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고 정병호 교수 추모 특집 : 정병호의 민속예술현장답사의 문화론적 의미
이병옥_본 협회 공동대표 / 용인대 교수

1. 들어가는 말
 



고 정병호 교수

 한국무용학자 1세대인 정병호교수님이 2011년 7월 24일 별세하혔다. 1927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한국 전통춤연구에 한평생을 바친 고인의 영전에 삼가 애도의 뜻을 전한다.
 마침 지난달 정병호교수의 저서『한국 전통춤의 전승과 현장』, 『한국 전통춤의 원형과 재창조』두 권이 성기숙의 기획 편집으로 출간되었다. 당시 출간기념(6월22일)으로 초청받아 발표한 내용, 즉 정병호 교수의 1960년대 교육무용 활동과 민속예술현장답사와 관련한 분야만을 재조명하고 연구와 실적을 첨가하여 정교수의 민속학적 업적을 다시 한번 기리는 마음으로 정리하였다.
 정병호 교수와 나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인 1966년 내가 서울교육대학에 입학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전과목을 다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야하는 교육대학의 특성상 모든 교과의 기초전공을 섭렵해야 했다.
 다시 말해 남자도 무용을 가르칠 줄 알아야 했다. 당시 서울교대 무용교수도

남자인 김양곤 교수였고, 또한 교육무용과 창작무용을 여름방학 때 강습을 해주시는 분도 남자인 정병호 교수였다. 그 당시만 해도 남자가 무용한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로 치부하던 때였다. 당시에도 초중고등학교 교과과정에는 우리나라와 세계 여러나라 민속무용(포우크 댄스)이 체육교과에 포함되어 있었고 지도할 줄도 알아야 했다.
 그런데 무용과 포우크댄스가 정말 재미있고 신명나는 과목이면서 남자로서는 희소가치가 있는 전공분야로 비춰졌다. 그리하여 이 두 분 교수들의 가르침에 힘입어 교육대학에서 심화전공을 무용교육으로 선택하게 되면서 내 인생 행로가 바꿔져 무용학에 입문하게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김양곤교수의 문하생으로 아동무용연구 실기특강을 받기 시작했고, 서울교대 ‘레크리에이션연구회’ 서클에 들어가 포우크댄스 분과활동을 하였고, 이를 보충하기위해 정병호 교수가 지도하는 서울YMCA ‘민속무용의 밤’에 매주 참여하여 새로운 민속무용을 즐겁게 배웠으며, 한국여가 레크리에이션 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정병호 교수가 지도하는 레크리에이션 댄스에 참여하여 가르침을 받았다.
 따라서 정병호 교수의 무용학 인생의 측근에서 가장 오래 함께한 제자이기에, 교수의 학문적 삶을 그림자처럼 따라 따니며 가르침을 받으면서 지켜본 스승의 활동내력을 조명하고 특히 민속현장답사를 통한 민속문화와 무용계에 공헌한 문화론적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그리고 정병호 교수의 연구업적 내용은 정교수가 직접 작성한 ‘정병호교수 논저 및 예술활동(1950~1996)’과 국회도서관 검색어 ‘정병호’에 나타난 연구실적 120종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2. 1960년대 중반~1970년대 중반

  - 포우크댄스, 교육무용, 현대무용 전공활동

 정병호 교수는 해방 후 1946년 9월 명동에 개설한 함귀봉의 ‘조선교육무용연구소’에서 차범석, 조동화와 함께 현대무용을 익혔으며, 1960년대 중앙대에서 현대무용과 교육무용 실기를 가르치는 교수였다.
 그리고 1960년 당시에는 방학 때에 교사들을 상대로 무용강습이 성행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가장 활발한 무용강습지도자는 파조, 김양곤, 정병호 교수 등으로 전국순회강습을 하였다.
 이때 정병호교수의 지도내용은 포우크댄스와 교육무용, 현대무용이며, 지도방법은 창작무용동작을 가르치면서 악보도 보지 않고 피아노 즉흥연주로 수강생들을 사로잡으며 신명나게 강의하여 인기를 모았었다. 그리고 서울 YMCA의 민속무용의 밤, 그리고 한국여가 레크리에이션 협회 민속무용 전문위원으로 많은 레크리에이션지도자를 양성하고 있었다. 나 역시도 레크리에이션 자격증을 취득하여 젊은 지도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1960년대의 정병호교수는 전공이 현대무용인 무용학과 실기교수로 연구활동 역시 이 현대무용, 창작무용, 교육무용, 서양민속무용분야의 연구로 저서와 연구실적을 남겼으며, 1970년대 중반까지 활발하게 보급 활동을 하였다.

