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해외춤기행_ 파리 방문기
인생은, 만남이 전부이다
김윤정_재독 안무가

 나에게 파리는 늘 특별하다. 아주 오래전 나보다 먼저 유학을 했던 동생이 (지금은 고인이 된) 파리에서 공부하던 시절 그 축축하고 힘겨운 겨울을 함께 보내며 느꼈던 시간들이 늘 아련하게 기억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리는 유럽에서 특히 자주 찾는 도시 중 하나인데 내가 살고 있는 뒤셀도르프에서 기차나 자동차로 네 시간 반 거리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동안 내 작품들의 무대를 맡아준 건축가 김나영씨가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로운 작품을 위한 나의 첫 스탭 미팅은 늘 파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미대를 졸업하고 파리 건축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소르본에서 예술철학으로 석사를 마치고 리용대학에서 철학 박사 과정까지 한 김나영씨는 워낙 무대미술을 하고 싶어 파리에 왔었다고 한다. 내가 컨셉트의 초안을 잡을 때 하고 싶은 말, 표현하고 싶은 요점을 늘 집요하게 끌어 내주고 상상력을 자극하게 해주며 논리가 부족한 내가 마구 쏟아내는 느낌들을 좀 더 명확하게 이끌어주는 나의 작업 동반자이다.
 그녀는 아무리 어려운 컨셉트나 논리도 어린 아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자신도 알 수 있다고 늘 강조한다. 그게 진짜 철학이란다. 그런데 신기한건 프랑스의 대표적인 현대 철학가 질 들뤼즈를 연구한 나영씨는 프랑스 친구들로 부터 프랑스 사람인 자신들도 이해하기 힘든 들뤼즈를 넌 어찌 그리 이해를 쉽게 하냐는 말을 했었단다. 어떤 어려운 철학적 이론도 늘 실제의 이 시대 상황의 예를 들어서 해주는 김나영씨의 설명을 들으면 아주 쉽게 다가온다. 그녀 자랑을 더하면 카프카의 반 모뉴먼트적 공간의 분석으로 천개의 상자를 만들어낸 졸업 논문과 작품으로 사실 거의 유례없던 최고 점수를 받아 센세이tu널한 졸업자가 되기도 했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파리는 자주 찾는 도시이지만 이번 파리 방문은 참 특별한 시간들이었다. 동시 다발적인 이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오는 국민일보 문화부 장지영 기자님과 이선아씨가 출연한다는 뤽 페통 안무의 <라이트 버드>도 관람하고 서울에서 급 날라 오게 된 제자 이경도 만나고 또 헌집을 사서 리노베이션을 끝내고 정식 민박 호텔을 부업으로 시작한 김나영씨와 내 신작 무대에 관한 미팅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라이트 버드>에 출연하는 또 다른 한국 무용수 박유라씨 가족이 공연도 볼겸 파리여행겸 오셨다는데 김나영씨 집에 손님으로 묵고 계셨다.
 일단 우린 모두 각자 다른 곳으로부터 출발해 <라이트 버드> 공연장인 샤이오 극장 앞에서 만났다. 워낙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어 온 장기자님의 첫인사 참 비현실적인 만남이라며 우리 모두 반가운 재회를 했다. 낮엔 건축 사무실에서 일하는 김나영씨도 어렵게 시간을 내서 와주었고 우리 모두는 함께 공연을 관람하며 파리의 첫날을 맞았다.





 다음날은 이선아씨의 남편 저널리스트 토마스 한 씨의 추천과 도움으로 그 유명 하다는 파리 최고의 3대쇼 중 하나인 리도쇼를 관람하게 되었다. 이 역사 깊은 리도쇼는 뉴욕 Cederlake 컨템포러리발레단의 안무가였던 베노스완 포퍼와 태양의 서커스 예술감독이었던 프랑코 드래곤이 새로 참여해서 기존의 리도쇼를 새롭게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화려함과 뉴 테크놀러지의 무대인 3D 영상이 어우러진 환상의 쇼였다.
 재미있는 우연은 쇼 중에 진짜 백조 두 마리가 등장한다. 먹이를 찾아 댄서 뒤를 쫒아 다니는 백조 두 마리는 유머스런 한 장면이었다. 무대 아래에서 다양한 장치들이 매번 올라와 쉴 새 없이 변하는 무대 장치가 기막혔다. 어느 순간 호수와 분수가 솟아오르는 분수쇼가 되고 거대한 샹들리에가 올라와 그 위에서 춤을 추는 댄서들 그리고 심지어 아이스 링크가 올라오더니 화려한 피겨 스케이팅이 펼쳐진다. 그것도 기막힌 테크닉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듀엣이다. 그야말로 버라이어티 쇼로서 눈요기로는 최고인 듯 싶었다.
 이런 쇼를 보려면 그런 쇼를 본다는 마음가짐으로 봐야한다. 나는 화려한 불꽃 놀이를 볼 때마다 묘한 멜랑콜리한 슬픔이 밀려드는데 한때 화려하게 타오르고 져 버리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우리들 인생과 그 불꽃이 너무 닮아서 이기 때문이다. 이 리도쇼의 눈부신 무대와 화려함을 보며 그런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 너무나 화려해서 공허하고 슬프기까지 한...





