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시론_ 기로에 선 전통춤
재구성, 재안무가 전통인가?
송성아_춤이론, 부산대강사
 오늘날 전통춤은 그 외연을 폭발적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부채춤〉과 〈화관무〉가 이북오도문화재로 지정되고, 한두 세대도 지나지 않은 〈산조〉나 〈입춤〉이 전통춤판의 주요 레퍼토리로 쏟아지고 있으며, 정체불명의 신생춤이 전통춤으로 둔갑하여 무대에 오른다. 전통이란 무엇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는 혼란의 연속이다.



 전통춤 언어의 내용과 형식

 전통춤은 일련의 유형화된 틀을 가지며 전승된다. 전승의 기본 틀인 이것은 끊임없는 비판과 검증의 과정을 거친 공동체적 인식과정의 소산으로 개인의 창작을 넘어선 것이다. 특히, 집단적 인식과정을 통해 행위자와 관객 모두가 익히 아는 “저장된 전형”이 되고, 이것을 중심으로 춤은 널리 소통되고 향유되었다. 이러한 “저장된 전형”을 매개로 한 정보전달의 기능을 강조할 때, 전통춤은 비음성적 언어(nonverbal language)라고 할 수 있다.
 전통춤을 언어라고 할 때, 제기될 수 있는 물음은 전달의 내용과 형식은 무엇인가이다. 춤은 구어언어와 달리 내용을 직접적으로 서술하지 못한다. 대신 제재(subject-matter)에 해당하는 이미지 또는 정서 창출을 통해 내용을 전달한다. 가령, 전통춤의 한 종목인 〈살풀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작품이 있다고 가정할 때, 작가는 춤을 구성하는 제반 요소들을 적절히 안배하여 ‘핏빛의 역동적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작품 전체를 통해 핵심적으로 전달되는 이 이미지가 내용이 된다. 흔히 공연 팸플릿에 등장하는 작가의 의도는 작품에 대한 그의 해석이고 주장일 뿐 관객에게 실질적으로 전달되는 내용이 아닌 것이다.
 음악은 소리를 통해, 미술은 색 또는 구도를 통해, 춤은 움직임을 통해 각각의 내용을 구체화한다. 이 점에서 춤 형식은 조직화된 움직임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다소간 복잡한 짜임새를 갖는다. 서양의 경우, 동작(an action) ‧ 프레이즈(phrase) ‧ 프레이즈문장(phrase sentence)으로 구성되고, 기승전결(起承轉結)이나 옴니버스 스타일과 같은 짜임새가 또한 있다.
 마을의 너른 마당, 각종 공기관의 뜰(前庭), 풍류를 즐기던 방안 등에서 관객과 연행자가 한통속이 되어 향유하였던 전통춤은 다양한 갈래를 갖는다. 이들을 가로지르는 공통점의 하나는 연행의 주체가 이름 없이 살다간 민중이라는 것이다. 역사는 이들 춤에 대한 구체적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대신 몸에서 몸으로 이어지는 내림을 통해 실재가 전승되고 오늘에 이른다. 따라서 전통춤의 형식과 내용에 대한 일차적 물음은 오늘 전통춤을 추고 있는 춤꾼들을 향할 수밖에 없다할 것이다. 

 




