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정유년(丁酉年) 새해 아침 한국 춤계를 바라보니
정직하고 건강한 춤문화 분출을 기대하며
장광열_<춤웹진> 편집장

 12월초에 서울안무가경연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5일 동안 아르코대극장과 소극장에서 20분 내외의 50편이 넘는 춤작품들을 보았다. 주최 측의 1차 심사를 거쳐 실연된 작품 중 8편 정도는 평균점을 상회했고, 이중 절반은 출중했다. 국제무대에 내놓아도 결코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경쟁력이 있었다.
 무용전공 대학생들의 쇼케이스 작품을 본 외국 심사위원들은 기발한 발상과 다양한 소재 선택에 대해 관심을 표명했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은 즉석에서 특별한 감각의 젊은이에게 모든 경비를 지원하겠다며 자신이 소속한 기관으로 초청연수를 결정하기도 했다.
 심사과정 내내 내가 주목했던 것은, 이미 보았던 작품들이 재공연을 하면서 그 완성도가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그랑프리‧ 심사위원장상‧ 평론가상을 수상한 작품은 물론 우수작들 대부분이 전작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새로 발표한 작품이 재공연할 기회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부족한 부분들이 보완되면서 완성도가 높아지고, 이런 과정을 통해 경쟁력 있는 레퍼토리로, 하나의 ‘상품’이 되어가는 단계를 거치는 시스템이 결국 세계무대에서 한국 춤계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예년에 비해 독립 안무가들을 중심으로 우수작들이 여러 편 창작되었고, 그동안 공연했던 작품들의 유통기회가 국내외로 확대된 2016년 춤계를 되돌아보면서, 그동안 국내 춤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던 “뛰어난 무용수는 많은데 유능한 안무가는 없다”라는 지적이 어쩌면 이제는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공연은 많은데 정작 좋은 작품을 만나기가 힘들었고, 비평가들과 기획자들 사이에 “공연을 보러가기가 싫다” “공연장에 가기가 두렵다”는 자조 섞인 말이 흘러나왔던 2015년과 비교했을 때 2016년 우리나라 춤계는 춤 작품의 질적인 면에서는 확실히 앞으로 나아갔다.
 이런 기운을 받아 새해 춤계는 양보다 질이 담보되는 한해가 되길 기대해 본다. 해외공연의 경우도 무조건 나가고 보자는 것이 아니라 공인된 공연장에서, 양질의 관객들 앞에서, 어떤 반향이 있는, 그런 진출로 이어지길 소망해 본다. 축제나 지원기관, 기획사 모두 이제는 양보다는 영양가 있는 국제교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춤 공연이 다양한 공연장으로 그 영역을 넓히고 있는 흐름도 새해에는 주목해야 한다. 무용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아르코‧대학로 예술극장과 춤전용 극장 외에도 문화역서울 RTO극장, 논현동 플랫폼-엘, 양평동 인디아트홀 공 등의 이색공간과 갤러리, 스튜디오, 그리고 가변형 공간에서의 춤공연, 장소특정형 공연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들 공간에서의 작업에도 비평가와 저널리스트들의 눈길이 미치기를 기대한다.

 

 



 12월 중순을 넘어서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서울문화재단은 지원 심의위원 추천과 공개모집 등으로 북새통을 떨었다. 심의위원 추천을 의뢰하는 공문과 전화를 받아본 것이 도대체 얼마나 되었을까 기억이 안날 정도로 지원기관들이 춤현장과 소통하는 모습을 재현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서울문화재단 등 공공기관의 지원정책을 논할 때 심의제도 운용과 심의위원 선임 건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된 춤 지원정책을 둘러싼 문제점의 핵심에는 심의위원 운용이 자리 잡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런 제안들이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실추한 기관의 이미지 쇄신용이란 우려도 있지만, 뭔가 바꾸어보려는 긍정적 변모가 아닌가 하는 기대도 갖게 한다.
 1년에 한차례 있는 정기공모 심의는 모든 심사위원들이 같은 무대에서 똑같은 공연을 보고 우열을 판가름하는 경연대회의 심사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따라서 심의위원 선정 역시 그 충족요건이 달라야 한다. 서류에 의해 심사를 해야 하는 정기공모 심의위원들은 최소한 공연장의 특성이나 공연제작 경비에 대한 인식, 지원자의 작품성향이나 그동안의 예술적 성과 등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국제교류 부문의 심사라면 또 다른 자격 요건이 필요할 것이다. 춤 교육과 창작 작업에만 몰두하는 실기전공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이 같은 요건을 갖춘 인물을 찾아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그것을 운용하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다. 지원정책을 주도하는 해당기관이 가장 공들여야 하는 일은 결국 어떤 사람을 선임하느냐이다. 지원정책의 성패는 일단 여기서 갈라진다. 지원정책을 향해 현장의 예술가들은 소리 높여 말한다. “우선 잘 뽑아라”라고. 새해에는 전문성을 갖춘 심의위원들이 공정한 심사로 지원정책의 효율성이 높아지는, 지원정책의 변모된 모습을 기대한다.
 지원기관들은 예술가들에게 돈만 쥐어주는 것이 지원정책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유능한 무대 스태프 지원 역시 공연예술단체들의 창작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 무대 기술 스태프들의 질적 저하와 인건비 상승은 공연단체들에게 공연 제작비에 대한 적지 않은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만큼 유능한 기술 스태프들을 공공 공연장에 상주시켜 예술가들의 창작 작업에 협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돈만 준다고 해서 예술지원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지원정책의 성공은 그 내용 못지않게 타이밍이 중요하다. 새해에는 매년 돈만 주고 그치는 1회성 지원이 아니라 성과가 뛰어난 아티스트에게는 후속 지원을 하고, 신작 위주 지원에서 탈피하고, 우수작의 경우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경쟁력 있는 레퍼토리로 정착시켜 가는 단계별 지원, ‘과시형’의 정책이 아니라 ‘실용성’을 뒷받침하는 정책 운용으로의 변신도 기대한다.

 

 



 무엇보다 새해에는 국정농단 사태, 예술검열, 김영란법 시행으로 수면 위로 부상한 한국 춤계의 고질적인 병폐와 잘못된 행태와 관행들이 대수술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공연과 춤 지도를 빌미로 제자들과 젊은 무용인들을 자신의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는 지도급 무용가, 박사학위 입학에서 취득까지 1억 원이 넘는 돈이 든다는 실상의 중심에 서있는 일부 대학 무용과의 석·박사 학위장사, 병역특례 혜택과 직업무용단 입단, 국제 발레 콩쿠르 출전을 둘러싼 추악한 실상, 언론의 기본 책무인 감시기능을 상실한 채 제대로 검증도 안 된 작품과 아티스트들의 홍보에 열 올리며 귀한 지면을 낭비하는 일부 언론과 저널리스트들, 아직도 주례사 같은 비평을 남발하는 일부 평론가들의 잘못된 행태도 사라지길 기대해 본다.
 과거 정부가 바뀔 때마다 자행된 문화예술계의 코드인사, 정권유착에 대해 이를 경계하기 위한 예술가들과 관련 공무원들 스스로의 도덕적인 재무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대한민국의 예술가와 문화예술계에 던져진 수치심, 문화융성에 대한 슬픈 자괴감은 윤리 재무장과 건강한 생태계 조성을 염원하는 긍정적 의지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새해에는 무폭력 촛불시위로 이어지고 있는, 정의와 정도를 갈망하는 그 염원이 대한민국의 춤계에도 세차게 분출되어, 건강한 춤 문화 형성으로 이어지길 소망해 본다. 

2017. 0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