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무형문화재 제도 운용, 문제있다
무형문화재 지정제도로 닫혀버린 우리춤
김채원_춤문화비교연구소장
 얼마 전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의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개정안은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 중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보유단체, 전수교육학교 등의 추천을 받은 이수자에게도 경제적 지원을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무형문화재 전승에 앞장서고 있는 이수자가 경제적 문제로 본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지원하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로 인해 추천받으려는 또 다른 폐해가 발생할 소지가 많을 뿐 아니라 너도나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춤에 한정하여 이수자가 되려는 지금까지의 풍토를 부채질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에 개정안 통과를 마냥 기뻐할 수는 없다. 

 



 우리 민족이 대대로 이어온 춤. 한반도라는 작은 땅덩이 안에서도 무척 다양한 춤들이 전개되었음은 ‘가무악을 즐겨온 동이족’이라는 여러 고서의 내용에서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궁중과 민간으로 분류하든, 지역간으로 분류하든 다종다양한 춤들이 우리의 삶속에서 기쁘거나 슬프거나 괴롭거나 분노할 때 추어졌다. 그러나 왜와 오랑캐의 무수한 침략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전쟁시기를 거치면서 우리춤의 대부분은 자취를 잃게 되었다.
 우리춤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춤추는 게 좋아서 춤을 추었을 뿐이었던 필자는 일본이나 중국의 춤을 접하면서부터 “과연 우리춤은 어떤 춤일까?”, “우리춤의 독자성은 어디에 있을까?” 하는 심각한 고민에 빠진 적 있다. 때마침 일본을 방문한 고 정병호 선생의 강연을 접하게 되었다. 선생은 ‘음양오행설’이나 ‘천지인합일설’ 등의 이야기와 함께 “우리춤의 특징은 어깨춤에 있다”고 강조하신바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어깨춤은 오히려 중국의 소수민족 춤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는 게 국제사회에서의 보편적인 통념일 것이다. 우리춤에서의 어깨춤. 그것은 대지의 기운을 받아 발현되는 어깨춤으로 그냥 어깨춤이라고만 하면 오해의 소지가 많을 것이다.
 과연 우리춤에서의 특징을 ‘어깨춤’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이것은 마치 “한국춤이란?”하는 물음에 <부채춤><승무> 등의 몇 가지 작품만을 떠올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필자의 생각으로 어깨춤은 동아시아 지역의 보편적 특성의 하나로, 각 나라에서 독자적 해석과 더불어 독특한 양식으로 표출되면서 춤문화의 다양성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게 정견(正見)이라고 본다.
 춤문화의 다양성, 그것은 한 나라 안에서도 지역별, 계층별로 풍성하게 전개되며 형성된다. 적어도 과거엔 우리나라도 그러한 재보(財寶)가 넘쳐났다. 우리는 근대화 이전까지만 해도 각 지역별 특색을 지닌 춤문화를 자랑하고 있었으나 근대화와 일제강점기의 문화말살정책으로 있는 것조차 변형되거나 사라지고, 해방 후 다시 복원되는 과정에서 원형을 살려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욱이 교통문화가 발달하면서 지역적 특색보다는 보편적 형식을 따르게 되면서 지역경계가 무너진 춤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오늘날 중앙집권형 문화예술이 힘을 갖거나 높이 평가를 받으면서 지역에서 활동하던 무용가들이 서울로 몰려들게 되었고, 다소 투박하고 촌스러울 수도 있는 지역의 화려하지 않은 우리의 춤문화는 원래의 색을 잃어가면서 보편적인 춤문화에 편승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그리하여 어떤 춤이든 ‘그 춤이 그 춤’ 같은 색을 지니게 된 것이다. 모두 아름답고 기교적으로 훌륭하다. 하지만 향기 없는 꽃처럼 심심하기만 하다.
