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해외 에세이_ 카미야마 테이지로(神山貞次郞) 사진집 「I LOVE BUTOH !」 출간에 부쳐
I LOVE BUTOH !
남상길_재일문인. 카미야마 테이지로 사진집 편집책임자

 

 

부토 사진작가인 카미야마 테이지로가 1973년부터 40년 동안 찍어온 부토에 대한 사랑의 기록이 504페이지의 중후한 사진집으로서 발간되었다. 그는 2013년에 작고했다. 재일 문인인 남상길이 사진집 출간과 작가의 이모저모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주)



 2013년12월26일, 친구 집의 욕조에서 급서한 사진작가 카미야마 테이지로. 그가 1973년부터 40년 동안 찍어온 부토에 대한 사랑의 기록이 504페이지의 중후한 사진집으로서 발간되었다. 이 사진집의 제작에 종사한 사람으로서, 사적인 추억도 담아 약간의 감상을 적어보려 한다.
 1948년2월1일 일본 동북지방 이와테현 하나마키시에서 태어난 카미야마 테이지로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 부모님과 형제와 함께 산다. 유년 시절에는 화석 채집에 열중하고 중학교 시절부터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고등학교 때 사진 서클에서 활동하면서 사진작가를 꿈꾼다. 고등학교 졸업 후 도쿄에 있는 사진전문학교에 들어간다. 그러나 학교보다는 1960-70년대에 걸친 일본의 사회변혁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보도사진가 시절을 거쳐 1973년 부토무용가 카사이 아키라를 만나면서 부토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이후 인생의 전부를 부토와 그 주변을 필름에 담는 일에 바친다. 오노 가즈오, 히지카타 다쓰미 등 부토의 창시자뿐만 아니라, 동세대와 젊은 후배세대 부토무용가 등 실로 많은 부토무용가들과 친분을 맺으면서 귀중한 사진들을 다수 남겼다.
 1993년 여름에는 서울 포스트극장에서 창무예술원이 주최한 기념비적 행사 <일본부토페스티벌>에도 전 기간 사진작가로 참가했으며 이를 계기로 한국과의 교류를 계속하면서 많은 친구를 얻었다. 그러나 2013년 말, 친구 집 욕실에서 급서했다. 향년 65세.
 그는 죽음 직전까지도 부토 사진을 계속 찍었고, 자신의 사진집 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의 사후 절친한 사이였던 남상길 등 친구들을 중심으로 카미야마 테이지로 사진집 제작위원회가 결성되었다. 남상길을 편집책임자로 하는 위원회는 「카미야마 테이지로 사진집 I Love BUTOH !」 제작에 착수, 1년 동안의 엄청난 작업 끝에 지난 2014년 12월 현대서관에서 총 504페이지에 이르는 진혼(鎭魂)의 대서(大書)로 간행하기에 이르렀다.




 「I LOVE BUTOH !」
 

 카미야마 테이지로, 그와 부토의 첫 만남이 된 것은 1973년 카사이 아키라가 이끄는 부토집단 천사관(天使館)의 <7개의 봉인> 공연이었습니다. 아마 나도 그 공연장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것이지만 정확한 기억은 없습니다. 그와 본격적으로 친해진 것은 1976년부터였을 것입니다. 서로가 천사관의 부토에 마음이 끌려 청춘의 귀중한 시간들을 공유하고, 제 아내 야마다 세츠코와도 함께 어울리면서 형제간 이상의 마음 통하는 친구로, 동지로 37년간 계속 빈번하게 교우를 거듭해 왔던 것입니다. 1993년 여름 창무예술원 주최 부토 페스티벌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 전체의 사진기록을 담당하였습니다. 이번 사진집에는 오노 가즈오/요시토 부자를 비롯해 그 페스티벌 때의 사진도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카미야마 테이지로의 사진은 실로 어둠과 빛이 아로새겨진 무대 바로 그 자체입니다. 유명무명을 막론하고, 그의 셔터 찬스에 예리하게 베인 ‘부토=신체표현’의 극한 표출의 아름다움은 평면의 미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진정한 깊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춤추는 신체와 그 주인인 부토무용가의 영혼의 진동마저도 울려나옵니다.
 카미야마 테이지로의 상냥하면서도 동시에 비길 데 없는 강인한 감성을 지금 저는 정말로 마음 깊은 곳에서 한없이 찬양하고 싶습니다.





