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해외춤기행_ 코리아유스발레단 남아프리카공화국 공연
경연과 공연을 통한 의미있는 국제교류
임현정_코리아발레아카데미 이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2년마다 열리는 국제발레콩쿠르에 대해 항상 궁금했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이 콩쿠르에서 자주 좋은 결과를 얻어온 데다가, 2년 전 코리아유스발레스타즈가 초청공연을 다녀왔다는 소식을 접한 후 그 나라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무엇보다 세계 5대 관광지인 케이프타운에서 열리는 이 축제에 코리아유스발레스타즈가 또다시 초청되어 참가한다니, 만사 제치고 일정에 합류하기로 했다.



 

 

 코리아유스발레단의 공연 및 콩쿠르 멤버, 지도자 등 30명은 2016년 2월20일 남아공으로 출발했으나, 나는 이틀 후인 22일에 출발하였다. 19시간의 비행과 2번의 환승을 하며 총 26시간의 긴 비행 끝에 만난 남아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쾌청하고 상쾌했다. 공항에는 콩쿠르 총 집행위원장인 더크 바덴호스트(Dirk Badenhorst)가 마중을 나와 있었고, 우리는 바로 콩쿠르장으로 향했다. 케이프타운 안에 있는 ‘ARTSCAPE’는 우리나라의 예술의전당과 같은 곳으로 CIVIC CENTER와 맞닿아 있었다. 콩쿠르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SOUTH AFRICAN INTERNATIONAL BALLET COMPETITION” 팸플릿이 눈에 띄어 쭉 훑어보았다.
 전 아메리칸 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 우루과이 국립발레단 디렉터 훌리오 보카(JULIO BOCCA), 더치 내셔널 주니어캄파니 발레마스터 캐롤라인 유라(CAROLINE IURA), 발렌티나 코즐로바 국제발레콩쿠르 파운딩디렉터 발렌티나 코즐로바(VALLETINA KOZLOVA), 전 파리오페라 예술감독 브리짓트 르페브르(BRIGITTE LEFEVRE), 취리히 댄스아카데미 디렉터 올리버 마츠(OLIVER MATZ), 코리아유스발레스타즈 디렉터 조미송(MI-SONG CHO), 케이프타운 시티발레 예술감독 엘리자베스 트리에갇트(ELIZABETH TRIEGAARDT)의 7명의 심사위원 소개와, 참가자들의 이름과 사진, 출신국가 등이 표기되어 있었다. 그리고 코리아유스발레스타즈 소개와 갈라공연 프로그램 및 김혜식 이사장님과 조미송 단장님의 인사말이 있었다. 팸플릿을 보는 순간 한국이, 청소년발레단의 비중이 이렇게 컸던가 하는 자부심과 함께 책임감도 느끼게 되었다.
 매우 더울 줄만 알았던 남아공은 그늘에서는 긴팔을 입어도 덥지 않았고 햇살은 눈부시게 밝은 아주 기분 좋은 날씨였다.
 2월 23일, 본격적으로 콩쿠르가 시작되었고 사우스 아프리카, 미국, 쿠바, 한국, 라트비아, 러시아, 이태리, 멕시코, 아제르바이젠 등 참가자들이 경연을 벌였다. 올해 참가인원이 다른 국제 콩쿠르보다는 적다는 느낌이었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작년부터 남아공 입국 시 미성년의 경우 보호자 확인철차와 공증제도가 강화되었는데, 아직 홍보가 덜 되어 많은 혼선을 빚고 있다고 한다. 남아공에 도착했는데 공증서류가 없어 돌아간 팀이 몇몇 있고, 서류절차가 까다로워 콩쿠르의 참가인원이 적어졌다고 한다. 코리아유스발레스타즈에서는 16명이 참가했다.
 콩쿠르는 클래식 바리에이션 2개와 컨템퍼러리 1개가 필요하며, 23일-클래식1, 24일-클래식2, 25일-컨템, 26일-세미파이널(클래식 자유), 27일-파이널(클래식 자유)로 총 5일 동안 경연이 치러졌다. 무대리허설까지 친다면 아주 힘든 콩쿠르임이 분명하였다. 장기간에 걸친 만큼 참가자들의 체력 및 하루하루의 상태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아주 섬세한 콩쿠르였다. 비록 힘은 들겠지만 계속 무대를 설 수 있어서 참가자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콩쿠르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수상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콩쿠르라고 들어왔는데, 올해는 공증서류 때문에 다른 나라 참가자가 적은 덕분인지 한국과 미국 학생들이 대거 수상했고, 특히 한국남학생들이 모두 외국의 발레단이나 발레학교에 전액장학생으로 선발되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수상내역은 다음과 같으며, 시니어의 오미리를 빼고는 모두 코리아유스발레스타즈 단원들이었다.

