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해외춤기행_ 카자흐스탄(1)
고려인들의 삶의 애환이 서린 곳, 송파산대놀이 공연
이병옥_춤비평가

 금년(2015년)은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뜻 깊은 해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를 해외동포에게도 알리고 우리 민족들이 함께하는 무대를 마련하기 위한 기획행사를 추진하던 중 고려인들이 거주하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시 국립고려극장(극장장: 이 류보피 아쁘구스토브나) 초청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49호 송파산대놀이 보존회(회장 이병옥)의 현지공연을 하게 되었다.
 한편 현지 고려인에게는 연해주에 살던 우리 동포들이 영문도 모르게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지 78주년을 기념하면서 80주년을 대비한 예비행사이기도 했었다. 뜻깊은 행사이기에 문화재청의 후원과 (사)송파민속보존회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는데 처음 가보는 중앙아시아지역이기에 회원 모두 설렘으로 들뜬 마음과 해외 국립극장에서 펼치는 공연이라 긴장감도 컸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왕복하는 카즈흐스탄 알마티행을 지난 8월11일 18시10분발로 6시간 45분을 타고 현지시간 9시 55분(시차는 3시간 늦음) 알마티국제공항에 내려 홀리데이 인 알마티 호텔로 가서 일행은 여정을 풀었다.




 알마티의 국립고려극장의 내력과 공연

 다음날 일행 14명(송파산대놀이 보존회원 공연단)은 호텔조식을 마치고 공연준비물을 모두 챙겨 가지고 버스로 국립고려극장을 방문하였다. 극장구조와 규모 무대 상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국립극장이라 시설이 좋고 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작은 200석 규모의 소극장이라 내심 안심도 했지만 시설이 말끔하지 못해 안타까움도 있었다. 그래도 카자흐스탄의 소수민족인 고려인들이 삶의 애환과 민족예술을 구현해 나온 점에서는 가슴 뭉클한 동질감을 깊이 느꼈다. 부극장장님의 영접으로 극장내부와 분장실, 등퇴장로 객석규모 등을 꼼꼼히 살피고 탈춤의 등퇴장 방식과 진행방법을 논의하고 오전 관광을 나섰다.





 원래는 6박 7일 정도로 여행계획을 세우고 3번 정도로 몇 곳에서 공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광복절에 통영에서 대한민국 탈춤제에 참여해야 하는 일정이 잡히는 바람에 3박5일 일정으로 축소되었다. 일정을 빠듯하게 돌리는 수밖에 없어 오전 관광을 다녀와서 오후 총연습을 하고 저녁 본 공연을 하기로 하였다.





 잠시 고려극장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1932년 9월 9일 블라디보스톡 원동변강 집행 위원회의 결정에 의하여 고려인 구락부 소인예술단들을 기초로 하여 이동고려극장이 창설됐다. 그 당시 이 극장은 세계에서 유일한 해외 고려극장이었다. 1937년 9월 강제 이주된 이후 극장 일부분은 크즐오르다에 자리 잡고 다른 부분은 타스켄트에 자리 잡게 됐다. 고려인들의 문화적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순회극단”이라고 칭했다. 1942년 1월 13일. 카자흐 소비에트 인민위원회의 결정에 의하여 딸듸꾸르간 주 고려음악극장이라고 했다. 1959년 5월 30일. 카자흐 사회주의공화국 내각의 결정에 의해 고려극장은 다시 크즐오르다로 자리를 옮겼다. 1968년에 극장은 알마티 시로 이주했으며, 1989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에 순회공연을 다녀왔다. 1990년 서울의 국립극장과 자매결연을 맺었으며, 2012년 고려극장 창립 80주년을 맞이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80년 기간에 고려극장 무대에서 250여건의 연극과 악가무와 콘서트 프로그램이 상연됐고, 500만 명 이상의 관객들이 구경했다. 극장 곡목 중에는 고대 및 한국 연극들과 카자흐스탄 및 러시아와 외국 극작가들의 희곡들이 있다. 모든 연극들은 악가무의 민족예술 장르들을 포함하여 한국어로 공연되는 한편 러시아어로 동시통역하였다. 현재는 극단, 사물노리 팀, 민족무용단과 성악단이 조직되어 있다. 고려극장은 카자흐스탄 다민족 다문화의 떼어낼 수 없는 부분으로 되면서 우리 민족의 특성, 얼과 언어를 보존하며 이곳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의 문화를 카작인들에게 전파하고 있었다.






