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해외춤기행_ 이탈리아에서 만난 춤과 미술
차진엽_콜렉티브에이 대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리는 "Fabbrica Europa"는 1994년 Maurizia Settembri와 Andre Morte Teres에 의해 시작된 페스티벌로서, 무용뿐 아니라 연극, 음악 등 다양한 장르가 선보여지는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현대 공연 예술축제이다.
 이탈리아는 공연이나 여행 차 여러 번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베니스, 밀라노, 피렌체, 로마 등 방문한 도시들 전부 예술로 가득 차 볼거리와 즐길거리, 먹을거리가 가득 차있는 흥미롭고 낭만적이며 생각만 해도 너무나 설레는 곳이다. 물론 바가지요금과 무더위도 기억이 난다.
 사실 2008년 한국에 귀국을 하고 7년 동안 유럽을 한 번도 못 갔다 하면 주변에서 깜짝 놀라고는 하는데, 한국에서의 일들이 빡빡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느새 7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린 것이다. 귀국하려는 계획이 전혀 없이 잠시 일 때문에 들렸던 한국 일정이 계속 길어지다 보니 지금까지 돌아가지 못해 자동귀국이 된 사연이 있다.





 이번 "Fabbrica Europa 2015"은 5월 7일에 시작하여 7월 3일까지 모두 40여 작품이 공연되었는데 그 중 3개의 한국 작품과 한-이 협업작품인 〈Mousing〉이 초청되었다.
 참가작은 이희문 컴퍼니의 〈ZAP〉, 국립 현대무용단(안무 안애순)의 〈불쌍〉, 손혜정의 〈궁지-딜레마〉, 그리고 내가 출연한 루이자 코르테시(Luisa Cortesi)의 〈Mousing〉이다. 이희문 컴퍼니의 〈ZAP〉과 국립현대무용단의 〈불쌍〉은 파브리카 유로파의 예술 감독인 마우지리아 세템브리가 작년 서울 아트마켓에서 이 공연들을 보고 초청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우싱은 지난해 국립현대무용단 사업 중 하나인 ‘해외 안무가초청공연’에 이탈리아 안무가인 루이자 코르테시가 초청되어 그녀의 솔로 작품에 적합한 여성무용수를 찾고 있던 중, 안애순 단장님의 추천으로 만나게 되었다.
 1살 차이 밖에 나지 않은 루이자와 나는 자라온 배경은 다르지만, 어찌 보면 현재 비슷한 환경과 위치에 있기에 많은 부분 닮아 있었으며, 서로의 생각과 고민에서도 공통점이 많았다. 우리는 서로의 작업에 흥미와 관심을 갖게 되고 자연스럽게 고민을 나누고 수다를 떠는 친구가 될 수 있었으며 작업 과정도 아주 즐겁게 진행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나의 움직임과 생각들을 높이 존중해 주었으며, 그로 인해 한동안 내 자신과 작품에 대한 정체된 마음과 슬럼프에 빠져 있던 내 자신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과 영향을 주었다. 루이자의 움직임과 나의 움직임이 서로 합쳐져 마우싱이란 작품을 만들어 냈고, 나는 참으로 오랫만에 안무가란 짐을 벗고 순전히 무용수로서 완전하게 무대에 설 수 있었다.





 당시 파브리카 유로파의 예술감독인 마우리지아가 서울 아트마켓 참가를 하기 위해 서울에 와 있었고 평소 루이자의 작업을 좋아했던 그녀는 이 작품에 많은 관심을 갖고서 마우싱을 보러 왔다. 첫날(초연 : 2014. 9. 26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공연을 본 마우지리아는 극찬을 하며 작품과 무용수인 나에게 큰 관심과 호감을 나타냈으며, 그리고는 3일 내내 공연을 보러왔다. 마지막 공연 후 그녀는 나에게 와서 내년에 이탈리아에 꼭 초청하고 싶다고 의향을 내 비쳤는데 그가 약속을 지켜 이번에 초청을 받아 공연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잘하고 싶은 욕심은 아쉽게도 40도를 웃도는 계속되는 폭염과 시차 때문에 컨디션은 난조였고, 에어컨과 환풍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오래된 극장 Teatro Cantiere Florida에서의 공연은 쉽지 않았다. 철저하게 준비하지 못한 내 자신을 탓하며 개인적으로 조금은 아쉽게 공연이 끝났지만, 앞으로 남은 4주간 유럽에서 휴가를 보낼 생각에 아쉬움은 금새 사라져 버렸다.
 이튿날 국립현대무용단의 〈불쌍〉 공연을 보러갔는데, 해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작품이 어떻게 그들에게 받아들여질지 공연을 보는 내내 커튼콜 때 관객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해졌다. 관객들은 굉장히 진지하게 작품에 집중하며 감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 커튼콜 때의 반응은 뜨거웠고 이태리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나 해외 관객들에게 한국 현대무용의 높은 수준을 강렬하게 각인시킨 것 같다.
 "14명의 무용수와 안무가의 커튼콜이 끝나고 무대의 불이 다시 꺼졌을 때도 박수와 환호는 멈추지 않았다. 350석을 꽉 채운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Bravi'를 외쳤다. 피렌체 남쪽 피티 궁전 인근에 자리잡은 골도니 극장은 문화의 충돌과 변형을 다룬 한국의 현대무용 작품에 환호했다" -중앙일보 이지영기자-



