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2019년 부산춤, 동향과 새 전망 (2)
  • 일    시
    2019년 12월 5일(목) 오후5시
  • 장    소
    민족미학연구소 사무실(부산 서면)
  • 사    회
    채희완
  • 참석자
    김경미 · 김옥련 · 김평수 · 송성아 · 정신혜

채희완(사회,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장): 이번 좌담 앞머리에서 ‘나의 이번 한 해에 활동은 이렇고, 단체의 활동의 여건은 이러저러 했다’고 말하는 것은 다음 이야기를 위한 것입니다. 이제 다음 이야기에서는 지금 여기 계신 분들의 춤의 정신이나 지향성이 무엇인지 여기서 한번 점검해 보고, 오늘 이 자리에 있지 않은 부산 지역 춤꾼들의 작업 내용들, 아까 잠시 나왔던 시립무용단과 같은 공공기관의 춤 활동들도 거론되면 2019 부산춤의 전체상을 그릴 수 있겠지요.

송성아(춤비평가): 다음 이야기에 앞서 채희완선생님 말씀에 대해 조금 부언해 보겠습니다. 현재 춤비평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선생님께서는 작년부터 끊임없이 ‘비평가들에게 비평을 할 때, 어떤 관점에서 춤 형식과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가, 그리고 작품을 어떻게 기술, 해석, 평가하는가’에 대해 답변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만약 이것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비평 역시 지극히 주관적인 인상비평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스스로를 반성하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작가들에게도 어떤 내용을, 어떠한 형식으로 구체화시키는가, 즉 방법론이 무엇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기대하십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작품의 의식이나 의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구체적으로 담아내는 형식 또한 중요하다고 봅니다. 즉 김평수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의식적인 면도 다 좋으나, 그것을 넘어 작품은 작품 그 자체로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평가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점에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위해서 어떻게 형식과 내용을 구축하는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김옥련발레단 발레컬 〈운수좋은 날〉




채희완: 그래서 2019년도 부산 지역 춤의 동향이나 경향을 이야기할 때, 춤이 공연에 이르기까지 한 여건들, 환경들, 조건들, 가령 지원금문제라든지, 단체 활동의 기획문제라든지, 또 상주단체의 체제라든지, 유통통로 확보문제라든지 이런 정황을 먼저 얘기한 다음에는 그런 속에서 나타내고자한 춤의 실질 내용이 과연 무엇인가를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보고자 한 것입니다. 주변적 환경이 춤을 낳기는 했지만, 실제로 중요한 포인트는, 작품 속 창작자의 발언이라는거지요. 말하자면 이것은 작품론, 작가론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런 작품이 곧 2019년 부산성이다, 라고 주장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여러분들 제각기의 활동을 모아보면, 그것이 곧 2019년 부산 춤의 동향이라는 것이라 할 만하다고 자긍심을 돋우고 싶습니다. 영남춤은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고 주장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활동 자체가 다 모두어지면, 2019년도에 부산에서의 춤은 이런 경향을 띠고, 이런 흐름 속에 있었다는 알 수 있지 않나 싶은 거지요. 그래서 앞에서 여러분의 개인 활동과 단체 활동 작품을 이야기 해보자고 한 것입니다. 아까 김옥련선생한테 이야기 했듯이, 오랜 동안 발레 활동을 하면서 중간결산으로 올해 나는 무엇을 지향했다는 것을 밝히면서 자기 춤 내용도 이야기를 하고, 자기주변의 부산지역의 춤과도 비교를 한다면, 그리고 나아가 이를테면 수원 지역의 발레와도 견주어 보면서 이야기를 하한다면..

송성아: 저는 상반기에, 조선통신사를 다룬 국립부산국악원 정기공연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채희완: 그 얘기도 좋겠네요.