 카자흐스탄 악기박물관

 

 고려극장을 나와 관광으로 먼저 찾아간 곳은 판필로브 공원(Panfilov Park)내에 국립 카자흐스탄 민속악기박물관(Kazakhstan Museum of Folk Musical Instruments)이었다. 카자흐스탄의 전통악기는 물론 옛 러시아의 민속 악기류를 보관하고 있으며, 심지어 한국악기도 한 코너를 장식하고 있었다. 또한 상고시대 암각화를 비롯하여 민속무용에 관한 사진이 전시되어 있으며 고대 의상을 입은 사람들의 민속춤 공연을 매주 볼 수 있다고 했다.
 전통적인 러시아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처음에는 정부 관리의 관사로 사용되었으나 1980년 악기박물관으로 개관하였으며, 소장 악기는 60여종으로 1,000여점에 달한다.





 전시된 악기들은 현악기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타악기, 관악기 순으로 전시되었다. 현악기 중에 가장 눈에 띄면서 중요한 현악기 두 종류는 돔브라(Dombra)와 코비즈(Kobyz)이다. 이 둘은 두 줄로 된 현악기라는 점만 같고 쓰임새와 연주법이 전혀 다르다. 돔브라는 민간인이나 예인들이 손으로 연주하는 타현(打絃) 민속악기로 민간인들이 집안이나 집밖에서 노래 부르고 춤출 때 연주한다.
 그러나 코비즈는 샤먼들이 무속의식에서 사용하면서 활로 켜는 찰현(擦絃) 무속악기로 말털을 꼬아 만든 현을 말총 활로 켜는데 몽골의 마두금(Morin Huur, 馬頭琴), 중국의 얼후(二胡)와 우리의 해금(奚琴)과 같은 2현 악기이다.
 유목민인 카자흐 민족은 이슬람교도가 많지만 다양한 종교를 수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처럼 그 기저에는 샤머니즘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며 빚어온 갈등을 전통음악과 춤이 민족의 자각을 일깨우고 유지하는 중추역할을 하였다.
 그 중 돔브라(Dombra)는 가장 널리 사용되는 카자흐 민속악기이며, 카자흐 유목민족의 주거인 유르트(yurt, 유목민족들의 원통형 이동집으로 몽골 게르, 중국 파오와 같은 유형)에서 그들의 삶과 애환을 노래 부르며 연주하던 필수적인 악기이다.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녔으며, 지역에 따라 아주 다양하지만 서부와 동부의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서부지역 돔브라는 목이 가늘고 길며, 동부지역은 유목 이동에 편리한 넓고 짧은 목의 돔브라이다. 6-7세기에 부조한 암각화 모조상에도 돔브라와 춤추는 사람들의 바위그림도 있어 오랜 삶 속에 돔브라의 연주에 맞춰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살아온 카자흐 민족의 발자취를 알 수 있다.





 코비즈(Kobyz)는 고대 카자흐스탄 현악기로 두 개의 현을 말총으로 활을 켜며 하나의 통나무를 파내서 만든 공명통의 울림으로 특유한 소리가 난다. 전통적으로 코비즈는 신성한 악기로 여기며, 샤먼들과 박샤(bagsha, baksy: 영적인 주술과 치료사, 한국의 ‘박수’무당과 유사한 발음)가 소장하고 악령, 질병을 퇴치하는 의식에 쓰이는 무속악기이다.





 샨코비즈(shanqobyz, 구금(口琴, 영어로는 유대인의 하프라는 뜻의 'jew's harp', 입에 물고 손으로 타는 악기)는 최근 연해주 우리민족 발해 유적지에서도 발굴된 바도 있으며, 북방 유목민들에 널리 분포된 악기이다. 손가락만 한 크기의 편자형으로 테두리가 있고 그 안에 기다란 철판을 단 형태다. 입에 물고 가볍게 철판의 현을 튕겨 소리를 내는데 관악기와 현악기가 결합된 특이한 악기다.





 그밖에도 다양한 악기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카작인들의 유목 생활에서 악기의 쓰임새들이 여러 방면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무당들의 주술과 치료의식 악기(금속으로 싸인 kylkobyz, dangyra, asatayak), 양치기들의 삶의 악기(sybyzgy, sherter, kossyrnai, kamys), 사냥할 때 쓰는 악기(bugyshak, dauylpaz, shyndaul), 군사들의 이동과 전쟁에 쓰는 악기(dudyga, shyn, muizsyrnai, kernei, uran, dabul), 아동과 청소년들이 여가에 노래 부르고 춤추는데 쓰는 악기(sazsymai, uskirik, tastauk, konyrau, shankobyz), 아마추어 음악가들과 젊은이들이 주로 쓰는 악기(dombra. 금속테 없는 Kylkobyz, zhetygen, kepshik), 전문적인 음악활동에 쓰는 악기(dombra, kylkobyz, sybyzgy) 등 다양한 목적 따라 악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악기박믈관의 마지막 코스는 연주실이었다. 연주도 하고 민속춤도 보여준다고 하나 이번에 춤을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오르테케(Orteke)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오르테케(Orteke)는 악사가 돔브라를 연주하면서 현을 치는 손에 끈을 오르테케 위에 말 인형과 연결하여 손을 흔들 때마다 말이 뛰게 하여 악기 연주와 더불어 유목민족들이 말을 달리는 형상을 볼거리로 제공하는 연주이다.






