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한국 컨템퍼러리댄스 특집’ 더플레이스 참여안무가
해외 한국문화원들이 적당주의를 벗어난다
  • 일    시
    2019년 5월 4일(토) 오전10시
  • 장    소
    카페 두다트(서울 연남동)
  • 사    회
    김채현_〈춤웹진〉 편집장
  • 참석자
    김재덕·김보라·임진호·최민선·강진안·최영현






김채현: ‘한국 컨템퍼러리댄스 특집’이 영국 런던에 있는 더플레이스 극장(The Place)에서 5월 31일부터 며칠 열린다. 참여 안무가들과 하는 이번 좌담을 위해 검색해보니 더플레이스 극장은 4~5월에 쉬는 날이 거의 없었다. 세계적으로 아니면 유럽에서 90년대부터 특히 젊은 층의 실험춤 계열에서 중요한 춤 전용극장이었다. 지금도 그렇지 않을까 한다. 요즘 한국의 춤에 유럽에서 관심이 높다는 건 모두 알고 있고 피부로도 느낀다. 이 극장에서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갖는 한국 특집에 춤계에서 많이들 궁금할 것이다. 공연 성과는 가서 해봐야 아는 것이고, 그에 앞서 우선 참여 경위부터 알고 싶다. 더플레이스에서 한국 댄스페스티벌에 참여해달라는 연락을 각자 언제 받았는지 소상하게 소개해달라.


지난 가을부터 꼼꼼히 추진하다

김재덕: 지난해 서울에서 있은 팸스초이스 때 부스에서 모던테이블 작품들을 선보였었는데 당시 주영한국문화원 박재연 팀장이 지금 더플레이스 극장 담당자를 안내했다. 팸스 때 여러 작품을 봤고 우리 작품 〈속도〉를 마음에 뒀다고 하더라. 이후 더플레이스 한국특집의 오프닝으로 공연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모던테이블은 2016년 5월경 영국에서 ‘K-Music 페스티벌’이 열렸을 때 더플레이스에서 이틀간 〈다크니스 품바〉를 공연했다. 그때가 더플레이스에서의 첫 공연이었다. 극장 담당자가 작품을 좋아했다고 들었다. 그 인연이 이번까지 이어진 것 같다.

최영현: 지난해 8월말~9월초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인터네셔녈 탄츠메세 NRW’에서 〈침묵〉을 올렸다. 아트마켓 형식의 탄츠메세에서는 전세계 공식초청작이 50여 편이었다. 한국 단체는 저의 노네임소수를 비롯해 국립현대무용단, 모므로움직임연구소 총 3팀이 공연했고 아트프로젝트보라도 공연을 소개하는 피칭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극장 규모가 작아 좌석수는 많지 않다. 티켓이 매진되다보니 더플레이스에 있는 디렉터가 초대권을 요청했고 관람 후 이번 특집에 선정된 것으로 안다. 그 후 박재연 문화원 팀장이 더플레이스 한국 댄스페스티벌 공모가 있으니 준비서류를 보내 달라했고 다시 한 번 작품을 살펴보더라. 처음에 더플레이스 관계자가 실제 공연을 관람하고, 다음에 문화원 측에서 작품 개요 및 규모 등을 기재한 소개서와 영상, 사진을 검토한 것이다. 지난 1월경 관련 자료를 전달했고 3월경 탄츠메세에서와 같은 〈침묵〉으로 공연할 것을 최종 통보받았다.

김보라: 2017년부터 더플레이스에서 작품을 보내 달래서 여러 작품을 전했다. 지난해 더플레이스 관계자가 저희 기획자에게 〈소무〉 작품에 관심을 갖고 하룻밤 공연을 제안했다. 〈소무〉는 45분 길이 작품이어서 또 다른 작품 하나를 더 소개받길 원했고 고민 끝에 20분 길이의 〈혼잣말〉을 먼저 거론했다 한다. 그래서 〈소무〉와 〈혼잣말〉로 더플레이스 한국 특집에 참여하게 됐다. 작년 탄츠메세가 끝난 후 11월부터 이야기가 오갔고 최종적으로는 1월 전에 선정을 통보받았다.

강진안: 지난해 시댄스 후즈넥스트에 오르게 됐었다. 이때 더플레이스 관계자가 저희 공연을 보고 관심을 가져주었다.

김채현: 더플레이스 관계자가 올해 한국특집을 염두에 두고 한국을 방문해서 여러 작품을 보았다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여러 작품을 직접 현장에서 체크하고 선별하는 과정이 꽤 인상적이다.

최민선: 아무래도 같은 기간에 팸스초이스도 있어서 해외 프리젠터들이 많이 찾는 것 같다. 더플레이스 관계자와 로비에서 간단히 인사를 나눴고 바로 다음날 저의 페이스북 메시지로 문화원의 박재연 팀장한테 연락이 왔다. 영상을 비롯 작품소개 자료를 요청했고 그때까지 확정된 것이 아님을 전제로 했다. 확정되기까지 생각보다 꽤나 긴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다른 여러 후보작이 올려 있었고 무엇보다 작품이 더플레이스와 맞는지를 고려하는데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다. 최종적으로 2월 즈음 통보받았다.

