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해외춤기행_ 최승희의 흔적과 몬테카를로발레단 〈말괄량이 길들이기〉
다시 만난 안재용의 눈부신 성장
백홍천_재일 최승희무용연구원 대표
 지난해에 이어 나는 최승희의 유럽 공연 발자취를 찾는 여행을 이어 갔다. 세기의 무희 최승희가 1930년대 말에 파리공연을 중심으로 활동한 유럽권의 예술을 다시 접하고 새롭게 발견하기 위해서 시작된 나의 여행은 올 겨울에는 한 달 반에 걸쳐 이어졌다. 처음 발 디딤을 한 곳은 모스크바였다. 1950년대 구소련, 현재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기념극장은 최승희가 열광적인 공연을 했던 곳이다. 그 무대와 객석을 모이세이프(Moiseev)무용단 단장(모이세이프 장녀)의 안내로 돌아보게 되었으며, 나는 최승희가 공연을 한 무대 위에서 그녀의 무용기본을 선보이게 되었다.
 다음 목적지는 파리였다. 1939년 6월 샤이요(Theatre National de Chaillot) 극장에서 있었던 최승희 공연에서는 3,000석이 만원을 이루었고 피카소, 쟝 콕토가 절찬을 했었다. 그 샤이요 극장을 비롯하여 살 플레옐(Salle Pleyel,당시3,000석), 파리 샤틀레(Paris Chatelet) 극장의 외곽과 안 로비를 돌아보았다. 이 극장에서는 〈초립동〉〈보살춤〉등을 공연하고 대인기를 끌었는데 그때 쓴 초립모자가 파리여성들의 패션으로 유행되는 현상을 일으켰다. 그 시기 최승희에 대한 절찬과 환호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듯하였다.
 다음 찾아간 도시는 빈(WEIN)이다. 전통 건축물과 대표적인 음악기념관, 유명 음악가의 동상들과 업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예술의 도시이다. 여기 빈 국립극장의 무대에서도 최승희의 춤이 공연되었다. 〈보살춤〉〈무당춤〉으로 기립박수까지 받았었다. 그 객석에 앉아보니 최승희가 세계적인 무용가였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고 내가 최승희무용연구가, 표현자라는 자긍심을 다시금 갖게 되었다.
 최승희는 광복 후인 1946년에 월북을 했는데 그 후 1950~60년대는 최승희국립극장 무용단단장으로서 200여명의 단원을 인솔하여 활발히 세계투어 공연을 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1962년도에 개최된 빈국제예술축제콩쿠르 무용부문에서 그녀의 대표작이며 지금도 공연되고 있는 〈부채춤〉〈장고춤〉〈보살춤〉〈무녀춤〉등 수십 편의 최승희 작품으로 출전을 하여 거의 대부분이 금메달 1위를 수상했고 이 시기에 다시 극찬을 받게 되었다.





 빈에 있을 때 마침 모나코 몬테카를로발레단(Les ballets de Monte Carlo)의 〈말괄량이 길들이기(The Taming of the Shrew)〉공연이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이 발레단 단장이며 총연출가 겸 안무가인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Jean-Christophe Maillot)의 작품은 4년 전부터 보고 있었는데 볼 때마다 마이요 발레작품의 심오한 문학성과 역사성, 철학성을 표현하는 안무력과 무대의상, 장치, 음악에서의 참신하고 개성적인 수법과 수단에 감탄을 하고 있다.
 그가 새로 가미하고 재창조한 〈백조의 호수〉〈호두까기인형〉〈잠자는 숲 속의 미녀〉〈한여름밤의 꿈〉 등은 작품마다 신선하고 독창적이며 매력적이었다.
 이번에 감상한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극으로 그의 초기 연극 중 하나이며, 1590~1594년 사이에 쓰여졌다고 한다.
 이 작품은 마이요가 러시아 볼쇼이극장에서 초청을 받아서 새로 안무하여 2014년에 초연한 작품이다. 내가 꼭 보겠다고 연락을 하니 몬테카를로발레단에서 초청이 왔고, 바로 모나코로 향하였다. 

