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2019 공연예술창작산실 사업
부실한 창작산실 사업,
신청자료·심사내용 전체 공개가 해법
  • 일    시
    2020년 3월 28일(토) 오후
  • 장    소
    아카데미아 인(서울 동교동)
  • 사    회
    김채현 <춤웹진> 편집장
  • 참석자
    권옥희 춤비평가
    김영희 춤비평가
    김혜라 춤비평가
    안지형 안무가
    김경신 안무가

김채현: 2019년도 공연예술창작산실 사업에 참석한 분들을 모시고 2019년도 사업 그리고 창작산실 사업 전반에 대해 의견과 소감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춤계의 공론으로서 창작산실 사업에 대해 마무리 좌담이 있어야 한다는 제안이 누차 있었고, 이런 여론을 〈춤웹진〉은 공론화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의 위태로운 상황을 무릅쓰고 이렇게 자리해서 창작산실 사업의 개선점에 대해 대안을 거론하면 춤계에도 많은 참고가 될 것으로 믿는다.
 한국춤비평가협회가 2020년도 초에 발간한 「춤비평」방담에서도 2019년도 창작산실 사업의 문제점이 크게 몇 가지 지적된 바 있다. 3월초까지 창작산실의 2019년도 선정단체 공연이 ‘올해의 신작’이란 공연으로 진행되었다. 여기서 모두 7단체가 작품을 올렸고, 한 단체는 사정이 있는지 아직 공연을 하지 않은 줄로 안다. 그리고 2020년도 사업은 어떻게 추진되는지 마지막 최종 작품들을 열어봐야 알 것이다.
 이 자리에선 2019년도 창작산실 사업의 심사과정 그리고 현장에서 느낀 바나 창작산실의 성과 또는 미흡했던 점이 포괄적으로 거론되었으면 한다. 창작산실 심사 참가경위, 심사 당시 상황, 심사위원들이 제시한 의견들, 심사 현장평가의 결정 방식, 창작산실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 작품 공연의 구체적 평가 등등에 대해 기탄 없이 의견과 소감을 나누기로 하자. 사회자는 좌담 진행상 사회자이지 참석자들과 함께 참석자의 일원으로서 의견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먼저, 심사참가를 하신 김영희 선생께서 심사 경위부터 소개해주시기 바란다.


심사위원의 장르 이기주의가 사업의 심각한 걸림돌

김영희: 창작산실 작품이 올라가기까지 여러 단계가 있는데, 먼저 서류심사가 있고 콘티를 일단 보고 거기서 한번 거른 다음, 대면 인터뷰심사를 갖는다. 작품 신청한 분들이 PPT로 발표하고 심사위원들이 PPT와 영상자료를 보며 대면심사를 한다. 대면심사에서 쇼케이스 작품을 선정한다. 대면심사는 2월에 했고, 쇼케이스 심사는 5월에 했던 걸로 기억한다. 저는 1차 서류심사, 2차 대면심사에 참가했고, 쇼케이스 심사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쇼케이스에서 선정된 작품이 그해의 창작산실 신작으로 최종 공연기회를 갖는다.
 심사위원은 5인이었는데 각 장르별로 한분씩 한국창작춤, 발레, 현대무용 전공자와 비평가, 현장활동가나 기획자 중 한 명으로 편성되었다. 일단 며칠 동안 서류심사를 했는데 양이 꽤 많았다. 창작산실 지원서에 콘티나 기획의도가 기재되어 있는데, 지원서에서 콘티가 얼마나 준비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서류를 내려고 갑자기 급조한 것은 아이디어가 별로 없고 아이디어의 수준이 10년, 20년 전 수준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 다음 인터뷰 심사를 하는데, 이때 의문점에 관해 질문하면 역시 얼마나 준비되었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 심사위원이 질문하면 납득할 답변을 하는 안무가가 있고 요구한 질문에 적당한 답을 하지 않고 둘러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 팀당 10분 정도 발표하고 10분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류심사는 63개 단체가 지원했고, 서류심사에서 걸러진 26편을 대면 인터뷰 심사했다. 하루 종일 심사했던 걸로 기억한다.
 서류심사 때 제가 판단하기로 시놉시스가 부실한 것이 많았고, 주제가 진부하거나 자기만족적인 구성이나 작품 수준을 갖고 있으며, 어떤 작업은 아마추어적인 컨셉이었고, 어떤 것은 관념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작품화할 때는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하는데 관념적인 선에 머물렀다. 또 어떤 작업은 시놉시스는 갖췄으나 춤 표현이 가능할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어떤 것은 예술적 메시지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다. 전통을 소재로 해서 재구성한 것도 있었는데 전통의 어떤 부분을 가져온 것인지 의아한 작업도 있었다. 전체 시놉시스 가운데 건질만한 것은 나로서는 20%도 안 된다고 판단했다. 한국창작춤 같은 경우에는 아이디어 구현, 형상화에서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는 시놉시스가 많았다. 발레작품의 콘티들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어떤 작업은 대학생 수준이었다. 저는 한국 발레가 웃자랐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실제로 내적 고민을 하지 않고 발레라는 외적 형식에 기대는 시놉시스였던 편이다. 그나마 어떤 컨셉을 갖고 자기 구조를 갖고 하려는 작업은 현대무용 계열에서 봤다. 전체적으로 창작산실 지원서를 위한 지원서라는 느낌이 강했고, 시놉시스 내지는 작품 구조에 대한 고민이 부실했다.

