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 〈순력, 바람의 기억〉
만만치 않은, 독창성과 보편성의 접점 찾기
장광열_춤비평가

박수 소리가, 컸다.

수십 개의 북과 무용수들의 합(合), 빠른 속도감과 큰 울림의 피날레 구성은 관객들의 환호를 끌어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80분 남짓한 공연 내내 궁중정재(선유락),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춤(강선영류와 한영숙류 태평무), 검무와 한량무, 장구춤, 열 두발 상모를 비롯한 민속춤 계열의 춤, 해녀와 말몰이꾼, 귤을 재배하는 여인들을 등장시킨 창작 춤, 그리고 북을 결합시킨 북춤이 무대를 수놓았다. 마치 발레 갈라 공연을 보는 듯 많은 소품들을 무대 위에 배열한 구성은, 관객들에게는 다양한 맛깔의 춤을 한 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춤의 성찬이었다.

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의 2023년 기획공연 〈순력, 바람의 기억〉(2월 25일, 제주문예회관대극장)은 2022년 12월에 초연된 〈순력〉의 업그레이드 무대였다.



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 〈순력, 바람의 기억〉 ⓒ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



작품 제작의 바탕이 된 보물 제652호로 지정된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는 1702년에 제주 목사로 부임한 이형상(李衡祥)이 제주목과 정의현, 대정현 등 세 고을을 순력(巡歷)한 상황을 제주 화공 김남길에게 41개 화폭에 그리게 하고, 그에 대한 서문을 덧붙여 수록한 화첩(畫帖)이다.

한라산 주변의 장대한 장관을 한껏 바라본다는 뜻을 담은 그림 ‘한라장촉’(漢拏壯矚), 국가에 공납하는 말을 최종 점검하는 모습을 담은 ‘공마봉진’(貢馬封進), 새 귤을 나라에 바치기 위한 작업광경을 그린 ‘감귤봉진’(柑橘封進), 용이 산다는 큰 연못 용연에서 뱃놀이를 즐기는 ‘병담범주’(屛潭泛舟), 성산 오름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는 광경 ‘성산관일’(城山觀日) 등이 담겨있다.

320년 전 탐라의 지명(地名), 옛 모습과 생활상 등 이모저모를 담아 놓은 화첩 ‘탐라순력도’를 무대로 끄집어 낸 제작진들의 선택은 탁월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공공 무용단의 과제처럼 되어 있는 향토적인 소재의 발굴에서, 제주도립무용단은 여타 지역 시 도립무용단과 비교했을 때 우위에 있다. ‘신화의 섬’에 걸맞게 제주도는 많은 스토리를 담은, 고유의 문화적 자산을 다수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 〈순력, 바람의 기억〉 ⓒ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



〈순력-바람의 기억〉에서 제작진들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에 6개의 장을 만들고 그 안에 ‘탐라순력도’에 담겨진 여러 개의 그림을 연계시켜 11개의 짧은 춤들을 배치했다. 이 같은 설정은 ‘탐라순력도’가 제주의 풍광을 배경으로 한 기록의 산물이란 점에서, ‘제주적인’ 독창성을 담보하는데 있어서는 안전하고 유용한 선택이었다.

작품의 연출 및 재구성을 맡은 김정학(전 경기도립무용단 예술감독)과 대본 강보람, 총감독 김혜림(제주도립무용단 예술감독 겸 안무자) 등 주요 제작진들은 ‘탐라순력도’의 이형상 목사 일행이 지금의 용연(龍淵)에서 뱃놀이 하는 장면을 담은 ‘병담범주’에는 궁중무용 ‘선유락’을, 산방오름의 산방굴(山房窟)에서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경관을 즐기는 장면을 그린 ‘산방배작’(山房盃酌)에는 선비들의 춤 ‘한량무’를 매칭시켰다.



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 〈순력, 바람의 기억〉 ⓒ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



“320년 전 제주 목사가 소개한 〈탐라순력도〉 속 제주의 풍경과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현대 화공의 눈으로 만나고, 화공이 느낀 감상을 고스란히 320년 후 지금의 공간에 현대적인 춤으로 풀어 놓는다“는 제작진들의 시도는 작품 곳곳에서 적지 않게 발견된다.

‘선유락’ 등장 장면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연계시키고, ‘한량무’는 선비들의 유유자적 춤 그 자체를 배열하던 초연 때와 달리 바위굴의 여신이었으나 인간의 삶이 궁금해 인간으로 환생했다 인간세상의 덧없음을 느끼고 바위로 되돌아 온 산방덕의 이야기를 연계시킨 것이나 산방굴 여인의 눈물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선비들의 춤과 그런 춤에 화답하는 여인의 구음검무를 배합시킨 시도 등이 그런 예들이다. 여기에 스토리 라인을 더하기 위해 제주 목사와 화공을 등장시켜 작품 사이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도록 설정했다.