임진호: 고블린파티는 더플레이스 관계자와 국내에서 두 번, 국외에서 한 번 모두 3회 만났다. 처음은 2017년 12월 서울무용센터에서였다.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가 ‘2017 Focus Korea Dance - 한국무용 국제무대 시장 개발과 유통 활성화 프로젝트’의 쇼케이스 프로그램을 마련한 자리에서 해외 프리젠터들에게 〈옛날 옛적에〉와 〈은장도〉를 선보였다. 쇼케이스가 끝나고 더플레이스 관계자와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 선보인 〈은장도〉는 유럽 현대무용 플랫폼 ‘에어로웨이브즈 스프링포워드’에 초대받아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포커스 코리아 댄스를 통해 〈옛날 옛적에〉는 대만 가오슝에서 공연하게 됐고 더플레이스 관계자와 두 번째로 만났다. 대만에서 두 번째 검증을 받은 것 같다. 생각보다 현지 반응이 좋았는지 마지막으로 지난해 가을 팸스초이스 때 한 번 더 만났다. 이때 더플레이스 한국특집 참여단체로 고블린파티를 염두에 둔다고 의사를 밝혀주었다. 최종적으로는 팸스초이스, 스파프, 시댄스가 묶여있는 가을 공연시즌이 끝나자마자 초청 연락을 받았다.




모던테이블 〈속도〉




김채현: 작품 선정기준은 그다지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뽑힌 작품들을 보면 선정기준이 짐작이 간다. 한국의 새로운 또는 컨템퍼러리한 경향을 대변하는 창작물이 우선으로서 작품의 완성도, 충실도, 특이성 등이 고려된 듯하다. 이에 못지 않게 관심이 가는 것은 초청 조건이다. 어떤 조건으로 가게 되는가? 항공료나 체재비는 주최측이 모두 부담하나?


올해 더플레이스 행사는 일종의 중간결산

김재덕: 항공료는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지원한다. 개런티는 극장 측에서 주는 것으로 안다.

김채현: 각 팀의 공연일이 모두 다른데 공연하기 며칠 전에 가나?

김재덕: 저희 팀 같은 경우 5월 28일에 출국해서 하루 셋업하고 31일에 공연한다.

김보라: 같은 날 출국해서 셋업 하루, 리허설 하루씩 그리고 공연한다.

최민선: 트리플빌인 최강프로젝트와 고블린파티, 노네임소수는 셋업과 리허설을 하루에 하고 다음날 공연하는 스케줄이다.

김채현: 이번 한국특집에 신작은 없다. 기존 했던 작품들을 손질해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더플레이스 무대에 선 경험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재덕 씨가 3년 전 〈다크니스 품바〉로 공연했다는데, 다른 팀은 어떤가?

최영현: 처음이다. 극장 규모는 280석 규모다. 무대 크기나 시설에 대해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어 숙지하고 있다.




아트프로젝트보라 〈소무〉 ⓒ김근우




김채현: 제가 25년 전에 처음 찾아갔을 때 극장이 알찼다는 느낌이었다. 무대가 넓고 객석도 경사져 있어 시선도 방해받지 않는 듯했다. 최근 인터넷으로 사이트를 검색해보니 공연들을 대개 하루 이틀 하더라. 어떤 경우는 셋업하는 날도 없이 오늘 어느 팀이 공연했으면 바로 내일 다른 팀이 공연하는 빠듯한 스케줄인 흔히 눈에 띈다. 그런데 말씀들을 죽 들어보니 이번 한국팀은 공연 2~3일 전에 도착해서 셋업 일정도 있다. 더플레이스로서는 시간을 넉넉하게 주어 그 극장의 통상적 사례보다 충실해 보인다.
지난해 더플레이스에서 한국특집이 처음 있었다. 국립현대무용단, 김경신, 안수영, 차진엽, 권령은이 2018년 5월 9, 12, 16일 세 차례 공연했다. 올해 두 번째라는 것은 더플레이스에서 그만큼 한국 컨템퍼러리댄스(현대춤)에 관심을 갖고 있고, 런던의 한국문화원에서도 신경을 쓰고 있다는 뜻일 거다.
제가 2010년대 초반에 런던에 몇 차례 갔는데 이미 K-POP 내지는 코리안 웨이브에 대해 관심이 굉장히 높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현지에서 쓰는 석·박사 학위논문에서 서서히 한류에 대한 내용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2~3년 지나니 한류가 강화되는 조짐이 보였다. 유럽 쪽 경험이 많은 분들은 제가 아는 이상으로 다른 사례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제 와서 한류의 흐름이 춤계의 실질적 행사로 이어지는 조짐이 보인다. 더플레이스 극장이 관심을 가지면 한류에 대한 유럽의 관심이 좀더 증폭되지 않겠는가.
한편으로는, 그동안 우리 무용인들이 교환프로그램 등으로 유럽에 많이 갔는데, 그에 더하여 더플레이스의 이번 한국특집은 어떤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더플레이스가 아무나 덥석덥석 부르는 극장이 아니다. 더플레이스 한국특집은 시작점이자 다른 한편으로 그동안 한국의 무용인들이 유럽에서 활동한 것의 중간결산인 셈이다. 다시 말해 중간결산이면서 또 새로운 시작이랄까.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은 더플레이스가 유럽에서 활동하는 한국 무용인의 공연 품질에 대해 하나의 인증서를 부여해준다는 그런 뜻에서다. 그래서 이번 공연이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졌고 공연 결과는 다음에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지 몰라도 먼저 좌담부터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부수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런던에 있는 한국문화원이 추진하는 일이 이전보다 세련돼졌다는 것이다. 런던 한국문화원이 이전에는 대개 춤의 흐름도 잘 모르고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 짧은 기간 내에 급하게 일을 해치워서 뭔가 부실하다는 의아스런 소문을 듣곤 했는데, 올해 행사 추진과정을 들어보니 더플레이스 관계자가 여러 곳에서 직접 작품을 확인하고 문화원 박재연 팀장과 함께 내실 있게 진행한 것 같다. 선정 결과도 갈 만한 단체가 가게 되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한류, 한국에 대한 해외의 관심은 누누이 거론되어 왔고 이제는 신기한 현상도 아니며 점점 일상화되다시피 한다. 그런 점에서 더플레이스 한국특집과 연결지어, 혹은 해외활동 경험에 대한 느낌이나 판단을 자유롭게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참여자가 자부심을 갖도록 문화원 기획이 철저해야

