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오롯 토론회 ‘춤, 상생을 꿈꾸다’ 현장에서
트인 물꼬 키워 춤계 적폐 청산 앞당겨야
김채현_춤비평가

 3월 18일 오후 서울문화재단 대학로 다목적실에서 ‘바람직한 예술생태계를 위한 생각과 실천을 공유하는 무용인 네트워크’인 무용희망연대 ‘오롯’의 토론회 ‘춤, 상생을 꿈꾸다’가 5시간 동안 열렸다.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정부의 블랙리스트 작업이 의혹으로 제기되자 문화예술계는 책임자 처벌 등 대책을 요구하였다. 국정농단을 겨냥해 촛불 집회가 갓 출현하던 11월 초 이래 춤계는 여러 시국선언, 국정파탄 책임자 처벌 요구 광화문 1인 춤판, 블랙텐트 공동 참여 등으로 행동을 펼쳤다. 2016년 11월 3일~2017년 3월 9일 광화문에서 19차례 열린 블랙리스트 반대 무용인 1인 시위에 연인원 40여 명이 참여하였다. 그리고 2월 27일~3월 2일 블랙텐트 시즌2 무용프로그램에 16작품이 연인원 81명 무용인의 힘으로 무대에 섰다.
 이 과정에서 춤계 쇄신을 촉구하는 여론도 함께 표출되었고, 이를 수렴하여 무용희망연대 오롯이 결성되었다. ‘춤, 상생을 꿈꾸다’의 첫 번째 이야기로서 채택된 주제가 ‘검열장막과 춤’이라는 점은 오롯의 결성에 블랙리스트 국정농단이 중요한 계기였음을 말해준다. 아울러, 바람직한 춤 생태계를 위해 무엇보다 블랙리스트의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는 뜻도 읽혀진다.

 

 



 촛불 집회의 도도한 대하(大河) 속에서 3월 10일 국정농단을 저지른 사유로 헌법재판소는 탄핵을 인용하고 대통령을 파면하였다. 이에 따라 현직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이 되었다. 탄핵 인용 사유로 등장하지 않았어도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은 국정농단에 속하며 특검의 수사에 의해 그 실체가 일부 밝혀졌었다. 블랙리스트에서는 순수예술계뿐만 아니라 출판, 영화와 대중문화 분야까지 엄청난 수의 문화예술인들이 불온성향자로 분류됐었다. 블랙리스트를 기준으로 문화예술 지원 및 작품 활동에 제약을 가한 이른바 블랙리스트 국정농단이 문화예술계를 제멋대로 교란시키고 구시대로 후퇴시킨 중대한 사안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2014년 10월의 광주비엔날레 걸개그림 〈세월오월〉, 2014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의 영화 〈다이빙 벨〉, 2015년 11월 국립국악원 기획 공연작 〈소월산천〉은 박근혜 정부에서 있은 사전 예술 검열이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피해를 가한 작품 사례들이다. 2013년 9월 단 하루 만에 상영이 중단된 〈천안함 프로젝트〉의 경우는 그 전주곡이었다. 이 정부 내내 문화예술계를 휘저은 블랙리스트가 공공연한 비리였음에도 주모자를 비롯한 그 실체는 풍문 형태로나 전파되고 있었다. 마침내 국정농단이 마각(馬脚)을 드러내자 블랙리스트도 별 도리 없이 그 정체를 드러내었다.
 2월 말 한국예술위원회가 블랙리스트에 대해 뒤늦게 변명 가까운 사과를 했어도 블랙리스트 국정농단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그 해악의 그림자는 짙다. 게다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술가들을 정치적 압력이나 검열로부터 보호할 명분으로 '예술가 권익보장법'이라는 명칭으로 표현의 자유 침해 행위 등을 처벌하는 입법안을 마련한다는 소식 앞에서는 실소(失笑)부터 금할 수 없다. 법이 없어 블랙리스트 국정농단이 자행되었을까. 그 같은 입법안이 거론되기 전에, 원칙적으로 우리 헌법 제2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은가. 국정농단에서 여실히 보이듯이 대통령부터 헌법 준수 정신의 실종이 문제이다. 민주주의의 룰을 지킬 의사가 없는 자에게 민주주의란 기껏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에 지나지 않는다.
 블랙리스트 국정농단의 해소를 위해서는 우선 그 진상부터 철저히 규명되어야 하고, 그래서 블랙리스트의 주모자가 밝혀져야 한다. 특검이 법정 기한으로 인해 수사 활동을 어쩔 수 없이 접은 후에도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태의 주모자와 수행자의 윤곽이 드러나는 가운데 심지어 전직 대통령의 고교 시절 교사까지 블랙리스트 작성 배후로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이쯤에선 누구나 블랙리스트의 몸통이 당시 대통령이라는 심증을 갖기 마련이다. 이런 정황과 명단의 규모로 미루어 블랙리스트는 박근혜 정권이 대통령부터 문화예술위 일선 실무자까지 공공기관을 동원하여 문화예술계에서 전방위적으로 자행한 초대형 조직 비리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리스트 자체를 넘어 정부 문화 정책과 예술 현장을 증언하는 폐기물로서 그 실체가 재정리된다.
 이제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을 파면시킴으로써 우리 사회가 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비등(沸騰)한다. 국정농단을 직시하며 타오르던 변화의 기대감에 탄핵 인용은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변화를 향한 기대감에서 춤계도 예외가 아니다. 블랙리스트로 인한 지원 배제와 표현 억압의 농단이 춤계에서는 어떤 경로, 어느 규모로 저질러졌는지 밝혀져야 한다. 국정 농단과 블랙리스트를 딛고 이후 춤계의 쇄신을 갈구하는 무용인들의 여망은 오롯의 움직임으로 표출되었다.

