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미투
조용해지길 기다리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용계
이지현_춤비평가
미투가 시작되고 문화예술계로 확장되면서 2월 하순까지 무용계와 관련된 성폭력 사건은 수원지검에서 10대 원생 성추행으로 징역 4년형을 받은 김모 무용학원 원장 사건 이후 하용부 밀양백중놀이 보유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3건의 제보, 한겨레에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이모 교수” “자신이 졸업한 대학의 교수인 이모교수”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제보, “저명한 대학 무용과 교수”로부터 동성 간 성폭력을 당했다는 3건의 제보로 언론에 등장했다.
 이후 2월 28일 jtbc 뉴스룸에 “무용수업 핑계로... 대학가도 ‘교수 성폭행’” 이란 제하에 창원대 무용과 교수의 수업 중 신체, 언어 성폭력 사례가 보도됐으며, 미디어오늘 3월 1일자에 한 무용인이 가명으로 “고인 물 무용계, 미투에 조용할수록 깊이 썩는다”는 인터뷰 기사로 미투에 무용계가 조용한 이유를 대학을 중심으로 무용계가 구성되어있어 교수들이 쉬쉬하며 입을 막고 있는 행태를 다루었다.
 무용월간지의 부당한 고용실태를 블로그를 통해 고발했던 윤단우씨는 3월 8일자에 두 개의 글을 올리며 미투를 다루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는 이유”와 “우리가 이제 말하기 시작했다”에서 로제타 편집부 기획으로 발간 예정인 동명의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3월말까지 성폭력 사연과 사례 접수, 웹진인 댄스 포스트 코리아가 추진 중인 ‘무용계 적폐고발 프로젝트’ 2탄으로 ‘무용계 성폭력에 설문조사’ 가 진행됨을 알렸다. 그리고 3월 20일 한국무용협회는 ‘입장문’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돌려 “무용인 인권보호... 미투 지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미투의 열풍이 2차 피해의 우려, 언론의 왜곡된 접근이나 정치세력 간 갈등에 불쏘시개 되는 것을 조심하며, 위태하나 꺼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속에서 무용계의 미투는 처참하게도 가해자들의 열성적인 주변단속, 언론매수 등 그들의 가상한 노력(?)과 염원이 먹히는 모습으로 애써 조용해지는 듯 보인다. 게다가 다수의 관련자들은 이런 상황마다 꾸준히 써먹는 모호하고 애매한 태도로 모른척하며 이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잔인한 인내를 방책으로 쓰고 있는 듯하다. 나는 내가 속한 비평가협회에 이 문제에 대한 논의와 대책 강구를 3월 10일 제안한 바 있고 결정권을 가진 대다수가 나이가 60대인 교수, 축제 예술감독, 그리고 비평경력은 짧지만 나이가 많은 이상한 무용계 원로들은 아직까지 드러날 만한 움직임을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결정권자가 아닌 나는 어떤 이유인지 도저히 알 수 없으나 그분들이 미투에 미온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무용계보다는 더 큰 충격을 받은 연극계는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을 구성하고 주 1회 모임을 가지면서 피해자 보호장치 마련과 더불어 교육, 홍보, 정부의 늑장대응에 대한 비판을 통한 대책촉구 등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연극 뿐 아니라 문화예술계의 문제로 범위를 확산하고 공동의 문제로 풀어나가려는 태도로 발전되는 것도 보기 좋은 모습이다. 문제는 있으나 단독으로 이 문제를 풀어가기 어려운 타 분야가 함께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가면 힘을 모으고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무용인들의 행동모임을 만드는 것이다. 무용협회의 입장은 없는 것보다는 나으나 구체적이지도 행동적이지도 않다. 협회가 무용계의 구심점이 되고자하는 어떤 의욕은 보이나 협회의 체질상 아래로부터의 감각은 부재하다. 미투는 사회적인 움직임이기에 반드시 정치적인 것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잘되면 잘 되는대로, 안되면 안 되는대로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공을 따먹으려는 무리들이 나서거나 덤빌 것은 뻔하다. 그것을 잘 가려내는 것도 미투가 각계에 근본적인 권력과 차별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운동으로 흘러가는 데 필수적이다.