임진호: 춤 작품을 만들며 해외에 진출하는 것이 꿈이었다. 뭔가 이루어지는 것 같고 인정받는 것 같은 목표 아닌 목표랄까. 감히 저희는 해외공연 경험이 많지 않지만 꽤나 투자해서 여러 번 해본 결과, 오히려 해외공연을 다녀오니 이뤄서 얻은 것보다 소모적인 게 많았다는 생각이다. 끝나고 나면 찾아오는 공허함이 한국에서 공연하는 것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공연은 해냈지만 ‘허공에 공연하고 온 느낌’이었다. 우리가 소통을 못하나, 소통의 부재인가 이런 생각도 해봤다.
공연단체는 공연을 많이 해야 하므로 이렇다 할 해외공연 기회가 없다면 국내공연을 많이 갖는 게 바람직하다 싶어 요양원을 돌아다니며 10회 정도를 할머니, 할아버지 바로 앞에서 공연했다. 힘들고 처절하긴 했는데 얻는 게 있었다. 해외공연만이 작품의 질과 우리 삶의 성공의 척도를 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더라. 오히려 옆에 있는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스킬은 내수시장에서 다져야 한다는 생각도 갖게 됐다. 해외로 나가는 것은 지원금을 못 받는다 하더라도 항공료를 잘 모아서 한다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건 지속적으로 작품을 만들어서 국내 투어를 통해 내구성을 탄탄하게 하는 것이다. 고블린파티는 〈옛날 옛적에〉를 엄청 많이 공연했다. 횟수를 세어 보니까 50번 정도? 이런 경험으로 나름의 내실을 다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더플레이스에 오르는 것이 한결 마음 편하다. 지금은 그때 비해서는 조금 더 박수가 나오겠구나 하는 자신감도 생긴다.




고블린파티 〈옛날 옛적에〉




김채현: 해외공연은 소모적이거나 생산적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소모적이라는 것은 그 다음에 ‘예술적 향상이나 활동의 빈도 증가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에’ 해당된다. 해외의 한국문화원들이 한국문화 진출이라는 큰 틀에서 당연히 한국 무용인을 해외에 소개해야 하지만 참여 예술인이 스스로 후속적 향상이 없었다고 판단될 경우 소모적이었다는 생각도 들기 마련일 것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남에게 이용당한다고 해야 할까. 상대방은 상대방 식으로 일을 한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더플레이스는 극장으로서 권위가 있으므로 거기서 공연했다는 자체가 하나의 인증서가 된다. 국내외에서 활동할 적에는 단체의 가치판단이 앞서는데, 더플레이스에서의 공연은 제3자의 객관적 시선에서 단체의 가치가 어느 정도 이상이라는 점을 확인받은 것을 의미한다.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극장이기 때문에 앞으로 해외활동에서도 도움이 될 공연이다. 젊은 세대 무용인들이 해외로 날개를 펴는 데 힘이 될 수 있는 경로로 봐도 좋다.

김보라: 저의 경우엔 한국에서 재공연을 하고 싶어도 창작에 지원금이 쏠리다보니 재공연을 잡기 힘들었다. 민간단체로서 생존하기 위해 공연을 가져야만 하는데 아트프로젝트보라의 작품은 특성, 성격, 규모 면에서 국내에서 초대받기 힘든 점도 없잖아 있었다. 레퍼토리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 어떤 기회도 필요하다. 오히려 해외에서 초청을 받으면서 다시 리허설을 할 수 있었고 레퍼토리를 구성하게 된다. 그러면서 점차 작품의 내구성이 탄탄해지는 걸 느꼈다. 한국에서 신작 창작에 매진한다면, 해외에서는 레퍼토리로 재공연한다. 그 작품비와 개런티로 다시 리허설을 잡고 작품을 재구성해서 짧은 소품을 1시간짜리 작품으로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힘을 받는 경우가 꽤 많다. 처음에는 해외에서 공연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그 자체로 즐거웠는데 그 다음에 권역마다 나라마다 다른 관객들의 반응이 보였고 재밌게 느끼면서 생각하는 기준도 오픈되더라.
올해의 경우 3년 전과 다르게 해외극장과 연결이 많았다. 2월 독일에 갔던 것도 다름슈타트(Darmstadt) 극장에서, 4월에는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바리아(Varia) 무용전용극장에서 직접 초청했다. 이번에도 더플레이스에서 초청하지 않았나. 이렇게 극장 초청을 받았을 때 그들이 오히려 한류의 지점을 놓치지 않고 우리에게 환기해줄 때가 종종 있다. 극장 홍보에서 한국이라는 것을 강조하기도 하고, 작가와의 대화에서 관객들도 작품에 대해 궁금해 하면서도 한국에서 어떻게 바라보는지 한국관객의 반응에 대해 질문한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다른 게 한류가 아니구나, 이렇게 한국의 문화예술이 알려질 수 있겠구나 싶다. 한국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만들지 않았는데 해외를 나가면서 한국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됐다.

