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에세이_ 국립무용단&조세 몽탈보 파리‧서울 공연 반응을 보고
<시간의 나이>는 누구의 작품인가?
김영희_춤비평가

 《경향신문》 6월 20일자 문화면에 ‘한국 춤사위에 들썩거린 유럽’이란 제목으로 3컷의 현장 사진과 함께 기사가 났다. 파리의 무용전용극장인 샤요극장에서 6월 16일부터 한국의 국립무용단이 공연한 <시간의 나이>에 대한 현지의 반응 기사였다. 기사에 의하면 “샤요 극장의 디디에 데샹 극장장이 파리 초연에서 이처럼 열광적인 반응이 나오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며, 오히려 서울에서의 공연보다 반응이 더 뜨거운 것 같다”고 밝혔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한국의 국립극장과 프랑스 샤요국립극장이 공동제작한 작품으로, 이 극장의 수석안무가인 조세 몽탈보(Jose Montalvo)가 안무를 맡았고, 올해 3월 23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국립무용단이 초연했었다. 안무자 조세 몽탈보는 <시간의 나이>의 안무에 대해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라는 의도로 방향을 잡고, 국립무용단에 습득된 신체적 유산들인 한국춤에 자유롭게 다른 방식들을 접목시켜 전혀 다른 느낌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했다.

 

 

 

 작품의 1장은 ‘시간의 나이’, 2장은 ‘여행의 추억’, 3장은 ‘볼레로’로 구성되었다. 공연의 전개는 전통춤을 재해석하기보다 전통춤에 현대적 이미지들을 결합시키는데 주력했다. 전통춤을 그대로 추거나 의상을 현재의 것으로 바꾸었으며, 춤 자체를 크게 변형하지 않았다. 그리고 영상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이는 안무자 조세 몽탈보가 춤 공연에서 자주 사용하는 작업 방식이다. 춤추는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미리 촬영하여, 춤꾼이 무대에서 춤을 출 때 이 영상들을 결합시켰다. 어떤 장면에서는 영상이 춤의 배경이 되고, 어떤 장면에서는 춤의 확대가 되거나, 작품의 주요 이슈를 설명하기도 하였다. 2장의 영상이 인상 깊었는데, 이 영상은 ‘하늘에서 본 지구’를 제작한 영상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의 작품이었다. 인간을 포함한 생물들의 모습을 와이드 비전으로 느리게 움직이도록 했고, 이 영상을 배경으로 춤이 전개되었다. 이 영상에서 춤꾼들은 소품으로 커다란 비닐 보따리들을 들고 나왔다. 이 보따리들은 인생의 짐이나 인류의 짐일 수도 있고, 아니면 쓰레기덩어리일 수도 있다. 그렇게 춤과 영상을 결합시켜 메시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춤꾼들은 여러 포즈로 2인씩 포옹하는 장면으로 끝맺었다.
 공연이 끝난 후, 커튼콜에서 관객들은 긴 박수를 치면서도 약간은 갸우뚱거렸다. 초반에 “Look at me!”라고 간간히 외치던 춤꾼들의 모습이나, 무대배경에 지속적으로 영상을 보여주었던 점, 농악에서 사용하는 북을 세워서 그 위에 걸터앉아 북을 치는 장면도 그렇고, 3장에서는 주역 여성무용수가 굿판의 대감놀이에서 노는 무당처럼 줄곧 추임새를 넣으며 춤추었다. 이런 장면들이 한국 관객에게 낯설었을 것이다. 특히 마지막의 포옹장면은 서양의 문화적 코드에서 조화, 화해 등을 나타내는 상징적 동작이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의미성이 보편적이지 않으며, 굳이 포옹의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관객들의 호불호가 갈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낯설고 익숙치 않은 장면도 있었지만, 한국의 전통 공연예술에서 다양한 요소들을 끄집어내고, 테크놀로지를 결합시킨 프랑스 안무가의 시도가 신선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도들은 서양문화를 기반으로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양의 안무가가 한국의 전통춤에 대한 인상과 이해를 자신의 작업방식으로 풀어낸 것이니, 이는 한국 관객의 문화적 코드나 취향을 전제로 하지 않았을 수 있다. 더욱이 조세 몽탈보의 전작(前作)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않은 한국 관객들은 약간 고개를 갸우뚱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파리의 관객들은 환호와 박수, 발구르기를 한참동안 하며, 서울 공연보다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반응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파리의 관객들은 조세 몽탈보의 주제의식이나 작품 경향을 이해하고 있으며, 더불어 한국의 이국적인 춤 움직임에서 새로운 미감을 발견했을 것이다.
 이렇게 서울의 관객과 파리의 관객이 다른 반응을 보여주는 것에 대해 옳다 그르다거나, 질적 수준을 언급할 수는 없다. 이는 문화적 배경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망설여지는 점이 하나 더 있다. 이 작품이 정녕 한국의 국립무용단의 작품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프랑스 안무가 조세 몽탈보의 작품이라고 해야 할지이다. 이미 다국적 자본과 다국적 문화 요소가 결합한 문화산업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 함께 떠올랐기 때문이다.


* 인문예술연구소 <웹진 오늘의 선비> 6월 24일자 재수록 

2016. 07.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