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관객참여형 감성치유프로젝트 〈당신은 지금 바비레따에 살고 있군요〉
일상에 지친 관객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이보휘_<춤웹진> 기자

 

 11월 10일 밤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3층 ‘스튜디오 다락’. <당신은 지금 바비레따에 살고 있군요>(이하 바비레따) 공연이 열리는 이곳의 분위기는 여느 공연장과는 사뭇 달랐다.
 올해로 벌써 4년째 진행 중인 <바비레따>는 세 명의 무용수(장은정, 최지연, 김혜숙)와 한 명의 배우(강애심)가 등장하며, 이들을 일컬어 ‘춤추는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2011년 제10회 춘천아트페스티벌에서 시작해 매년 조금씩 업그레이드 시키며 발전해 오고 있다.
 ‘바비레따’란 러시아에서는 늦여름에서 초가을 무렵의 아름다운 다섯 번째 계절을 말한다. 이 날씨가 얼마나 화창하고 정열적으로 뜨겁고 화려한지, 오히려 진짜 여름보다 더 아름다운 날씨로 젊었을 때보다 더 정열적이고 아름다운 중년여성과 같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이렇게 러시아에서는 중년의 여성에게 “당신은 지금 바비레따에 살고 있군요”라고 하면 비록 젊지는 않지만 아주 화사하고 매력적인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최고의 극찬인 셈이다.
 <바비레따>는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중년여성들에게 그대들은 아직도 아름답고 열정을 내뿜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용기를 주기 위해 시작됐으나, 작품이 진행되면서 중년여성 뿐만 아니라 청소년층, 중년 남성 등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에게 어필되면서 일상을 살아가면서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 서로를 위로하고 기운을 북돋을 수 있는 작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11월 10일 현장을 찾았을 때도 중년의 여성뿐 아니라 젊은 학생과 커플, 양복을 입고 온 남자, 엄마 손을 잡고 온 어린 아이들까지 관객층은 다양했다.

 



 이번 공연에는 특별히 워크샵에 참여했던 일반인들도 출연진으로 참여했다. 주최측은 보다 적극적인 관객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공연 전에 별도의 워크샵을 진행했다.
 김세림(24세, 학생)씨는 “춘천아트페스티벌에서 <바비레따>를 보고 너무 감동받았다. 평소 그냥 아줌마라고 생각했던 분들이 <바비레따> 안에서는 여자로 보였고, 살아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도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었다. 당시에는 춘천에서 워크샵을 진행했었는데 워크샵에 참여하려고 서울에서 춘천까지 다녔다”라면서 <바비레따>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자신을 코코(45세, 대학강사)라는 예명으로 불러달라던 한 분은 “우연히 워크샵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 때 춤 좀 즐겼던 몸을 기억하고 싶어서 참여했다”라며 “처음 워크샵 에 참여했을 때는 부끄러워서 잘 못 움직였는데 지금은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위한 움직임이 아닌 나를 위한 움직임이라고 생각하니까 아무렇지도 않다. 그리고 선생님이나 같이했던 친구들이 저보고 많이 변했다고 하는데 저는 변한 것이 아니라 감춰져 있던 제 내면이 워크샵과 공연에 참여하면서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친구의 추천으로 함께 참여했다는 조은비(22세, 학생)씨는 “낯선 사람을 대하는데 있어서 항상 배타적이었고, 그래서 처음 워크샵에 참여했을 때도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워크샵과 공연에 참여하면서 그런 부분이 많이 해소되었고, 일상생활 속에서도 낯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조금은 편안해 졌다”라면서 밝게 웃었다.
 그녀들은 아마추어로 이 공연에 참여했지만 공연 전 몸을 풀고 리허설을 하는 모습은 마치 전문 무용수들처럼 보였다.
 ‘스튜디오 다락’은 <바비레따>를 위한 공간이라고 할 만큼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극장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입구 한 쪽에 마련되어 있는 간단한 다과와 차였다. 대부분의 공연들이 공연 전 무대의 막을 내리고 출연진들은 그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바비레따>는 출연진들이 들어오는 관객들을 웃는 얼굴로 맞으며 차를 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관객들은 편하게 신발을 벗고 들어와 따뜻한 차를 한잔 하면서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공연은 자연스럽게 출연진과 관객이 함께 춤추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직접 무대에 나가 춤추는 관객들의 얼굴에도, 객석에 남아 그들을 보며 박수를 치고 있는 관객들의 얼굴에도 행복한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그렇게 즐거운 춤판이 끝나고 배우 강애심은 자연스럽게 본인의 여행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그 공간에 있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배낭여행 중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낯선 여행자들로 낯설면서도 친근하게 각자의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는 공간으로 빨려 들어갔다. 출연진도 관객도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은 힘내라는 응원의 박수를 쳐주면서 그 공간은 한 층 더 따뜻한 곳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한바탕 춤판이 벌어졌다. ‘춤추는 여자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춤으로 풀어냈고, 그 뒤 자연스럽게 관객들을 무대로 이끌었다. 모두 의자에서 일어나 즐겁게 춤을 추고, 기차놀이도 하고, 서로 안아 주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언제 그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게 공연은 끝이 났다.