김채현: 새삼 생각해 보면, 한국문화원이 하는 활동이 부실하거나 충실하지 못할 경우 참여하는 무용인들은 이용당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갖게 된다. 기획이 충실할수록 내가 성장한다는 느낌이랄까, 그런 강점이 커진다. ‘부실한 기획’으로는 한국문화와 참여 예술인을 알리지 못한다. 어찌 보면 한류의 흐름이 한국문화원으로 하여금 이번 같은 일들을 하도록 자극을 준 것이 사실이다. 일종의 계기가 된 거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시선을 돌려가며 했을까? 한류라는 것이 음악 또는 영화, 드라마에서 진행됐지만 같은 한국의 문화예술인의 입장에서 타 분야의 성과를 활용하고 또 함께 뻗어나갈 수 있다. 넌버벌의 춤은 다른 한류 장르가 주지 못하는 점을 얼마든지 살릴 수 있다고 본다.
몇 번 이야기하지만 더플레이스 극장의 권위는 상당하기 때문에 아마 해외에서 더플레이스의 공연 경력을 눈여겨 볼 것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유럽팀이나 외국팀을 볼 때에도 더플레이스에서 공연했다면 그 실적이 더 눈에 띄곤 한다. 그런 점에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과를 낳았으면 좋겠다. 누이가 나라고 한다면 매부는 한국, 한국문화원, 한류라 할까. 서로 상승작용을 하기를 바란다. 이번에 작품과 단체들을 선정한 것을 보니 기대할 만하다. 앞으로 잘 이어지리라고 본다. 더플레이스도 자기들 명예 내지는 명성이 있기 때문에 일을 적당히 하진 않을 것이다. 더플레이스가 그런 극장이기에 한국문화원도 더 바짝 긴장해서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극장의 권위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걸 또 다시 느낀다.

김보라: 더플레이스 측과 오갔던 메일을 확인해봤다. 작년 11월부터 무대기술에 관련한 사항을 주고받았는데 굉장히 꼼꼼하다. 기분 나쁘지 않게 정중히 거절도 잘하면서 요구하는 것도 많았던, 대화 같은 메일이었고 매우 좋았다. 이미 작년에 기술적 측면은 모두 협의가 끝났다. 더플레이스는 아티스트가 걱정하지 않고 오로지 공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김채현: 해외의 여러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것과는 조금 다를 것 같다.

김보라: 그렇다.


전문성 갖춘 문화원 기획이 느는 추세

김재덕: 더플레이스에서 처음 공연했던 3년 전에, 당시 주영한국문화원에서 새 원장이 K-Music 페스티벌을 만들었고 잠비나이를 비롯해 한국의 모든 팀을 초청해서 영국에 알렸다. 이 또한 문화원에서 작품을 선정한 것이 아니라 월드뮤직페스티벌에서 가장 유명한 영국인을 디렉터로 세워서 직접 선택하게 했다. 음악성이 강한 〈다크니스 품바〉는 K-Music 페스티벌에 참여해서 더플레이스와 손잡을 수 있었다. 이후에 무용작품을 해보면 좋겠다고 해서 한국문화원이 더플레이스에 권한을 줬고 코리아댄스페스티벌을 만든 거다. 한국인에 의한 선정을 거치지 않고 모든 작품들이 현지의 전문가들에 의해 공정하게 꾸려졌다. 지금은 재직하지 않지만 당시 원장이 이런 환경을 만든 장본인이다. 그 곁에 있은 박재연 팀장님이 그 원장의 뜻을 지금까지 잇는 줄로 안다. 원장님은 음악, 연극, 무용 작품에 관심이 크고 미국에서만 거의 천여편을 봤다고 하더라. 춤무용 테크닉과 안무자의 색깔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춤 분야는 춤전문가가 관여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팀장을 매개자로, 더플레이스 디렉터가 직접 작품을 보고 선택했고 이번 한국특집과 같은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본다.

김채현: 정부가 비민주적으로 아니면 건성건성 일을 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대표적으로는 블랙리스트뿐 아니라 문화 관료들이 엉뚱한 생고집을 부리고 잘 모르면서 일을 추진하는 방식이 없지 않았는데, 실질적으로 문화예술인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특히 런던의 경우 더플레이스 극장이 지난 30년 동안 유럽에서 가장 바쁜 극장으로서 어마어마한 노하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극장과 일을 하는데 함부로 일했다가는 망신당하기 좋다. 극장에 일임해서 극장의 양식과 능력을 믿고 그대로 해주는 것이 현명하다.

김재덕: 덧붙이자면 원장님이 공연을 맡을 극장을 직접 보셨다고 한다. 로얄앨버트 홀이나 새들러스웰스 등 모든 극장을 관찰한 뒤 더플레이스가 우리들 춤에 가장 적합한 공연장이라고 판단했다 한다.