사회: 창작산실 최종 선정작에 대해 근 5천만이 안팎이 지원되는 줄로 안다. 그 전에 쇼케이스 시연 작품 제작에 각 선정 단체마다 일괄적으로 1500만원씩 지원된다. 또 최종 공연 공연장과 홍보, 그 외 일부 스탭진까지 지원되는 것으로 안다. 무용 분야 전체 지원 규모로 보면 7억원 안팎으로 추산되고, 개별 선정작에는 8천만원 안팎이 지원되는 셈이다. 춤계의 통상적인 지원 사업에 비추어 거액이라면 거액이기 때문에 누구든 선정되고 싶은 욕구가 강할 것이다. 이해되는 욕구이다. 수준 이하, 납득하기 힘든 시놉시스를 갖고 신청하는 행태는 창작산실 사업 이외에 어디서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창작산실 사업에서도 그런다는 것은 상당수 신청자가 이 사업을 지원액수로 대할 뿐이라는 것과 반면에 작품 수준이 지원 액수에 걸맞아야 한다는 의식이 미약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한 마디로, 춤계 현장에서 이 사업을 만만하게 대하는 탓에 창작산실 사업 취지가 춤계 현장에서 사실상 흐려졌다는 게 정확한 진단으로 보인다. 일단 선정되고 보자는 행태로부터 창작산실 사업을 방어하고 보호해야 할 것이다.

김영희: 그리고 장르별 실기 관계자가 심사에 참여했는데 발레의 경우 탈락률이 다른 장르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작품논의에서 여러 문제가 지적되었는데 좀 의아스러웠다. 실기 심사위원들이 자기 장르에 점수를 후하게 준 것은 아닐는지. 과정을 거치면서 충실해질 수 있으니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회를 주자는 그런 식이었다. 최종적으로 16팀이 선정되어 쇼케이스 기회를 갖게 되었다. 위원회에 매해 몇 편 정도가 쇼케이스에 올라가는지 알아보니, 점점 늘어나 초반보다 근래 쇼케이스에 올라간 작품 수가 더 많아졌다고 한다. 그것은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될 만한 작품을 충분히 지원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자는 것이 창작산실의 취지일 텐데, 고만고만한 작품에 혹시나 요행을 바라며 기회를 주는 것은 취지에 어긋난다고 본다.

사회: 과거부터 장르 이기주의는 춤계를 좀먹고 발목 잡는 한 요인인데, 그런 적폐가 여전히 재확인된다. 한 마디로, 심사위원들이 소임에 충실하지 않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만 탓할 일은 아니다. 사업 취지가 좋아도 심사위원 선에서 망가진다면, 비극이다. 특히 특정 개인이나 자기 전공 장르를 향한 심사위원의 이기주의는 해당 장르 현장을 안일하게 만들고 길게 보면 좀먹는 행위가 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의견을 나누기로 하자. 아무튼 대면심사에서 16단체를 선정했다 한다. 그런데 최종 선정은 8단체, 거기서 한 단체가 사정이 있는지 올 연초 공연에서 아직 발표하지 않은 터에 최종 작품을 발표한 팀은 총 7단체로서 절반이 쇼케이스 심사에서 걸러진 편이다. 혹시 심사에서 통과했는데도 공연을 하지 않은 팀도 있는가?

