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금배섭 〈WORK〉
삶의 허상 들춘 씁쓰름한 패러디
김채현_춤비평가

금배섭의 〈WORK〉는 우선 시니컬하다. 2010년대 중반 이래 탈북민, 군중 심리 희생자, 불의에 저항하는 시위자, 유가족, 이주 여성 등 사회의 소수자에 주로 초점을 맞춰오던 금배섭의 작품 경향에서 시니컬한 면모가 없던 것은 아니나, 〈WORK〉는 시니컬한 정도가 두드러졌다. 〈워크〉에서 그가 시니컬한 메스를 들이댄 것은 일테면 삶의 허상이다(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2022년 12월 29-31일). 여기서 워크는 노동이나 일거리의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허상을 쫓고 허상을 지어내는 데 몰두하는 인간들의 행태, 즉 자신을 어떤 유형의 사람으로 내세우고 인정받으려는 의도적인 ‘작업’(작전이라 해도 무방하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워크〉에서 환기되는 것은 시니컬한 시각으로 간파해냄 직한 이런저런 욕망의 소행들이다.

〈워크〉는 댓 가지의 얼개로 구성되며, 얼개마다 제목이 모니터로 제시된다. 그 첫 얼개는 ‘꿈’이며, 마지막 얼개는 ‘햄릿 4막 7장’이다. 얼개들 사이에는 인과 관계가 없이 각기 독립된 장으로 설정되고, 얼개들을 관통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허상을 지어내는 인간 군상을 향한 시니컬한 시선이다.

자신의 허상을 허상이라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 자신의 허상이나 허영을 자신의 본성, 자신의 잠재력으로 착각하는 경우는 없는가. 심지어 그러한 착각은 지극히 인간적일 뿐 아니라 인간의 한계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런 경우들이 주변에 흔하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허상과 허영을 쫓는 행태들을 〈워크〉는 신랄하기보다는 유머러스한 필치로 그려낸다. 일상의 삶에서 허상과 절연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가능할지 자문해보면, 과연 누가 누구의 허상에 신랄할 수 있을지... 답은 불투명해 보인다. 이런 사안에 대해 판관(判官)처럼 정색해서 신랄해진다면 여간해서 설득력을 갖기 어려울 법하고, 익살과 재치가 오히려 더 힘을 발휘할 것이다. 〈워크〉에서 인용·차용된 장대 머리얹기, 기다란 고깔 쓰기, 무당 굿, 노래방 이미지, 오필리어 죽음의 순간처럼 여러 이미지들은 패러디의 효력으로 귀결되었고, 여기서 유머와 위트의 쓰임새를 다시 보게 된다. 얼핏 장난스러워 보일 〈워크〉는 장난을 훌쩍 넘어섰다.



금배섭 〈WORK〉 ⓒ김채현



〈워크〉의 네 번째 얼개는 ‘생년월일과 쌀과의 상관관계’로서 제목이 좀 길고 초현실주의적이다. 갈대빗자루를 소지하고서는 쌀이 가득 찬 와인 잔을 들고 등장한 출연자 김석주는 쌀을 입에 머금고선 씹다가 사방으로 흩뿌려내는 등으로 판을 시작하였다. 이에 더하여 쌀이 남은 와인 잔을 흔드는 품세는 그를 쌀을 갖고 점괘를 부르는 역할자의 모습으로 수용하도록 한다. 일테면 그는 남자 무당 박수이다. 점쟁이 역할을 겸한 박수는 갈대빗자루를 거꾸로 세워서 그것으로 얼굴을 가리고 앉았는데, 코믹하지마는 상식을 초월하는 어떤 권위의 소유자(일테면 점쟁이)로 그려진다. 잇달아 와인이 가득 찬 잔을 손가락에 끼고 바닥을 기어서 등장하는 여성 정한별이 박수 김석주 앞에서 엎드려 치성드리는 자세를 취한다. 이 여자가 박수 앞에다 잔을 놓아 바치자 박수의 점괘가 때맞춰 외쳐지는데, 어처구니없게도 그것은 ‘도멘 프리에르 로크 본 로마네 크뤼 레 슈쇼’라고 하는 초고가의 와인 이름이었다.