시니어: 클래식 은상-오미리(한예종3)
주니어 여성: 금상-박세린(홈스쿨), 은상-유현정(서울예고2), 동상-조채원(서울예고1)
주니어 남성: 은상-최병인(홈스쿨)
스콜라 여성: 동상-남궁민지(예원입학)/ 컨템 금상-강혜지 (장내중3)
스콜라 남성: 금상-천정민(서초중3), 은상-이승민(김해 봉명초등5)

최병인(남,17세) - 우루과이 국립발레단 입단 제의
천정민(남,15세) - 더치내셔널 주니어컴퍼니 선발
이명현(남,14세) - 취리히 발레아카데미 전액장학생 선발
이승민(남,12세) - 발렌티나 코즐로바 국제발레콩쿠르 게스트로 초대
 28일에는 Korea Youth Ballet Stars의 갈라공연, 그리고 수상자들과 게스트 스타들의 공연에 이어 참가자전원의 피날레로 콩쿠르의 대단원을 마쳤다. 공연을 마친 후 케이프타운의 워터 프론트라는 곳에서 식사 겸 뒤풀이를 하였다. 아프리카 원주민의 악기소리, 파란하늘과 이어진 선착장, 상인들과 수많은 배, 우리의 뒤풀이에 동반이라도 하듯이 날아드는 갈매기까지, 가히 그곳은 편안함과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29일, 아침 일찍 케이프타운의 관광에 나섰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 중의 하나인 채프만스 픽 드라이브웨이를 지나 산봉우리가 테이블처럼 평평하다는 테이블마운틴으로 올라갔을 때 그 동안의 피곤이 다 사라졌다. 이어서 어린단원들에게 인기 만점인 펭귄비치에서 펭귄들과 사진을 찍은 후 바로 공항으로 가서 요하네스버그로 이동하였다.
 요하네스버그로 도착하여 2시간 남짓 프리토리아로 향했다. 프리토리아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행정수도이며 가우텡주(州) 츠와니(Tshwane)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도시이다. 워낙 유명한 관광지 케이프타운에 묵다 와서 그런지 프리토리아는 수도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시골 같고 낯설었다. 프리토리아에서 2회의 코리아유스발레스타즈 초청공연 후 림포포에서 1회 공연과 사파리투어를 위하여 다시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다음날(3월 1일) 아침 일찍 도착한 프리토리아 Brooklyn Theater는 생각보다는 작지만 아주 예쁜 무대였다. 공연 타이틀은 코리아유스발레단 초청공연에 로잔 콩쿠르에서 수상한 Leroy Mokgtle 팀의 작품과 초청게스트 Adiarys Almeida와 Jonhal Fernandez 커플의 〈흑조〉와 〈돈키호테〉도 함께 공연했다. 외국 친구들과 교류하며 함께 무대에 서는 한국의 청소년들을 오히려 내가 부러워했던 그런 무대였다.