 

 



 오롯의 토론회 ‘춤, 상생을 꿈꾸다’는 무용인 예술행동 경과보고, 블랙리스트 국정농단의 실상을 밝히고 진단하는 다섯 발제에 이어 난상 토론을 열었다. 첫 토론회는 물론 앞으로 연속될 토론회를 여는 장의 구실을 하지만, 춤계의 건강한 생태계를 국정의 흐름과 연결해서 진단하는 실천적 모습은 그 자체로서 의의가 깊다. 이번 토론회를 준비한 오롯의 노고는 길게 기억되어야 한다.
 이번 토론회의 주제는 ‘검열장막과 춤’이고 토론회도 전반적으로 블랙리스트에 초점을 두고 진행되었다. 블랙리스트의 실상을 짚은 다섯 발제에서는 난상 토론을 위한 밑그림이 제시되었다. 블랙리스트는 검열로 직행하는 장치이자 정권 보위를 위해 표현의 자유를 짓밟은 사건이며 이로 인한 문화예술계의 적폐 청산이 시급하다는 진단이 제시되었다.
 난상 토론에서 제시된 주제는 여럿이었다. 블랙텐트 활동 종료 이후의 후속 작업, 춤계 내부의 검열 습관, 춤계 생태계 강화를 위한 대책, 춤계의 적폐 청산이 그것들이다. 블랙리스트 자체에 머물기보다 블랙리스트의 폐해를 지목하는 이러한 주제들은 춤계에서 블랙리스트 이후의 쇄신책을 요구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전부터 쇄신책을 요구하는 춤계 흐름은 상존해왔었으며, 블랙리스트 국정 농단은 이 같은 흐름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첫 토론회에서 결론이 내려질 계제가 아니었지만, 난상 토론을 이룬 여러 주제들은 미래지향적으로 말해서 춤계 적폐 청산으로 집약된다. 춤계 적폐 청산에 관해 여론이 끊이지 않는 현상황에서 춤계 적폐부터 정리 분석하는 것이 수순일 것이다. 다양한 내용으로 분출하는 적폐 청산에 관해 이번 같은 난상 토론은 향후에도 더 열려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참고로, 춤계 여론을 수렴하여 《춤저널》(2016년 12월)은 ‘촛불 민주주의 시대, 춤계 현안과 대안을 말한다’ 권두특집을 마련한 바 있다. 여기서 문화예술행정·문화예술위, 문예진흥기금 및 공공 지원금, 공공무용단, 공공 무용제전 등 춤계 내 제도적 장치들의 혁신이 적폐 청산 차원에서 개진되었고 춤계 자립 대책과 춤예술 현장 협의체의 필요성이 아울러 제시되었다.
 250 무용인 시국선언, 114 무용단체 시국선언, 춤비평가 시국선언 등 세대와 직능을 불문하고 춤계는 지난 가을에 박근혜 정권의 적폐 청산에 한 목소리를 내었다. 이 목소리들을 모아 새 물꼬를 트는 작업을 오롯은 이번 토론회로 개시하였다. 그러나, 적폐 청산은 일부 무용인들만의 과제는 아니며, 특히 무용인들의 권익을 위해 앞장서야 할 책무가 있는 한국무용협회 등 협회들도 공공성 차원에서 나름 대안을 실행하는 일 등 과제가 적지 않아 보인다. 거꾸로 말해, 정부 지원을 받는 협회들이 공익과는 동떨어졌다는 인상을 주는 것 또한 일종의 적폐인 것이다.

 

 



 춤계 적폐 청산이 하루아침에 이뤄질 것으로 믿을 사람은 없다. 청산 과제를 도출하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려는 의지가 관건이다. 지난 몇 달, 헌정(憲政)이 농단된 것을 목격하며 춤계를 보호 육성할 당사자는 결국 무용인 자신임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춤계의 합심 협력으로 청산의 그날은 앞당겨질 수 있다. 오롯이 터놓은 물꼬를 키우는 후속타가 춤계에서 잇따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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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7. 04.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