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해외춤기행_ 몽골의 전통가무악(2)
떠돌이 유목생활에서도 빛나는 몽골의 춤문화유산
이병옥_용인대 명예교수
 몽골 울란바토르대학 초청공연을 마친 일행들은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셋째 날(9월19일)을 맞이했다. 하지만 오후에 앵콜공연을 요청받은 상태여서 조금은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점심 후 체육공원에서 중등학생들과 일반인들을 위한 탈춤 한마당을 보이기 위해 탈과 의상 등 공연채비를 하고나서 몽골 역사박물관 한 곳만 들르기로 하였다.



 몽골 역사박물관의 춤관련 자료

 몽골역사박물관(National Museum of Mongolian History)은 몽골역사와 음악, 종교 자료와 문화재 등이 전시되어 있었고 석기시대부터 인류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전시물이 상당수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몽골역사에서 빼놓은 수 없는 칭기즈칸의 발자취와 유목민족의 민속문화를 재음미하는 시간이었다. 

 

 


 송파산대놀이 2차 시연과 유적지 관람

 점심을 마치고 체육공원으로 갔을 때 기온은 그리 높지 않으나 가을햇살이 따가웠다. 공원에는 중등학생들이 집단체육활동을 하고 있다가 원으로 둘러앉았다. 송파산대놀이 중 상좌 옴중마당과 취발이 마당을 공연하고 아쉽지만 다음일정들이 기다리고 있어 마쳤다. 

 

 


 공연을 마친 일행은 시내에서 그리 멀지않은 변두리 언덕에 자리 잡은 자이승 전승기념탑에 올랐다. 자이승 승전탑(Зайсан, Zaisan Memorial)은 몽골의 러시아와 연합하여 일본군을 물리치고 제2차 세계대전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1971년에 세워졌다. 자이승 승전기념탑은 울란바토르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울란바토르 시내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도 하고 있다. 

 


 이어서 자이승 승전탑에서 내려다보이는 근처의 이태준열사(1883~1921) 기념관에 들렀다. 대암(大岩) 이태준 선생은 몽골의 슈바이처이자 유명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911년 세브란스병원(제중원) 의학교(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를 졸업하고,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14년 몽골로 활동 무대를 옮긴 후 의사로 활동하며 몽골의 마지막 황제 보그드 한(Богд хаан) 8세의 어의가 되어 ‘에르데닌 오치르’(당시 몽골 최고 등급의 훈장)라는 높은 등급의 훈장을 받았다. 울란바토르가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는 교통의 요지인 탓에 그의 숙소는 독립운동가들의 은둔지였다. 몽골 정부는 2000여 평의 기념공원을 세워 독립운동가이자 의학인으로서 그의 공적을 기렸다. 

 


 뜻하지 않게 몽골에서 찾아본 이태준지사의 기념공원과 기념관을 둘러보고 의사이며 애국지사로서의 특별한 삶에 대해 민족의 자긍심을 느끼게 하였다. 이제 몽골대초원 체험을 위해 시내를 뒤로하고 벌판을 한없이 달렸다. 시내를 벗어나도 집들과 게르(ger)가 드문드문 눈에 띠었고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 소, 말들로 지루한 줄은 몰랐다.
 저 멀리 엄청나게 큰 말 탄 장수의 모습이 들어왔다. 번쩍이는 스텐리스 철재 동상은 말 탄 칭기즈칸 동상이었으며 드넓은 대륙을 향해 진군하는 아우라를 느끼게 하였다. 가까이 가보니 내부에 몽골문화와 칭기즈칸기념관이었고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올라간 외부 전망대는 놀랍게도 유라시아대륙을 호령하던 칭기즈칸이 타고 있는 말의 갈기 부분이었고 대평원을 좀 더 멀리 볼 수 있었다.



 벌써 해는 서쪽 평원으로 기울기 시작하여 모두 바삐 서둘러 버스를 타고 달렸다. 몽골초원을 소개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거북바위가 있는 테럴지 국립공원(Terelj National Park)에 도착했다. 저녁식사 후 조명이 다 꺼진 밤하늘의 별이 쏟아지는 모습에 어린 시절 밤하늘 추억이 떠올랐다. 다음날 아침(9월 20일) 무공해 지역이라 아침햇살이 따갑게 비추는 언덕위로 산보를 나가니 일행 몇이 벌써 나와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게르 집단이 군데군데 설치된 것이 게르체험 숙소 같았다.




 전통민속극장의 전통예술 공연

 일행들이 탄 버스는 부지런히 달려 다시 울란바토로로 되돌아왔다. 마지막 일정인 몽골민속공연장을 찾았다. 몽골기행 둘째 날 관람은 국립대극장이었지만 마지막 날 관람은 작은 홀 무대였다. 작은 극장이지만 관객은 초만원으로 통로까지 꽉 차게 외국인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겨우 비집고 맨 뒤 벽면에 맞닿은 좁은 공간에 캠코더를 설치하여 공연촬영을 하였다. 공연내용은 대극장에서 본 것과 대동소이하고 무대천장도 낮고 무대와 객석의 구분도 불분명하고 환풍도 잘 안되어 답답했지만 바로 눈앞에서 생동감을 느끼며 감상한 걸로 위안을 삼았다. 15년 전에 봤던 극장과 별반 다른 점이 없는 홀(hall)공연이었고 몽골시립예술단의 몽골전통춤과 음악 역시 목록도 거의 일치하는 목록이었다. 