 Antony Gormley 〈HUMAN〉

 이번 이태리 일정 중 가장 예상치 않았던 큰 수확은 Antony Gormley(안토니 곰리)의 전시를 우연찮게 본 것이었다. 아니, 체험이라 하는 것이 맞겠다.
 인간의 신체를 매개로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시작되어 인간의 삶을 탐구하는 곰리의 작업에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그의 작품을 단편으로 접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전시를 본 적은 없었기에 이번 전시를 통해 받은 감동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이상이었다. 특히, 나는 한동안 프로시니엄 무대에 대한 답답함을 느껴 무대 밖 공간, 새로운 공간을 탐색하고자 하는 열망이 컸던 터라 그의 작업은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피렌체의 Forte Di Belvedere에서 열린 이번 전시의 제목은 〈Human〉으로 자신의 몸을 실측하여 여러 다양한 동작으로 표현되었는데, 곰리 자신의 행동 자체가 미술 오브제로 다양하게 변주되는 것이라 하겠다.
 그의 작품에는 생명이 있다. 조각상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살아서 생각하고 느끼고, 어떤 감정의 상태에 놓여있는 듯 보이는데, 그는 조각자체로 완결되는 전통적 조각 개념에서 벗어나 그것이 놓여있는 공간,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람자들에게 다양한 감각적 체험을 제공한다.
 그의 작품은 인간적이다. 무질서하게 서로 뒤엉켜 널부러져 있는 조각들, 넓은 공간 한 복판에 혼자 웅크리고 있는 모습, 난간에 혼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는 조각상, 무릎을 꿇고 반성하고 있는 듯한 조각상, 벽에 머리를 기대 의지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 인생의 허망함이 느껴진다.
 이들을 보면 상실감에 멍하니 빠져있거나 무기력하게 넋을 놓고 있는 모습이 현재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듯 해 쓸쓸한 마음이 들어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어찌보면 인체와는 가장 반대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철사, 못, 쇠붙이 등으로 인체를 조각하지만, 그의 작품은 대단히 인간적이며 인간과 우주와의 관계를 표현하는 듯하다. 곰리의 작업은 동양철학, 명상 등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보는 이에게도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그것은 각자가 사적인 공간으로 빠져들어 생각에 잠기게 해주는 최면 같은 것이었다. 절로 숙연해진다.
 르네상스 시대에 조각상들이 인물의 신체를 강조했었다면 그의 작품은 공간으로서의 신체, 신체 탐구, 인간의 본질과 내면의 탐구, 시공간과 세계를 탐험하게 해준다.
 이번 전시는 100여점이 넘는 작품들이 전시되었는데 그 수많은 작품들이 전부 개별적으로 동떨어져 있으며 그들은 홀로인 듯 외로웠다. 그 외로움이 주변 공간을 엄습하여 보는 이를 홀로 있고프게 만든다. 그리고는 그가 만든 시공간에서 우리들은 그냥 그대로 멈춰버리는 듯하다. 엄청난 경관을 지닌 Forte di Belvedere에서 펼쳐진 그의 작품들을 바라보며 무언지 모르지만 마음에 있는 무언가가 바닥으로 넓게 깔리며 납작해졌다.
 우주 아래 인간은 한낱 먼지 같은 존재인데 참으로 이 먼지들이 유난스럽다...

"이성과 논리의 발달로 치달은 현대 문명의 미술은 사람들 간의 친밀한 소통을 잃어버리고 있다."
"새 문명, 새 시대의 미술은 이러한 신체 소통을 제시해야 한다고 본다."      -안토니 곰리-
 

 그의 말에 깊게 생각에 빠져본다.

2015. 09.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