<저서>
창작무용/ 교육무용협회, 1971
현대무용 창작법/ 鄭昞浩, 敎育資料社, 1971
세계의 민속무용/ 교육도서출판사, 1971
학교무용/ 삼양출판사, 1972
민속춤/ 청림사. 1974
교육무용 원론 / 邦正美 著 ; 鄭昞浩, 宣炳基 共譯 普信文化社, 1973
<논문 및 논단>
한국 Folk Dance 창작에 관한 연구, 문교부, 1962
한국민속집단무용(Folk Dance) 구성법에 대한 소고, 중앙대학교, 1964
韓國舞踊의 傳統美, 이화여자대학교무용학회, 1967
강강술래, 韓國敎育生産性硏究所敎育硏究社, 1971
舞踊과 空間 : 空間美의 形式을 中心으로, 1971
舞踊과 空間 : 構圖的 空間을 中心으로, 1971
Renaissance를 중심으로 한 Europe 民俗舞踊에 관한 硏究/ 鄭昞浩, 중앙대 대학원, 1972
유럽의 사회적 배경과 민속무용 / 鄭昞浩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학생회, 1973
무용교육의 발달사, 문예총람,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6
현대무용의 문화사적 고찰, 서라벌, 서라벌초급대학 학도호국단, 1976



3. 1970년대 중반이후


  - 전통무용연구회 조직과 한국민속예술 조사연구로 전환

 현대무용 실기교수이며 포크댄스지도자로 활동하던 정병호교수가 대변신의 계기가 된 것은 당시 문화재위원이었던 민속학자 임동권 교수의 권유와 당시 한국전통무용과 민속예술의 중요성이 대두되던 시대적 배경으로 한국전통무용으로 전공을 전환하게 된 것이다.
 당시 서구문화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봉착한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문화재법이 발효되고 중요무형문화재를 지정보호하는 정책으로 이미 무용에서도 1960년대에 강강술래(1965), 진주검무(1967), 승전무(1968), 승무(한영숙, 1969), 처용무(1971), 학연화대 합설무(1971)가 지정되어 있었다. 이를 지정하는 과정에서 당시 문화재위원 임동권외 홍윤식 등과 함께 김천흥과 최현선생이 당시 문화재 위원과 전문위원으로 역할을 했지만 한국무용 전문학자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리하여 1976년 ‘전통무용연구회’를 조직하여 정병호교수가 회장으로 이종만, 이병옥, 김정녀 등이 이사로 참여하여 전통무용 연구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즉 전통무용세미나를 개최하거나 다른 단체의 학술행사에 참여하여 발표하였다.
 그리고 문화재위원으로 위촉되면서 1976년 ‘전통무용연구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지방에 산재한 알려지지 않은 전통춤들을 발굴하여 열정적으로 서울무대에 올리기 시작했다.