한국에서 전래의 점(占)치기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것이 개개인의 장래 운세를 점치는 사주 점치기일 것이다. 이 네 번째 얼개는 생년월일(사주)과 쌀점을 연결시키는 기발한 발상을 바탕으로 점보기를 패러디한 대목으로 풀이된다. 점쟁이는 빗자루 갈기 사이를 수시로 비집고서는 점을 보러온 상대방을 간보는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점 보는 사람의 간절함은 이미 고가의 와인으로 노출된 터였다. 이를 간파한 얼치기 박수는 그 고가의 와인 이름을 서슴없이 점괘로 외치는 기지를 마침내 발휘한 셈이다. 그만한 기지를 가졌다면 그는 수완좋은 권위자일 터여서 점을 치려고 오는 이가 마음에 들어 할 허상을 신빙성 있게 짜내어 기민하게 그 허영을 자극하고 허상을 다져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 초고가의 와인 또한 어떤 허영의 상징으로 부각된다. 이 현장에서 복채로 초고가의 와인이 바쳐지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 박수의 쌀점은 복채의 수준에 따라 또 다른 점괘를 꾀바르게 지어냈을 성싶다. 블랙코미디에서 만날 법한 풍경이다.



금배섭 〈WORK〉 ⓒ김채현



프리에르 로크 레 슈쇼 와인의 이력이 모니터의 텍스트와 록밴드의 노래로 반복해서 제시되고 울려퍼지는 속에서 박수와 여자는 바닥을 헤맨다. 그럴 동안 두 사람 뒤에서 다른 두 출연자가 마치 백댄서인 양으로 어떤 무엇을 끌어당기는 시늉을 율동감 있게 지속한다. 그것은 점쟁이의 흥정을 훈수하는 것 또는 허상을 찾고 끌어당기는 행동으로 풀이될 만하다. 여자가 박수의 잔에다 자기 와인을 부어서 나눠주고 박수가 그것을 마시는 장면에서 점쟁이-점 보는 이 사이의 점괘 ‘작업’은 일단 허상과 허영 다지기라는 목적을 이룬 듯하다.

하지만 잇따르는 행동들과 노랫말 텍스트에서부터 급반전이 일어난다. 달빛이 구름에 가려질까, 동쪽에서 폭풍우 일어나네, 비바람 맞으며 초라해지라 같은 노래 가사들과 더불어 네 사람의 출연자는 허상 찾기의 실체를 고백하는 분위기를 그려나갔다. 또 바닥 전체의 매트를 네 사람이 힘모아 끌어당겨 뒤집었다가 다시 펼치는 데서는 허상의 생을 뒤엎어 날려보내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제 새 판을 열어 노래방에 온 느낌으로 그들은 ‘모두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가 반복되는 가사와 함께 모두들 허세를 털어버리고 오순도순 모여 앉아 노래하며 양팔을 너울질하는 모양들이다. 여기서 허상과는 거리를 두고 삶을 달관하는 듯한 단편적인 추임새들이 넋두리처럼 그들의 육성으로 덧붙여진다.



금배섭 〈WORK〉 ⓒ김채현



다섯 번째 얼개는 ‘햄릿 4막 7장’이다. 알다시피, 덴마크 왕국에서 햄릿이 어머니 왕비(거트루드)와 실랑이를 하던 중에 이를 엿듣던 재상을 실수로 죽이는 일이 있었다. 재상의 딸 오필리어는 햄릿의 연인이었으나 연한 성품의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것은 물론 그의 장례가 제대로 치러지지 않은 탓으로 실성하여 곧 죽음(사실상 자결에 가까운)에 이르게 된다. 〈햄릿〉 4막 7장에서 오필리어의 죽음을 재상의 아들에게 전하는 왕비의 대사를 〈워크〉는 모니터에서 텍스트로 제시한다. 오필리어가 나무에서 떨어져 물에 빠져 서서히 죽어가는 순간을 과거에 서양의 여러 화가들이 그림으로 재현했을 만큼(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존 에버렛 밀레이의 그림이다) 이 부분 왕비의 대사는 인상적인 대목으로 여겨지곤 하였다.