 


 

 이 발레단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인 안재용(Jaeyong An)이 소속되어 있다. 작년 니스 국립대극장의 〈한여름 밤의 꿈〉 공연에서 주역인 오베론 역을 매력 있게 형상화한 한국인 발레리노가 바로 안재용이었다.
 내가 감상했던 날은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최종 공연 날(2017년 12월 28일~2018년 1월 5일)이었는데 마침 주역급인 루첸시오 역을 안재용이 맡았다. 마이요 발레에서 루첸시오 역은 귀공자적인 섬세한 면모와 동심 같은 코믹한 분위기를 내야 하는 캐릭터이다. 나는 작년에 비하여 안재용이 얼마나 성장하였는지 관심이 컸다.
 이번 작품에서도 안무가 마이요의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해석을 만날 수 있었다. 무용대본, 구성, 안무, 음악, 의상, 조명, 장치, 소도구 등 모든 것들이 신선하고 완성도가 매우 높았다. 400여년 전의 시대상을 알기 쉽게 간소하게 창작하였으며 1부에서 쓴 이동무대, 기둥들이 굉장히 현실적인 동시에 2부에서는 조명으로 몽환적인 숲 속 분위기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무용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음악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사용하고 70여명 편성의 모나코교향악단이 라이브로 연주했다.
 이 작품본질이 희극인 만큼 코믹한 장면들을 예측했는데 전통적인 발레기법을 토대로 하면서도 출연자 약60여명의 캐릭터에 맞게 예민하게 춤가락이 되고 있었다. 또한 현대미가 있고 품위 있는 장면 속에 코믹한 동작이 적절하게 배합되고 있었다. 작품 속의 마임도 연극적인 요소보다도 무용적인 표현으로 승화되고 있었다.
 마이요는 이 작품이 희극(喜劇) 발레이길 원한다. 객석에서는 애수와 사랑의 듀엣에 눈길을 보내면서도 각 요소요소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1부에서의 루첸시오 역을 한 안재용은 비앙카의 구혼자 남성 3인무의 중심에서 코믹한 연기와 기술 높은 빠른 발레 테크닉의 연속동작을 손색없이 보여주었다. 굉장히 다양하고 복잡하고 빠른 동작이었음에도 보는 이가 편안히 즐기게 해주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숙련된 표현이 돋보였다. 특히 우아한 2인무 아다지오는 현악기 선율의 감정선과 일심동체가 되고 있었다.
 비앙카와의 구애의 장면에서는 상체동작이 풍부했고 팔 동작의 신기한 움직임은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듯이 시적인 감흥을 일으켰다. 두 명의 팔을 원형으로 끼면서 유연성 있게 움직이는 동작에서 그들의 인간미와 순결한 사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설득력 있게 형상화하여 이 작품의 질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천성적인 육체미를 가진 안재용은 얼굴표정도 아주 매력적이고 손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온 몸으로 표현을 하고 있었다. 손끝과 발끝라인은 무용수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표현수단이다. 