정신혜(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 그 작품은 조선통신사 사업에 앞장서 오신 시인 겸 소설가 강남주 선생님의 책 ‘유마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국립부산국악원 예술감독을 맡게 되면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무용단으로서는 여러가지 열악한 여건 상 어려운 것을 국립부산국악원에서는 얼마든지 해 낼 수 있는 여건이 되었던 것이죠. 이 작품을 5월에 하면서 저는 내년, 내후년 그리고 가능하다면 더 오래 동안 이 작품을 유지 발전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왜냐하면, 한일관계를 넘어 인류 보편의 평화와 상생을 위한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5월에 이어 내년 5월에 재공연을 할 겁니다. 그리고 이번 12월에 일본 도쿄에서 대사관, 문화원, 조선민단협의회 등과 만나 협의를 하여 가능하면 내년 7월 도쿄 공연을 추진하려합니다. 만약 성사가 된다면 이 작품은 현대의 조선통신사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내년 5월 국내 공연은 확정된 상태이고, 7월 일본과 9월 프랑스 파리 공연은 계속 연구하며 관련 국내외 기관과 협의하고 있습니다. 이 공연이 지역 무용계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그 질문은 한편으로 공공자원을 바탕으로 하는 국립예술단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고 보는데요, 저는 김평수선생님이 말씀하신 예술행동과 같고도 다른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것은 저항도 아니나 저항이 될 수 있고 행위가 아닌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춤과 음악을 통한 소통. 그런데 막상 공공단체에 들어와 보니, 모든 것이 더 어렵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공감하고 행복한 예술적 완성을 이루고 함께 나누는 것, 그리고 춤예술의 미래적 발전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송성아: 조선통신사 작품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요?

정신혜: 조선통신사는 역사와 소설을 기본 바탕으로 합니다. 그러나 문학작품의 언어적 표현과 무대에서 시간적 공간적으로 표현하는 공연예술은 근원적으로 매우 다른지라, 소설에서 주제와 동기부여를 기본 뼈대로 잡고, 나머지는 춤과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재해석했습니다. 일본 호넨지에서 발견된 동래의 무명화가 변박의 그림 ‘유마도’에 담긴 사람의 시간, 그것이 조선통신사의 자취이며 그것을 뒤따라가며 물음 속에 물음을 남기는 것이었습니다.

채희완: 이번 국립부산국악원 주최 영남춤축제의 기획공연이었던 영남춤100인전에서 100명이 춤을 추었습니다. 여기서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춤의 세계상은 무엇이었을까요?

송성아: 영남춤100인전의 참여 종목 중 국가무형문화재에 해당하는 것부터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궁중이나 관청 뜰에서 추어졌던 전정(殿庭)춤 계열로 〈학 연화대 처용무합설〉이 있었습니다. 작고하신 장사훈선생님은 궁중무에서 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하셨는데, 이번 공연의 경우, 기존 무보에서 정해진 것과 달리 다소간 작위적으로 박을 친다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이외 국가공식기구 중의 하나인 교방청에서 연희된 〈진주 검무〉가 있었습니다. 풍류방이나 기방과 같은 방안에서 시작된 춤은 한영숙‧이매방‧김숙자류의 〈살풀이춤〉, 한영숙‧이매방류의 〈승무〉, 한영숙‧강선영류의 〈태평무〉 등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한영숙류 〈태평무〉가 강세를 보였다는 점입니다. 들녘이나 마당와 같이 열린 공간에서 추어진 춤은 통영오광대의 〈문둥북춤〉과 고성오광대의 〈말뚝이춤〉이 각각 1회 공연되었습니다.
 한편, 시도지정문화재 중에서 전정춤에 해당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방안춤 계열로는 두 종목이 있었는데, 경남무형문화재 제21호인 〈진주 교방굿거리춤〉이 빈번히 공연되었습니다. 그리고 경기도문화재 제34호 〈향당무〉 중의 한 부분인 〈홍애 수건춤〉이 1회 공연되었습니다. 마당춤계열은 〈동래 한량춤〉, 〈동래 학춤〉, 양태옥류 〈진도 북놀음〉이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종목들은 국가지정 또는 시도지정문화재입니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통에 기본을 두고 창작 내지는 재구성한 경우로, 많은 경우 전통춤판의 레퍼토리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이것이 갖는 문제점은 다음 기회에 이야기 하는 것으로 하고, 먼저 방안춤에 해당하는 기방춤에 기반을 둔 것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기방 기본무에 해당하는 〈입춤〉에 기초하여 창작한 것입니다. 김진홍의 〈부산진춤〉, 엄옥자의 〈遠香之舞〉, 최희선의 〈달구벌입춤〉, 박재희의 〈가인여옥=부채입춤〉, 박경랑의 〈영남 교방청춤〉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고, 몇몇에 의해 소개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각종 〈살풀이춤〉을 변형한 것으로, 엄옥자의 〈통영 살풀이춤〉, 임이조의 〈교방 살풀이춤〉, 정 민의 〈교방 살풀이춤〉, 장유경의 〈扇 살풀이춤〉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 적지 않은 춤꾼들에 의해 공연되었습다. 세 번째는 각종 산조음악에 맞춘 것으로, 강태홍의 〈산조춤〉, 강성민의 〈아쟁산조춤〉, 정진욱의 〈영남산조춤〉이 몇몇 무대에 올랐습니다. 네 번째는 기생 놀이춤에 기초한 것입니다. 가장 많은 수의 춤꾼들에 의해 공연되었는데, 박경랑의 〈교방 소반춤〉, 권명화의 〈소고춤〉, 김묘선의 〈소고춤〉, 김평호의 〈남도 소고춤〉, 유은주의 〈십이체 교방장고춤〉, 배정혜의 〈풍류 장고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다섯 번째는 기생춤과 각종 〈한량무〉를 혼합한 것입니다. 이매방의 〈선비춤〉, 임이조의 〈한량무〉와 〈화선무〉, 황무봉의 〈양반춤〉, 최 현의 〈비상〉, 홍기태의 〈애련〉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 적지 않은 남성 무용수에 의해 추어졌습니다.
 다음은 전정춤으로 분류한 교방청 춤에 기초한 창작의 경우로, 김정란의 〈구음 검무〉가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마당춤의 하나인 무속 춤에 기초한 창작이 있었습니다. 김진홍의 〈지전춤〉, 박병천의 〈진도북춤〉, 김용철의 〈무당춤〉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고, 앞 두 작품은 여러 명의 춤꾼들에 의해 공연된 인기 종목이었습니다. 한편, 마당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향토춤에 기반을 둔 창작으로, 김인수의 〈영남 외북춤〉, 정신혜의 〈회회바람〉, 형남수의 〈우포 따오기춤〉, 김덕명의 〈양산 사찰학춤〉, 김성수의 〈울산 학춤〉, 최은희의 〈배김허튼춤〉 등이 있었습니다. 이들 모두 지역 색을 강조했지만, 그 특수성을 보여주는 것에는 일정정도 한계가 있었다고 봅니다. 앞서의 이야기를 종합해 해보면, 영남춤100인전은 여성적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기방춤이 강세를 보였습니다. 반면, 전정춤과 마당춤은 열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경미 〈소고춤〉