이 얼개에서 커다란 투명 유리 수반이 앞쪽에 위치하고 수반에 비친 이미지들은 모니터로 중계되며, 오필리어 역의 정한별은 몽당 치마(핑크색)-저고리(흰색)를 착용하였다. 머리를 숙여 수반을 들여다보며 점차 그 속으로 빠져드는 오필리어를 세 사람의 남자들이 몸을 너울질하면서 그 순간을 주시한다. 모니터 뒤에는 손잡이가 부착되어 있다. 남자들은 그 모니터를 들고서 무대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여자 머리 위로 가져온다. 그럴 동안 수반에 비친 오필리어의 얼굴은 계속 클로즈업된다.



금배섭 〈WORK〉 ⓒ김채현



뒤로 물러나는 오필리어를 따라 모니터는 계속 이동하고 마침내 여자의 등 위로 모니터가 얹히면 수반의 물속 이미지만 비춰진다. 그러는 사이에 두 남자는 쓰러져 움쩍도 않는다. 그 중 한 남자 등 위로 오필리어가 자기 몸을 포개면서 기어 이동한 후 모니터는 바닥에 놓이게 된다. 모니터를 조종하던 머지막 남자마저 쓰러지며, 이후 오필리어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선 자세로 몸을 허우적대며 일렁이다가 서서히 가라앉으며 모니터에는 그렇게 사라지는 오필리어의 그림자 실루엣이 비춰진다. 이 얼개 전체에서 음향으로는 똑, 똑 규칙적으로 두드리는 피아노 건반 소리와 중저음의 첼로 음이 나지막하게 들렸다.

여기서 세 남자는 어떤 역할자로 설정되었을까. 먼저, 오필리어의 죽음에 책임이 있을 덴마크의 왕(햄릿의 어머니와 결혼한 그 왕), 햄릿, 그리고 자기 아버지와 오빠 가운데 세 사람을 꼽을 수 있겠으나 안무자는 어떤 암시도 제공하지 않는다. 오필리어가 마지막 즈음에 쓰러진 남자 등 위로 기어서 지나간 그 남자가 햄릿인지 아니면 자기 혈육인지도 판별하기가 사실상 애매하다. 혹은 세 남자가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로 해석될 여지도 상상될 것 같다. 아무튼 세 남자의 실체는 궁금증을 남긴다. 더욱이 그들은 오늘의 우리 주변 남자들인가. 이런 점들에서 더 다듬을 필요가 있은 것 같다. 여하튼 분명한 것은 오필리어가 가련한 죽음을 맞이한 점이며, 〈워크〉는 사랑 또한 허상에 치우치는 데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금배섭 〈WORK〉 ⓒ김채현



〈워크〉의 막을 여는 첫 얼개는 ‘꿈’이었다. 여기서 한 줄기 빛이 들어오며 어느 남자가 가부좌로 앉았고 배경막 같은 천들이 너울거리는 어두운 상황이 한참 후 암전된다. 이로써 관객은 신기루 또는 백일몽 같은 삶의 실상을 간명하게 암시받으며 차후 〈워크〉에서 전개될 줄기를 예감하게 된다.





