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무형문화재 제도, 이대로 좋은가?
무형문화재 보유자, 무용계에 정말 필요한가?
장광열_<춤웹진> 편집장

 무용계에 한바탕 강풍이 몰아쳤다. 2월 1일 문화재청이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보유자로 양성옥(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62세)을 인정 예고하자 이 종목의 전수조교인 원로무용가 이현자(80세)가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등 반발하고, 36개 단체로 구성된 '태평무 보유자 인정예고에 대한 무용인 비상대책위원회'가 문화재청에 '태평무 보유자 인정예고'에 대한 이의신청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인정 예고된 보유자는 30일 동안 무용계 의견을 수렴해 문화재위원회가 최종 결정하도록 되어 있었고, 2002년 살풀이춤 보유자 선정 때도 탈락자의 이의제기로 인정 보류된 전례가 있어 그 귀추에 무용계의 눈길이 쏠렸었다.
 그러나 3월 11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문화재청의 무형문화재분과 회의에 양성옥 교수에 대한 태평무 보유자 인정 안건이 상정되지 않았고 결국 태평무(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보유자 인정 결정은 미뤄졌다.

 10년도 훨씬 전에 있었던 일이다. 새벽녘 따르릉 벨 소리에 잠이 덜 깬 상태로 받은 수화기 너머로 “뭐야 내가 전통춤을 망치고 있다고~~ XX---”.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작고하신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와 제97호 <살풀이춤>의 명예 보유자였던 이매방 선생님. 사태를 파악하고 자초지종을 설명드리긴 했지만 누군가로부터 잘못된 얘기만을 전해들은 것 같은 선생의 화를 당장에 잠재울 수는 없었다. 발단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발간하는 신문에 실린 “승무와 살풀이춤이 우리춤을 망치고 있다”는 제하의 내가 쓴 글 때문이었다.
 나는 <진주검무> <승전무> <동래학춤> 등 우리나라에는 빼어난 민속춤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해외공연 시 <승무>와 <살풀이춤> <태평무> 등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홀춤 만을 대부분 내보내고 있는 현실은 개선되어야한다고 적었다. 이들 세 종목의 춤들만이 대학의 무용과에서 교육되고, 콩쿠르 종목으로 지정되고, 강습회 등을 통해 보급되고 있는 우리나라 전통무용계의 현실, 지나치게 편중된 전통춤의 전승과 보급에 대한 현장의 문제점을 함께 지적한 것이었다.
 생전에 이매방 선생은 장단도 모르는 무용수들, 수련은 게을리 하면서 이수자 자격증만 탐을 내는 제자들을 늘 나무라셨다. 제대로 춤도 못 추면서 대학교수라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자신의 춤을 가르치는 제자들에 대해 분개했고, 춤 장단도 제대로 모르면서 돈만 밝히는 악사들에 대해서도 개탄했다.
 그런 선생도 ‘무형문화재 보유자’란 명예 앞에서는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비싼 작품비와 레슨비에, 이수자 선정의 잡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자신의 무복을 스스로 바느질해 입었던, 춤에 관한한 철저하리만치 수신(修身)한 이 예인은, 어쩌면 무형문화재란 기형적인 제도의 희생양인지도 모른다. 보유자ㆍ전수조교ㆍ이수자를 둘러싼 많은 일들이 한 예인의 고고한 예술 세계를 더럽혔다.

 



 

