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미투운동을 생각한다
음지에서 양지로, 촛불혁명은 진화한다
김채현_<춤웹진> 편집장
미투운동이 확산일로(擴散一路)에 있다. 여성의 현실에 대해, 미투운동 이전에 알던 것과 이후에 아는 것 사이에는 (실제로 엄청난) 차이가 난다. 더욱이 여성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피해를 직접 말하는 고백에서는 진정성이 감지된다. 미투 이전에도 그런 고백이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고백은 산발적이었고 대개는 극소수 여성의 특정한 사정으로 인지되고 또 그렇게 치부되곤 하였다. 그래서 수면 위로 잠시 드러나다 없던 일처럼 자취를 감추기 일쑤였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음지에서 숨죽인 고백들이 미투 이후 양지를 향해 떠오르고 있다. 그런 고백은 마치 봇물과도 같은 큰 흐름을 이룬다. 봇물 속의 고백들을 접하다 보면 여성들의 피해가 도처에 만연했던 것으로 드러난다. 이제 그 고백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범사회적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미투 이전 / 이후를 가르는 차이는 바로 이 지점이다. 
 


해시태그 고발 운동 · 촛불혁명 · 미투운동

미투운동이 있기 전에 미투운동의 선구적 활동으로서, 2016년 10월 중순 일부 여성들이 문학계를 중심으로 문화예술계의 성폭력을 해시태그 고발 형태로 폭로한 바 있다. 해시태그 고발 운동은 2016년 10월 말 시작된 촛불혁명의 전야에 일어났다. 다시 이 점을 돌이켜 보면, 당시 해시태그 고발 당사자들이 상당한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고발해야 한다는 어떤 절박감 속에 놓여 있었음을 직감하게 된다. 그러다 나라 전체가 촛불혁명(과 대선 국면)에 빠져드는 상황에서 해시태그 고발 운동은 언론과 시민의 우선 관심권에서 유보되는 듯했다. 
 아다시피, 촛불혁명이 새 정부 선출로 1차 완결된 이후인 2017년 가을에 해외에서 전해진 미투운동은 2018년 초 국내에서 해시태그 고발 운동을 되살리면서 미투운동을 점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같이, 시기적으로 국내에서 해시태그 고발 운동과 미투운동 사이에 촛불혁명이 일어난 사실은 상당한 주목을 요한다. 비록 미투운동이 촛불혁명에서 발단하진 않았을지라도 촛불혁명이 미투운동을 고무하고 힘을 준 것으로 관측된다. 그것은 촛불혁명이 국정농단의 발본색원에서 비롯되었지만 앞으로는 다른 사회 변화에서도 동력이 될 것임을 예증한다.
 최근처럼 여성의 성폭력 피해가 일거에 대대적으로 폭로되는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다. 이를 계기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과거부터 마치 일상사처럼 자행되어 왔다는 점이 속속 드러나는 중이다. 최근 미투운동의 와중에서 어느 여성은 언론을 통해 실명으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여섯 살 때 사촌 오빠, 여덟 살 때 방문 전기검침원, 초등학교 6학년 때 문방구 아저씨, 중학교 때 선생님, 대학 시절 동료와 선배... 20대 초반, 한 손엔 과도를 한 손으로는 바지를 내리려는 남자, 만취한 그는 두 가지를 한꺼번에 못했고 여자는 마구 뛰었다. 달빛 아래 번쩍이던 그 칼날. 나의 이야기다. 이 경험은 내가 여성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나서야 폭력임을 알았다.”