김영희: 있다. 쇼케이스에 올리지 말자고 제안했던 단체인데, 결국 쇼케이스를 포기한 줄로 안다. 15팀이 쇼케이스 심사에 오른 셈이다.

권옥희: 저는 3차 쇼케이스 심사에 참여했다. 지난해 창작산실 무용분야는 63개 단체가 지원했고 그 중 1차 서류 심의를 통과한 26개 단체를 대상으로 2차 PPT와 인터뷰 심의를 거친 16개 단체 중 스스로 포기한 한 단체를 제외한 15개 단체가 쇼케이스에 올라왔다. 3차 쇼케이스는 3일 간에 걸쳐 이루어졌고, 최종 8개 단체를 선정했다.
 쇼케이스 시연은 20분 내외였고, 시연을 통해 미처 보여주지 못한 부분과 무대장치 등은 단체가 제출한 포트폴리오 자료와 15분간의 인터뷰를 통해 평가하는 과정이었다. 심사위원은 1, 2차 때와 마찬가지로 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 무용일반, 비평가 이렇게 5인이었고, 1, 2차 때와 달리 시연을 본 시민평가단의 점수도 일부 반영이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심의 과정은 시연을 본 뒤, 안무자와 인터뷰를 한 뒤 심사위원들끼리 짧게 논의를 하는 형식이었다.
 개인적 소회를 말하겠다. 3차 심사를 하면서 ‘어떻게 이런 단체(작품)가 쇼케이스에 올라올 수 있었지’라는 의문이 들었던 작품이 많았다. 예술성은 고사하고, 자신이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인지조차 못하는 시놉시스도 다수였다. 걸러내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막상 3차 심사결과를 보면서 ‘아무리 애써도 안 되구나’는 혼잣말을 크게 하고 말았다. 무력감이 들었다.
 어떤 안무가가 ‘시놉시스 잘 쓴다고 좋은 작품 만드는 것은 아니다’고 하더라. 물론 이다. 잘 쓴 시놉시스가 반드시 좋은 작품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놉시스에 자신의 작품의도 하나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안무가가 좋은 작품 내놓은 일은 더 찾아보기 힘들다. 매끄럽게 잘 쓴 시놉시스가 아니어도 기획이나 안무 의도를 분명하게 가지고 있는 이들의 글과 말은 파악하고 알아볼 수 있다. 적어도 안무가의 작품의도 정도는 담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정도의 시놉시스는 되어야 한다.
 어쨌든 단체 선정결과는 나왔고, 심사결과에 대한 책무감 비슷한 것도 작용한데다 안무가들이 자신 있게 피력했던 작품이 궁금해서 모두는 아니지만 몇 작품을 봤다. 걱정스러운 결과였다. 앞서 말한 무력감과 다른 형태의 무력감이 들었다. 창작산실을 들어 누군가 ‘망작산실’이라고 하더라. 맞다. “선생님이 심사하셨잖아요”라고 책망하는 듯한 말도 했다. 그 말도 맞다. 혼자 심사한 것은 아니지만 일말의 책임이 있다. 욕을 먹더라도 좀 더 질기게 묻고, 더 논의하고, 오래 설득했어야 했다.




시나브로가슴에, 안지형 안무 〈Hit & Run〉 ⓒ옥상훈/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준비된 창작자에게는 실질적 도움이 큰 사업

사회: 지난해 5월 쇼케이스를 거치고 올해 초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공연하였다. 참가 단체로서 먼저 〈힛 앤 런〉을 공연 한 시나브로 가슴에에서 독자들의 이해도 도울 겸 창작산실의 지원과정을 소개해주었으면 한다.

