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해외춤기행_ 슬로베니아의 한국 & 유럽 춤
이목을 긴장시키는 슬로베니아 현대무용, 열정을 만나다
곽아람_SIDance 국제교류팀장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이름만 들어도 마음 설레는 이들 나라들 사이에 아직은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나라, 슬로베니아가 있다. 동화 속에나 등장할만한 햇빛 찬란한 호수 가운데 오롯이 빛나는 성, 그리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교회의 종소리. 그러나 이런 신비롭고 광질 좋은 슬로베니아 겨울 속에 자연만 빛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속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춤이 있고 사람들이 있었다.

 




 이번 슬로베니아 방문은 슬로베니아 최초의 현대무용단 엥크납(En-knap)의 감독인 안무가 이츠톡 코박(Iztok Kovaç)과 시댄스 이종호 감독의 인연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몇 년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현대무용단 LDP와 협업을 한 인연을 지니고 있어서인지 한국의 젊은 안무가들에 대해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시댄스는 한국 안무가들의 동유럽 진출을 위해 여러 방법을 모색하던 중 작년 9월 오스트리아 밀슈타트(Millstatt)에서 한국 젊은 안무가들의 무대를 마련했고 이 공연을 보러왔던 이츠톡이 아트프로젝트보라를 초청, 이번 공연이 성사된 것이다.





 아트프로젝트보라는 2월 19일과 20일 양일에 걸쳐 류블랴나(Ljubljana)에 위치한 슈판스키 보르치 문화센터(Španski Borci Cultural Centre)와 노보 메스토(Novo Mesto)의 안톤 포드벱스첵 극장(Anton Podbevšek Teater)에 <혼잣말>과 〈Thank you〉를 무대에 올렸다.
 이번 공연은 현재 독일에서 활동 중인 안무가 김무(KIM Moo)의 작품을 포함, 트리플 빌로 구성되었으며 슈판스키 보르치의 연중 기획 프로그램 UVOZ-IZVOZ(Import-Export, 주목할만한 외국 신진 안무가들의 무대)와 Plesna Vesna (Dancing Vesna라는 뜻. Aerowaves의 협력 프로그램으로 유럽 신진 안무가의 무대)의 일환으로 소개되었다.
 다른 유럽 도시들에 비해 젊은 연령대가 비교적 많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객석에는 머리 희끗한 노장년층 관객들이 주를 이루었고, 마침 류블랴나 공연이 있던 날은 슬로베니아 현대무용 플랫폼인 지바니카(GIBANICA, Moving Cake)와 기간이 겹쳐 플랫폼을 방문한 다수의 해외 프리젠터들이 한국팀 공연을 보러 오기도 했다.





 이미 국제무대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혼잣말>, 그리고 우리식 인사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를 판타지와 아름다운 듀엣으로 엮어낸 〈Thank you〉가 해외 프리젠터들 사이에서 화두로 올랐다. 노보 메스토는 류블랴나에서 약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평화로운 소도시로 이번 공연은 안톤 포드벱스첵 극장이 추진한 첫 해외 초청 공연이라고 했다. 그 동안 국내 연극 중심의 전통적 스타일을 고수해오던 극장은 최근 리노베이션을 통해 극장 분위기를 바꾸며 프로그래밍에 있어서도 다소 변화를 꾀하고 있었는데, 역시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혼잣말> 마지막 부분에서 무용수가 선 채로 오줌을 흘리게 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극장의 책임자를 이츠톡이 끝까지 설득해야 했기 때문. 관객들은 진지했고 그들의 박수 소리 역시 진중했다. 이츠톡 코박은 여전히 현대무용을 낯설어하는 관객들에게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친절하고 성의 있게 이번 프로그램에 대한 자신의 초청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러한 시도와 도전을 이어갈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츠톡 코박의 엥크납이 운영하는 슈판스키 보르치 극장은 5년 단위로 대행 기관/단체를 선정한다고 한다. 엥크납이 극장 운영을 맡기 전에 극장은 아동 청소년을 위한 연극 극장으로 주로 활용되었고 엥크납 이후 무용 전용극장으로 변모했다. 얼마 전 그 동안의 극장 운영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향후 5년에 대한 연장계약을 했다니, 슬로베니아 무용계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
 극장은 수익을 고려한 뮤지컬이나 이벤트 행사에 대관을 주는 것을 제외한 대부분을 무용 프로그램으로 채우고 있다. 엥크납의 자체 제작 공연, 아동 청소년 관객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공연, 그리고 해외 신진 및 유명 안무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과 Aerowaves 협력 프로그램 등으로 공간은 연중 쉴 틈이 없다. 엥크납은 오는 3월 중순 초연무대를 앞두고 한창 현대무용의 역사에 대한 교육무용 작품을 제작 중이었는데 이츠톡 역시 이 안무 작업과 연습 그리고 초청팀 관리 등으로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잠시 틈을 내 슬로베니아 현대무용 플랫폼 지바니카에 대해 살펴보면, 지바니카는 올해로 7회째를 맞이한 비엔날레 행사로 지난 2003년 시작된 이래 꾸준히 슬로베니아 현대무용의 발전과 국제교류를 위한 가교 역할을 해왔다. 정부의 예산 감소로 공연의 수나 행사의 규모가 점차 줄어들고 있기는 하나 총 4일간 빡빡하게 진행되는 플랫폼에는 스페인, 프랑스, 이스라엘,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등 인접국의 프리젠터들과 슬로베니아 무용인들이 함께 모여 슬로베니아 무용에 대해 종일 생각하고 고민한다.
 우리 자체의 공연 준비로 슬로베니아 무용 공연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많이 갖지 못했지만 중간 중간 콘퍼런스와 네트워킹 행사, 폐막식에서 만난 몇몇 안무가들과의 대화는 흥미로웠고 그들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시켰다.
 동유럽 무용계는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 알려진 분량이 적은 건 사실이다. 최근 각종 예술마켓에서 자신들의 색깔과 목소리를 내며 아시아와의 교류에 큰 관심을 보이는 동유럽 무용계. 시댄스는 지금까지 크로아티아, 체코, 폴란드, 헝가리 등의 무용가들을 선보였고 또 한국의 몇몇 무용단을 이들 나라에 소개하기도 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만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그들의 역사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것처럼 그들의 춤 역시 건네줄 말이 많을 것 같다. 현재 추진중인 2016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체코, 오스트리아, 세르비아 순회공연을 통해 우리 춤이 좀 더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만날 것을 기대한다.

2015. 03.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