 판필로브 공원(Panfilov Park)과 러시아 정교회 성당 

 판필로브 공원에는 몇 가지 중요한 볼거리가 있다. 첫째는 앞서 소개한 카자흐스탄 악기박물관이며, 둘째는 이 공원 그 자체로 울창한 나무들과 꽃들로 조화된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면 정말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느낀 것 중의 하나가 도심의 가로수나 공원의 나무들을 절대로 다듬지 않는다는 것이다. 길가를 침범하여 걷기가 불편할 만큼 나뭇가지가 무성해도 자연그대로 놔둔다. 우리는 나무들을 깎아 놓은 밤톨마냥 다듬어 놓는데 비해 나무들이 야생성을 살려주고 있었다. 그래서 온통 밀림 같은 분위기가 카자흐 도시 특징이기도 하다.
 셋째 볼거리는 공원 중앙에 위치한 젠코브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다. 이 성당은 1904년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건축된 것으로 유명하다. 높이는 50m정도이고 1911년의 리히터 규모 10의 대지진에도 부서지지 않고 견딘 것으로 유명하다. 소비에트 시대에는 예배가 진행되지 않다가, 1995년 러시아 정교회로 반환된 후 1997년부터 다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마지막 볼거리는 2차 세계대전 순몰용사를 위한 꺼지지 않는 불꽃과 28인의 청동조각상이다. 이 28인의 유래는 1941년 2차 세계대전 당시, 모스크바 근교까지 독일군이 들어왔을 때 28인의 전사가 독일군 탱크 50대에 저항하여 필사로 저항했는데, 그 전사들의 사단이 알마티 시에서 창설되었고, 이반 판필로브 장군이 지휘를 했다고 하여 판필로브 공원이라 명명한 것이다.





 오전 관광일정을 마치고 점심식사는 카자흐스탄 음식을 먹게 되었는데 양고기 꼬치와 닭고기 등 온통 고기들이 푸짐하게 차려졌고 파스타와 빵과 사과를 약간 발효시켜 약간 달콤한 음료수가 나왔다. 일행들이 고기를 많이 남기자 가이드가 “왜 맛아 없냐?”고 물었다. 우리들은 맛있게 잘 먹었지만 양이 많아서 남겼다고 알렸다. 육식민족과 채식민족의 고기 양적인 차이가 있어 보였다.





 일행은 다시 고려극장으로 가서 저녁의 본 공연을 위한 리허설을 준비하였다. 고려인인 극장장을 면담하고 탈춤 공연연습에 들어갔다. 국가 무형문화재인 송파산대놀이를 12과장을 공연하는 데는 원래 4시간이 소요된다. 이번 공연은 1시간을 하기로 하여 과장 수를 줄이고 압축공연으로 하이라이트만을 보여주려고 이미 콘티를 짜서 준비해 왔었다. 다만 극장 규모와 등퇴장과 조명을 맞추고 악사음향을 조정하여 두 번에 걸친 리허설로 끝맺음하였다. 공연시각 7시가 가까워지자 관객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비록 200석 규모의 소극장이지만 고려인들과 카작인과 러시아인들이 자리를 꽉 메웠다. 탈춤은 탈을 쓰고 대사를 하는 관계로 의사전달이 쉽지 않은데다가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카작인들을 생각해서 거의 무언극에 가까운 마임과 탈춤만으로 구성하였다. 1세트에 옴중과 둘째상좌춤, 2세트에 샌님·미얄·포도부장마당, 3세트에 팔먹중·노장·취발이마당으로 필자가 세트마다 해설을 하고 통역을 하면서 진행하였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대사는 몰라도 마임으로 내용은 이해할 수 있는 줄거리이기 때문이다.





 공연의 성공 여부는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커튼콜에서의 뜨거운 박수와 로비에 나와서도 떠나지 않고 기념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었던 고려인들의 뜨거운 동포애와 민족문화의 자긍심, 카작인들의 열렬한 감사의 뜻이 출연자들의 피로를 녹이는 원천이 되었다.
 고려극장측 담당들과 감사의 인사를 나누고 일행은 만찬장으로 이동하여 늦은 저녁을 맛있게 먹으며 축배를 들었다.
 다음 호에는 카자흐스탄의 나머지 관광과 키작민족 전통문화와 민족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2015. 10.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