 지난 두어 달 간 이렇게 터져 나오도록 썩어가고 있었던 무용계 권력구조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비평가로 활동하며 비평가들이 무용계 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공이 있다는 것을 안다. 뒤로 무엇을 주고받았는지 모르지만 찬양의 글을 쓰고, 심사에서 노골적으로 의견을 몰아가면서 권력에게 돈과 명예가 가도록 글로, 행동으로, 그리고 매파노릇으로 시녀역할에 백미를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그 권력은 문예위, 재단 등에도 마수를 뻗쳐 심사위원 구성에도 관여하기도 하고 꼭 권력이 아니더라도 인맥인지 뭔지 모를 힘을 동원해 지원금에서 승자가 되기도 한다. 물론 심사위원이 되는 일도 있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할당석을 유지하며 서로를 돕는다. 미디어오늘 가명 인터뷰 기사에 나온 것처럼 4,5년 전부터 나아지긴 했지만 현장에서 체감되는 것은 아직도 이다.
 심사를 하거나 평가를 다니면 매우 황당해지는 순간이 있다. 무용계의 권력구조를 바꾸고 그들 조직의 독점욕 때문에 희생되는 순수한 무용인들, 힘없는 무용인들, 새롭게 해보려는 무용인들도 활동할 수 있도록 심사하고 평가하면, 세습적으로 생존감각을 익힌 권력의 무리들은 내 행동을 자기들 권력에 도전하는 또 하나의 권력의 탄생으로 해석할 때이다. 그 뿐 아니라 나와 그들의 관계를 자기들의 그것으로 오해하고 비방한다. 그 오해는 세상에는 그런 방법밖에 없다고 철석같이 믿어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고는 이내 어이가 없어진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은 맞다.
 또 글 좀 쓰고 허영심 많은 사람들을 골라 비평가가 되도록 돕고 그들을 대를 이어 시녀 비평가로, 조직의 심사위원으로 키우는 일도 권력을 유지하는 길에 필수 옵션이다. 얼마 전 문예위가 현장 활동 10년 이상의 심사위원 풀을 구성하기 위한 작업을 했는데 누구라도 아는 실력도 없고 비평력도 없는 인사가 문예위 심사위원으로 당당하게 등극하였다. 그 일은 물론 권력을 돈과 명예로 서로 주고받는 ‘우리는 한 식구’로 무용계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무용계 터줏대감들에 의해 추진되고 용인된 일이다. 어이없는 기준을 기준이라고 만든 지원기관과 현장권력이 공생하는 순간이다.
 지원금을 관장하는 문예위나 문화재단, 문예회관연합회 등의 기관이 이런 권력과의 관계에서 위험해질 소지가 많다는 것도 알 것이다. 아니다, 그들이 거대한 권력이 하는 짓들을 하고 이미 하고 있어 권력의 감각을 익힌 자들은 이미 그들과 잘 엮여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용계가 잘되길 바랄 뿐 아니라 매우 건실하고 건강한 의식을 갖고 있다고 보이는 이들도 돈과 권력을 갖고 있는 지원기관이나 대학 앞에 서면 허영심이 꿈틀거려 구국의 영웅병, 진보병이 발병하는 건 왜일까? 그 병도 권력과 무관하지는 않은 거 같다.

 그간 경험한 것들을 돌아보니, 미투로 터져 나온 권력의 ‘부패속성’은 무용계에서 대학은 물론, 지원기관, 비평계, 창작계 모두를 부패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그들은 무용계를 자기들끼리 나눠먹기 위해 자기들만 살아남는 폐쇄구조가 되길 원했고 그 결과가 지금 무용계 모습이라는 것도 의심키 어렵다. 이 사회가 예술가를 키운다는 것은 무엇일까? 점차 국가대표 예술가로 되어갈수록 괴물이 되어가는 것과 동의어인 것은 아닐까. 부패한 구조가 키우는, 아니 부패한 구조에서 성장한 예술가가 권력에 대한 욕심병을 앓지 않는 경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만큼의 어려움 같다. 그렇게 성장하여 남의 몸과 남의 돈도 다 자신의 것으로 움켜쥐면서 주변을 다 망가뜨리는 그 길로 가는 것을 성공이라 부르는 거 아닌가? 혹시 젊은 의욕적인 무용인이 있다면 제발 이 성공의 길로 가지 말 것을 얘기하고 싶다.

 미투를 통해 우리는 단호히 무용계의 이런 구조를 돌아보고 수선해야 한다. 가능한 더 깊은 곳까지 들여다 봐야한다. 고름을 짜내는 일에 비명이 나올지라도, 그렇게 해야 산다면 잠시 참으면 될 일이다. 이 일에 동의하고 있지 않다면 그 누구라도 그는 부패의 일원이다. 아, 부패의 일원이 할 일이 있다. 양심선언하고, 고백하고, 위드유 하면서 많은 을들의 피와 눈물을 짜서 쌓은 부와 명예와 지위를 내려놓고 되돌아오면 된다. 그리고 소수일지라도 무용계의 새로 태어남을 바라는 사람은 미투 피해자가 안전하게 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과 동시에 무용계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양심선언하고 내려놓는 일을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까지 제보된 내용과 더불어 제보된 적이 있는 사건에 대한 추적을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들이 사죄나 처벌을 거치지 않고 다시 무대와 교단에 서는 일은 막아야 한다.
이지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춤비평가로 등단했다. 2011년 한국춤비평가협회의 정회원이 되었으며, 최근 비평집 『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 왕성한 비평 작업과 함께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강사, 서울무용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8. 04.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