 

 



 몽골의 전통 민속춤 비옐게(biyelgee)

 몽골의 전통 민속춤 비옐게(biyelgee)는 몽골의 전통적인 이동주택 겔(Ger)과 유목민의 생활 방식으로부터 유래했다. 특히 몽골의 서부지역 여러 부족민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비옐게는 몽골의 민족춤의 원형으로 유목민의 생활 방식에서 유래하여 그 생활을 표현한 민간예술이다. 비옐게는 보통 게르(ger, 이동식 천막집) 안의 난로 앞에서 다소 제한된 공간에서 추기 때문에 발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주로 몸의 위쪽 부분만 사용하여 반쯤 앉거나 책상다리를 한 채 춤을 춘다. 손춤과 어깨춤이 주로 움직이며 가사 노동, 풍습, 전통, 여러 부족 집단과 관련 있는 신앙의 특징 등 다양한 몽골의 생활방식을 다양하게 표현한다. 비옐게의 춤꾼은 각 부족과 지역사회의 특징적인 색상으로 아름다운 무늬와 자수, 뜨개질, 퀼트, 가죽 공예 등으로 장식한 의상과 장신구, 금은보석으로 치장한다. 이 춤은 잔치·축하행사·결혼식·단체노동 등과 같은 가정 및 부족사회의 행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부족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동시에 가족의 단결과 몽골의 다양한 부족 사이의 상호 이해를 증진시켜왔다.비옐게는 몇몇 자발적인 예술가들의 노력으로 춤맥을 잇고 있어 2009년 긴급 보호가 필요한 UNESCO의 무형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 

 

 



 몽골의 라마불교의식춤 ‘참(Tsam)’

 ‘참(Tsam)’은 종교적인 예식과 풍습을 표현하는 종합예술로 인도에서 발생하여 ‘티벳 참’으로 발전하여 거쳐 8세기에 처음으로 몽골로 전해졌고 몽골의 불교와 무속 신앙적인 것이 합쳐져서 전통예술로 승화된 것이 ‘몽골 참’이다.
 ‘참’은 티베트 언어로 ‘춤’, 혹은 ‘움직임’이라는 뜻으로 원래 사원에서 선택받은 어린 승려가 구경꾼 없이 비밀리에 추는 춤을 말한다. 한국어 ‘춤(dance)’과의 관련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점이다. 몽골의 참(Tsam)은 악마의 영혼을 몰아내기 위한 춤으로 전통적인 유목생활과 샤머니즘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참은 지방의 특징, 풍습, 생활양식이 반영되어 사원마다 특별 제작된 춤을 추며 복장양식, 색깔, 장식 등은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가면은 신체에 비해 크고 악마와 동물 및 인간 등 다양한 모습을 띠고 2백여 종이었다고 한다. 조류·동물류(動物類)· 노인류(老人類)· 불상류(佛像類)· 마왕류(魔王類)· 티베트인류 등 여섯 종류로 나뉜다. 조류가면은 매나 기러기와 같은 것이고, 동물가면은 사자 ·호랑이 ·말 ·소·사슴(암컷과 수컷) 등이다. 노인가면은 백노인과 검은 노인의 두 가지가 있고, 불상가면은 황금색이고. 마왕가면은 빨간 마왕과 검은 마왕 두 가지가 있다. 유일하게 가면을 쓰지 않는 배역은 티베트인의 흑모자춤이다. 또한 가면은 노인과 티베트인역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가면에 이마의 눈까지 세 개가 달려있다. 이마에 달린 눈은 사람의 마음을 내다본다는 것이고. 두 눈은 세상을 내다본다는 것이다. 울란바토르에서 본 참의 춤은 백노인춤, 불상과 마왕춤, 사슴과 소춤, 티베트인의 흑모자(黑帽)춤으로 토지의 악령을 진혼시키는 춤으로 주역에 해당된다. 의상은 선명한 빨강, 노랑, 흰색, 푸른색 등의 원색과 수를 놓은 갖은 장식물로 치장되어 있다.
 참 가면의 특징과 역할을 살펴보면, 백노인(라이항 첼엥, Laikhan Tseren)은 신선으로 인간과 동물에게 삶의 지혜와 방법을 가르쳐 주며 웃는 표정은 행복과 행운을, 화난 표정은 불운과 불행을 나타낸다. 담딩처이저(牛神, Damdinchoijoo)는 인간의 인과응보를 주관하며 열 가지 선과 열 가지 죄를 구별하는 염라대왕으로 손에는 해골과 단검을 들고 있다. 잠스랑(Jamsran)은 불과 전쟁신으로 신을 보호하고 가정과 나라의 안정과 평화를 가져오는 신이다. 남스래(Namsrai)는 가정과 국가의 부를 가져오는 천신으로 노란색 옷을 입고, 손에는 쥐를 갖고 있다. 샤낙(Shanaga)는 검은 옷과 모자를 착용하며 21가지로 변모하며 나쁜 방향의 악마를 막아준다. 마히는 인도 전설속의 천신으로 소머리에 느린 동작을 가진 파란색 신이다. 샤와는 인도 전설속의 천신으로 사슴머리에 빠른 동작을 가진 신이다. 마히와 샤와는 좋은 쪽의 하늘신이다. 호히모이(Хохимой Hohimoy)는 해골탈춤이다. 