김채현: 나의 상식으론 춤 공연장으로선 더플레이스가 런던에서 가장 좋다. 춤으로선 유럽에서 제일 바쁜 극장이다. 특히 실험적인 혹은 아방가르드한 작품 등 예술성 있는 춤 작품을 소개하는 곳으로서는 이 극장이 제일 낫다. 어느덧 우리나라 팀들이 더플레이스에 가서 공연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모던테이블이 〈다크니스 품바〉를 더플레이스에서 공연했을 때 현지 반응은 어땠나?

김재덕: 처음 개최한 페스티벌에 한국팀이 가고 해서, 사실 홍보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 다행히도 첫날 엄청난 호응이 있었다. 둘째 날엔 관객이 많았고 관객 중 몇 분은 기립박수도 보내주셔서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 귀국 후 서울거리예술축제에서 제 작품을 보고 엑스트랙스(Xtrax)가 접촉해왔다. 엑스트랙스는 영국의 거리예술을 위한 작품 제작, 프로그램 기획, 국제교류 등의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조직이다. 그들의 초청으로 다음해인 2017년 영국 그리니치에서 열리는 도클랜드페스티벌에 〈맨 오브 스틸〉로 참여할 수 있었다. 더플레이스에서의 좋은 경험을 토대로 모든 일들이 연달아 이어졌던 것 같다.




노네임소수 〈침묵〉




김채현: 춤 레퍼토리를 갖고 있다면 아무튼 국내외적으로 공연 기회를 많이 늘려야한다. 기회를 만드는 데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문화원의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해외 모든 한국문화원들이 이렇게 변화하고 있을까? 해외 한국문화원은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 ‘반드시 현지 전문가와 손을 잡고’ 함께 호흡해야 한다. 그래야 일회성이 아니라 다음에도 연속적인 프로그램이 이뤄질 수 있다. 한국문화원에서 하는 행사를 비행기를 타고가 여러 차례 본 적 있다. 한국 교민들 몇 사람을 옹기종기 앉혀놓고 펼쳐지는 공연들, 그런 경우 문화예술인으로서 자괴심을 느끼면서 소모당한다거나 이용당한다는 인식을 받게 된다. 현지의 권위 있는 문화예술인과 연결되어 일하는 경우에는 그런 감정이 들 리가 없다.

김보라: 해외 한국문화원들이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문화원이 적극적으로 현지 페스티벌이나 극장을 연결하여 저희에게 연락하는 경우가 수차례 있었다. 이번에 벨기에 초청공연의 경우도 바리아 극장과 손을 잡아서 극장장이 팸스초이스 때 와서 보고 저희를 선정했고 거기에 벨기에 한국문화원이 도움을 준 거였다. 스페인의 경우도 그라나다페스티벌 등 큰 축제와 어떻게든 연결시켜 한국 무용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꾸리는 듯하다.

김채현: 오늘 나온 이야기는 예술인 개인의 경험을 넘어 공적인 것으로 피력할 만하다. 새 문화교류 패턴에서 한국문화원 또는 정부기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저 지원금 주고 초청하는 식의 안일한 패턴을 벗어나 지금 우리는 현지의 권위 있는 문화기관과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논하고 있다. 〈춤웹진〉은 이번 더플레이스 코리아 댄스 특집과 같은 한국문화원의 내실 있는 기획력을 응원한다.


동네 행사 같은 vs. 정성껏 포장된 선물 같은 대조적 느낌의 뉴욕 공연​ 


임진호: 해외 문화원 행사를 그동안 3~4회 참여해봤다. 뉴욕에 2번, 워싱턴, 아부다비에 다녀왔고 조만간 헝가리에도 간다. 지금까지의 문화원행사 중에서는 헝가리의 추진력과 진행과정이 가장 좋다. 헝가리에도 〈옛날 옛적에〉로 참여한다. 제가 처음 문화원 행사로 참여한 것은 2016년이었다. 예술의 중심, 메카라고 하는 뉴욕이었으나 그 진행방식은 매끄럽지 못했다. 뉴욕에 가서 공연한다는 자체만으로 매우 기대가 컸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도 ‘어느 동네 공연 다녀온 느낌’이다. 학원 같은 곳에서 공연하고 온 것 같다 할까. 여기가 정말 뉴욕 맞나 싶었다.
3년 뒤 올해 초에 또다시 뉴욕에 가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엔 일본문화원에서 초청해서 다녀왔다. 비교체험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뉴욕에 있는 한국문화원과 일본문화원, 운영과 일하는 방식 면에서 엄청 차이가 났다. 재팬 소사이어티 문화원 건물에 페스티벌의 모든 관계자들이 드나들며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일본 전통무용과 컨템퍼러리댄스가 혼재된 프로그램이었고 사실 그렇게 재미있는 구성은 아니었다. 그런데 페스티벌 시작부터 리셉션을 갖고 초청한 아티스트들과 소통하고 관계된 인사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등 진행이 정말 매끄러웠다. 마치 ‘정성껏 포장된 선물’ 같았다.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겠더라. 일본 사람들의 뭔가 차별화된 강점을 느낄 수 있었다. 2016년 우리를 초청한 뉴욕의 한국문화원 관계자들이 이 페스티벌을 보러 왔었다. 다행히도 현지 한국문화원이 재팬 소사이어티 건물에 착안해서 거의 비슷한 규모의 공연장과 시스템을 구축하려 한다고 들었다. 앞으로 2년 후 한국 예술인들도 뉴욕에서 멋지게 공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김채현: 건물도 중요하겠지만, 그 다음부턴 운영이 관건이다. 전문성 없는 운영이 갖는 허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뉴욕의 한국문화원이 제대로 정착하기를 기대한다. 아마 재팬소사이어티와 비교되는 경우가 빈번해질 텐데, 뉴욕의 한국문화원도 이 점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기대된다. 헝가리의 한국문화원과는 어떻게 연결되었나?

