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국립무용단 〈향연〉
매력적인 부록과 균형 맞출 창작력 회복해야
김채현_<춤웹진> 편집장

최근 몇 해 국립무용단은 변신을 도모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국립무용단이 자주 시도해온 현대무용과의 접속이라든지 대중 관객과의 접촉면 확대와 같은 기획은 전반적으로 국립무용단이 변화를 모색하는 중이라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그러한 기획이 여러 갈래로 추진되어온 사정에서 그 성과를 일괄적으로 논하기는 어렵다. 다만 주로 정기 공연을 통해 진행된 새 창작 공연들의 경우 성과에서 미진한 바가 상당한 탓에 국립무용단의 분발이 요청된다. 이와는 사뭇 대조적으로 공연작 〈향연〉(饗宴)은 국립무용단의 지지부진한 실적을 얼마간 상쇄하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향연〉이 향후 국립무용단의 창작에 끼침직한 생산적 효과에 대해서도 여러 면 상상하게 된다.
 공연작 〈향연〉이 선보인 때는 2015년 12월로서, 이후 해마다 객석의 호응이 잇달았다. 올해도 6월 서울에서 나흘 동안(6~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공연에 이어 곧바로 울산, 대전, 거제에서 〈향연〉의 무대가 펼쳐졌다.

 

 



 이전 한 세대 동안의 국립무용단 공연 연혁을 일별해보면 〈향연〉이 매우 이례적인 실적을 거두었다는 것을 간파하게 된다. 그럴 수 있은 〈향연〉만의 비결은 다각도로 해부될 수 있으며, 요컨대 이는 〈향연〉 속에 나름의 풍요로움이 내장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궁중춤과 민속춤을 아우르는 앤솔러지를 시발점으로 해서 〈향연〉은 무대에서 재현되는 형상에서의 격조(格調)와 화려고아한 미감, 춤의 역동성을 유기적으로 구성해내었다. 〈향연〉이 공연 내내 시종일관 그 같은 유기적 구성을 지속하도록 선도한 요인으로서, 나로서는, 간결정갈함 속에서 춤마다의 중심 색상과 복색이 빛을 발하도록 한 색(채)감 그리고 디자인 센스를 꼽고 싶다.
 〈향연〉의 연출자로서 색감과 디자인 센스를 발휘한 정구호의 역할은 가히 결정적이었다. 이전에 궁중춤과 민속춤을 아우른 공연이라 해도 〈향연〉처럼 되지 않은 사례가 다반사였다. 더욱이, 화려하다 보면 고아함이 떨어지고 간결하다 보면 정갈함이 떨어져서 무대와 춤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에 비해 〈향연〉은 한국 고유의 색채 미의식을 현대의 시점(視點)으로 절묘하면서도 세련되게 살린 대표적 사례로 인용될 법하다. 또한, 전통춤처럼 의상이 필요불가결한 장르에서 의상의 꾸밈새와 색채 미의식이 수행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향연〉은 참신하게 역설해 보인다.

 

 



 거꾸로, 이 같은 색감 및 디자인 감각을 무대 위에서 구현해낸 것은 〈향연〉이고 춤이다. 궁중춤과 민속춤의 12가지를 취사선택한 앤솔러지는 그러한 색감과 디자인 감각을 ‘폭넓고 다채롭게’ 구현해낼 수 있는 단초로서 소중해 보인다. 12가지 춤들이 4개의 장으로 엮인 〈향연〉에서 각장의 특성(주정서·主情緖)으로 정리되는 고아한 아취(1막), 간절함(2막), 신명난 역동성(3막), 장중함(4막) 같은 정서들에 동참할 동안 객석은 우리 전통춤의 넓이와 깊이를 ‘인상 깊도록’ 체감하게 된다. 〈향연〉의 선행 작업으로서 국립무용단의 〈묵향〉(墨香)이 이미 2013년에 정구호의 연출로 무대화되었으며, 〈묵향〉에서의 시도는 〈향연〉으로 확대 수렴된 편이다. 다시 말해, 정구호 식의 미감과 한국 전통춤은 한 무대에서 생명력을 서로 함께한다. 오묘(奧妙)한 관계라 하겠다.
 비단 전통춤에서만이 아니라 시각적 미감을 전제하거나 강조하는 춤이라면 응당 둘 사이의 관계는 ‘유기적’이어야 한다. 이 관계가 작품과 안무자에 따라 가변적인 것은 물론이다. 다만 〈향연〉에서는 이 관계가 정구호의 색감과 디자인 센스에다 현대의 시점(視點)이 더해져서 구축되었다는 점은 재삼 환기될 필요가 있다. 객석에서 특히 세대를 초월해서 호응이 잇달았던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제까지의 추세로 미루어 앞으로 (언제까지일지 단언하기는 어려운) 당분간 〈향연〉을 전국 각지에서 만날 가능성마저 점쳐진다. 창작이 지지부진한 탓으로 인해 가뜩이나 평판이 그저 그러 해 보이는 국립무용단에 〈향연〉은 한 줄기 서광으로 비춰지는 듯하다. 그리하여 국립무용단의 평판을 타개할 대책의 일환으로서 혹시라도 〈향연〉을 앞세우는 기획 아이디어가 있다면 매력적으로 여겨질지 모른다. 공연물 〈향연〉으로 국립무용단의 팬덤을 조성하고 (전통)춤에 대한 인식을 쇄신하는 일을 통해 국립무용단과 춤계에 가져올 긍정적인 결과를 쉽사리 전망해볼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와 같은 기획 전략은 신중하게 구사되어야 옳다.

 

 



 〈향연〉은 전통춤을 모아 재구성한 춤 앤솔러지이다. 〈향연〉이 창작물이 아니라는 바로 이 점에서, 누구나 수긍하겠듯이, 국립무용단의 대표작으로 내세워질 수는 없는 일이다. ‘창작’ 개발이 최우선의 목표인 공공무용단으로서 그 목표 실현에 앞장서야 할 책무를 짊어진 국립무용단의 정체성에 비추어 〈향연〉의 역할은 말 그대로 제한적이다. 그래서 만에 하나 가능할 수도 있을 그런 기획 전략 앞에서 신중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세계 유수의 발레단이 가령 (고전)발레 갈라 공연물을 나름 다듬었다고 하더라도 해당 발레단의 대표작으로 내세울 때 어떤 반응이 나올지 그다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향연〉을 앞세우는 전략은 자칫 〈향연〉이 국립무용단의 대표작으로 내세워지는 오류를 낳을지 모른다. 나아가선, ‘춤 일반’에 대해 단편적이며 무역사의식적인 소품 및 시각적·역학적 세련미에 기운 편향된 취향을 〈향연〉이 유포할 부작용마저 경계해야 할 것이다.(일반인들이 〈향연〉을 국립무용단의 대표작으로 연상하는 경향이 시중에서 엿보인다.)
 국립무용단의 공연 실적을 한 권의 책에 비유컨대, 〈향연〉은 잘 가다듬어진 부록(附錄) 또는 별책(別冊)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책의 본문을 차지해야 할 것은 국립무용단의 ‘창작’ 공연이다. 부록이 매력적이어서 책을 사는 경우도 있을 터이지만 그래도 부록은 부록이라는 사실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국립무용단의 전통춤 재구성 공연물 〈향연〉과 국립무용단의 창작물 사이에 두드러지는 불균형이 이런 비유를 부르고 있다. 〈향연〉 이후에도 〈향연〉의 성과를 발판으로 국립무용단은 〈향연〉 이전부터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창작력 높이기 과제와 씨름해야 옳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8. 08.
사진제공_국립극장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