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 〈순력, 바람의 기억〉 ⓒ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



소품 형태로 배열된 11개의 춤 중에서 평자에게 ‘제주적인’, 제주의 토속성을 담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 작품은 4개였다.

〈탐라순력도〉에 담긴 제주의 말을 훈련시키는 ‘산장구마’와 연계된 말몰이꾼들의 남성 군무, 귤을 재배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그린 ‘귤림봉진’과 연계된 여성 군무,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건너 뛰어 같은 바다에서 물질하는 1장 해녀들의 춤, 하늘에 올려 보내는 제주의 소리를 묘사한 6장 ‘제주 천고’ 장면 중에 배치된 북틀에 고정시킨 북의 한쪽 면만을 연타하는 고법의 사용이 그것이다.

음향효과가 가세한 비트 있는 음악과 맞물린 말몰이꾼들의 남성 군무는 역동적이고 빠른 템포의 춤이, 이전 장면의 소품을 활용한 구음 검무, 절제된 연희 동작과 조명과의 매칭으로 새롭게 해석된 열두 발 상모와 대비되면서 말의 고장, ‘제주적인’ 것을 구현한 춤으로 새로운 감흥을 전해주었다.



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 〈순력, 바람의 기억〉 ⓒ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



반면에 오케스트라 비트를 이용한 현대적인 감각이 가미된 ‘해녀춤’은 움직임 구성에서 더욱 다채롭게 변주되지 못한 점이, 귤 재배지 여인들의 군무는 놀이적인 요소의 부재와 의상과 음악 등에서 제주적인 것들이 결합되지 못한 점이 아쉬움을 남겼다.

프로그램에는 귤을 담는 모습을 그린 이 장면을 〈탐라순력도〉 중 ‘귤림풍악’과 연계시킨 것으로 되어있으나 ‘귤림풍악’이 풍악을 울리면서 노는 장면을 그린 것임을 감안하면, 감귤 봉안에 지친 여인들이 힘든 노동을 잊기 위해 놀고 즐기는 모습을 제주의 토속적인 음악을 곁들여 더욱 현실감 있게 구성했더라면 작품의 차별성도 더 살아날 수 있었을 것이다

‘제주 천고’에서도 제주도의 굿에 연물로 사용되는 독특한 북의 타법을 전면에 살려내고 다른 북과 연계시키는 것으로 구성되었더라면 여타 무용단에서 공연되는 북과 춤의 결합 형태와는 다른 작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 〈순력, 바람의 기억〉 ⓒ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



제주도립무용단의 제작진들은 앞서 언급한 대로 〈탐라순력도〉를 기반으로 한 〈순력〉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음악, 무대, 내용 등 여러 부문의 보완을 통해 “제주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해 현대적인 무대양식과 스토리텔링을 강화해 창작 무용극으로의 재탄생”을 표방했다.

이를 위해 제작진들은 무대 전면 좌우에‘ 탐라순력도’의 화첩을 작품의 내용에 따라 변화시키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로 제주목사와 현대 화공을 등장시켰다. 그러나 화자의 잦은 등장과 비슷한 동선, 유사한 움직임 구성은 오히려 춤 그 자체를 감상하는데 걸림돌이 되었고 산만함을 더했다.

귤 수확 장면과 장구춤 공연 때부터 등장한 무대 한 가운데 천장에 매달린 금빛과 은빛으로 변화되는 타원형의 무대미술 역시 작품과 동떨어진 이미지로 오히려 공연의 몰입을 방해하고 소품 자체의 작품성도 훼손시켰다.

초연 작품을 기반으로 한 재공연 작업은 통상 레퍼토리 화를 염두에 두고 진행되는 만큼 초연 때보다 더욱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이 병행되기 마련이다. 초연을 보지 못한 평자의 입장에서는 작품 전편을 비교 분석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작업에서 제작진들이 표방한 ‘제주의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한 창작 무용극’에 대한 성과는 가시적으로 확연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여러 부문에서 제작진들이 애쓴 흔적은 있었지만, 예술적 완성도에서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는 말이다.

‘기대치’에 대한 기준은 공연을 위한 제작 예산이 확보되어 있고, 다수의 훈련된 무용수들이 상주하고 있고, 전문 극장과 기술 스태프, 행정지원 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공립 직업무용단의 공연이란 잣대를 들이댄 결과에 근거한다. 따라서 무용 공연을 자주 접하지 않은 일반 관객들의 관람 기준과는 분명 다를 수 있다.

