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함부르크 현지 취재_ ‘발레타게(Ballet Tage)’ 페스티벌
니진스키에서 노이마이어까지 함부르크발레단의 저력
정다슬_<춤웹진> 유럽 통신원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중심에 서게 된 우승국 독일은 월드컵 기간 내내 브라질만큼 뜨거운 축구의 열기를 내뿜는 곳이었다. 곳곳에서 축구를 향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고, 응원 역시 멈출 줄 몰랐다. 그런데 이런 축구의 열기를 넘어선 곳이 바로 독일 북부의 함부르크였다. 함부르크 발레단의 예술감독이자 안무가인 존 노이마이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발레광’들이 함부르크로 집결하였다. 바로 6월 29일부터 7월 13일까지 ‘발레타게(Ballet Tage)’ 페스티벌이 열렸기 때문이다. 발레타게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이자 브라질 월드컵의 결승전이 펼쳐지던 7월 13일에도 함부르크 오페라 극장은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결승전을 마다한 ‘발레광’들로 가득 메워졌다.



부르크발레단 40주년 기념 13개의 작품 공연

 

 함부르크발레단의 40주년을 기념하는 ‘발레타게 페스티벌’은 그야말로 발레단의 저력을 보여주는 축제였다. 2주 동안 단 한 번의 초청 공연을 제외한 모든 작품이 함부르크 발레단에 의해 공연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이러한 축제를 실현해내는 발레단의 규모 역시 페스티벌 프로그램 책자를 통해 실감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에서는 존 노이마이어는 물론, 그가 이끄는 무용수 60명의 프로필이 세세하게 소개되었다. 특히 존 노이마이어가 사랑하는 발레리나 Anna Polikavova의 프로필은 노이마이어가 직접 소개글을 작성하기도 해 프리마 발레리나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이 밖에도 발레단의 지도위원 10명을 포함해 피아니스트, 무대 테크니션 등 발레단을 위해 궂은 일을 마다 않는 스태프들의 사진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는 점 역시 인상적이었다. 이는 한 작품이 무대에 오를 때까지 단순히 안무가와 무용수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대 뒤에서 그것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스태프들의 노력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었다.
 14일 간의 페스티벌 기간 동안 발레단의 주요 레퍼토리인 <메시아>(Messiah), <릴리옴>(Liliom), <오델로>(Othello), <피아노와 목소리를 위한 발레>(Ballets for Piano and Voice)를 비롯하여 존 크랑코의 <오네긴>(Onegin) 등 모두 13개의 작품이 무대에 올려졌다. 페스티벌의 오프닝 공연으로는 존 노이마이어의 신작 <타티아나>(Tatiana)가 세계 초연 되어 주목을 받았고 발레단 산하의 함부르크발레학교는 작품 〈First Step〉을 통해 함께 축제에 참여하였다. 초청 무용단으로는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NDT1)가 유일하였으나 그 외 다수의 무용수들이 초청되었다. 볼쇼이 발레단, 아메리칸 발레 씨어터, 영국 국립 발레단, 뮌헨 슈타트 발레단 등 세계 유수 발레단의 정상급 무용수들을 몇몇 레퍼토리의 주요 역할로 기용한 기획이 눈에 띄었다.

 