 다음날은 제자 이경과 함께 그랑 팔라스에서 열리고 있는 장폴 고티에 전시를 보러갔다. 이경은 나에게 공연과 전시를 함께 보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또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제자다. 관람객이 너무 많아 공연 입장 하듯이 정해진 시간에 예매를 하고 들어가야 했다. 무작정 가서 몇 시간씩 기다리던 다른 전시에 비해 오히려 이 시스템이 편했다.
 장폴 고티에 하면 가슴이 삼각형 원추형으로 봉긋이 나온 입체적인 디자인으로 마돈나가 입고 나오던 의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 외에도 가수 보이 조지, 디페쉬 모드 , 뤽 베송 감독의 영화 <제 오원소>를 비롯해 안무가 장 갈로타, 프렐조카주 등 수많은 팝아티스트, 영화, 공연의상을 디자인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시간을 나눠서 입장을 했음에도 넘치는 관람객들이 마네킹 얼굴에 프로젝터 영상을 쏴서 눈을 깜박이며 심지어 말까지 하는 모델 마네킹들 앞에서 떠날 줄 몰랐다.
 프랑스의 대표적 다자이너인 만큼 이 전시는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공연 한편을 보는 듯 했다. 독특한 다자인의 드레스 하나하나가 무대 세트를 보는 듯 이야깃거리가 넘쳐났다. 영국의 보수적인 패션을 아방가르드 하게 변형시켜 디자인한 것 이라던지 어린 시절 할머니 옷장 속에서 코르셋 같은 속옷을 가지고 놀았다던 고티에가 속옷을 겉옷처럼 어떻게 매치해서 디자인을 했는지부터 시기별 테마별 그 고유의 독특함과 클래식의 반란이 기막히게 펼쳐진다. 고티에는 워낙 한 번도 제대로 된 의상 디자이너로서 공식적인 공부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 고티에의 넘치는 영감의 머릿속을 여행하고 나온듯한 기분이었다.





 마지막 밤은 드디어 온전하게 내 작품 컨셉트에 관해 진지한 토론을 나영씨와 밤을 새며 하게 되었다. 작품을 시작하기 이전에 컨셉트의 문자화가 나에겐 무지 중요한 첫 걸음이다. 형식적인 작품 개요로 지원 신청을 하고나면 다음은 실제 작업에 연결 되어야하는 제 2차 컨셉트가 정리되어야 한다. 늘 그래 왔던가 같다. 어차피 추상적인 움직임과 이미지로 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명확한 언어가 필요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 이유는 이런 것 같다.
 이미지가 먼저냐 단어가 먼저냐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지 또는 사물이 있고 이름이 붙여졌다고 생각 할 수 있지만 사실 그 반대인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우리 머릿속에 북두칠성 이라는 단어의 개념이 없다면 밤하늘의 별들은 그냥 별들이지 이 별자리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한 일화가 있다.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당시 원주민들에겐 그 커다란 배가 보이질 않았다고 한다. 배라는 개념의 말도 없었고 그런 큰 배를 본적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는 인식되질 않았던 것이다. 재미있는, 의미 있는 일화다.





 나영씨와 작품에 관한 토론과 밤샘으로 머릿속에 어느 정도 개념이 서니까 주변에 모든 이미지들이 영감을 주고 연결이 된다. 다음 나의 신작은 카프카의 심판을 스마트폰으로 풀어갈 것인데 지금도 컨셉트는 진화중이고 미친 듯한 질문과 답을 찾는 혼란스런 과정에서 명확하지 않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어떤 것!! 그 어떤 것이 심장을 뛰게 한다. 이런 게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구나 싶다.
 참 불과 며칠이지만 파리에서 벌어진 일들이 모두 의미가 있었던 만남의 장 이었다. 인생은 만남이 전부다.

2015. 06.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