 2014년 한 해는 카미야마 테이지로가 남긴 사진들과의 끝없는 ‘격투’의 날들이었습니다. 도쿄 시내 미나미아사가야에 있는 그의 작은 방에서 거의 모든 인화된 사진, 낡은 네거티브 필름, PC 하드디스크 등을 우리 집에 날라온 이후의 작업은, 전혀 앞날이 보이지 않는, 글자 그대로 ‘마구 닥치는대로’의 작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엄청난 분량의 네거티브 필름 스캐닝은 이상하리만치 절망과 환희가 어지럽게 교차하는 기묘한 수라장과 다름없었습니다.
 네거티브 필름의 케이스에는 ‘오노’, ‘카사이’, ‘세츠코’, ‘히로코’ 와 같이 간단하게 이름만 적혀있을 뿐, 공연 일시나 장소, 타이틀 등의 데이터는 전혀 기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작업을 위해 먼저 우리 집 엡손 중급 스캐너로(이것도 살 때 카미야마가 골라주었던 것입니다) 고해상도 스캔을 해서 PC에 출력해서 보았습니다. 제가 본 공연도 좀 있었고 좋은 컷들도 많이 있었지만 먼지가 심하게 부착되어 더러워진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것도 카미야마에게서 전수받은 포토샵 기술을 사용해 화상조절을 시도했지만, 그 작업시간이 예상을 훨씬 넘어서, 그 때는 정말 지나쳐 가버리는 시간들을 많이 원망했습니다! 그래도 가끔 발굴되는, 정말로 떨림을 느끼게 하는 보물 같은 사진들이 있었기에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작업을 할 때는 항상 뒤에서 카미야마가 지켜보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가 언제나 제게 에너지를 불어넣어 준 것이지요.





 사진 한 장 한 장의 주인공들에게 공연 날짜, 장소, 제목 등을 물어보고 확인하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작업들은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야 어느 정도 앞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편집 작업의 큰 줄기가 정리되기 시작했고, 디자이너인 이하라 야스아키 군에게 사진의 게재순서를 정해서 데이터를 보냈습니다. 이때부터 사진집 완성을 향한 디자인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2월, 그의 1주기를 넘기기 전에 대망의 「카미야마 테이지로 사진집 I LOVE BUTHO !」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책을 펼쳐보시면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이 사진집은 정말 중후하고, 그리고 아름답습니다. 디자이너 이하라 야스아키 군의 혼신의 작업 결과입니다.
 생전에 카미야마에게 사진집 출판을 위해 출자해주신 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카사이 아키라의 1970년대 사진을 첫 머리에 크게 싣고, 오노 가즈오 선생님의 1980년 프랑스 낭시 연극축제 공연의 비장의 사진, 천사관과 마로 아카지(대낙타함 예술감독)의 이종격투기적인 <하야사스라히메> 공연사진을 우선 싣기로 하고, 그 나머지는 사진집 제작위원회가 순서와 크기 등을 결정했습니다.





 여기에 실린 부토무용가들의 사진들은 정말이지 한결같이 흥미롭습니다.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사진, 정신과 서로 격렬히 다투며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는 신체성을 지닌 사진, 이미 과거의 장(章)에 들어간 무용가들의 추억 어린 사진, 오래 전에 부토세계를 떠난 무용가들이 남긴 아스라한 사진... 또, 내게는 미지의 인물들인 젊은 부토무용가들의, 선인들보다 더욱 고행을 느끼게 하는 고난의 사진들… 편집 작업을 통해 쏟아져 내려온 부토의 지복(至福)의 물줄기는 갑자기 편집을 맡은 저에게는 친구를 잃은 큰 슬픔이었지만, 동시에 생각지도 않았던 인생의 행운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의 무용가, 평론가, 그리고 사진과 현대미술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이 사진집을 통해 부토와 행복한 만남을 가져 주신다면, 한국의 피를 받아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저로서, 또 부토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더 이상의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2015. 04.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