 

 



 나담축제와 씨름춤

 나담(naadam)은 해마다 7월 11일~7월 13일까지 몽골 전역에 걸쳐 즐기는 전국적인 축제로, 씨름(부흐, Bukh)· 말타기(모리니 우랄단, Morinii Uraldaan)· 활쏘기(소르 하르와, Sur Harvaa) 등 3가지의 전통 경기가 주를 이룬다. 몽골의 나담은 중앙아시아의 광대한 초원에서 오랫동안 유목 생활을 해온 몽골의 유목 문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나담 축제 기간에는 구비문학·공연 예술·민족 음식·공예, 그리고 우르틴 두(長歌), 후미(Khöömei, ‘회메이’라고도 함) 창법, 비-비옐게(bie biyelgee)춤, 현악기 모린후르(morin khuur, 馬頭琴) 연주 등 여러 가지 문화 형식이 모두 선보인다.씨름춤은 나담축제에서 씨름할 때 흔히 추는 데 씨름꾼들에게 무사적인 정신을 불어넣어 주기 위한 의식적 성격으로 양팔을 벌려들고 추는 춤이다. 이 춤은 씨름꾼이 씨름을 시작하기 전에 집단적으로 추면서 승리를 장담하며 독수리처럼 용맹함을 보여주며 씨름에서 이긴 자는 양팔을 들고 독수리 날개춤을 추며 승리의 기쁨으로 춘다. 

 

 



 기타 여러 가지 민속춤

 몽골 브리야트족이 주로 추는 요허르춤(Yookhor)은 한국의 강강술래와 같이 손을 잡고 원을 돌아가며 춘다. 또한 하얀 천이나 파란 천에 우유 은잔은 중요한 손님맞이의 접대풍습이 있어 술잔과 접시춤이 연행되고 있으며 하얀 또는 파란 천춤도 춤공연 처음에 환영의식으로 춘다. 그밖에도 무릎 꿇고 누워 추는 허텅 비옐게(Khoton bielgee)나 서있는 사람의 몸통을 두 다리로 감싸고 뒤로 젖혀 추는 아츠 비엘게(Ats bielgee) 2인무와 마상곡예춤도 기마민족다운 특색있는 민속춤이다. 

 

 



 몽골춤기행을 마치면서

 『몽골비사』의 기록을 보면 ‘몽골인들의 행복은 춤이다’라고 할 만큼 몽골인들은 전통악기와 노래를 들으면 남녀노소 모두 춤을 춘다. 이는 2천 년 전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기록에서 고구려 동맹, 예의 무천, 부여의 영고, 마한의 소도제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는 한국인 조상들의 춤문화적 속성과 전통이 맞닿아 있다.
 몽골 민속춤의 주된 동작은 다리, 앉은 자세, 팔과 어깨와 머리, 가슴과 견갑골까지 다양한 부위까지 연결해서 춤을 추기 때문에 모든 신체부위를 활용하는 춤이라고 말한다. 춤사위법은 민족이나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전승지역이 워낙 넓고 이동생활이어서 대체로 서몽골, 중앙부, 동몽골 지역춤으로 분류한다. 물론 중동부지역 민속춤에 지금까지 밝힌 대부분의 민속춤들이 해당되지만 서몽골은 카자흐족 민속춤과 관련성이 있으며, 북부 브리야트족의 원무 요허르춤(Yookhor), 게르 집안에서 추는 민속춤인 비-비엘게춤 등이 발달되었다. 이상의 몽골민속춤의 생성배경이 되는 중요한 요인은 전통가옥 게르(ger)와 목축의 삶이다. 게르의 삶속에서 세대를 거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가장 널리 추어온 비-비엘게(bie biyelgee)는 대표 몽골민족춤이며 공동체춤으로 세부적으로 많은 춤사위가 있다. 끝없는 하늘을 상징하는 파란 천과 거룩한 의미의 우유 잔을 함께 들어 손님맞이하는 것은 정성을 다하는 몽골인들의 환영인사를 뜻하며 우유를 받아 마시는 손님은 몽골인의 정성어린 마음을 받아주는 의미이다.


 
이병옥
용인대학교 무용학과 교수로 25년간 재직 예술대학원장을 역임하다 정년퇴임 종신 명예교수이다. 한국무용사학회와 한국동양예술학회, 한국공연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경기도와 서울시문화재위원을 거쳐 현재 이북오도청 문화재위원이다. 1985년 객석 예술평론상을 수상, 무용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8. 0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