NDT

 유일한 초청 무용단으로 공연을 펼친 네덜란드댄스시어터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지리 킬리안의 작품이 아닌 Sol Léon과 Paul Lightfoot 이 안무한 두 발레 작품을 선보였다. Sol Léon과 Paul Lightfoot 모두 과거 네덜란드댄스시어터에서 무용수로 활동하였던 안무가들이다. 스페인 출신의Sol은 2012년부터 무용단의 고문 겸 안무가로 재직 중이며, 영국 출신의 Paul Lightfoot은 2011년부터 상임 안무가와 예술 감독직을 맡고 있다. 이 커플 안무가는 네덜란드 댄스시어터를 위해 이미 40개 이상의 작품들을 함께 안무하였고, 그 중 2010년 초연 된 두 작품이 이번 무대에 올려졌다.
 첫 번째로 무대에 올려진 <갈망>(Sehnsucht)은 독일어로 ‘동경하다, 그리워하다’ 라는 뜻의 ‘sehnen’과 중독, 병적 욕망이라는 뜻의 ‘Sucht’가 합성 된 단어이다. 한국어로 ‘갈망’이라고 번역하게 되지만 사실 ‘Sehensucht’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여느 언어로도 정확히 번역하기 힘들어 보인다. 이 단어는 대개 극단적인 결핍 혹은 고도로 격앙된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데 쓰이는데, 두 안무가는 이 단어를 통해 사랑의 특성을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막이 오르면 무대 한 가운데 작은 방이 둥둥 떠있다. 입체적 형태의 정육면체로 연출된 방에는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의자, 테이블, 작은 창과 문이 배치되어 있다. 누가 살고 있다 해도 어색할 것 같지 않은 방 안에서 여성과 남성 무용수의 듀엣이 시작된다. 듀엣은 방 안의 소품인 의자와 테이블을 도구로 삼아 안무된 차분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정육면체의 방이 회전하기 시작하며 작품의 향방을 전혀 다른 곳으로 끌고 나갔다. 두 무용수는 느리게 회전하는 방 안에서 천정에 붙어있는 의자와 테이블에 매달리고 방이 더 돌아가 창문이 천장의 빛을 빨아들일 때에는 창문 틀에 매달렸다. 행여 의자와 테이블이 떨어질세라 마음을 졸이며 우려하는 관객을 뒤로 하고 두 무용수는 회전하는 방 안에서 유영하기 시작한다. 한 면에서 다른 면으로, 천장에서 바닥으로 이동하는 부드러운 연결성이 부각된 안무는 마치 작은 방이 중력이 없는 우주 공간이라도 되는 듯 보여지게 하였다.
 ‘방’이라는 공간 설정과 ‘회전’하는 무대의 연출은 기존의 네덜란드댄스시어터의 작품들에서도 종종 찾아 볼 수 있었지만 이 두 요소를 결합하고, 무대 한 가운데에 입체적 공간을 띄어놓는 연출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또한 이런 요소들을 조잡하지 않고 세련되게 연출해냄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하지만 ‘방’이라는 공간의 상징성을 설명하는 데에는 설득력이 부족해 보였다.

 



 방이 어두워지고 그 안에서 어지럽게 춤추던 남성의 내면이 평편한 무대 위에서 8명의 남성 무용수와 4명의 여성 무용수의 군무로 표현된다. 검은 장막을 뒤로 하고 하얀 바닥의 무대 위에 선 무용수들은 검은 바지만을 의상으로 삼고 있었다. 이 장면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색감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피부색이었다. 검은색, 흰색, 황색의 기본적이면서도 강력한 색감의 대비가 불러오는 시각적 자극은 관객의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장치였다. 관객의 눈은 자연스레 무용수들의 상체만을 따르게 되었고 12명의 무용수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빈틈없는 선들을 무대 위에 그려나갔다.
 두 안무가는 클래식 발레에서 볼 수 있는 정렬된 대형들을 바탕으로 하였고 거기에 절도 있는 상체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안무를 선보였다. 이로 하여금 관객의 시선은 어느 한 무용수가 아닌 전체의 그림을 보도록 고르게 분산되며 모든 무용수들이 하나처럼 움직일 때 가장 빛을 발하는 군무의 매력에 집중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은 심심하게 느껴지는 움직임 구성에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무대 연출에 비하여 특별할 것 없었던 무난한 움직임들이었다. <갈망>이라는 단어를 통하여 사랑의 구속력과 강렬함, 그리고 기억 속에 남아있는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그리려고 했다는 두 안무가의 ‘갈망’은 미처 작품 속에 배어있지 않았다. 구슬프게 들려오는 바흐의 음악만이 분출되었을 뿐 작품은 절정으로 치닫지 못하고 흐릿하게 끝을 맺었다.

 



 네덜란드댄스시어터가 선보인 두번째 작품 <나비>(Shcmetterling)에서는 <갈망>의 주제가 다시 돌아왔다. 두 안무가는 <나비>를 통해 인생에서 지속적으로 교차되는 삶과 죽음의 위대함이 어떻게 인간을 자극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했다. 또한 사랑이라는 쉽지만은 않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들도 함께 묘사해냈다.
 특히 작품의 주제는 음악을 통해 긴밀하게 드러났다. 인디 록 밴드 The Magnetic Fields의 〈69 Love Song〉과 현대 음악가 Max Richter의 음악들이 사용되었는데 대부분 사랑을 주제로 한 직접적인 가사들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사들을 단순하게 움직임화 하였고 더불어 판토마임과 연기를 통해 곡이 가지고 있는 사랑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 곡이 끝나고 다음 곡으로 이어지는 순간마다 무용수들도 바뀌었다. 총 11명의 무용수가 등장하는 작품이지만 솔로에서 듀엣, 듀엣에서 트리오로 이어지고 다시 솔로로 귀결되는 방식으로 작품이 구성되어 쉽사리 몇 명의 무용수가 작품에 등장하는 지 알아채기 어려웠다.
 첫 번째 작품 <갈망>이 발레 테크닉을 주로 선보였다면 <나비>에서는 현대무용의 테크닉과 판토마임, 연기가 주를 이루었는데 이는 마치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의 무용수들이 모든 장르를 두루 아우를 수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모든 무용수들이 탁월한 기량을 선보였고 마치 사진을 보는 듯 포즈에서 포즈로 동작을 연결시키며 선의 잔상을 만들어내었다.
 네덜란드 댄스시어터의 두 작품은 풍부한 발레와 현대 무용의 움직임을 두루 선보이며 다시 한번 NDT가 갖고 있는 특별한 움직임 테크닉을 여과 없이 무대 위에 펼쳐내는 공연이었다.

