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한국무용제전 30년에 붙여
한국적 컨템포러리댄스의 플랫폼이 될 수 있을까?
장광열_춤비평가

 《한국무용제전》이 30회를 맞았다.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로 전공이 삼분화 된 기형적인 대학 무용과 운용체계에서 《한국무용제전》은 한국 창작춤 발표의 장이자 한국무용 전공자들의 동료의식과 결속의 장으로 그 기능을 수행해오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Global Dance Festival’이란 명칭을 병기하면서 아시아를 중심으로 춤 국제교류도 조금씩 확대하고 있다.
 4월 23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있었던 제30회 한국무용제전(4월 13-23일) 페막공연은 그 같은 변모하고 있는 제전의 실체를 어렴풋이나마 엿볼 수 있는 무대였다.
 홍콩무용단(Hong Kong Dance Company)은 〈The Butterfly Lovers〉(안무 Yang Yuntao)에서 전통을 토대로 한 컨템포러리댄스 작업을 표방한 단체답게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을 홍콩의 전통음악과 춤을 적절하게 혼합한 움직임으로 표출했다. 한국의 김기화무용단은 〈독도 며느리〉(안무 김기화)에서 주인공의 캐릭터 설정에서부터 한국의 토속적인 이미지를 해체한 의상과 분장으로, 중국 Changde Modern Dance Company의 〈이주자들(Migrants)〉(안무 Wu Bo)은 새의 날갯짓에서 영감을 받은 현대적인 움직임 구성으로 민족적인 색채를 터치했다.

 

 



 주최 측인 한국춤협회(이사장 백현순)의 전신인 한국무용연구회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국무용제전》의 화두는 늘 ‘한국의 전통을 토대로 한 새로운 창작’이었고, 현대무용과 발레에서의 창작작업과 차별화 해 한국춤 전공자들은 이들 작업의 산물을 ‘창작춤’ 혹은 ‘창작무용’이라고 불렀다.
 1998년에 필자는 “한국의 춤계는 세계 무용계의 변화 속도나 그 폭 만큼 달라져야 하며, 한국 창작춤 역시 한국 무용사회의 성장 폭 만큼이나 논의의 관점도 달라져야 한다. 이제 한국의 창작춤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 ‘창작춤’은 컨템포러리댄스로 그 개념이 더욱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실제로 ‘한국 창작춤'이란 용어를 들고 해외공연을 갔을 때 현지 관객들이나 전문가들은 한국의 전통을 해체시킨, 혹은 전통적인 요소를 담아낸 컨템포러리댄스로 바라본다. 그리고 이 같은 전통적인 요소를 토대로 한 컨템포러리댄스 작업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안무가와 무용가들이 하나 같이 고민하고 매달린다. 그들은 전통에서는 ‘독창성’을 컨템포러리댄스에서는 ‘보편성’을 획득하고자 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찬찬히 대한민국 춤 문화의 변동 과정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의 춤계는 여타의 소위 춤 선진국이라는 나라와 비교해 보았을 때 무용예술을 둘러싼 지원‧교육‧창작‧공연의 여건 등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아시아 여러 나라와 비교했을 때는 훨씬 우위에 있다. 문제는 보이는 외형적인 것에 비해 운용에서의 질(質)이 뒷받침 되지 못하고 정작 무용예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것들이 탄력적으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서양의 현대무용이 들어온 지 100여년이 되어 오고, 대학에 무용과가 개설된 지 50년이 훨씬 넘었다. 매년 2천5백여 건의 춤 공연이 무대 위에 오른 지 오래이지만, 국제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할 만한 작품들이 부족하고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춤계를 대표할 만한 안무가를 배출하지 못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새 작품 위주의 지원제도와 춤 유통의 부진, 전문인력의 부재와 함께 중요한 행사를 주최하고 적지 않은 공공 지원금을 집행하는 기득권 집단의 아마추어리즘과 매너리즘에서 그 요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춤계 전반에 퍼져있는 촘촘한 인맥들의 제 식구 챙기기와 교육에까지 손을 뻗친 지도자들의 도덕 불감증도 빼놓을 수 없다.
 2013년 사단법인 한국무용연구회는 단체의 명칭과 함께 그동안 단체의 중요한 사업 중 하나였던 행사의 명칭을 바꾸었다. 30년이 넘게 유지해 온 틀을 바꾸는 쉽지 않은 결단을 한 셈이다. 한국춤협회의 이 같은 변화는 운용에서의 질(質)이 뒷받침 되지 못하고 정작 무용예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것들이 탄력적으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춤계의 문제점을 해소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비쳐진다.
 《한국무용제전》에서 《Global Dance Festival》 이란 외래 용어가 들어간 새로운 타이틀을 들고 나온 것에서도 시야를 넓혀 보다 멀리 바라보려는 집행부의 의지를 엿보게 한다. 한국현대무용협회가 《현대무용페스티벌》을 《Modafe》로 개칭하면서 세계의 무용가들과 소통하고 축제를 통한 현대무용의 대중화에 불을 붙이는 시도를 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뒤늦은 감은 있지만 뭔가 새로운 변화의 물꼬를 트는 이 같은 변신은 적절해 보인다.
 좁은 지형 안에서 10개가 넘는 국제 무용 페스티벌을 열고 있고, 그 페스티벌의 성격이 중복되고 있는 대한민국 춤계의 현 상황에서 'Global Dance Festival'이 갖는 미션과 여타 축제와의 차별성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우선 축제의 운용에서 현대무용과 발레 장르에서는 국제적인 무용 축제를 시행하고 있으니 한국무용 장르에서도 국제 무용 페스티벌이 필요하다는 단순한 비교 논리를 넘어서야 한다.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라는 삼분법의 틀 안에 지나치게 얽매여, 지원하고 비평하고 진단해 온, 지금도 해오고 있는 관행은 한국의 무용예술을 세계무대에서 논의하고 소통하고 국제화하는데 있어 적지 않은 걸림돌로 작용했다.
 대한민국의 춤계는 국제무대에서 더 이상 변방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 중심부에 진입한 것도 아니다. 일본이나 중국 타이완과 비교했을 때 안무가나 단체를 통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성 면에서는 아직도 뒤처져 있다.
  《Global Dance Festival》을 통해 발표되는 한국 안무가들의 작품과 외국 안무가들의 작품을 국내외 춤 시장으로 유통시키는 데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무용을 전공하는 안무가와 단체 그리고 무용수들만의 교류의 장에서 탈피, 보다 넓은, 먼 곳을 바라보는 교류의 장으로 상생하는, 생산적인 축제 운용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향후 한국무용제전은 한국적인 요소가 담겨진 컨템포러리댄스 작업을 향한 모색의 장이자 국제무대에서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는 컨템포러리댄스의 배양지를 지향해야 한다. 해외팀 초청 역시 아시아권에서 벗어나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가진 다른 나라로 그 교류의 영역을 더욱 넓힐 필요가 있다
 그동안의 다양한 작업과 변신을 위한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축제 무대에 올려지는 작품들이 독창성과 함께 보편성을 함께 담아내면서 세계 춤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양질의 예술작업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2016. 0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