 전통춤 보존과 활용을 위해 깨져야할 침묵

 2017년 한 해만 하더라도 국가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 이수자 ‧ 전수자의 각종 공연이 있었고, 몇몇 인기 종목을 중심으로 한 국공립단체의 공연이 계속되었으며, 향토춤을 중심으로 한 ‘영남춤축제’가 신설되기도 하였다.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회자를 등장시키기도 하고, 전단지 빼곡히 설명을 달기도 하며, 객석 벽면의 프롬프터를 동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통춤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형식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전통춤의 침묵은 내용과 형식의 부재를 의미하는가? 다행스럽게도 작고한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前기능보유자 한영숙을 통해 그 일단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공연조건이나 환경에 따라 춤을 확대하거나 축소할 때, 마루라는 단락을 중심으로 그 짜임새를 만든다고 설명한다.
 춤은 물론이고 음악의 현장에서도 널리 통용된 마루는 춤 구성의 기본단위이다. 現기능보유자 이애주, 음악의 최태현과 이보형, 춤 반주의 명고수 故장덕화 등의 증언을 보다 확충하면, 〈승무〉 형식은 ‘동작에 해당하는 춤사위〈어휘적 의미를 갖는 춤사위〈마루〈과장〈전체 춤’의 순으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전통춤에도 동작구성법이라 할 수 있는 기법(technique)을 넘어 명확한 짜임새가 있는 것이다.
 대체로 한영숙류 〈승무〉는 ‘염불과장’, ‘타령과장’, ‘굿거리과장’, ‘법고과장’, ‘당악과장’, ‘굿거리과장’ 등으로 구성되고, 이 중 ‘염불과장’은 6개의 마루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강조되는 이미지나 정서를 중심으로 그 내용을 정리하면, 〈마루1〉은 인사하기, 〈마루2〉는 앞뒤로 세 번 걷는 삼진삼퇴(三進三退), 〈마루3〉은 엎드려 어르기, 〈마루4〉는 서서 어르기, 〈마루5〉는 온몸 던져 어르기, 〈마루6〉은 온몸을 던졌다가 힘차게 뿌리기이다. 전통춤에서 흔히 동원되는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사상이나 음양오행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각 마루는 단순하고 명증한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춤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형식에 대한 질문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 이미지나 정서는 무엇이고, 조직화된 움직임은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는 철저히 작품 내부에 관한 질문이다. 보다 확장된 의미 해석을 위해서는 사회문화사적 배경과 같은 외적 요인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전통춤의 내용과 형식을 묻는 까닭은 우선 올바른 보존을 위해서이다.
 일본 고유의 전승방식인 가원제(家元制)는 일체의 변화를 금지한다. 반면, 구전심수(口傳心授)로 대표되는 우리의 전승은 개인의 창조적 변용을 용인한다. 그런데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기능보유자 이애주는 춤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 ‧ 형식 ‧ 의미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전제될 때 허락되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 점에서 오늘날 전통춤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재구성 또는 재안무는 마땅히 원작의 내용과 형식을 명시해야 하고, 무엇을 어떻게 변용하였는가에 대한 입장을 표명해야만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 같은 예를 찾기란 쉽지 않다.
 전통춤은 한국인의 삶과 더불어 생성되었고 오랜 동안 전승되었다는 점에서 관습성에 기초한다. 동시에 다음 세대로 전승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일정한 가치판단을 함의한다. 따라서 옛날부터 추었다는 것만으로 재구성 내지는 재안무된 모든 것이 전통으로 간주될 수는 없다.
 전통의 범주 속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공동체 내부의 검증과 합의의 과정을 통해 그 가치를 승인받을 필요가 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논의의 장이 필요하며, 출발점은 예술적 사실에 해당하는 춤 그 자체의 형식과 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 춤의 고유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전승주체의 언표가 매우 중요하다. 내용과 형식에 대해 침묵하고 호흡과 더불어 펼쳐지는 기법만을 강조한다면, 언어로 작동하였던 원(原)기능을 소실하였음을 자인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정서 표출에 머물러 있는 자폐적 성향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한편, 전통춤 형식과 내용에 대한 명시는 춤 창작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2017년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무용극의 대두이다. 많은 예산과 인원이 동원된 국립무용단의 〈리진〉과 〈춘상〉, 서울시립무용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대전시립무용단의 〈춘향 단장〉, 인천시립무용단의 〈만찬: 진, 오귀〉 등이 그 예이다. 
 이들은 현대적 감수성을 반영한 의상 ‧ 소품 ‧ 세트 ‧ 음악을 통해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진부한 갈등구조, 극적 개연성이 부족한 평면적 인물, 신무용류에 편중된 빈약한 움직임표현력 등이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관객은 춤을 세세히 읽기보다 느끼면서 대면하고,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끊임없이 감상하면서 창작한다. 이 점에서 감상과 창작의 기본 전제는 오감을 통한 몸의 지각이라고 할 수 있다. 형태심리학(Gestalt psychology)은 인간 지각이 과거의 경험, 지식, 학습, 기억 등에 기초하고 있으며, 민족마다 관습화된 독특한 지각방식이 있음을 시사한다. 여기에 주안점을 둘 때, 지난 세대에 이뤄지고 계통을 이루며 전해지는 전통춤은 한국 민족의 관습화된 지각방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작가는 소재주의의 한계를 넘어 보다 진지한 탐색 속에서 전통춤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에게 자연스럽게 내재된 지각방식을 반영한 설득력 있는 춤의 출현과 그로 인한 대중적 공감과 호응을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새롭게 부상한 무용극은 당대적 맥락에서 검토되는 동시에 전통춤의 서사, 인물, 움직임표현 등에 대한 탐구로 연결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작가의 노력은 중요하다. 동시에 자료 제공자에 해당하는 전통춤의 사려 깊고 정확한 발언 또한 중요하다. 특히, 예술적 사실에 해당하는 내용과 형식에 대한 명시는 언표의 구체성과 타당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근대전환기 전통춤의 주역들은 협률사로 이동하였고, 새로운 극장무대에 맞추어 변신을 거듭하였다. 그러나 호화자부귀객(豪華子富貴客)을 대상으로 한 극장경영주의 상업적 운영에 침묵하며 수동적으로 대응함으로써 근대성 확보에 실패하였고, 오랜 동안 폐기의 대상으로 소외되었다. 
 개인 ‧ 사회 ‧ 세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된 오늘, 침묵하는 전통춤을 기다리기에는 반짝이는 새로움이 너무도 많다. 박제화 된 과거로 소외될 것인가, 아니면 전통의 가치를 지키며 현재를 풍요롭게 할 자산으로 빛날 것인가? 전통춤은 기로에 서 있다. 
송성아
춤이론가. 무용학과 미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전통춤 형식의 체계적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한국전통춤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한국전통춤 구조의 체계적 범주와 그 예시』(2016)가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와 경상대학교에서 현대문화이론과 전통춤분석론을 강의하고 있다.
2018. 01.
사진제공_국립부산국악원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