안재용은 손끝에서 발끝까지 긴 라인을 유지하면서도 감정표현의 폭이 크고 길며 영원한 감정선을 가질 있는 능력이 있는 무용가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빠른 동작이라고 해서 아득바득하는 경향이 있고 테크닉을 구사한다고 해서 갑자기 긴장상태에 빠지는 무용수가 많은데 그는 어떤 동작을 해도 안착성과 정확성이 있고 요구되는 동작을 숨을 쉬듯 끊임없이 흐르는 몸짓으로 작품 세계에 제대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백미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2부의 혼례의 2인무이다. 마이요 신작에는 고전발레형식에서 거의 도입되는 그랑 파드되(Grand Pas de Deux)가 없다. 때문에 듀엣을 하면 첫 등장부터 마무리까지 계속 춤을 추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꾸준한 훈련을 통한 체력 없이는 동작수행에서 불안정성을 낳게 되고 표현력도 깊이가 없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안재용은 이를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2부 시작은 두 쌍의 사랑의 장면이다. 농후하고 관능적인 페트루치오와 캐서리나의 듀엣과 대칭되는 우아하고 투명하며 순결성이 요구되는 루첸시오와 천진난만한 소녀 비앙카와의 듀엣이다. 여기서 루첸시오의 역을 맡은 발레리노 안재용의 숙련된 매력을 보게 되었다.
 1부에서의 사랑의 2인무 음악이 2부에서는 더욱더 애절하고 강렬한 선율이 흐르는 속에 사랑의 극치를 보여주고 환상적이면서도 현실세계의 인간의 사랑을 뚜렷이 표현해주었다. 참으로 아름답고 섬세하며 세련도 높은 2인무였다. 두 명의 사랑의 심리를 표현하는 얼굴, 어깨, 팔동작들이 묘하고 발레전통기법이 아니면서도 이질적이지 않았다. 희열에 넘치는 리프트동작, 껴안으면서 도는 서포트동작, 피루엣, 투르 앙네르(공중뛰면서 2회전) 등등 기교동작들도 마침 정령 같은 묘사로 신비롭게 사랑의 춤을 보여준다.
 안재용의 신체조건이 좋은 것은 두말할 바가 없다. 그의 손가락과 상대방의 손가락을 서로 맞대고 양팔을 길게 뻗쳤을 때의 교감동작은 참으로 최고의 아름다움이 보였다. 허리부터 팔을 위로 펴서 손가락까지 휘어져 뒤로 젖힐 때의 포물선 동작은 아름답고 사랑의 정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이 장면은 내 마음을 설레게 하였으며 객석의 관중들도 탄성을 자아냈다. 춤추고 있는 도중에는 박수를 칠 계기를 거의 주지 않는 마이요의 안무구성인데 춤이 끝나자마자 그 여음에 매혹된 남녀노소관중들부터 감동의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였다. 요즘 남성무용수들의 피루엣 8회전, 거기에 한 호흡 머물렀다가 공중2회전하는 동작들이 세계 발레계에서는 상식으로 되고 있으며 그 이상의 기교동작도 보면서 발레리노의 기량을 판단하고 있다. 여성무용수도 예외가 아니다. 관중들은 그 기술동작을 보고 박수갈채로 환영해준다.
 그런데 서커스 혹은 캐릭터댄스도 아닌데 ’테크닉 제1주의‘, ’기술최우선‘으로 흘러가는 요즘 발레계는 어떤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품세계의 표현과 기교가 동일성을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많이 보게 된다.
 하지만 안재용 발레리노는 모든 테크닉동작과 문학적 요소가 아주 잘 어우러지고 있었다. 그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환경의 영향도 있겠지만 춤체에서 동양적인 정신세계와 발레표현이 맞물리고 있으니 서양댄서보다도 섬세하고 부드러운 표현력에 주역감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 긍정적으로 보였다. 