 




페스티벌의 대미를 장식한 니진스키 갈라, 3부로 나누어 5시간 30분 동안 진행

 

 페스티벌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러시아- 음악, 소재, 글 그리고 무용수 (Russia- Music, Subject, Text and Dancer)” 라는 주제로 구성된 <니진스키 갈라> 였다. 3부로 나뉘어 5시간 반 동안 진행된 갈라에는 차이코프스키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안톤 체호프의 희극을 바탕으로 한 극발레 <갈매기>, 쇼스타코비치의 음악 위에 안무된 <니진스키> 등 총 14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갈라에 선정된 몇몇 작품들은 갈라의 주제와 멀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존 노이마이어가 러시아의 정책이 아닌 오로지 문화와 예술에 매료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또 그는 직접 전체 갈라를 진행했다. 매번 작품과 작품 사이에 커튼을 비집고 나와 간단한 작품 해설과 무용수 소개를 이어나갔고, 갈라의 막바지에는 독일이 골을 넣었다는 희소식을 전하기도 하였다.
 갈라의 오프닝은 존 노이마이어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 맞추어 안무한 <페트루슈카 바리에이션> 이었다. 미하일 포킨의 오리지널 페트루슈카와는 무관한 작품이나 원작이 지닌 형태와 음악의 분위기, 리듬들이 작품의 영감이 되었음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한국계 독일인 피아니스트 크리스토퍼 박이 무대 한 가운데 놓인 피아노로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연주를 하였고 그 선율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생명력과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무용수들은 리드미컬하고 경쾌한 리듬에 맞추어 연신 크고 작은 점프들을 연결해 나가며 갈라의 시작을 알렸다. 작품이 중반에 이르렀을 즈음 주황색 의상을 입고 있던 6명의 무용수들은 어느 새 독일 축구 대표팀의 티셔츠로 의상을 바꾸어 입고 무대에 오르는 위트를 연출했다. 결승전을 마다하고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선물이 되어 즐거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카멜리아 레이디>의 주요 장면들이 공연된 2부는 특히 흥미로웠다. 각 막마다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이 각기 다른 무용단의 무용수들에 의해 맡겨졌는데 그에 따라 같은 캐릭터가 미묘하게 변화해갔다. 각 무용수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역할을 해석하고 연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산함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드라마 발레인 <카멜리아 레이디>는 주역 무용수에게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갈라에서 보여지기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의구심이 들었으나 무용수들은 놀라울 정도로 역할에 대한 몰입도를 보이며 마르그리트가 되었고 아르망이 되었다.
 특히 볼쇼이발레단에서 초청된 프리마 발레리나 Olga Smirova는 화류계 여인인 마르그리트가 가지고 있는 화려함과 치명적 매력과 그 반면에 존재하는 사랑에 빠져버린 순수한 여인의 이중성을 놀랍도록 연기해내며 기립 박수를 받았다. 단순히 뛰어난 기교가 아닌 캐릭터 위에 얹어진 자신의 이야기를 진실되게 전할 수 있을 때 관객의 마음도 움직인다는 것이 분명히 보여졌다.

 

 



 그 밖에도 볼쇼이 발레단의Andrej Merkuriev 가 선보인 솔로 <아다지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 맞추어 바슬라브 니진스키의 삶을 그린 <니진스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안무 된 <작은 러시아> 등이 이어졌다. 5시간 반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다양한 레퍼토리를 통해 러시아의 예술을 때로는 옅게, 때로는 짙게 풀어내는 갈라였다. 노이마이어의 작품 제목 그대로 ‘작은 러시아’를 무대 위에 가져온 저녁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번 페스티벌에서 뚜렷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함부르크 발레단이 구축하고 있는 레퍼토리의 경쟁력과 저력이었다. 세계 유수의 발레단이라도 14일간 13개의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단기간 내에 무용수들은 다음 날 공연될 작품에 몰입해야 하고, 공연장은 다음 공연을 위한 준비를 마쳐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부르크 발레단은 완성도 높은 페스티벌을 만들어 냈고, 풍부한 프로그램 구성을 통해 까다로운 관객의 입맛을 충족시켰다. 이렇게 페스티벌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기반은 결국 그들이 40년 간 차근차근 쌓아온 내공이 아닐까. 

2014.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