<논문 및 논단>
한국민속무용의 유형, 한국민속학, 민속학회, 1975
고대무속무용에 영향받은 전통무용, 무용,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6
전통무용론, 시민논단, YMCA, 1976
僧舞의 美學, 전통무용연구회, 1977, 琴硏齊, 1977
불교의식무용에 대한 소고, 전통무용연구회, 1977
우리춤을 보는 눈, 공간하기대학, 공간사, 1977.8
우리춤을 어떻게 볼 것인가, 공간사, 1977.10
民俗舞踊의 춤사위 에 관한 硏究 , 民俗學會, 1977
進饌儀軌에 나타난 呈才舞踊의 연구, 중앙대학교, 1977
傳統舞踊의 美的構造, 空間社, 1978
진도무속무용의 미적 해석에 대하여, 전통무용연구회, 1978
한국무용의 미적 구조, 인문학 11차 정례연구발표회, 1978.4.13
허튼춤에 대하여, 전통무용연구회, 1978
민속에서의 우리 전통춤, 민중에 의한 자연발생된 민속무용의 소고 , 우리 전통문화의 재인식 <특집>호, 한국농촌문화연구회, 1978
巫堂춤의 現代的 解釋, 동서문화연구원, 1978
韓國民俗舞踊에 나타난 象徵形式의 美學的 分析 / 鄭昞浩·金福榮, 중앙대학교, 1979
韓國傳統舞踊에 대한 올바른 認識, 大學人의 藝術觀 <特輯>, 同德女子大學, 1979
마당춤 그 意義와 復活에 대하여,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9
<발굴공연>
1회, 이동안 한량춤과 발탈발표회, 한국문화예술진흥원 강당, 1977.3.4
2회, 호남농악(우도굿)발표회, 덕수궁 후정, 1977.4.9
3회, 이매방 승무발표회, 서울YMCA강당, 1977.7.30
4회, 남사당 덧뵈기 발표회, 서울YMCA강당, 1978.3.26
5회, 진도씻김굿 발표회, 서울YMCA강당, 1978.7.20
6회, 용담 이용배 허튼춤 발표회, 서울YMCA강당, 1978.11.26
7회, 동해안 무속무용발표회, 서울예술고등학교 강당, 1979.10.17



4. 1980년대

  - 본격적 민속예술 현장연구와 왕성한 학술기고

 1980년대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전통문화사, 무용한국사, 민속학회, 대학교 등의 지면에 많은 민속현장 연구내용을 기고하고 저술활동으로 왕성한 학술적 업적을 남겼다.
 먼저 현장답사기를 기고한 내용을 살펴보면 1980년에서부터 1985년까지 거의 매달 67종을 민속현장 현장답사기와 일반학술기고 37종을 기고하여 당대 민속학자 중에 단연 최고의 열정을 민속현장에 바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우선 민속의 분야별로 분석해보면 굿과 제의분야에 23종, 농악분야에 12종, 놀이분야에 8종, 탈춤분야 5종, 춤과 명인분야 13종, 사찰의식 3종, 장례의식 3종으로 단연 굿과 제의 분야와 농악분야, 춤과 명인분야에 집중되기 했지만 다양한 민속연행분야 연구에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리고 이렇게 6년간 매월 현장답사기를 기고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시대상에서 전통문화의 발굴기가 문화계의 트랜드였고 관심사였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전문잡지가 성행하고 있었으며, 거기에 정병호 교수의 열정이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특히 공간사의 사장 건축가 김수근의 소공연장 ‘공간사랑’을 중심으로 전통민속무대의 활성화와 월간지 공간사의 <공간>지에서 적극적인 후원으로 현장답사기 기고에 불을 붙여 3년간 32회를 연재하였다. 그리고 국가적 차원의 공공지원으로 설립된 문화예술진흥원의 <문예진흥>(후에 <문화예술>)지에 12회, 그밖에도 <전통문화>에 14회, 구자운의 무용한국사의 월간지 <무용한국>(1967년창간), 월간<마당>등의 지면이 많아 정병호 교수의 현장연구의 열정을 받아 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각종 학회와 대학과 <무용한국> 등의 일반학술지에도 37종을 기고하여 현장민속답사와 더블어 민속예술의 구조와 기능 등의 특징과 미학적인 학술 이론을 정리하였다.
 이렇게 현장민속을 연구한 내용들을 집대성하여 후반기에 저서로도 『춤사위』, 『한국춤』, 『농악』, 『무무(巫舞)』, 『노래춤』, 민속론 등 중요한 무용과 민속 저서를 집필하여 무용학자이면서 민속학자로서의 열정을 다해 인생의 황금기, 학자로서의 황금기로 크나큰 업적을 남겼다. 한편 국가 문화재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총 25종의 중요무형문화재를 지정하고 예능보유자 27명을 인정하는데 공을 세웠다. 그중에 무용분야는 이매방의 승무와 살풀이춤, 강선영의 태평무, 고 김숙자의 도살풀이춤, 이흥구의 학연화대무를 인정하였다.