 



 춤계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공연을 커뮤니티 댄스라고 하지만 일부 관객들은 <바비레따>를 연극 공연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 공연은 ‘관객참여형 감성치유프로젝트’로 시작된 것이었고 춤 공연이라 부르든 연극 공연이라고 부르든 감성치유프로젝트로서 그 역할은 톡톡히 하고 있었다.
 yunjin114라는 아이디를 사용하고 있는 한 블로거는 "이 공연이 내 마음을 울렸던 이유는 다양한 얼굴들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본인이 행복해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배우들"을 만났고, "스스로 대견스러웠던 내 모습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공연 소감을 밝혔다. jinie0217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또 다른 블로거는 "오늘 하루 바비레따에 살다온 나. 그리고 살아갈 나이기에 연극은 감동적이었다. 그 열정, 그 느낌을 고스란히 가슴속 깊이 안고 돌아오는 길엔 구름 속을 걷는 것 같이 가벼웠다. 이 기쁨은 살아가는 힘이 되리라"라고 관람 후기를 적었다.
 현장에서 만난 이정아(48세)씨는 친구의 권유로 보게 됐다면서, “신선하고 새로워서 너무 좋았다. 주제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라고 하였고, 원숙영(41세)씨는 “작년에 보고 너무 좋아서 이번에 또 한다는 걸 알고 오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바비레따>는 공연자체가 관객들을 향해 먼저 손을 내밀어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공연 곳곳에서 그들의 친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춤추는 여자들’은 본인들의 아픈 상처를 먼저 꺼내 보여주었고, 춤판을 이끌어 갈 때도 자신들이 가진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기보다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움직임과 우스꽝스러운 막춤을 보여줬다. 티켓 가격도 감성 후불제로 진행되고 있다. 공연을 먼저 보고 본인이 감동을 받은 만큼 가격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이 또한 공연을 예매하기 전 과연 공연이 재미있을지, 티켓 가격이 적정하게 책정된 공연인지 고민하는 관객들에게 그런 고민하지 말고 편하게 와서 즐기라고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극장은 무대와 객석이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고, 무대가 높을수록 관객과 출연진들과의 거리는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관객들로 하여금 무대 위의 공간은 현실과는 분리된 공간임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바리레따>는 무대와 객석이 분리된 공간이 아닌 하나의 공간으로 출연진과 관객 모두 현실이면서 가상인 듯한 공간으로 안내해준다. 그러기에 공연을 통해 내면의 나를 만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바비레따>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있거나 여행을 가고 싶은데 지금 당장 떠날 여건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공연이다. 혹시나 이번에 공연을 놓쳤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아르코예술극장 스튜디오 다락에서는 12월 1일 막을 내리지만 12월 8일(월)부터 29일(월)까지 매주 월요일 강동아트센터 스튜디오 #1에서 계속될 예정이다.
 앞으로도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관객들의 니즈를 채워줄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공연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2014. 12.
사진제공_공연기획MCT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