채희완: 〈영남춤 100인전〉이라 함은 영남지역 춤꾼 100인을 뽑아서, 전통춤, 창작, 신무용을 모두 아우르는 여러 종목을 추었다는 것입니까?

송성아: 네 그렇습니다. 이를 통해 현재 진행되고 좁은 의미의 한국춤의 현황을 두루 살펴 볼 수 있는 마당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채희완: 그렇다면, 영남 출신 춤꾼으로서, 부산이나 영남지역이 아닌 딴 곳에서 활동하더라도, 모두 포함한다는 것입니까?

정신혜: 네 그렇습니다.

채희완: 그런 의도라면, 무용학과에서 구분하는 좁은 의미의 한국춤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춤을 포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정신혜: 국립부산국악원의 정체성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송성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점은 1회, 2회 영남춤축제의 기획공연은 대체로 각각의 춤꾼들이 자신의 개인 춤판을 하듯 제 각각 발표회를 했습니다. 반면, 이번 3회 영남춤축제의 영남춤100인전은 20회의 춤판이 있었고, 각각 7-8명의 춤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로써 관객들은 보다 다양한 춤을 비교하면서 볼 수 있었고, 춤꾼들은 상호 경쟁하면서 보다 질 높은 무대를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 점에서 지역 춤계 성장에 기여한 바가 있다고 봅니다.

채희완: 그렇다고 할지라도, 영남지역의 춤꾼이 추는 춤이 꼭 전통춤이나, 신무용류나, 창작춤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기법의 토대가 재즈든, 발레든, 현대춤이든 간에 영남 지역에 춤꾼이라는 사람이라면 모두 출 수 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춤도 국립국악원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립은 나라의 춤인데, 좁은 의미의 한국춤에 국한된 것은 시대와 역사와 함께하는‘한국춤’이라는 미래의 지향성에 계속 문제를 낳고 있다고 봅니다.