〈순력-바람의 기억〉에서 가장 큰 아쉬움은 ‘제주다운’ 것의 부족이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11개의 소품들 중 적지 않은 작품들이 이미 기존 육지의 공공 무용단에서 자주 보여지고 있는 작품들이었다.

〈탐라순력도〉에 담긴 화첩에 구체적인 춤과 연주 장면이 묘사되어 있지 않더라도 그 내용을 유추해 음악, 춤, 의상, 소품, 무대미술 등에서 ‘제주적인’ 것들을 활용해 제주의 고유한 맛과 색채를 담은 소품들로 담아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았다.

〈탐라순력도〉란 제주의 보물이 독창성과 보편성을 갖는, 춤이 중심이 된 예술작품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그 산물(産物)의 차별성이 우선 담보되어야 한다. 그 옛날 탐라를 담은 화첩을 토대로 한 이 작품이 육지에서 공연되었을 때 더 나아가 세계 춤 시장에 진출했을 때 제주의 독창적인 문화, 제주도민들의 삶의 정서를 담은 제주도립무용단의 차별적인 예술작품으로 온전히 평가받는다면, 제주도립무용단의 고정 레퍼토리로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춤 상품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무용 작품이 무대로 올라오는 순간 그것은 극장예술의 산물이 된다. 춤 그 자체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음악, 조명, 무대미술 등 시청각적인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작 스태프들의 세밀한 협업은 그래서 그 만큼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일반 관객들은 그저 다채로운 춤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할지 모르지만 공공 예술단체로서 제주도립무용단의 존재 이유가 완성도 높은 작품을 통해 관객들과 지역민들의 예술적 심미안을 높여주는 공공성의 발현을 전제로 한다면, 이 작품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곧 〈순력, 탐라의 기억〉은 제주도립무용단의 차별화 된 레퍼토리로 재구축될 필요가 있다. 작품의 성격은 무용극보다는 제주의 독창적인 악가무가 시각적인 이미지와 세련되게 맞물린 컨템퍼러리댄스가 더 나을 수 있다.

제주의 토속음악과 무속, 새로운 춤 구성, 극장예술의 여러 요소를 살려내는 음악, 조명, 의상, 무대미술 등에서의 보완작업이 더해진다면, 이 작품은 제주를 넘어 대한민국의 경쟁력 있는 춤 상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순력, 바람의 기억〉에는 제작 스태프의 명단에 안무자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연출 및 재구성, 총감독이란 직함만 보인다. 초연 때도 그렇고 이번 공연에도 기존 작품의 재배열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다음 재공연 때는 책임 안무자를 선임해서, 안무자가 중심이 되어 ‘제주적인’ 것들을 새롭게 보완하는 작업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여타 무용단에서 공연하고 있는 춤의 짜깁기 대신, 〈탐라순력도〉에 담긴 것들을 새롭게 창작해 보완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탐라순력도〉의 ‘화북성조(禾北城操)’는 화북성에 있는 성정군(城丁軍)의 훈련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를 포졸들의 훈련 모습을 춤으로 구성한 ‘훈령무’와 연계시키고, 노인들을 모시고 양로연(養老宴)을 베푼 장면을 담은 ‘제주양로(濟州養老)’는 잔치 장면으로 재구성, 제주도의 다양한 들을 거리와 볼거리들을 펼쳐낼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제주도립무용단의 상주 극장인 제주문화예술회관이 소속된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의 책임자로 공연예술 판에서 오랫동안 경력을 다진 전문가가 영입되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제주도립무용단의 전담 기획요원과 홍보인력을 뽑는 등 전문 예술단체로서의 체제를 갖추는 행보를 보였다.

이번 공연이 초연 후 불과 2개월 만에 이루어진 점을 감안하면, 새로운 것들을 세밀하게 보완하는 데는 그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향후 〈탐라순력도〉를 토대로 한 작품의 레퍼토리 화 지속 작업은 그래서 더욱 기대된다.

평자는 오랫동안 제주도립무용단의 공연을 적지 않게 보아왔던 터라 예전에 비해 무용수들의 기량이나 표현력의 성장은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작품’ 안에서 ‘앙상블을 통한 예술성 구축’이란 점에서 보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순서를 따라가고 춤 동작을 비슷하게 맞추어 하는 것을 넘어 춤의 질에서의 앙상블이 이루어질 때 전문 무용수로서의 프로페셔널리즘도 더욱 발현될 수 있다. 컨템퍼러리 댄스 작업에서는 개개 무용수들의 창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장광열

​춤비평가.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1995년 무용예술을 중심으로 한 국제교류를 위해 설립한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ipap) 대표, 한국춤정책연구소장, 서울과 제주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숙명여대 무용과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2023. 3.
사진제공_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