<민속현장답시기>67종
제주도굿, 공간사, 1980.3
필봉마을의 풍물굿, 공간사,1980.9.
밀양백중놀이, 공간사, 1980.10.
장산도 씻김굿, 공간사, 1980.11.
제주도의 성주풀이, 공간사, 1980.12.
동래야류, 공간사, 1981.1.
장말부락의 도당굿, 공간사, 1981.2.
봉원사 영산제 작법, 공간사, 1981.3.
마상마을의 부락제, 공간사, 1981.4.
웅진배영신굿, 공간사, 1981.5.
한말의 마지막 광대 이동안, 공간사, 1981.6.
양주별산대놀이, 공간사, 1981.7.
진도다시락, 공간사, 1981.8.
제주영등굿, 공간사, 1981.9.
공옥진. 정과 한의 예인, 공간사, 1981.10.
미포부락의 별신굿, 공간사, 1981.11.
황해도 철무리굿, 공간사, 1982.1.
한국의 정재무, 공간사, 1982.3.
평택풍물굿, 공간사, 1982.4.
함경도 망무굿, 공간사, 1982.5.
완도 장좌리 당제, 공간사, 1982.6.
은산별신제, 공간사, 1982.7.
부여 추양두레농악, 공간사, 1982.8.
강릉농악, 공간사, 1982.10.
통영오구새남굿, 공간사, 1982.11
대구고산두레농악, 공간사, 1982. 12.
호상놀이 진도다시래기, 월간마당, 1983.1.
김숙자의 도살풀이춤, 공간사, 1983.1.
진도소포리굿, 공간사, 1983.2.
진도검무, 공간사, 1983.3
해주검무, 전통문화, 1983.3.
박초향의 곱사춤과 장타령, 공간사, 1983.4.
도깨비굿, 전통문화, 1983.4.
청도지신밟기, 전통문화, 1983.5.
동복 한천마을의 걸궁, 공간사, 1983.5.
종묘제례와 일무, 공간사, 1983.6.
망제, 전통문화, 1983.6.
가산오광대, 전통문화, 1983.7.
하보경의 덧뵈기춤, 전통문화, 1983.8.
감곡국민학교의 농악, 전통문화, 1983.9.
강릉단오제, 전통문화, 1983.10.
봉원사의 식당작법, 전통문화, 1984.1.
경기도 새남굿, 전통문화, 1984.2.
동해안 지방의 망령혼사굿, 문예진흥, 1984.2.
통영오광대, 전통문화, 1984.5.
여주 점동면 흔암리 거줄다리기, 문예진흥, 1984.4
이매방 승무, 전통문화, 1984.5.
박일심의 각설이 타령과 병신춤, 문예진흥, 1984.6.
진도 돈지리의 향토축제, 문예진흥, 1984.06.
진도강강술래, 전통문화, 1984.7.
여천 백초리 가장농악, 전통문화, 1984.7.
김형순과 이리농악, 전통문화, 1984.7.
평양시왕굿, 전통문화, 1984.8.
횡성회다지, 문예진흥, 1984.10.
영광농악, 전통문화, 1984.10.
진도씻김굿, 전통문화, 1984.11.
예천청단놀음, 문예진흥, 1984.10.
감천줄다리기, 전통문화, 1985.1.
남원삼동굿놀이, 문예진흥, 1985.2.
익산기세배, 전통문화, 1985.2.
동해안 지방의 망자 혼사굿, 전통문화, 1985.3.
수륙방생제, 문예진흥, 1985.4.
현천소동배놀이, 문예진흥, 1985.6.
김제농악과 백남윤의 기록보, 문화예술, 1985.8.
황해도 평산 소놀이굿과 그네 작두, 문화예술, 1985.10.
이천대원거북놀이, 문화예술,1985.10.