정신혜: 저도 채희완선생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미를 잘 알고 있습니다. 100인전에 다양한 춤 장르가 모두 참여한다면 너무도 재미있는 춤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영남춤 100인전’을 제안하고 실행해 나가는 중, 첫번째로 받은 질문은 100명의 춤꾼이 있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제가 100인전을 10년동안 하더라도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 참여자격에 대해 논의했는데, 저는 영남지역에서 한국춤을 추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자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일이 태산이었습니다. 첫번째는 채교수님이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두번째는 영남지역 춤꾼으로 제한을 했지만,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춤이나 요즘 인기있는 종목에 지나치게 편중되었습니다. 세번째는 저의 스승이기도 한 고 이매방선생님과 고 강선영선생님 이후, 무형문화재보유자 지정이 지연되었습니다. 그 사이 문화재 지정 종목의 춤뿐 아니라 각지의 다양한 춤들이 생명력을 갖게 되었고, 자신의 춤을 찾으려는 노력이 커진 거예요. 송성아선생은 이것을 자기 창작이라고 하시는데, 스승의 춤을 모방 계승하는 데 머물지 않고 춤꾼 자신을 통해 거듭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 역시, 우리에게 남은 과제가 무엇인가? 되돌아봅니다.
 영남춤축제 폐막식 공연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아랫녁수륙재〉 보유자 석봉스님, 부산시무형문화재 제3호 〈동래학춤〉 보유자 이성훈, 부산시무형문화재 제4호 〈동래지신밟기〉 보유자 심지영, 부산시무형문화재 제10호 〈동래고무〉 보유자 김온경, 국가무형문화재 제6호 〈통영오광대〉 보유자 김홍종, 국가무형문화재 제21호 〈승전무〉 보유자 엄옥자, 국가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 보유자 이윤석, 부산시무형문화재 제14호 〈동래 한량춤〉 보유자 김진홍 등 선생님들이 공연을 했습니다. 이 공연을 보면서 저 혼자말로 ‘아 저분들이 안 계시면, 영남춤은 누가 끌고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남춤축제의 100인전은 잔치하는 마음으로 시작되었고, 성황리에 마쳤지만, 앞으로 여러 가지를 고민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많은 숙제를 남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채희완: 나는 조금 더 과도기가 필요하다면, 부산 출신의 온갖 잡무여도, 그가 잘 춘다면, 좋은 작품을 한다면, 공공기관의 축전에 끌어들이는 것이 한 과제의 방책이 된다고 봅니다. 양식이나 기법 상의 토대가 모던 댄스, 발레, 대중 댄스냐에 관계없이, 그것이 부산 스타일 내지는 부산적 정조, 부산적 이야기 거리나 심성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부산 춤으로 보아야 되지 않겠는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런 작품도 당연히 들어와 주면 좋겠다는 이야기입니다. 굉장히 해묵은 이야기이지만, 이 땅의 발레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한국적 발레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현대춤은 그런 고민이 조금 덜 한데, 한국의 현실을 이야기할 때에는 내용상으로는 한국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김평수선생이 하는 작업도 아직 한국춤이라고 하기에는 언어적 장벽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언젠가 어떤 공연을 보고, ‘공연은 좋으나, 앞날은 암담하다’고 했습니다(전원 웃음). 자기 몸 언어의 내용은 이건데, 구사하는 말이 자신의 말도, 우리의 말도, 이 시대의 말도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암담한 것입니다. 앞으로 발언을 못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참으로 역설적인 발언입니다. 내용과 언어(소통 매체) 사이의 문제는 참으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근본문제입니다만 여기서는 이정도로 유보하기로 하지요. 다만, 국립국악원에서 한다고 하더라도 부산국립국악원은 부산적 국립이라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부산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춤을 품속에 넣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원래 지향점이고, 최근의 경향이기 때문에, 김옥련선생이 한국인으로서 발레를 한번 해보자고 한다면, 발레적 언어를 가지고 한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이나 지향이 지금 부산이나 한국 땅의 것과 밀접하다는 것입니다.

정신혜: 제가 오늘 채교수님 말씀을 반영하여, 내년 사업을 기획할 때 투쟁하도록 하겠습니다(웃음).

채희완: 약간의 휴식을 갖겠습니다.