금배섭 〈WORK〉 ⓒ김채현



이어지는 두 번째 얼개인 ‘추락’에서는 유별나게도 5미터 가량 길이의 장대가 핵심 소도구로 쓰인다. 장대 위에는 8개의 스테인리스 공기 그릇이 배열된다. 약간 일렁이는 그런 장대를 치켜들거나 낮춰 들어 애써 균형을 맞추려 누군가가 조용히 곡예를 하면 두 사내가 등장하여 공기총으로 그릇을 맞추려 시도하나 실패에 그친다. 이어 두 사람(정한별과 금배섭)이 등장하여 장대를 이어받아 머리에 이고 양 끝에 서서 서로 보조를 맞추면서 무대를 배회한다. 느린 동작의 그들은 한 발을 들어 외발로 서고, 몸통을 바닥으로 낮추었다 일어나고, 상의를 벗어 바지춤에 쑤셔넣고, 하의를 벗어 내의 속에 쑤셔넣고 하는 동작들을 할 동안 장대 위 공기 그릇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들이다. 아슬아슬하달 수밖에 없는 장면들 끝에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등지고 돌아서서 자기 방향을 고집하며 드잡이한다. 정한별이 이탈하자 한쪽 끝에서 장대를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는 금배섭도 그릇들이 땡그랑 쨍그랑 툭툭 떨어지는 데는 속수무책이 되고 끝내 그는 허망한 장대에 걸려든 초라한 몰골로 상당한 인상을 남긴다. 이 얼개는 장대가 그야말로 허상의 곡예 수단인 것을 들추어 보이는데 출연자들이 들인 공력에 비해 추락의 의미는 단순해 보였다.







금배섭 〈WORK〉 ⓒ김채현



세 번째 얼개 ‘대화’는 소통 부재를 그렸다. 여기서는 기지를 발휘해서 만든 고깔이 한 역할을 한다. 하얀 시트지를 말아 즉석에서 만든 긴 고깔이 두 사람의 머리에 씌워진다. 두리번대는 두 사람은 호흡을 맞추려 하지만 여의치 않은 듯 서성대며, 급기야 두 사람에게서 고깔은 마침내 얼굴 전체를 가려버린다. 그리하여 고깔은 각자에게서 엉뚱하게도 세상을 내다 보는 창이 되어 둘 간의 소통은 더 요원해진다. 때맞춰 들리는 움브레의 노래(낮 운동장에 그어놓은 금이 땅거미 내려앉아 보이지 않네... 애써 지울 필요는 없어... 오늘 밤 우리 사이 아무 것도 없어... 애써 돌아가 지울 필요는 없어...)를 몇 소절 따라 함께 부를 적에 고깔은 종이 확성기가 된다. 두 사람은 바닥에 늘어져 죽치고 앉은 상태에서 애써 함께 몇 소절 부르지만 내내 심드렁해서 소통에 대한 기대치는 그다지 높지 않은 눈치들이다.



금배섭 〈WORK〉 ⓒ김채현



〈워크〉 소개문에서 금배섭은 말한다. 우리는 한평생 “나란 존재를 타인에게 인정받고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고자 애쓴다.”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의지에서 마음은 외부로부터 주입된 관념(극히 부분적인 사례로서 고객이 듣기 좋은 점괘도 그에 속한다)을 자기 것으로 삼겠지만, 그런 줄 모른 채 그런 마음을 나의 본성이라 믿는 자기 최면을 〈워크〉는 도마에 올렸다. 믿음의 허구성 내지 인위적 의도성, 그리고 자신의 허상을 지어내는 ‘작업’을 멈추고 이제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런 자신을 찾아보라는 안무자의 진단은 흥미로우며 평자가 보기엔 도가(道家) 류의 관점과 흡사한 바가 있다.

그리고, 80분간 진행된 〈워크〉에는 장대, 공기 그릇, 빗자루, 쌀, 고깔 같은 물체·기물들이 오브제로 등장한다. 그것들이 공연의 의미 조성을 도우면서 그 자체로 지각되는 순간들도 있다. 각 오브제들이 보여지는 얼마 동안에는 뜬금없이 생소하고 낯설다가도 관객의 시선은 그것을 수긍하게 된다. 그동안 금배섭의 여러 공연들이 현장에서 인상을 불러일으켰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관객으로 하여금 이처럼 사물들을 향해 지각을 곤두세우도록 한 점이었다. 이번에도 그의 퍼포먼스 식의 공연 전개는 생생한 지각이 공연 현장의 의미 생성과 상호작용하는 드문 순간을 보여주었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3. 2.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