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국립민속국악원무용단 〈춘향을 따라 걷다〉
판소리와 접목된 무용극, 향토적 소재의 레퍼토리 확충
장광열_춤비평가

 

 ‘춘향전‘을 소재로 한 무대예술 작업은 창극, 무용, 오페라, 연극, 뮤지컬,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시도되어 왔다. 잘 알려진 작품일수록 이를 소재로 한 창작작업의 어려움은 공연예술 부문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이미 작품의 줄거리를 알고 있고 한번쯤은 어떤 형태로든 극장 무대에 올라온 작품을 본 관객들에게 잠재적으로 남아있는 선입관과 비교의식은 창작자들에게는 부담감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라남도 남원에 베이스를 두고 있는 국립민속국악원무용단의 <춘향을 따라 걷다>(11월 6일, 국립민속국악원 예원당)는 ‘춘향전’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판소리 춤극‘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 남원이 바로 소설 ’춘향전‘의 본고장이고 이 지역이 판소리가 강세인 곳임을 감안했을 때 ’춘향을 소재로 한 판소리 춤극‘이 갖는 제작배경에도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국립민속국악원(예술감독 유영애) 안무자인 복미경이 안무를, 이재환이 연출을 맡은 <춘향을 따라 걷다>는 우선 원작과는 다르게 늙은 춘향이 바라보는 자신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시켜 나갔다는 점에서 여타 작품들과는 분명한 차별성을 보였다.

 



 ‘춘향전’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시간의 서사구조를 따라가지 않고 춘향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감정의 크기와 그 파장을 따라 작품을 구성하는 것은, 곧 고전적 텍스트를 재해석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에 따른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업은 그리 녹록한 것이 아니다.
 제작진들은 전체적으로 판소리 ‘춘향가’에 나오는 몇몇 대목을 소리로 접목시키고 새롭게 해석한 ‘춘향전’의 스토리 라인을 표출하기 위해 새로 음악을 작곡해 여기에 무용수들의 춤을 접목시키는 구성을 택했다.
 “사랑가” “쑥대머리” 등 작품에 사용된 3명 창자의 판소리는 극의 전개나 캐릭터 표출을 위해 적절하게 활용되었으며, 이정명이 작곡한 음악과 남원민속국악원 10명 기악단 단원들의 라이브 연주는 과하지 않으면서 극적 전개에 큰 역할을 했다.

 



 안무자는 과거장으로 몰려드는 장면에서는, 출연자들을 객석으로 등장시켜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높였고, 老춘향이 과거를 회상하는 대목에서는 6명의 무용수들과 함께 살풀이춤을 군무로 선보이고 과거시험에 응시한 선비들의 9인무 등을 통해 관객참여와 볼거리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극을 이끌어 가는 주요 배역인 老춘향(복미경)과 老몽룡(박이표), 몽룡(윤형삼)과 춘향(이지수) 그리고 변학도(한청림)와 월매(안명주)는 솔리스트로서 탄탄한 춤기량으로 드라마를 이끌어가는데 기여했다. 특히 老춘향의 솔로춤과 춘향과 몽룡의 사랑의 2인무는 농염함과 풋풋한 춤이 시선을 잡아끌었으며, 춘향을 진정으로 사랑한 변학도를 부각시킨 점도 극적인 재미를 더했다.
 늙은 춘향이 바라보는 자신의 이야기란 독특한 구조를 무대 위에 구현하기 위해 천장에서 아래로 여러 가닥의 백색 줄을 활용해 무대를 구획, 시공간을 넘나들도록 한 무대미술과 이를 적적하게 활용한 연출력도 돋보였다.