김옥련발레단 〈분홍신 그남자2030〉




채희완: (휴식 시간에 환담을 나누다가 신무용 이야기가 나옴) 신무용의 80%는 최승희에 의한 것입니다. 그것은 신파극, 신극, 신체시, 신소설과 비교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전통사회에서 근현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형태의 것입니다. 그것의 역사적 의의는 그때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기에 오늘날 어떤 작가도 이들 양식에 기반을 두고, 작업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독 춤만은 한동안 현대로 넘어가지 못하고 신무용이 1980년대 초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춤의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춤의 역사에서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왔다고 하였습니다. 한국춤도 현대시대의 춤으로 넘어오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것이 21세기로 들어서면서 오늘날에 신무용류로 다시 회귀하는 양상마저 보입니다. 특히 전통춤의 현대화라 하여 이것이 신전통춤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우는데, 신전통춤이라 함은 대개가 新신무용류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비참한 것입니다. 오늘의 한국문학이 현대문학이듯이 한국춤이 드디어 현대춤로 넘어왔다고 생각을 했는데, 실제는 그러하지 못한 채 그것이 주류를 형성하지는 못한 형편입니다. 다분히 회고, 복고적으로 많이 흘러가기 때문에, 전통춤이 되살아나는 것은 좋지만, 전통춤의 무엇이 되살아나야 하는가 했을 때, 신전통춤은 상당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굉장히 경계하는 것이고, 그래서 아까 ‘예술행동’에서 ‘그런 춤’을 추는 것에 강력한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오롯한 전통춤이 아니고, 제대로 된 창작한국춤도 아니고 그곳에서 추는 춤이 대개 타락한 신무용류의 춤이라는 점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아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용도폐기하거나 척결하고 말아야 할 춤이 왜 현실발언을 하는 이 자리에까지 올라왔는가 입니다. 오늘날까지 제가 과격합니다(전원 웃음).

자, 이제 문제는 문제대로 걸러내고, 성과는 성과대로 소롯이 담아내야 하지만, 조금 더 진취적으로 밝은 전망을 가지게 북돋우는 숨은 저력은 2019년도에 없었는가를 이야기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또는 희망사항이나 포부도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평수 〈필 때까지〉




정신혜: 지난해 제2회 영남춤축제에서 국립현대무용단과 발레 공연이 각각 1회씩 있었습니다. 이것을 준비한 기획자 김추자선생이 이후에 참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문을 열어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국립부산국악원이 되려면 전통적 범위를 넘어서 미래적 시각과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관의 성격이 조금은 보수적이지만 지역과 소통하고,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담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송성아: 부산 지역은 전통춤이 강세이고, 춤을 중심으로 한 국악원은 부산이 유일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지역의 자긍심이며, 그 중심에 국립부산국악원이 있습니다. 때문에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해서 오늘 이야기의 주된 지점도 국악원이 되는 것 같습니다.

김옥련(김옥련발레단 단장): 국악원 이외에 부산시립무용단의 역할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아쉬움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정신혜: 오늘 개개인의 활동이나, 단체의 활동을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선정은 짚고 가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선정방식에 많은 이의 제기가 있었으나 근원적인 문제가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채희완: 아직 예술감독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하던데, 그런가요?

송성아: 네 그렇습니다. 시립예술단 대표이사가 새롭게 취임하면서, 공석이 된 무용단 단장 선정을 위해 자문위원단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여럿을 추천하고, 토의를 통해 최종 2인을 선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용단원들과 함께 신작을 만들어 발표하게 하고, 평가위원단의 평가를 통해 최종 1인을 선정합니다. 한 분은 이미 11월28일-29일 공연을 했고, 남은 한분은 3월에 공연을 한다고 합니다.

채희완: 이런 절차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정신혜: 공개적인 공모 과정이 생략되고, 극소수의 자문위원회 추천만으로 후보가 선정되었다는 점입니다.(참석자 모두가 공감을 표시함)

채희완: 대전시립에서 단장을 뽑는 것과 유사하네요. 대전의 경우, 제가 심사하러 가기도 했는데요, 외부 심사위원들이 두 작품을 한 날에 보고 평가를 했었습니다.

김옥련: 부산의 경우, 하루에 두 작품을 나란히 평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분은 11월에 했고, 다른 한 분은 3월에 합니다. 해서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한가라는 의구심이 남았습니다. 두 작품을 하루에 모두 해야 객관적인 비교 평가가 가능하다고 봅니다(다소 시끄러웠지만 모두가 공감 표시함).