임진호: 현지 한국문화원의 주재은 팀장이 직접 연락 주셨다. 문화원 개관 행사에 저희 〈옛날 옛적에〉 공연과 그곳에서 올해 10월 한달간 머무르며 극장을 홍보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준비 과정이 기존의 문화원 행사 같지 않다. 전문공연기획사와 하는 것 같이 엄청 꼼꼼하게 진행되고 있다. 올해 11월초 행사인데 2018년도 초봄에 처음 연락을 받았다. 개관행사에 대한 아이디어 회의부터 여러 작품 가운데 어떤 것을 어느 부분에서 공연했으면 좋겠다는 등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하기 시작했다. 회의는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진행했다.

김채현: 헝가리에서 한달 동안 머문다고 했는데 그동안 무엇을 하게 되나?

임진호: 먼저 헝가리 한국문화원 공간을 익히고 정보를 받아서 그 공간을 활용한 장소특정적 퍼포먼스를 창작할 예정이다. 예전에 서울무용센터 개관행사 때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다. 문화원 안에 극장도 있어 〈옛날 옛적에〉 공연도 올린다. 출연자 3명과 조명·무대 감독 등 총 8명이 투어 인원이 될 것 같다. 기술감독은 공연 10일 전에 간다.

김재덕: 첨언으로, 헝가리 한국문화원에 계시는 주재은 팀장을 말씀드리고 싶다. 대한민국 문화예술기획자 중 보물 같은 분이시다. 팀장님은 LIG문화재단에서 기획 일을 했던 분으로 우리 춤계를 비롯해 예술계 전반을 꿰뚫고 계시다. 그런 분이 헝가리에 있으니 헝가리 한국문화원이 빛나는 거다. 해외의 한국문화원을 보면 주재은 팀장만큼 전문성을 갖춘 인재, 국내 예술계를 이해하고 있는 분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현지 대학을 나와 한국문화에 관심을 갖고 문화원에 들어간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재은 팀장은 한국에서 헝가리로 간 특별한 경우다.


참여 예술인의 만족감이 기본

김채현: 참여하는 예술인이 우선 만족해야 한다. 관객은 일단 둘째다. 예술인이 만족해야 무대에서 표출하고 관객도 만족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선 일을 추진하는 문화원의 기획진이 전문성부터 갖춰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그동안 무엇이 부족했는지 파악하게 되는 실질적인 기회를 갖게 된다. 어떤 문화원이 해내는 걸 보니까 그동안 어떤 것이 문제였는지를 구체적으로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모르면 막연히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하는 소망 정도에 그칠 텐데, 오늘 이야기 나눈 개선 방안을 밑거름으로 후배 안무자나 한국팀이 앞으로 해외에 나갈 때는 서로에게 도움 되는 문화교류가 더 잘 이뤄질 거라 생각한다. 문화교류를 논할 때 해외에서 잘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점이 우선시되는데, 그 이전에 우리가 일을 추진할 때 일하는 방식 자체가 수준급 이상 되지 않으면 아무리 교류를 해도 효율성이 낮다는 사실도 재확인하게 된다. 이 연장선상에서 해외 다른 행사에 참여한 경험에 비추어 여러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다.

최민선: 여기 계신 분들에 비하면 저희는 해외경험이 많지 않다. 안무를 시작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고 초청받아서 해외로 나가는 경우는 올해가 첫 해다. 시작을 더플레이스에서 하게 되어서 굉장히 크게 와 닿는다. 더플레이스 공연 바로 전, 5월에 체코 공연을 앞두고 있다. 올로모츠 지역의 컨템퍼러리 축제인 플로라 아트페스티벌(Divadelní Flora)에 작품 〈Complement〉로 참여한다. 더플레이스에도 같은 작품을 올린다. 이전에 탄츠메세에서는 부스로 참여했기 때문에 사실상 공연은 아니었고, 요코하마댄스컬렉션 경연에 참가했었는데 그건 경연이었지 초청공연이 아니어서 성격이 매우 다르다.




최강프로젝트 〈Complement〉




김채현: 해외에서 우리 레퍼토리로 공연하면서 느낀 한국 춤작품의 강점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 작품 자체의 강점일 수도 있겠고 한국의 춤의 전반적인 특색일 수도 있겠다. 외국 기획자나 관객들이 좋아하는 점을 이야기해주면 앞으로 후배들, 해외진출 안무가들에게 참고가 될 것이다.

최영현: 저 같은 경우는 창작할 때 기존의 형식에서 많이 벗어난,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것에 접근하려 한다. 최소한의 공간에서 직접 디자인한 조명을 사용하고 움직임조차도 춤이 아닌 형태, 이미지를 구현하려 한다. 기존의 것들을 탈피하고 싶은 다름의 이미지들이 강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김채현: 더플레이스 극장과 대화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진행하면서 기술적인 부분도 자세하게 논의했을 텐데 어떤가?

강진안: 통상적인 이야기지만 한꺼번에 내용을 주지 않고 차근차근 세밀하게 조율했다.

최민선: 단계를 밟아간다는 느낌이 확실히 있었다. 조명이나 세트 등을 하나씩 협의했었다.