안지형: 창작산실 지원 사업 공모안내가 12월에 발표되면 단체 내 협의를 거쳐 서류를 준비한다. 저는 창작산실을 위해 미리 서류를 써놓고 준비해둔 작품이 있었다. 사실 머릿속의 많은 것들을 글로서 구체화시킬 어휘력이 달리다 보니까 준비 과정에서 최대한 꾸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꾸미다 보면 인터뷰 심사 받을 때에도 꾸밀 것만 같아서 주의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있는 그대로 쓰려고 하는 편이다.
 기획자와 사전에 방향을 잡아 서류를 제출하고, 서류를 통과하면 인터뷰 심사 PT를 준비하게 된다. PT가 마의 구간이다. 머릿속에 많은 것을 갖고 들어가도 대면했을 때 침착하고 명확하게, 또렷하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많은 심사위원들이 질문하면 방향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몇 번 하다보면 익숙해질 텐데 그렇지 않은 게 인터뷰, PT였다.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최대한 집중해서 소개하려고 했다.
 안무를 하고, 예술을 하는 사람인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상대에게 말로서도 설득을 시킬 수 없다면 이 작품은 작품으로서 어떤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최대한 설명하고 싶으면 그 능력이 부족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작업에서는 머릿속에 있는 것이 무대 위에 100% 똑같이 구체화되지 않기도 한다. 작업하다 보면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는 거고, 조금 더 벗어나서 다른 시선으로도 볼 수도 있는 거고…. 그렇게 열어두고 생각하다 보니 대면심사가 필수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그 과정은 도움 되는 일이었다. 피하고 싶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것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구체화되고 그동안 무엇을 놓쳤는지도 볼 수 있었다.

사회: 시나브로가슴에 단체가 대면심사에 임한 시간은 어느 정도였는가?

안지형: 대면심사에서 발표 5분, 인터뷰 10분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회: 질문 가운데 정곡을 찌르거나 인상적인 것이 있었는가?

안지형: 당황스런 질문은 없었다. 대개 작품을 어떻게 풀어나갈 건지 하는 질문이었고, 저는 야구라는 주제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이것이 어떻게 보여질 건지, 작품 소재인 야구가 야구처럼 보이면 안 되는데 춤 작품으로서 어떤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건지에 대해 질문이 많았다. 저는 야구가 야구처럼만 보이면 사실 재미없을 것 같다, 야구에서 다른 시선으로 무대 위에 끌고 들어와야 하는데 그런 지점을 어떻게 할 것인지 대해 많이 고민한다고 답했었다.

사회: 대면심사에서 말을 주고받다 보면 작품에 대해 생각해 볼 점이 많아진다는 뜻인가?

안지형: 그렇다. 제 경우엔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본다. 그러고 나서 쇼케이스를 하게 되는데, 사실 이번은 대면심사와 쇼케이스 사이의 기간이 좀 짧았다는 생각이다. 짧은 기간 안에 20분 길이의 작업을 완성시켜야 한다. 20분이라는 시간이 창작자 입장에서는 짧지 않은 긴 시간이다. 작업하면서 사실 정말 힘들었다.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상당한데 작업을 구체화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많았고 그러다보니 거기서 오는 괴리감 때문에 같이 하고 있는 팀원들에게도 설득력을 주지 못하는 듯했다. 왜 하는지에 대해 의문점이 생겨버리면 그 작품은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없지 않나. 그런 부분을 계속 찾아나가며 시간이 걸렸고, 한 달밖에 시간이 없다보니 압박도 있었다. 어쨌든 하고 싶은 것을 구체화해서 쇼케이스를 잘 올린 것 같다. 쇼케이스 끝나자마자 안무자 인터뷰 심사가 약 10분간 이어졌다. 어떤 부분을 보완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눠졌다. 잘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공세적 질문을 받는 것 같다.

사회: 대면심사와 쇼케이스 후 인터뷰 내용과 달라진 점은 없었나?

안지형: 저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김영희: 시나브로 가슴에의 〈Hit & Run〉은 시놉시스부터 자기일관성이 있었다. 시놉시스 자체가 얼기설기한 팀들은 일관성이 없어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회: 시나브로 가슴에에 이어, 〈호모 파베르〉를 올린 단체 언플러그드 바디즈의 참가 경위를 소개해 달라.