 2016년 새해부터 한국의 무용계는 무형문화재보유자(인간문화재) 지정 문제로 연일 시끄러웠다. 양성옥 교수의 보유자 인정 예고에 대해 원로무용가 이현자(80세)는 “오래전 국립극장에까지 가서 양성옥 교수를 내가 이수를 시켰는데 뒤집어져서 어이가 없다. 스승을 놔두고 제자가 (보유자가) 되는 꼴이다”라고 공식적으로 반발하며 1인 시위까지 벌였고 “도제식으로 전수되는 무형문화재의 속성상 공모 절차로 인간문화재를 지정한다는 건 무리가 있다” “무슨 콩쿠르도 아니고 예의와 도를 갖춰야 하는 예술계에 공모로 인간문화재를 지정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무용계 현장의 발언도 언론 매체에 보도되었다.
 <태평무> 명예보유자였던 강선영 선생이 작고하고 1월 24일 영결식을 치룬지 1주일 만에 일어난 보유자 지정 문제로 강선영태평무보존회 역시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사태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지난해 말 무용계의 관심은 온통 11월 30일과 12월 3일과 7일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중요무형문화재 예능 보유자 심사에 쏠렸었다. <승무>는 15년, <살풀이춤>은 25년, <태평무>는 27년 만에 문화재청이 세 분야의 보유자를 한꺼번에 심사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논란이 된 <태평무> 외에 다른 종목에서는 보유자를 선정하지 못했다.
 2014년 12월 26일 자로 개정된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및 보유자 인정 등의 조사· 심의에 관한 규정」에 따라 2015년부터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되려는 사람의 실기능력을 평가할 때는, 그동안 분야별로 구분하여 적용하던 조사지표 대신 종목별로 세분화· 구체화한 조사지표를 적용하게 되었다. 변경된 조사지표에는 각 종목을 실연하는 데 필요한 대표적인 핵심 기ㆍ예능이 포함되었으며, 지도력과 교수능력 등도 지표로 반영되었다. 문화재청은 새로운 기준에 의거해 보유자 후보를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승무>와 <살풀이춤><태평무>를 배우려는 무용가들은 물밀 듯 밀려들고 극장에서도 자주 공연되고 있으나,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한 다른 전통춤들의 경우는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 무용계의 현실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춤들은 물론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한 춤들 중에서도 빼어난 전통춤들은 의외로 많다. 훌륭한 우리춤의 자산들이 단지 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전승되지 못하고 자주 공연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그만큼 한국 춤을 왜소하게 만든다. 한정된 전통춤 학습은 또 옛것을 토대로 한 새로운 창조 작업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다른 좋은 전통춤들도 많아

 한국 무용계에서 전통 춤의 위세는 만만치 않다. 기능보유자들 밑에는 대학교수들뿐만 아니라 쟁쟁한 중견무용가들, 교수를 꿈꾸는 젊은 무용가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교수 임용 때나 레슨비 책정 시 무형문화재 이수자 자격증은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문제는 정작 이들 중 혹독한 수련을 통해 보유자들의 춤을 제대로 전승받는 무용가들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경력 쌓기를 위한 이름 걸어놓기, 돈과 수고가 많이 드는 창작공연을 대체하기 위한 전통춤 공연의 폭주는 이미 심심찮게 목격되고 있다.
 인기종목에 구매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현상은 이수자들의 남발을 초래했고 급기야 자격미달과 질적 저하를 동반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보유자들을 포함한 이수자들의 공연이 우리 전통춤의 참맛을 오롯이 전해주기 보다는 외형적으로 세를 과시하려는 분위기가 점점 더 팽배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편식은 결코 건강에 이롭지 못하다. 선생이 특정한 춤만을 가르치게 되면 학생들은 다른 좋은 우리춤들을 배울 기회를 잃게 된다. 절름발이 춤학습은 또 세계무대에서 한국춤의 경쟁력을 그만큼 약화시킨다.
 우리나라의 4년제 대학 무용과에 해당하는 중국의 북경무용학원 학생들은 54개의 소수민족춤을 배우고 졸업한다. 기껏해야 전공교수가 이수한 전통춤만을 배우고 졸업하는 우리나라 학생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승부는 자명하다. 다양한 춤학습은 뛰어난 기량의 무용수, 창조적인 안무가를 길러내기 위한 필수 코스이기 때문이다.
 무형문화재 제도는 사장될지도 모르는 가치 있는 춤들을 보존하기 위해 처음 시행되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사장 위험성이 없어진 제도의 철폐 요구는 지속적으로 있어 왔다. 무형문화재의 보유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한 이유는 명예와 함께 돈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고액의 작품비와 레슨비는 물론이고 문화재청으로부터 매달 전승 지원비도 꼬박꼬박 받는다.
 현행 무형문화재 보유자 제도는 득보다 실이 많다. 스승과 제자는 적이 되고 동문들은 경쟁과 시샘의 대상이 된다. 예술은 사라지고 자격증만 난무한다. 금전과 연관된 부정적인 여파도 무시하지 못한다.
 오랫동안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보유자 심사에 참가했던 작고한 원로 평론가 모 선생은 병상에서 “〈xxx〉 종목의 경우 자료조사 과정에서 춤의 원형이 남아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로비에 의해 문화재로 지정해주고 보유자를 지정해준 것이 나의 춤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운 일이었다”라고 고백했다.
 무형문화재 제도는 춤 부문의 경우 개인 종목과 단체 종목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 유명무실한 무용 부문의 무형문화재 보유자 제도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 제도가 없어지더라도 춤의 맥이 끊어질 위험은 사라졌다. 더구나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춤들이 지정 당시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느냐는 데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더 이상 무용계는 제도에 얽매여 단지 지정된 3개의 춤 문화유산에만 지나치게 매달려 다른 훌륭한 전통춤의 유산들을 방치해 두는 과오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 이 글의 일부는 서울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문화+서울> 3월호에 게재되었음 

2016. 04.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