김보라: 플러스 알파가 있었다. 〈혼잣말〉이라는 공연의 앞부분이 나레이션으로 되어 있는데 그 부분을 번역해서 달라고 요청받았다. 8분이나 되는 나레이션을 모두 번역해서 전해드렸다. 나레이션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과정은 물론, 어떻게 홍보해도 되겠는지도 물어왔다. 예를 들어 카프카 소설을 이야기한 부분이 있는데 이를 홍보에 넣어도 되는지 같은 질문이었다.
더플레이스는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져 〈꼬리언어학〉이 아닌 〈소무〉를 선택했다고 저는 생각했다. 각 나라에서 이슈가 되는 여성주의를 다른 문화권에서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해 했다. 이 부분도 어떤 식으로 홍보해야할지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제가 6월 4일 공연인데 5월 28일에 런던에 와서 세미나 형식의 오프닝 토크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지도 협의했다. 저희 공연이 페스티벌 중간에 껴있으니 개막에 참여해서 다른 관계자들과 네트워크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리고 영국 BBC 방송 인터뷰가 잡혔는데 김재덕씨가 하기로 했다는 좋은 메시지도 받았다. 그런 세심한 준비와 아티스트에 대한 배려가 다른 점이라 본다.

김채현: 오프닝 토크프로그램은 주제가 정해져있나?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하다.

김보라: 예술경영지원센터와 더플레이스의 발제, 작가의 토크가 있는 것으로 안다. 주제에 대해 자세한 사항이 아직 알려진 바 없다.

김채현: 공연 전 토크프로그램이나 세미나와 같은 부대행사에 참여하는 기회가 다른 해외공연에서도 있었나?

김재덕: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대화하는 이런 방식의 프로그램 참여는 해외에서 처음인 것 같다.

김채현: 시간 여유가 되면 미리 가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것이 좋겠다. 다녀오면 분명 결과는 있을 것이다. 이번 추진 과정에서 미흡했던 점 혹은 개선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가령 개런티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라도 좋다. 개런티가 그리 넉넉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개런티와 상호소통은 다다익선(多多益善)

김보라: 공개할 수는 없지만 갔던 곳 중에서는 제일 적게 주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급 구조를 알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이해가는 면도 있다. 인원수에 따라 책정된 금액이 있었고 극장은 그 기준에 따라 아티스트에 지급한다. 꽤 적은 금액이지만 정중한 형식으로 저희에게 말씀해주셔서 이해할 수 있었다.

김채현: 작품의 규모보다는 참여하는 인원수에 따라 물리적으로 지불된다는 말인가?

김보라: 그렇다. 이번에는 극장이 기술진을 제공하고 개런티도 지급하는 구조다. 개런티의 기준점이 어떻게 정해져있는지 궁금해서 한번 여쭤본 적이 있었다.

김채현: 그런 이야기는 툭 터놓고 이야기해야 앞으로 개선될 여지도 생긴다. 또 다른 개선사항이 있다면 무엇인가? 어찌보면 시기적으로 협의한 시간이 너무 짧지 않은지 생각 드는데 어떤가? 팸스가 가을시즌에 열리니 이후부터라면 몇 개월에 지나지 않을 거다. 그러나 최소한 1년 정도 기간을 두고 진행해야 하지 않나 싶다.

김재덕: 한국문화원에서 준비하고 소개했던 것이 지난해 10월, 극장과의 약속은 올해 5월이고, 어쨌든 작년 10월부터 굉장히 빠르게 움직여 일을 성사시킨 것으로 보인다.

김채현: 전례에 비해 빠지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장기적으로 본다면 기획 자체가 긴 시간을 두고 해야 하지 않겠나 싶다. 더 미룰 수 없이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김재덕: 기관에서 지원받을 때 시작점 자체를 앞쪽으로 하면 준비기간이 길어질 수 있겠다.

김채현: 한국의 정부 예산구조나 책정시기가 몰려있어 일을 장기적으로 하기엔 어려운 점이 없잖아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예산 타령을 할 것이 아니라 특수성을 고려해서 미리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문화원의 전문성을 더 살리는 또 다른 방안이 될 것이다. 이번 행사 참가가 비교적 만족스러운 듯하다. 다른 사항은 없나?

김보라: 공연을 마치고 하루 정도는 쉬고 싶은데 바로 다음날 귀국이다. 아니면 여유있게 현지에 도착하는 것도 좋겠다. 시간 여유가 없으면 시차적응도 문제가 돼서 좋은 컨디션으로 공연하기 어렵다. 확인해보니 셋업-리허설-공연이 하루씩 아니라 셋업과 리허설을 하루에, 다음날 공연하는 일정이다.

김채현: 고블린파티가 올초 재팬 소사이어티 초청으로 뉴욕에 갔을 때엔 일정이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임진호: 공연이 1월 4~5일이었는데 도착을 12월 31일에 했었다. 빨리 도착해서 시차적응도 완벽했고 여유롭게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김채현: 그런 여유가 있어야 문화예술인으로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대접받는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겠다.

최민선: 저희가 4명이 출연하는데 움직임은 주로 저희 둘이 한다. 한분은 촬영 퍼포먼스를 하신다. 다른 한분은 조그마한 역할처럼 보이나 작품 전체가 입력되어 있어 완벽하게 카운트해줘야 하는 중요한 역할인데 영상만 보시고 그 분은 오지 않았으면 한다는 메일을 받았다. 제가 그분이 왜 꼭 함께해야만 하는지를 엄청 길게 작성하여 답신했다. 그러고 나서 그 분이 그렇게 중요한 역할인지 몰랐다고 양해를 구하고서는 바로 같이 가는 것으로 수정됐다. 숙박이나 일비(日費)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인원 조율하는 것이 문화원 측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었을 거다.

