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신년사
이순열_<춤웹진> 발행인



삶의 한 복판 깜깜한 숲속에서

우리는 오레이바시아의 축제를 꿈꾼다

 

 


 “삶의 한 복판 깜깜한 숲속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단테의 《신곡》(Divina Comedia)은 그렇게 시작한다. 길을 잃고 헤매던 중 그는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깜깜한 밤의 세계, 지옥의 구석구석을 여행하게 된다.
 우리도 지금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 헤매고 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까 싶은,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해괴한 일들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닥 충격의 홍수가 휩쓸고 지나가는가 싶으면 미처 정신을 가다듬기도 전에 새로운 일이 터져 TV를 연일 그 분탕(糞蕩)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실체도 없는데 분별없는 자들이 의혹만 부풀려 모함하면서 국정을 어지럽히고 있다고, 봉건주의 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뻔뻔스럽게 우겨대던 황당한 일들이 실체로 드러난 참담한 광경을 목격하면서 우리는 기가 꽉 막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채 공황장애의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온 나라를 분탕질해서 쑥대밭으로 들쑤셔 우리를 이렇듯 공황장애로 휘몰아 놓고, 이 막장 드라마를 눈부시게 성공시킨 불세출의 명감독께서는 난데없이 온 천지에 촛불춤이 넘실거리자 잠깐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가 다시 제 정신을 차린 듯하다. 손에 걸리는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워 소화불량으로 끽끽거리면서도 희희낙락, 기세등등의 태평가에 취해서 아직도 해롱거리고 있다.
 “보라. 우리의 뮤즈 유라 공주는 알렉산더 대왕의 부체팔루스 보다도 더욱 늠름한 페가수스의 등에 올라 위풍당당하게 올림픽의 금메달을 향해 거들먹거리고 있느니, 누가 감히 그 앞에서 얼쩡거리려 하느냐.” 그것이 우리의 친애하는 순실 감독의 태평가이다.
 거칠 것이 없었던 이 폭식(暴食) 잔치는 어느 날 일진이 사나워 강아지 때문에 다투다가 마각이 살짝 드러나자, 비틀비틀 스텝이 꼬였는지 귀신이나 알아들을 수 있는 ‘공항장애’니 ‘심신회폐’니 어쩌구 하는 야릇한 증상을 호소하면서 입을 봉창하고 순실 감독은 이 충격적인 희극의 본질을 얼버무리려 하고 있다.

 몬도 까네(Mondo Cane)라는 기록영화가 있었다. ‘개같은 세상’―좀 더 쉽게 말하면 ‘개판’이라는 뜻이다. 인간이 저지른 별의별 끔찍한 일들, 아무리 천년 굶은 아귀(餓鬼)라 해도 이런 것까지 먹어 치울 수 있을까 싶게 게걸스러운 아수라들의 모습을 너무도 생생하게 보여주어 온 몸이 오슬오슬 떨렸던 기록영화였다. 그리고 그 공포의 충격파가 온 세상을 강타하면서 그 기록영화는 이른바 대박이 터졌다. 그러자 그 후로 몬도(Mondo) 시리즈가 잇달아 등장했고 그 홍수가 세상을 어지럽혀 왔다.
 그러나 으스스 몸을 떨면서 그 엽기적인 기록물을 즐긴 사람이라 한들 그 충격의 기록물(Shockumentary)의 백미편이 라이브로 우리 눈앞에서 이렇듯 생생하고 이렇듯 충격적으로 펼쳐질 줄이야 누가 상상인들 했으랴.
 단테가 아홉 겹으로 굴러 떨어졌던 지옥, 굽이굽이 함몰해가는 그 지옥이 얼마나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곳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이곳에 들어서는 자, 모든 희망을 버릴 지니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지옥의 문을 거쳐 흉징(凶徵)의 얼음공주가 얼어붙어있는 빙지옥의 마지막 관문에 이르기까지 온갖 형벌에 주리를 틀리는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감내해야 하는 역정은 참으로 험난하다. 그럼에도 단테에게는 한 가닥 희망이 있다. 그의 안내자가 베르길리우스였기 때문이다.
 그는 전원시(Eclogue) 4편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시칠리아의 뮤즈들이여,
이제 우리 좀 더 드높은 노래로 날아오르자.
꾸마 무당들의 낡은 시대는 저물었으니
빛으로 가득한 새 시대의 여명이 밝아 오겠구나.


 단테는 깜깜한 숲(selve obscura), 지옥에서 그 여명을 꿈꾸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첫사랑이며 그에게 구원(救援)의 여신이자 구원(久遠)의 여신인 베아트리체의 인도로 빛으로 가득한 천국(Paradiso)의 정상인 엠피레우스(Empyreus)에 이르게 된다.
 아직도 우리는 깜깜한 숲속에 갇혀있다. 그리고 마녀의 주술에 걸려 “모릅니다” “아닙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후피족과 내시들의 어두운 장막이 도처에 무겁게 드리워져 있다. (Hoopoe와는 이름만 비슷할 뿐 전혀 닮지 않은 그리고 Harpy와는 같은 파의 괴물인 Hoopy(厚皮)에 관해서는 할 이야기가 너무 많지만 다음 기회로 미룬다.)
 그러나 우리에게인들 엠피레우스가 어찌 없으랴. 우리에게는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 있지 않은가. 그 촛불이야말로 마녀의 성을 깨뜨리는 영험한 빛, 엠피레우스의 빛이다. 그 빛에 취해 우리는 좀 더 밝은 빛을 찾아 춤을 추면서 드높은 산에 오르는 오레이바시아(oreibasia)의 축제에 몸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바커스로부터 도취의 지팡이 티르수스(Thyrsus)를 빼앗아 빛이 넘실거리는 엠피레우스의 정상에 올랐을 때 우리 모두 손에 손을 맞잡고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환희, 너 신의 불꽃, 낙원의 딸이여,
저의 부드러운 날개가 펼치는 곳
온 인류는 형제가 된다.
(Freude, schöne Götterfunken
Tochter aus Elysium
Alle Menschen werden Brüder
Wo dein sanfter Flügel weilt)


 엠페레우스의 빛과 함께 여러분 모두에게 새해 새날의 아침이 눈부시게 밝아오기를! 

2017. 0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