 



 또한 이번에 마이요의 작품을 보고 한국의 국공립무용단에서 나오는 최근 몇 년간의 작품에 심각한 편향이 있음을 크게 느꼈다.
 우리나라 금수강산 삼천리에는 다종다양한 무용유산과 풍부한 무용소재로 될 만한 문학적 가치가 있는 자료들이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발레를 한국무용화하거나 본래 있었던 엄숙하고 전통성 있는 명작품을 재창조한다고 해서 무용의 기본인 춤가락을 찾지 못하고 새 맛이 없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 외국에서 이미 보여준 무대미술, 장치, 의상디자인을 좀 수정하고는 새로 한 것처럼 공연을 하고 있는 현상도 있다.
 유럽에서 20~30년 전에 발표된 현대무용동작과 작품을 모방해서 한국의 권위 있는 무용단체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현상, 대규모적 무용구상은 좋은데 무용화가 부족한 현상 등을 많이 본다.
 또한 새 세대들도 한국무용을 현대화한다고 해서 우리 전통무용작품, 기본에서 춤가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역시 낡은 유럽식 현대춤을 모방하고 갖다 붙이는 경향들도 많이 보인다. 즉 자기만이 가질 수 있는 독창성, 개성이 없으며 자기 얼굴이 아닌 무용들이 한국무용계를 혼란시키고 있다. 이것은 발전도상, 과도기라고 하면 좋게 들리지만 한국무용계의 길이 다른 데로 헤매고 있으며 국가적인 문화방침이 희미한 데서 나타난 결함이라고 볼 수가 있다.
 우수한 무용인재는 해마다 양성하고 등용하고 있지만 귀한 그들의 재간을 꽃펴주는 방책이 미약하고 권위주의와 고질화된 낡은 사고방식이 발전의 길을 멈추게 하고 있으며 노숙하고 경력 많은 무용대가들이 자기자리매김에 신경이 가고 무용계를 개척하자는 의욕이 부족한 데서 나타난 결과라고 생각한다.
 마이요는 자기주장과 자기 얼굴을 확고하게 가지고 안무작업에 들어가며 항상 새로운 인재를 등용시키고 책임지고 키워나가니 안재용 같이 젊은 발레리노가 세계적인 무대 위에 서게 되는 것이며 무궁무진한 활동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마련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반세기전에 내가 발레수련하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다. 영국 로열발레단 프리마였던 마고트 폰테인(Margot Fonteyn)이 피루엣을 1회전하더라도 정확성은 물론이고 거기에 모든 문학성과 인간성이 표현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는 말이다.
 안재용은 모든 춤수행과정에서 기술이 우선이 아니라 숨 쉬고 흐르는 마음의 움직임, 혼의 움직임으로서 이번 루첸시오역을 훌륭하게 형상을 해놓았다고 본다. 종장장면에서의 고도의 기술동작 그랑 쥬떼, 회전동작수행에서 앞다리발가락은 물론이고 뒷다리 발가락까지 완전히 신경이 가고 180도 발을 길게 뻗친 자태와 점프력으로 무대를 크게 돌았을 때도 역시 감정의 폭발, 환희의 절정동작으로 형상화하였으며 관중들의 큰 박수를 받아냈다.
 그의 눈빛은 초만원이었던 1,800석의 앞자리는 물론 맨 뒷자리 끝까지 레이저광선처럼 환하게 비추고 감정전달이 되고 있었음을 느꼈다. 이번 공연을 통해서 1년 만에 만나보니 그의 아우라의 규모가 아주 커지고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지난날 최승희 무용가도 한번 무대에 서면 천만 사람들의 심장 속에 춤의 혼을 안겼기 때문에 매 공연마다 대절찬을 받을 수 있었다.
 예술적으로나 기량적으로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고 있는 발레댄서들이 적지 않게 많지만 그 속에서 안재용이 더욱더 연마 숙련하여 발레예술가로서의 자리를 확고하게 해줄 것을 바라고 기대한다. 그는 몬테카를로발레단 정단원이 된지 1년 짧은 기간에 세계투어에서 주역, 주요인물로 선발되었으며 현재 발레단의 솔리스트로서 활약을 하고 있다. 몇 년 더 열심히 하면 발레단의 스타, 프린시펄(principal)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약 2시간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최종공연은 큰 성황 속에서 막을 내렸으며 끝없는 박수로 커튼콜이 10분이나 계속되었다. 그 가운데 한국을 빛내는 안재용의 웅장한 아우라를 볼 수 있어서 같은 민족으로서 더욱 기뻤다(8회공연중 6회출연). 프로 단체에 입단해 2년째가 된 안재용이 21세기의 한국을 더욱 빛내는 발레리노로 성장하려면 그 앞길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바람이 꼭 성취될 것이라 기대한다.
 다음날, 파리에서 최승희 공연을 보고 절찬을 했던 피카소, 장 콕토 기념관, 미술관을 안재용과 함께 찾아가서 그의 위대한 업적을 직접 보았다. 콕토도 대단한 예술가이다. 그가 최승희의 무용을 찬양했다는 것만으로도 최승희가 얼마나 세계적인 무용가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입단 후 안재용(Jaeyong An)이 출연한 주요 작품


Le Lac des cygnes (백조의 호수)_ 지크프리트 왕자
Romeo et Juliette (로미오와 줄리엣)_ 티볼트
Le Songe d'une nuit d'été (한여름 밤의 꿈)_ 오베론 숲의 왕
La belle au bois dormant (잠자는 숲 속의 미녀)_ 데지레 왕자
Cendrillon (신데렐라)_ 아빠, 왕자
La mégère apprivoisée (말괄량이 길들이기)_ 루첸시오 

2018. 02.
사진제공_Alice Blangero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