억압과 왜곡 조장하는 편견 · 순진함 · 무지 · 무관심

미투운동에서 공개되는 고백들은 가히 충격적이다. 충격적인 그 만큼 낯설고 이전에 쉽사리 접할 수 있은 고백도 아니었다. 하지만, 고백들이 공개되지 않았을 뿐이지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남성 가해자는 여성 피해자에게 언필칭 무고(誣告)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법과 언론은 피해자에게 신상을 공개하고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히도록 강권하는 2차 피해가 여성 피해자들을 위축시켜 입 다물도록 했던 폐단마저 자주 드러나고 있다.
 더욱이 일상적으로는, 회식 자리에서 혹시 낯설지 않게 접했을지도 모를 이런저런 육담(肉談)이 여성에게는 수치스런 모욕이 된다는 것도 이제는 알아야 한다. 그동안 긴긴 세월 동안 (무심결에 또는 둔감하게) 접해왔던 얼마나 많은 일들이 여성을 간접적 피해자로 만들었을지 자문해볼 일이다.
 순진함, 무지, 무관심, 또는 편견, 어느 요인에서건 남성들은 여성들의 피해가 만연한 것을 몰랐거나 외면했거나 묵살했을 것이다. 순진함과 무지 때문에 몰랐다면 미투운동 이후에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 무관심 때문에 몰랐다면 미투운동 이후에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편견 때문에 묵살했다면 미투운동 이후에는 실제 현실을 새삼 정시(正視)해야 한다.
 순진함, 무지, 무관심, 또는 편견이라는 여러 편차에도 불구하고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여성들의 피해가 현실의 곳곳에서 편재했었던 사실이다. 지난 몇달 쏟아진 보도에 따르면 문화예술계 일각에서 성폭력들이 버젓이 만연했던 것으로 (확실히) 추정된다. 특히 인간적 됨됨이와 인간 존중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문화예술계가 그러했다면 일반 직장과 정계(政界), 관계(官界) 등 사회 다른 분야나 일상사에서는 오죽했을까 하는 상상도 전혀 무리가 아닐 것이다.
 가부장적 성관념이 왜곡된 남성성을 조장해왔고 남성들이 그에 편승하고 안주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설령 성추행과 성폭력, 성희롱과는 무관하다 하더라도 심지어 강간 문화라 지목되는 남성 우위의 세계에서 남성 일반은 그 같은 폭력에 연대 책임이 있다. 또한 편견에 의한 것은 아니더라도 남성들의 무지와 둔감 앞에 절망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다시 짚어져야 하는 오늘의 문명

가부장제의 성관념은, 비단 성관념 측면에 그치지 않고, 남성과 여성 간의 성별 권력 관계를 고착시킨 데 더하여, 궁극적으로는 일상생활에서나 사회 온갖 부문에서 변형된 권력 관계를 조장해왔다. 뿐만 아니라 변형된 권력 관계가 다시 위력에 의한 성폭력 및 가스라이팅 같은 부조리를 조장한 것은 물론이다. 혹자는 남성 지배 사회에서 성별 권력 관계와 무관한 권력형 성폭력이란 애초에 성립이 불가능하다는 지적마저 제시한다.
 권력형 성폭력이 권력의 비리를 나타내는 지표일 것은 물론이며, 따라서 성폭력 이면의 권력 남용 또한 경계되어야 한다. 춤계에서는 사제지간의 성폭력을 비롯하여 재능과 노동력의 착취, 티켓 강매는 물론이려니와 저임금 구조, 공공 지원금 심사 및 비평 등에서 실타래처럼 촘촘히 엮인 권력 관계가 되짚어져야 할 것이다.
 어느 분야, 어느 정파를 막론하고 성폭력은 만연한 듯하고 겉으로 드러난 피해가 빙산의 일각 중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심증을 미투운동을 계기로 더욱 굳히게 된다. 2006년 해외에서 처음 시도된 미투(me too)가 ‘나도 당했다’는 뜻이라는 점, 그 10년 후 스마트폰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나도 당했다는 호소와 고백이 한국을 비롯 세계 각지에서 들불처럼 출현하는 현상은 성폭력 피해가 보편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더욱 이런 점에서 음지의 피해상들을 양지로 길어올려 가부장 문화와 가부장적 인식에 균열을 내는 작업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피해의 크기에 연연하는 차원을 넘어 성폭력을 조장하는 문명 자체를 도마에 올려야 할 것이다.
 미투운동이 범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데서 보다시피, 아마도 인류 사회의 대다수 문명에서 되풀이된 가부장제를 시정하는 일은 이제 문명사회 앞에 가로놓인 거대한 숙제라 하겠다. 이런 뜻에서, 성폭력 피해는 결코 개인의 일이 아니며, 성폭력은 문명의 이름으로 국가와 국민과 시민이 힘 모아 철퇴를 가해야 할 범죄라 말해 지나치지 않다.
 음지에서 양지로 나서며 위험을 무릅쓰고 피해를 밝히는 여성들이 있었기에 해시태그 고발 운동도 미투운동도 가능했을 것이며, 그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동시에, 미투운동은 촛불혁명에 힘입은 여성 혁명으로 해석된다. 문명 전환을 예고하는 이 여성 혁명은 갓 시작되었다. 특히 한국에서 미투운동은 촛불혁명의 동반자라 생각되며, 이 점에서 향후 촛불혁명이 가질 문명사적 의의는 작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촛불혁명은 국정농단의 발본색원에 머물지 않고 진화하는 중이라고 말해진다. 4월에 시작한 남북정상회담 또한 촛불혁명이 있었기에 더 빨리 가능했을 것이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8. 0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