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평창 동계올림픽과 남북 춤 예술교류
과시형 공연보다 인간적 만남이 더 중요
장광열_<춤웹진> 편집장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 한반도기 입장, 마식령스키장 남북공동훈련, 북쪽예술단의 강릉‧서울 공연 등 북쪽 열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신문이나 방송 매체 등에서는 북쪽 선수단과 예술공연 팀에 관한 기사가 거의 매일 등장한다.
 남북 예술교류는 무슨 큰 일이 있을 때만 이슈가 되는, 갑자기 생겼다 금방 없어지는 일회성 이벤트 같다. 잊을만하면 다시 되풀이 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했을 때에도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의 서울 공연에 이은 평양교예단과 북한국립교향악단의 방한 공연 등 북쪽 열풍이 강하게 몰아친 적이 있다. 정치 경제 사회 각 부문 뿐 아니라 당시 문화예술계에서도 각 장르별로 남북 예술교류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곤 했었다.
 이번 평창 올림픽의 경우도 갑자기 성사되긴 했지만, 합의되었던 남쪽 예술단의 북쪽 방문 공연이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그럼에도 북쪽 예술단의 방한 공연은 여전히 이슈가 되고 있다. 예술을 통한 남북 교류는 일회성의 이벤트에 그칠 것이 아니라 꾸준히,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남북 문화예술 교류와 관련, 남쪽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크고 작은 세미나, 그리고 비공식적인 워크숍 프로그램 등을 통해 문제점 도출에서부터 구체적인 프로그램 제안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 축적된 내용이 있다. 급작스런 변화에 따른 새로운 교류방안도 물론 필요하지만 정책 당국과 문화예술계에서는 이미 개진된 다양한 제안과 분석 등을 점검하고 그에 대한 미비점을 보완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언론 역시 구색 맞추기 식의 일회성 보도보다는 기획 기사 등을 통해 보다 심도 깊은 진단을 시도해야 한다. 

 



 동서독이 통일되기 전까지 두 나라는 무려 6백 여 개에 이르는 문화예술 교류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그 중에는 동독의 바이올린 수리 전문가가 서독에 있는 바이올린 수리 전문가의 집에 6개월 동안 기거하며 서로의 기술을 전해 주고 전해 받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연극의 경우 브레히트의 작품이 양국에서 공연되었고, 동독의 작가 뮐러의 작품이 서독에서 자주 공연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서독의 연출가가 객원 연출가로 초빙되어 동독의 바이마르 국립극장에서 공연하고 동독 텔레비전은 이 공연 실황을 방영하기도 했다. 서독의 연주가가 동독에서 연주회를 개최하는 등 이들 두 나라는 1972년 양국 정부가 기본 조약을 체결하기 이전부터 빈번한 문화예술 교류를 지속해 왔다.
 남북 문화예술 교류는 여러 사람들이 움직여야 하는, 떠들썩한 대형 공연보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차분한 인적 교류가 먼저일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동서독 바이올린 장인들의 교류가 그 좋은 예이다. 남북 예술교류에서 춤 역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수년 전, 북쪽에서 귀순한 무용수 신영희가 남쪽 예술단이 제작한 뮤지컬 <시집가는 날>에 주인공으로 출연해 색다른 연기와 춤을 보여주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북쪽이 개발한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이용한 무용표기법은 세계적으로 그 과학성을 인정받고 있다. 몇 년 전 북쪽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무용표기법 전문가들을 초청해 평양에서 대대적인 세미나를 통해 이 메소드를 소개하기도 했었다. 만약 남쪽의 무용가들과 무용학자들이 북쪽에서 개발한 이 표기법을 배울 수만 있다면, 한글을 사용한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도 남쪽의 무용가들과 무용전공 학생들은 라반이 개발한 노테이션보다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2000년 평양학생소년예술단 서울 공연과 남북정상회담 시 남쪽 대표들에게 선보인 북쪽의 무용 공연 등이 영상물 등을 통해 소개되자 춤계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북쪽 무용수들의 훈련 방법과 안무 작업 등에 쏠렸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무용음악이었다. 그들의 무용음악은 작품의 내용을 표현하고 그에 걸맞게 춤의 분위기를 상승시켜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는 무용을 아는 작곡가들의 층이 넓고 우리 전통 악기의 성공적인 개량 작업을 통해 다양한 음색을 만들어낼 수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남쪽 무용단들의 무용극 공연 시 북쪽의 무용음악 전문 작곡가에게 무용음악을 의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완벽한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무용수들의 훈련 메소드 역시 남쪽의 무용계가 배워야 할 것들이다. 최승희가 만든 조선민족무용기본을 통해 탄탄한 기본기와 시선 처리 등 방향 감각을 기르고, 그로 인해 탄탄한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훈련 방법은 신체의 각 부위를 골고루 발달시켜주는 효율성이 여러 곳에서 엿보였다.
 북쪽에서 무용수들의 훈련 메소드가 이처럼 발달된 것은 1958년 최승희가 만든 조선민족무용기본의 영향이 컸다. 발의 사용에서부터 손동작에 이르기까지 1단계에서부터 12단계로 나누어진 이 기본은 체계적인 연구를 통한 실용성에다 그림과 필름 등을 이용한 교재 개발, 그리고 교사 양성 등이 함께 이루어져 당시 일본과 중국 등으로 급속도로 확산될 수 있었다.
 북한의 조선민족무용기본을 가르칠 수 있는 지도자를 초빙해 남쪽 무용수에게 그것을 가르치도록 하고 남쪽의 훈련 메소드를 북쪽에서 가르칠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쌍방에게 서로 유익한 교류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작곡가 윤이상, 무용가 최승희는 남북 예술교류에 있어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예술가들이다. 남북 양쪽에 그들의 창작의 원천이 됐던 지역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들이 남긴 작품들, 그리고 그들이 길러낸 제자들도 생존해 있다. 무엇보다 한국 민족의 민족적인 정서들이 그들의 작품을 통해 오롯이 남겨져 있고 두 사람 모두 세계무대에서 그 예술성을 이미 검증 받았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이들과 연계된 다양한 교류 프로그램은 비단 남쪽과 북쪽에서만이 아니라 세계무대를 향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남북 교류에 있어 새로운 전기가 될 수도 있다.
 국악기 개량을 위한 전문가 교환, 남북의 대표적인 희곡의 교환, 창작음악 교환 연주, 대표적인 춤 레퍼토리와 안무가 무용지도자 교류 등은 많은 인원이 이동하고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들이 아니다. 이 같은 작은 만남은 서로의 이질화된 문화의 간극을 좁혀줄 수 있다.
 그들이 앞서 있는 것, 서로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적 교류는 오랜 동안 폐쇄적이었던 북쪽의 빗장을 열 수 있는 효율적인 정책이다. 무엇보다 이를 통해 진정한 인간적인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 남북 예술인 합동 공연 등을 통해 북쪽과의 교류에 흥분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이제 다시는 그런 포만감에 젖어 즉흥적인 감정 표현만을 되풀이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남북 문화예술 교류는 무엇보다 현장에서 작업하는 예술가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정부가 뒤에서 도와주는 그런 모양새가 되어야 한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 전후로 예정된 북쪽 예술단의 방남 공연이 일회성, 과시형의 이벤트가 아니라 향후 작지만 인간적인 만남이 조금씩 실현되는, 지속적인 교류로 이어지면서 조금이나마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춤웹진〉 편집장,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 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2018. 0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