 



 그러나 공연 길이가 1시간 정도로 짧다보니 스토리 라인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아쉬움도 발견되었다.
 무용수들의 경우 민속무용의 작품들이 그대로 무대 위에서 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안무자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움직임을 드라마적인 구조에 맞게 표출해야 하는 만큼 다양한 움직임을 소화해 낼 수 있는 몸 훈련과 함께 캐릭터 표출을 위한 연기력 등이 필요해 보였다.
 스토리 라인을 제대로 표출하고 다양한 볼거리를 주기위해서는 춘향과 몽룡, 월매에 대한 비중 못지않게 향단이나 방자, 몽룡 아버지, 변학도 등의 캐릭터를 더욱 살려낼 필요가 있다. 원작이 갖고 있는 구조에서 주인공과 중심인물들의 역할은 교묘하게 서로 맞물려 있는 만큼 이들의 역할을 생략하거나 축소하는 것보다는 적절하게 활용해 극적 혹은 재미를 선사하는 구도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보다 분명한 역할 설정과 놀이적인 요소를 첨가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다.

 



 이 작품은 잘 알려진 향토적인 소재를 무용극의 형태로 작업했다는 점과 라이브 연주를 곁들인 창작음악, 그리고 판소리의 접목을 표방한 만큼 재공연을 통한 보완작업을 거치면 단체를 대표하는 경쟁력 있는 레퍼토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판소리 춤극’을 표방한 작업의 특성을 살리고 이를 독창적인 공연양식으로 발전시키려면 판소리를 활용하는 면면이 단지 음악적인 기능에만 머물지 말고 전통예술 혹은 극장예술이 갖는 여러 것들과 더욱 다양한 형태로 접목되는 시도가 더욱 확장되어 작품 속에 담겨져야한다는 과제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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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인터뷰_ 안무자 복미경

장광열 춘향의 본고장인 남원에서 춘향의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하는 창작작업을 했다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안무자 부임후 첫 공연을 춘향을 소재로 한 작품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복미경 춘향 안의 모든 인물들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디. 인간으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인생에서 만나는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가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더 큰 사랑으로 거듭나는 새로운 춘향의 모습이 곧 우리들의 모습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또 잘 알려진 고전을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장르로 접근해보고자 이 작품을 택했다.

이번 작품은 춘향을 소재로 한 여타의 공연과 어떤 점에서 가장 다른가?
몽룡에 대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춘향 앞에 펼쳐졌던 고난의 시간들, 지난 모든 시간에 얽힌 사연들을 老춘향의 시선으로 되돌아보도록 설정한 것이다. 어린 춘향을 괴롭혔던 변학도의 모습도 다른 시각에서 그려보았다.

‘판소리 춤극’ 이란 부제가 신선하게 다가왔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들이 엿보이긴 했지만 그런 새로운 양식들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한번에 너무 많은 것을 시도하려고 하지 않았다. 무용단이 민속국악원에 소속되어 있는 만큼 판소리를 활용해 드라마가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우선 판소리의 눈대목을 캐릭터별로 접목시키는 작업을 했고 필요한 부분에서 새로 작곡한 음악을 소규모 국악기 편성을 통한 라이브 연주로 접목시키는 작업을 시도해 보았다. 향후 재공연을 해나가면서 판소리 극으로서의 독창적인 요소들을 만들어나갈 생각이다.

공연 후 어떤 점에서 보람을 느꼈으며, 가장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무용단의 단원들은 민속무용에서부터 궁중정재까지 다양한 전통춤들을 연마하고 있다. 다만 상대적으로 창작 춤 작업의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춤 기량 이외에 연기력이나 표현력 면에서 다소 부족한 점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것 역시 창작작품에 대한 경험이 쌓이게 되면 점점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월에 부임했으니 이제 일년이 다 되어간다. 향후 어디에 중점을 두어 무용단을 이끌어 나갈 생각인가?
한달에 두 번씩 이흥구 선생님을 모셔서 궁중정재에 대한 이론 공부를 하고 있다. 단원들의 기량향상에 우선 공을 들일 것이다. 무용단이 국립민속국악원에 속해 있다 보니 무용단 단독으로 하는 공연이 많지 않고 창극 공연의 보조역할에 머물렀던 감이 없지 않다. 무용단 공연을 좀더 늘려 다양한 춤들을 남원시민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레퍼토리를 확충해 나갈 생각이다. 이번 공연의 경우 무용단에 남자 무용수가 없어 객원으로 초청했으나 앞으로 남성 무용수도 점차 충원해 나갈 생각이다.

2014. 12.
사진제공_국립민속국악원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