 마케팅으로 인해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되었다.
 예술가들에게 무대는 스타로 발돋움하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지만, 한순간 나락으로 추락할 수 있는 무서운 곳이다. 무대 위에서 혼신을 다하는 아름다운 예술가의 모습을 다시 보기를 기대한다.




 기본을 무시한 대중화? 국립무용단의 컨템포러리 댄스 작업 

 안호상 국립극장장 취임 이후 지난 3년여 동안 국립중앙극장의 전속 단체 중 가장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곳은 아마도 국립무용단일 것이다. 1시간이 훨씬 넘는 정기공연 작품의 안무를 국내외 현대무용 안무가에게 맡기고, 의상 디자이너에게 안무와 연출을 맡기는 파격적인 시도를 연속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극장은 얼마 전 공연한 <토너먼트>에서는 ‘판타지를 소재로 두 안무가의 서로 다른 스타일의 춤 대결 형식’을 내세우며 춤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을 위한 ‘한국춤 입문작’이라고 안내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공연 후 춤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남겼다.





 공연 도중에 실린 한 일간지의 리뷰에는 '명작’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보니 뒤늦게 공연을 챙겨보는 비평가나 무용가들의 숫자도 많아져 국립극장 측에서는 티켓 확보를 위해 곤혹을 치루기도 했다. 그러나 공연을 본 대다수 전문가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중국의 경극을 새롭게 각색해 유럽에 소개하기도 한 네덜란드의 공연 프리젠터인 에밀 바렌젠(Emiel Barendsen)은 <토너먼트>에 대해 “성공하지 못한 실험” 이라고 말했다.
 국립무용단의 컨템포러리 댄스를 향한 실험은 권장할 만하고 계속 해나가야 하는 것이지만 작품의 셋팅에서부터 한국춤 입문작이란 홍보 문안을 내세우며 지나치게 흥행을 위한 구도로 몰고 가는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이벤트도 좋지만, 국립 예술단체들의 대중화 작업은 다른 무엇보다 완성도 높은 예술작품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뜨거운 감자,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창작발레 작업

 한국적 소재의 창작발레 작업은 대한민국에 적을 두고 있는 메이저 발레단에게는 일종의 의무감처럼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적 소재의 창작발레를 레퍼토리로 갖고 있다는 것은 해외시장 진출 시 중요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외국의 일급 메이저 발레단들이 보유하고 있는 정통 클래식 발레와 유명 안무가들의 컨템포러리 발레 작품과 경쟁하기란 현실적으로 버거운 것이 사실인 상황에서 한국의 발레단만이 공연할 수 있는 단독 레퍼토리의 확보는 그 자체로 훌륭한 상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니버설발레단이 1986년 초연한 <심청>을 오랜 동안 몇 차례의 개작을 거쳐 가장 많은 해외공연을 갖는 작품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한 달 여 사이에 국립발레단의 <왕자호동>(8월29-30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과 유니버설발레단의 <발레 춘향>(9월 27-2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 잇따라 공연되었다. <왕자호동>은 지난해 최태지 예술감독이 재임 시 이미 계약된 공연이었으나 <발레 춘향>의 경우는 초연 이후 처음으로 대대적으로 개작을 시도한 공연이었다.





 국립발레단의 <왕자호동>은 초연 이후 별반 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음악에서부터 춤, 그리고 무대미술과 의상에서까지 많은 것을 수정한 유니버설발레단의 <발레 춘향> 역시 의욕에 비해 보완해야할 점도 여럿 눈에 띄었다.
 <왕자호동>은 대본에서부터 연출, 음악 그리고 안무에서 대폭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발레 춘향>은 대본에서부터 연출, 음악, 안무, 의상, 무대미술 등에서 대폭 또는 부분적인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들 창작발레 작품은 두 발레단에게는 ‘뜨거운 감자’ 이다. 공연을 안 할 수는 없고, 개작을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제작비가 들어가고 무엇보다 제대로 된 개작을 위해서는 일부 인력의 교체 등 그 용단을 내리기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심청>을 개편하면서 작곡가를 바꾸고 여러 명의 연출가를 초빙했다. 국립발레단의 <왕자호동> 역시 필요하다면 <심청>의 이 같은 전철을 밟을 필요가 있다.
 전막 발레 창작은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대본과 안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과감한 개편 작업이 뒤따르지 않고서는 2시간 여에 이르는 스토리텔링을 곁들인 창작발레 작업은 요원하다. 적지 않은 예산의 확보가 수반되어야 하는 만큼 국립발레단으로서는 새 단장의 단안이 필요하며, 유니버설발레단 역시 단계적인 보완 작업에 계속 공을 들여야 할 것이다.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와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의 막이 올라가면서 벌써부터 초청 작품들에 대한 수준과 예술성 문제가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SIDance의 경우 한국을 넘어 아시아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축제로 자리 잡으면서 초청 작품의 질에 대한 관객들의 눈높이가 더욱 높아진 듯 보이며, SPAF의 경우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을 첫 무용공연으로 무대에 올렸으나 기대 이하의 수준을 보여 시작부터 축제의 위상에 타격을 받았다.
 춤 마니아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무용가들과 기획사, 축제와 극장은 이들의 날카로운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춤계 각 부문에서의 진정한 프로페셔널리즘의 재무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2014. 10.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