정신혜: 저도 전해 들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지역 무용가가 선정대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었습니다. 원천 배제 문제를 떠나서도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김평수(부산민예총 청년분과위원장): 지난 11월 공연의 경우, 제작비 3천만원 중에 의상비가 2천만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명도 후보자가 서울에서 데려왔다고 합니다. 결국 경연을 위해 후보자가 자기 돈을 더 썼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김옥련: 이것은 예술인의 피를 뽑아 먹는 처사라고 봅니다. 누가 예술가를 이용하고 희생시키고 있습니까

정신혜: 이러한 과정이 예술가들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거라 더 나은 방법은 없었던 것인지 참 의아합니다.

김경미(부산민예총 춤분과위원장): 우리가 장황하게 시립무용단 단장 선정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참 많이했습니디만, 이제. 문제의 핵심을 제 나름으로 추려보면, 다음 세 가지로 모아진다고 하겠습니다.
첫째, 시립무용단 단장 선정을 위한 공개적인 공모의 과정이 없어 지역출신자가 선정대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었다는 점,
둘째, 예비 후보 2인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비교 평가할 수 있도록 하루에 두 작품이 무대에 올라야 한다는 점,
셋째, 자문위원 선정 시 지역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덕망있는 분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김경미 〈춤추는 금어, 생(生)·동(動)〉




채희완: 부산무용단은 어쩌면 가장 유력한 부산춤의 공공 단체이기에 그럴수록 부산 춤예술가의 힘과 소망이 집결된 행정을 펼쳐나가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의 다가오는 새해의 희망사항과 포부를 들으면서 마무리짓도록 하지요.

김옥련: 춤계의 환경이 좀더 건강하고 투명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속에서 좋고 건강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지역 콘텐츠 발굴, 고전과 현대 장르의 융합차원에 밑거름이 되며, 세대 간의 문화격차가 큰 시대에 이를 화합하고 어울려 즐길 수 있는 공연의 마당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지역의 대표적 발레단체로 춤판을 개척하며, 발레STP협동조합 단체로서 수도권 발레단과도 활발하게 교류하고자 합니다.

채희완: 부산에서 발레 환경뿐만아니라, 춤예술활동의 환경이 나아져야 부산에서 좋은 춤이 나올 수 있는 기본 조건이되는 것이지요?.

김옥련: 네 그렇습니다.

김경미: 작품을 하는 동시에 생활까지 함께 하려고 하니 쉽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큽니다. 때문에 문화재단의 공모사업은 물론이고, 춤꾼들의 복지와 관련된 문제 전반에 대해 문화정책이나 문화행정적으로 계속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작가로서 작업을 한다기보다, 이제껏 춤을 춘다는 사실 자체에 너무 안주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송성아: 내년에 좀더 많은 춤의 현장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치열하고 바른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작가나 비평가는 결국 작품이나 글을 통해 평가받습니다. 서로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정신혜: 제가 오늘 마치 단체의 대변자처럼 많은 말을 했습니다. 밖에서 보는 기관과 안에서 보는 기관은 다릅니다. 무엇보다 공적 자금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책임감 있게 좋은 작품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춤단원들의 발전과 복지를 위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신혜무용단의 단원들이 저마다 개성있는 작품과 무대를 향해 갈 수 있도록 길을 열고 함께 하고 싶습니다.

김평수: 청년들과 관련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올 한 해 동안, 청년지원사업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마는 그것들을 감당할 수 있는 기획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청년기획자를 만들기 위해 많은 세미나를 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은 갑자기 각종 청년지원사업이 생겨나면서, 일정에 쫓겨 너무 찍어내듯이 공연을 막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성과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올 초에 오페라 하우스 건립이 뜨거운 화두가 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부산에는 청년들이 공연할 수 있는 소극장이 너무 없습니다. 대규모 객석을 가진 대극장이 아니라, 청년들이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소극장이 보다 필요하고, 이러한 공간 문제에 대한 해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끝으로 각종 문화예술관련 정책에 대해 한층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실현되는 내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채희완: ‘부산지역의 춤은 어떠한가, 또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를 현역의 활동 속에서 점검하면서, 한 해를 정리해 보는 자리였습니다. 오는 해는 이러한 문제들이 있으니까 좀더 과감히 돌파해 가면서 새로운 여건을 형성하게끔, 뜨거운 관심과 우호적인 분위기를, 사회에, 정부에, 시민에게 요구해보자는 것이 이 좌담의 의도였습니다. 오랜 시간 열성적으로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묵은 해를 씻어 보내고 밝고 환한 춤의 새해를 맞이하시길 빕니다.

2020. 3.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