<일반학술기고> 37종
무무의 예술적 구조, 中央大學校 한국藝術硏究所, 1980
승무의 동작소에 관한 연구 ,中央大學校한국藝術硏究所, 1981
民俗舞踊의 槪觀 <特輯>, 仁荷大學校, 1981
傳統接近을 통한 創作 方向, 韓國舞踊의 創作方向 모색,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81
맺고 푸는 데에 우리춤의 妙味 있어 <對談>, 蔡熙完@鄭병浩, 琴硏齊, 1981
恨과 해학의 二重構造 <特輯>, 문학사상사, 1981
종교의식에 나타난 연극적 요소, 중앙대 연극영화과, 1981
Revival and Significance of the “Madang nori” , Korean National Commission for UNESCO, 1982
민속무용 서설, 한국민속대관 5,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1982
살풀이춤의 美的 構造論, 藝術院, 1982
韓國の傳統舞踊, 駐日大韓民國大使館, 1982
발탈 演戱에 對하여, 民俗學會, 1983
農藥의 藝能的 特性 : 판굿을 中心으로, 中央大學校韓國藝術硏究所, 1983
호상놀이 “ 진도 다시래기 ′, 마당, 1983
韓國 宗敎儀式 에 나타난 演劇的 要素 , 동서문화연구원, 1983
전통문화 는 정신적인 뿌리다, 동서문화연구원, 1983
現場을 통해 본 農樂의 특징과 전승문제,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83
農藥의 藝術的 特性, 무용한국사, 1984
탈춤, 춤사위 에 內在한 動作素 의 美學的 分析, 중앙대학교, 1984
江陵官奴假面劇 의 춤사위 , 강원도민속학회, 1985
강릉관노가면극의 춤사위 , 강원도민속학회, 1985
춤사위考, 民俗學會, 1985
민속무용에 나타난 한국인의 미의식, 한국전통예술의 미의식,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5
신한국무용을 극복하고 전통무용의 기틀을 잡기까지,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85
僧舞의 美學, 무용한국사, 1986
강원도지역의 민속춤과 그 특징, 강원민속학, 강원도 민속학회, 1986
南道 民俗藝術의 特徵, 民俗學會, 1987
農樂藝能의 象徽性과 그 意味, 무용한국사, 1987
놀이판(춤판)의 構造와 機能 , 무용한국사, 1987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의 개선방안 : 민속놀이와 민속무용을 중심으로, 民俗學會, 1988
妓生과 춤, 무용한국사, 1988
민속춤에서의 신명과 공동체 , 서울신문사, 1988
한국민속무용론, 中央大學校韓國民俗學硏究所, 1989
무속예능의 지역적 양태와 특성, 中央大學校藝術硏究所, 1989
都市祝祭와 소리춤, 무용한국사, 1989
농악의 편성과 기(旗), 세광음악출판사, 1989
농악의 형성, 세광음악출판사, 1989
<저서>
국악과 무용 / 계몽사 , 한명회 공저, 1980
춤사위 / 鄭昞浩 著, 韓國文化藝術振興院, 1981
韓國춤 / 鄭昞浩 著, 열화당, 1985
農樂 / 鄭昞浩 著, 열화당,1986
巫舞/ 정병호 저, 문화재 연구소, 1987
노래춤/ 정병호 저, 문화재연구소, 1988
民俗論 / 任東權, 鄭昞浩, 金善豊 共著, 集文堂, 1989



5. 1990년대 이후 집대성한 저술활동

 1990년대는 정병호 교수의 정년퇴임(1993년)으로 최승희 집필연구에 5년간의 각고 끝에 출간하였고, 그후로도 북한무용, 몽골민속 등 국내무용에서 시야를 해외로 넓혀 나갔고, 무용사적 접근도 하였다.
 그리고 생애를 걸고 민속현장과 전통춤연구에 매진해온 연구실적을 집대성하여 저서로 출간하였다. 특히 『민속기행』(1992), 『춤추는 최승희』(1995), 『한국의 전통춤』(1999), 『한국무용의 미학』(2004)으로 교수직 정년퇴임 후 80세 직전까지 한국무용학의 이론적 정립을 완성하였다.