 80년대 이후로 대학에서 배출된 무용인이 급증하고 알려지지 않았던 지역의 원로춤꾼들을 발굴해 내면서 춤의 종류는 다양해졌으나 형상적 색채는 그 종류만큼 다양하지 않다. 한국의 이곳저곳에서 열리는 전통춤판이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한결같이 같은 모양새의 춤들로 꾸며진다. 전통춤 보존을 위해 지정한 무형문화재 지정제도가 낳은 폐해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수자가 되기 위해 문화재로 지정된 춤보존회로 모든 무용인들이 몰린다. 그러다보니 모두 같은 춤을 출 수밖에 없으며, 춤태도 같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문화재로 지정되지도 않고 어느 류파에도 속하지 않은 다양한 춤들이 지역에 남아있으며, 지역춤판을 채우고 있는 원로 선생들도 많다. 그러나 이들의 춤은 설자리가 없다. 왜냐하면 지역의 원로무용가들은 대학과는 연고가 없이 60~70년대 학원을 중심으로 활동을 해 온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들의 춤은 신무용과 전통이 혼재된 춤으로, 소위 전통춤을 소재로 한 신무용계통의 춤을 추고 있다. 춤평론가 김태원은 이를 ‘신전통’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들은 정통적 뿌리를 내려 온 전통춤의 어느 류파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무용류파로 분류하고 있지도 않다. 때문에 한국춤의 장르 및 류파에 관련한 연구가 명백하게 정리되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이것이 이루어질 때 이들에 대한 자리매김도 분명해 질 것이다.
 물론 이러한 춤 이외에도 전통춤 가운데 많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쉽게 전수의 욕심을 내지 못하는 춤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기생춤 계통의 춤에서 익숙해진 아름다움이나 고상함과는 다소 거리가 먼 듯한 투박하며 흙냄새 나는 춤들이 이에 속할 것이다.
 필자의 경험상, 올해 가을 한국문화의 집에서 무용평론가들이 벌인 춤판에서 접한 이동안의 <승무>와 대전의 소극장에서 만났던 심화영의 <승무>는 이매방류와 한영숙류에 익숙해 있던 우리에게 또 다른 신선함과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감칠맛과 담백함이 넘치던 고매한 춤에서는 볼 수 없던 과감함과 역동적 힘, 그리고 속세에 찌들지 않은 순결함으로 채색된 춤이었다.
 또한 많은 무용가들에 의해 활달하고 아름다운 춤으로 무대에 오르는 춤 가운데 최종실류 <소고춤>이 있다. 십이차농악에 토대하여 재구성한 독특한 소고춤이 어느덧 어여쁜 여인의 소고춤으로 변질되어 여기저기서 추어지고 있다. 어디를 가나 이 계통의 춤이 무대를 채우고 있어 식상함마저 느끼게 될 즈음 접한 김영희의 <고창고깔소고춤>은 잃어버린 어머니의 청국장을 맛본 듯한 감동을 주었다.

 



 고성오광대 이윤석의 <덧배기춤>도 마당의 열린 공간을 그대로 무대 위에서 재현해내듯이 자연스럽게 걸어 나와 춤타래를 풀어가는 호탕함과 열림의 미학, 그것은 영남춤의 멋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무대에은 영남춤의 멋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무대에서 변색되어 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진도북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고 박병천 선생의 <진도북춤>도 나름 세련된 맛을 지녔으나 그래도 토속적 냄새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무용인들이 펼치는 진도북춤은 알맹이 없는 땅콩이랄까, 그저 화려하고 이쁘게만 추어지고 있어 삶의 냄새가 배어있지 않다. 아름다운 인형들이 춤추는 느낌만이 존재할 뿐 진도의 북춤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색깔 없는 춤으로 변질된 듯하다. 진도의 춤을 다시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지역을 대표하는 춤을 내걸고 여러 무대가 펼쳐져 왔다. 그리고 지역적 특색을 잘 드러낸 춤들이 국가나 지방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남춤, 호남춤, 경기춤이라는 주제로 춤판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 차별성을 알아보기 힘든 게 대부분이다. 지역춤이라 표명할 때 그 지역만의 독특한 구조와 멋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사실 민속놀이나 민속예능에 속해 있는 춤에서는 지역적 특색이나 춤적 차별성을 쉽게 볼 수 있다. 앞에서도 예를 든 최종실의 <소고춤>이 그러했고, 이윤석이 <덧배기춤>이 그러하며, 이동안과 심화영의 <승무>도 독자적인 색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무용가들에 의해 연행되는 춤에서의 지역적 특색은 무엇을 보고 판단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애매하고 구분이 힘든 지경이다.