김보라: 저희도 영상 기술스텝이 이번 공연에 함께 간다. 처음에는 의아해 하셨는데 저희가 꼭 필요하다고 하니 출연진이 아니라도 참여할 수 있었다.

김재덕: 음향과 영상 등 공연에 꼭 필요한 전문스텝에 대해서 간단히 말해버리면 극장의 인력으로 대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오해할 여지가 크다. 저희 공연은 음향이 오퍼를 하면서 음악을 같이 해야 하는 특수한 경우인데 더플레이스 기술진이 음향 맡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한 적 있다. 저희 작품의 특성을 자세히 설명했고 결국 함께 가게 됐다. 이번에 출연 8명, 악사 4명, 조명과 음향스텝 2명 등 총 14명이 영국으로 간다.

김채현: 작년에 이어 영국 한국문화원에서 진행하는데, 국내에서처럼 여러분이 평소 실력대로 공연한다면 현지에서도 좋은 반응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부탁드린다.

임진호: 해외공연을 갔을 때 경험할 여행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다. 저희에게 기억에 남는 공연은 아부다비 때다. 그것도 문화사업이어서 공연 자체는 말도 안됐다. 〈옛날 옛적에〉를 공연했었는데 여자들만 출입할 수 있는 중동 어느 대학교에 가서 히잡을 두른 채 눈만 보이는 관객 앞에서 공연하기도 했고, 모래사장 위 생경하고 조금은 열악했던 환경에서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모든 것들이 다 괜찮았다. 왜냐하면 공연 이외 날에 최고의 여행을 선물 받았기 때문이다. 사막투어뿐만 아니라 아부다비 페라리월드, 사막에서 쏟아지는 별 바라보기... 공연이 끝나면 아부다비에서 즐겨야할 코스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제공해주었다. 그래서 지금도 저희 3명이 모이면 최고의 공연으로 아부다비를 꼽는다. 사실 공연을 잘하고 못하고, 개런티를 잘 받고 등등이 중요한데 그 이상으로 여행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김채현: 그럼 공연 전에 언제 도착했나? 어디에서 초청한 것인가?

임진호: 게릴라성 행사 같은 공연 총 3회 있었는데 일주일 정도 스케줄 안에 공연과 여행 일정이 적절하게 배치되었다. 아부다비 한국문화원에서 마련한 코리아 아트 페스티벌로 한창 한류가 중동에 불고 있을 때 판소리, 비보이 팀과 함께 무용공연으로 한 꼭지 들어갔었다. 만족감은 역대 최고였다.

최영현: 해외진출의 판로를 마련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탄츠메세를 갔었고 전체적으로 만족했다. 이번처럼 문화원 주최 공연은 처음인데다 인원도 두 명뿐이고 기술적인 부분도 별도로 체크할 부분이 없기 때문에 제가 적극적으로 말씀드리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여행이 좋기는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다른 낯선 공간에서 나를 되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저 같은 경우는 일을 하러 가는 거지 경험을 쌓고자 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예술가라 말하지만 문화상품으로서 어떻게 소비되는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가치는 아까 선생님도 말씀하셨듯이 관객이 주는 거고 다시 관객에게 되돌아가는 것이므로, 내가 어떻기 때문에 받아야한다는 것보다는 내가 보여주었을 때 관객이 부여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김보라: 저는 해외공연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무례하게도 취소한 적 있다. 저희도 너무 가보고 싶고 또 단체에 힘도 받아서 오고 싶었다. 그러나 해외 어떤 페스티벌은 초청에 대해서만 강조하지 작품을 구현하는 기술적 측면에 관해 소홀히 했다. 작품을 잘 보여드리기 위해서는 무대기술과의 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아트페스티벌의 경우 물을 설치해야하는 작품 〈소무〉를 초청해주었으나 저희 작품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지, 셋업과 공연이 당일에 이뤄지게 했다. 물을 설치할 수 없는 스케줄이라 부득이 〈꼬리언어학〉으로 변경했다. 이 작품도 9명 출연에 사람 같은 세트가 5개이므로 극장 규모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데, 상황을 제대로 체크하지 못하고 소극장에서 강행하도록 했다. 극장을 바꿔달라 요청했지만 계약서를 쓰지 않은 상황에서 티켓을 판매했고 모든 티켓이 매진되었으므로 극장변경은 힘들다는 답변이었다. 순서가 한참 잘못된 것 같아서 ‘아티스트로서 공연할 수 없음’을 이야기했다. 그 부분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페스티벌 측은 저희가 원하는 만큼의 개런티를 보장했으나 작품을 구현할 수 없는 무대환경을 주어주고 아티스트와 협의하지 않는 페스티벌에는 갈 수 없었다. 서로가 주고받는 소통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되새긴 경험이었다.

김채현: 오늘 기탄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해외 한국문화원들이 구태를 벗어난다는 느낌도 있다. ‘구태를 벗어날 수 있도록’ 문화현장 인력이 성장한 점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더플레이스에서 역량을 펼쳐주길 바란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앞으로 더 많은 한국 단체들이 런던을 중심으로 활약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긴 시간 감사하다.

2019. 06.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