<저서>
북한의 공연예술, 2 / 정병호 ; 이병옥 ; 최동선 共著 , 고려원, 1991
韓國의 民俗춤 / 鄭昞浩 著, 三省出版社, 1991
몽골민속, 임동권, 김선풍, 권오성 공저, 복조리사, 1991
서울의 무용, 서울600년사, 민속편/공저, 서울특별시, 1990
民俗紀行 / 鄭昞浩 著, 눈빛, 1992
韓國の民俗舞踊 / 鄭昞浩 著, 白帝社, 1993
世紀の美人舞踊家, 최승희 / 鄭昞浩 著, 동경, 1994
춤추는 최 승희 : 세계를 휘어잡은 조선 여자/ 정병호 저, 뿌리깊은 나무, 1995
민속놀이론 / 임동권, 정병호, 김선풍 공저, 민속원, 1997
韓國의 傳統춤 / 鄭昞浩 著, 집문당, 1999
한국무용의 미학 / 정병호 저, 집문당, 2004
<논문 및 논단>
북한문화예술의 이해, 7-12, 한국문화예술진흥원,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91
北韓舞踊의 實態와 特徵, 무용한국사, 1992
북한무용의 실태와 특징, 안보문제연구원, 1992
農耕儀禮와 民俗춤, 中央大學校韓國民俗學硏究所, 1993
최승희와 그녀의 춤에 대한 재평가, 한국미래춤학회, 1993
무용, 서울민속대관 2편, 서울특별시, 1994
강릉단오제와 춤, 강릉단오제 조사보고서, 1994.12
최승희의 생애와 그 예술 , 啓明大學校藝術文化硏究所, 1995
동작구(銅雀區)의 민속문학(民俗文學) : Ⅳ.무가편(巫歌篇), 中央大學校韓國民俗學硏究所, 1995
조선후기 민간무용의 양상, 단국대 동양학 연구소, 1995
광복50년 무용약사, 문화에술진흥원, 1996
몽골'춤'연구 , 中央大學校韓國民俗學硏究所, 1996
박금슬의 생애와 예술 , 한국미래춤학회, 1998
한의 비탈을 넘어선 자유와 환희의 세계 : 승무 그 이해와 계승,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98
史學的 관점에서 본 한국춤의 몇가지 과제 , 한국무용사학회, 2003