 현 무용계를 짊어진 무용가들 대부분이 대학의 무용학과를 나오고 국공시립 등의 무용단체에서 활동한 경력을 갖고 있다 보니 출신지나 사사한 선생이 누구이든 상관없이 춤이 동일한 색과 형태로 평준화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임은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적어도 그 지역의 특색을 드러내는 기술기법에 대한 고민을 심화하여 계승해나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재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한국 전통춤계를 둘러보면, 국가나 지방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춤들 대부분이 나름의 독자적인 색과 멋과 형을 지니고 있으며, 그로 인해 보존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형문화재 지정제도로 인해 춤의 다양성은 위축되고, 문화재로 지정된 몇몇 춤으로 한정된 이수자만 넘쳐나고 있다. 오죽하면 ‘실력으로 인정받은 이수자가 아니라 일정기간 수련과정을 마친 이수자’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이수자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무형문화재 지정제도로 인한 폐단을 여실히 드러내는 현상이다.
 1960년대 이후 잊히고 사라져가던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존 전승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된 무형문화재지정제도는 출발의 의도는 좋았으나 본래 다양하게 전개되었던 전통춤을 획일화시키는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다양성, 그것은 “서로 다른 것들이 서로 다른 모양으로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어도 지역적, 개별적 특색을 지닌 독자적인 춤들을 인정하고 보존, 계승하려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듯싶다.
 실제로 필자가 지방의 인간문화재선생에게 사사할 당시 타 지역에서 활동하는 다른 선생의 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을 직접 들은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자기춤 이외에는 춤이 아니라는 식의 어투를 종종 접한바 있다. 대체로 열린 공간에서 추어졌던 우리춤의 본질이 닫힌 공간으로 이전하면서 춤추는 사람의 마음 역시 닫아버린 것은 아닌가 싶어 씁쓸할 따름이다.
 전통문화의 풍요로움은 국가적 자산의 풍요로움을 의미한다. 우리의 전통춤은 일본의 부토나 가부키처럼, 중국의 경극처럼 세계인들 속에서 존중받는 우리춤의 위상을 높여낼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때문에 우리 고유의 춤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지역적 특색이 살아있으면 있을수록 글로벌화 할 수 있는 자산이 많아진다고 할 수 있다.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우리춤 안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시야를 외부로 돌려 세계 여러 나라의 춤에 대한 식견을 넓힌다면 우리춤이 지닌 다양성에 대한 해답은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무형문화재지정제도에 대한 재검토와 지역에 산발적으로 흩어져있는 전통춤 자산에 대한 복원 및 전승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며, 이수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좋겠지만 이수자 과정을 밟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가난한 재원들에 대한 지원책도 마련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이는 일부 문화재로의 편향을 방지하는 방편이기도 할 것이다.
 일본춤이 아니라 가부키나 부토가, 중국춤이 아니라 경극이 국제사회에서 높이 평가받듯이 한국의 전통춤이 어떤 이름으로 세계 속으로 뻗어나갈지, 우리 춤이 지닌 다양성을 회복함으로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열린 공간의 미학이라는 명제에 어울리게 우리춤에 복무하는 우리들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타자를 인정하는 미덕을 갖추길 기대한다. 그것이 우리춤이 지닌 다양성을 회복하는 기본일 것이다. 
김채원
한양대를 거쳐 일본오차노미즈여자대학에서 석·박사학위 취득, 이후 교육계에서 후진양성에 힘쓰면서 한일무용인교류와 전통춤 공연 등을 기획, 무용학이론 연구와 공연을 병행하고 있다. 『최승희춤-계승과 변용』, 『한국춤통사』, 『서울공연예술사』 등의 저서와, 『일본 현대무용의 개척자 이시이 바쿠의 무용예술』 등의 편저가 있다. 최승희와 북한춤, 남북한춤 비교, 한일춤 비교연구가 주된 관심사이다.
2017. 1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