 

 

 

 3월 2일, 두 번째 공연 날 한국대사관에서 코리아유스발레단 모두를 점심에 초대해 주었다. 최연호 대사님 이하 전 직원이 나와 환대를 해주셔 큰 감사와 함께 한국대사관의 의미를 새삼 새기게 되었다.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맛있게 먹고 나서인지 이날 저녁공연은 유난히 더 힘차보였다. 대사관 직원 모두 공연에 와 주셨고, 공연을 마친 후 대사님께서 “우리 대사관에서 두 달 정도 해야 이룩할 수 있는 한국홍보를 우리 학생들이 한 번의 공연으로 이룩했다”며 칭찬해주실 때 모두 자긍심에 차서 신이 났다.
 3월 3일, 약 3시간가량 버스로 요하네스버그 북부의 엔타베니 동물보호구에 조성된 레전드골프&사파리리조트로 이동하였다. 이제 사파리투어와 1회 공연만이 남아 있었다. 콩쿠르와 공연이 끝나고 기간이 길어지자 다리와 허리가 아픈 학생들도 나오고, 힘든 일정은 이제 그만....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파리투어가 처음인 나에겐 사파리투어 차량을 타고 자연 속을 달리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하고 신기했다. 그 상쾌한 자연과 날씨는 지금도 잊지를 못하겠다. 이틀의 휴식동안, 호텔 측에선 “코리안의 밤”을 태마로 한 디너 파티를 준비해 주었다. 다음날에는 원주민마을에 초대되어 원주민 청소년들의 공연과 이 사파리에서 기르는 희귀종 백사자와 코뿔소도 볼 수 있었고, 사파리 디렉터를 통해 코뿔소이야기를 들었다. 건강과 암 치료에 코뿔소 코가 효능이 좋다고 하여 많은 코뿔소들이 무자비하게 죽어나가는데, 한국이 코뿔소 수입국 2위라고 한다. 참으로 민망한 순간이었다.
 고아가 된 어린 코뿔소들을 모아 이곳에서 양육한 뒤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하는데, 내일 우리단원들이 하는 〈Ballet in the Bush〉의 공연수익금이 코뿔소 살리기 기금으로 기부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청소년들이 한국에 돌아가서 코뿔소에 대해 알려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아! 한국의 청소년발레가 이렇게 보람 있는 일을 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다음 날, 몸이 아파서 움직이기도 힘들었던 단원들이 코뿔소를 위해 혼신을 다하는 모습에 가슴이 찡해오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단순히 발레 엘리트들의 단체라고만 여겼던, 지금까지와는 다른 측면에서 코리아유스발레스타즈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에 코리아유스발레스타즈를 초청한 더크 바덴호스트의 기획 취지는 특별했다. 한국의 청소년발레를 통해 문화예술이 관객들에게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고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준 것이다. 남아공에서는 개체 수가 점점 줄고 있는 코뿔소가 큰 이슈이다. 코뿔소의 뿔을 얻기 위해 자행되는 밀렵으로 어미 코뿔소가 죽게 되면 남은 새끼들은 기아와 탈수로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된다. 코뿔소의 개체 수 감소를 우려하는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하자 2013년 Pete Richardson과 Arrie Van Deventer가 남아공 최초로 ‘새끼 코뿔소 보호시설’(The Rhino Orphanage)을 만들어 코뿔소 보호캠페인을 시작했다. 이에 더크 바덴호스트가 2014년 캠페인을 위해 공연을 기획하고, 뉴욕에서 온 초청무용수가 새끼 코뿔소 앞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게재하며 캠페인에 힘을 더했다.
 더크는 올해 코리아유스발레단의 어린 두 단원 이승민(12세) 군과 이유빈(12세) 양이 새끼 코뿔소와 함께 찍은 사진의 의미를 되도록 많은 한국인들과 세계인들이 공유하기를 바란 것이다. 물론 코리아유스발레스타즈 남아공 공연수익은 전액 〈코뿔소 보호 시설〉에 기부되었다.

 

 

 

 공연이 끝난 후 사파리 차들이 우리를 별들의 들판으로 초대했고, 호텔 매니저가 하늘에서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을 하나하나 소개해 주었다. 별들을 보면서 이게 꿈속인가.... 했다. 이렇게 많은 별을 나는 아직 본적이 없었다.
 다음날 공항으로 출발, 여지없이 28시간이나 걸려 한국에 도착했다. 기후 탓이었을까? 밝고 친절한 사람들마저 좋았던 남아공... 어린 발레단 단원들이 많은 것을 느끼고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곳... 이런 문화교류야말로 말이 필요 없는 외교이자 애국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 여정이었다. 

2016. 04.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