6. 맺는 말


  - 민속예술 현장답사의 문화론적 의미

 정병호 교수는 오로지 우리춤과 우리민속 연구에 생애를 바친 1세대 무용학자이다. 생애를 돌이켜보면 정교수는 1927년 전남나주 출생으로 해방 후 1947년 함귀봉 조선교육연구회의 문하생으로 현대무용과 교육무용을 배워 무용실기자이며 무용지도자로 출발하였다.
 당시 함께 연구생으로 활동하던 이들이 조동화, 차범속, 김문숙, 김경옥, 정순영(정막)등이었다. 조동화 선생의 회고에 의하면 방학 때만 되면 마치 뭐가 씌운 듯 상기된 표정으로 서울로 올라와 명동의 함귀봉조선교육무용연구소에 나타나곤 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춤실기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정교수는 1950년대에는 광주여고에서 무용교사로 재직하면서 무용연구소를 개설하고 문하생을 모집하여 몇 번의 무용발표회를 열기도 했다.
 이렇게 실기능력을 인정받아 1960년대에는 상경하여 상경하여 중앙대학교 무용학과 교수로 재임하면서 처음에는 현대무용, 교육무용, 포우크댄스를 강의하였다. 이처럼 본격적인 교육무용과 창작무용활동을 하면서 예그린악단을 비롯한 민예극장에서 안무를 맡아 실기지도를 하기도 했으며, 한국여가레크리에이션협회 전문위원으로 한국집단민속무용을 안무하여 각종학교와 군대에 보급하였다.
 1970년대에는 창작무용, 학교무용, 세계민속무용 등의 저서를 출간하였다. 그러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아 1976년 ‘전통무용연구회’를 조직하여 순수 한국전통무용 연구로 전공방향을 바꾸어 전통무용과 한국민속현장연구에 전념하게 되었고, 문화재 위원을 맡게 되면서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에도 앞장서게 되었으며, 1976년 조동화의 <춤>지 발행과 함께 춤평론가로서의 면모도 갖춰나갔다.
 당시의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민족문화가 말살되고 이어서 서구문화가 물밀 듯이 범람하여 민족전통성과 정체성마저 상실할 위기를 겪고 있었다. 1960년대 초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전통문화의 계승발굴을 국시로 삼아 문화재법이 발효되고 중요무형문화재 제도가 개설되어 인멸되던 전통예술에 생명을 불어넣고 기예능보유자를 인정하여 보존전승하게 만들었다.
 지방에 있어 잘 알려지지 못했던 보석같은 명인들을 서울무대에 올려 매스컴에 집중 조명받게 되어 일약 명사가 된 명인들이 많았다. 병신춤의 공옥진, 마지막 광대 이동안, 춤의 최고 명인 이매방, 태평무의 강성영, 도살풀이춤의 김숙자, 세습무의 명인 동해안별신굿의 김석출일가, 진도씻김굿의 박병천 일가, 황해도 배연굿의 김금화 등 많았고 이들은 모두 문화재로 인정받아 그들의 기예능이 생명력을 가지고 전승되고 있다.
 1980년대에는 당시 전통예인들을 이끌고 미국과 일본 등으로 세계에 알리는 역할도 하였고, 민속무용학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열정적인 현장연구와 답사기를 <춤>, <공간>, <문예진흥>, <전통예술> 등 각종 전문잡지에 기고하면서 기록적인 연구보고서를 투고하였다. 저서로는 <춤사위>, <한국춤>, <농악>, <한국의 민속춤> 등을 출간하였다.
 1992년 정년퇴임(중앙대)까지 가장 많은 민속예술현장 답사기를 기고한 민속학자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교수의 학술활동은 정년으로 끝나지 않았다. 더욱 정렬적으로 연구에 몰두하여 최승희에 관한 사진 및 자료수집으로 한중일을 오가며 5년간의 각고 끝에 <세계를 휘어잡은 조선여자 최승희>(1995년) 저서를 남겼고, 이어서 고희를 넘겨서도 춤의 현장연구를 집대성한 <한국의 전통춤>(1999년)과 <한국무용의 미학>(2004년)까지 집필하여 출간하였다.
 정병호교수는 한마디로 열정적로 한국의 전통춤을 현장 연구하여 집필하고 저서를 출간한 무용학의 1세대 거장이시다. 그동안 업적을 본인 스스로 정리한 <정병호 교수 논저 및 예술활동>에 기록된 업적에 보면 저서 21권, 논문 32편, 세미나발표 72회, 신문발표 36회, 각종간행물발표 144회, 외국간행물발표 5회, 무형문화재지정 조사보고서 25회, 민속예술현장답사 67회, 외국문화기행문 16회, 산문 35회, 평론 50회, 예술활동(실기발표, 안무) 15회 등으로 기록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리하여 1999년 <중앙대의 20세기 석학 10인>중에 한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하였고, 정부로부터도 두 차례나 옥관문화훈장(1997), 화관문화훈장(2008)을 수여받았다.
 2011년 7월25일 한국무용학의 큰 별이 졌다. 그리고 세대가 바뀌어가고 있다. 그런데 지금 2010년대에 한 세대를 지나면서 정병호교수가 열정적으로 현장 연구하던 당시의 명인들 중에 생존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 그리고 정병호 교수가 민속현장 연구로 발표했던 민속예술이 사라진 경우도 있고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경우도 많으며, 변질되거나 쇠락한 경우도 많다. 그러기 때문에 정병호 교수가 전국 방방곡곡을 돌면서 현장연구한 자료들이 얼마나 소중한 자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가에 새삼 그 업적에 감사함과 소중함을 느낀다. 그리고 대를 이어 연구를 계속할 막중한 책임과 후임은 다시 우리 후학들의 몫으로 남겨졌다.
 다시 한번 고인의 열정인 무용학에 바친 업적에 감사드리고 영정에 애도의 뜻을 전한다.

2011.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