김경신: 안지형 안무가가 소개한 것, 창작자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저희는 서류를 낼 때 우선 ‘호모’ 시리즈에 집중을 하던 시기였다. 시리즈의 첫 번째였던 유희 인간을 표현하여 탐구하고자 했던 〈호모 루덴스〉라는 작품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고자 했던 게 아무래도 큰 카테고리 안에서는 정해져 있었던 거고 〈호모 파베르〉는 두 번째 이야기였다. 어원으로서 ‘루덴스’ 이전에 ‘파베르’가 먼저 생겨난 것일 수 있겠지만 그런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올리는 플랫폼에 걸맞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호모 파베르〉 서류 작업을 하면서 ‘신데렐라’라는 부제를 붙였었다. 부제는 인터뷰에서도 심사위원분들과 많이 이야기 나눴던 부분이었는데, 먼저 말씀하신 대로 과정을 거치면서 〈호모 파베르〉 작품에 대해 조금 더 돌아볼 수 있은 것 같다.
 창작자 입장에서 말씀을 드리고 싶다. 무용작품이라는 것이 다들 아시겠지만 서류가 아무리 탄탄해도 작품이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고 또 서류가 탄탄하지 않아도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창작자 입장에서 그 서류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제가 작품에 대해 갈등하고 고민하면서 돌아갈 수 있는 집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곳으로서, 집처럼 계속 돌아다니다 어디로 가려고 했었는지를 상기시키는 그런 존재 같다. 서류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인터뷰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설명하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맴도는데 말로는 잘 되지 않는다.

김영희: 그래서 제 기억으로는 창작자가 옆에 있고 기획자가 PT를 하는 팀도 여럿 있었다.

권옥희: 3차 인터뷰 때도 시연이 끝나고 안무자 혼자 들어오거나 혹은 기획자가 같이 배석해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팀이 있었다. 단체별 제출한 지원신청액과 실제 필요 경비, 예산 운영에 관한 질문 등은 주로 기획자가 답을 했고, 작품에 관해서는 안무자가 주로 답을 하였다.

김경신: 창작산실 인터뷰 심사 때는 제가 직접 이야기했었다. 어떤 PD 분은 제가 그렇게 긴장한 모습을 몇 년 사이에 처음 봤다면서 웃기도 했다. 실연심사하고 인터뷰할 때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너무 보여주려고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제가 원래 작품 이야기를 할 때는 고조된 느낌이고 하고자 하는 것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편인데, 그 때는 심사 분위기는 편안했지만 막상 긴장을 한번 하기 시작하니까 쉽지 않았다. 춤이 몸으로 표현하는 장르이다 보니 더 그럴 수도 있었지 않나 싶다.
 1차 심사에 서류를 내놓고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예상 질문도 만들어보는 등 굉장히 많은 시간 동안 준비하고 고민했다. 만약 내가 갈 방향이 아니라면 이걸 통과하기 위해서 변명이나 대답을 만들어가기 보다, 여기서 이 내용을 들어내겠다고 솔직히 인정하고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는 ‘신데렐라’라는 부제를 가져온 이유를 소개했고 제목에서 배제하는 것도 받아들이게 됐다. 처음에는 관련 자료를 많이 검토했다. 신데렐라의 동화가 290여개 버전이 있다는 게 와 닿으면서, 춤과 매우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PD도 신데렐라 부제를 꼭 넣어야 하냐, 잘 모르겠다고 했었다. 저는 서류에도 썼듯이 이미지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 그리고 제목을 확정시키지 않아도 될 단계이니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향으로 우선은 넣었으면 했다. 인터뷰 심사에서 ‘신데렐라’ 부제에 대해 심사위원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최종적으로는 취소했다.
 아마도 모든 창작자들이 한 시간 길이로 최종 작품을 준비할 것이다. 쇼케이스를 위해 그걸 20분으로 줄일 때 크게 두 가지로 고민할 것이다. 기승전결로 나눈 하이라이트를 모아서 20분으로 축소할지, 아니면 전반·중반·후반 가운데 한 장면만 골라서 보여 주어야할지 말이다. 일단 하고 싶은 것을 다하려는 것은 자제했다. 되도록 간략히, 그래서 뭔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더 나올 수 있는 발전 가능성을 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쇼케이스에 임했다.
 그때부터 의도적으로 도구를 많이 쓰고 싶어서 테이블이라든가 소품을 꽤 썼었다. 쇼케이스를 마치고 무용수들이 우당탕탕 치우고 있는데 시간이 없어 인터뷰를 바로 시작했다. 이전 인터뷰심사 때 긴장을 많이 해서 이제는 제 패턴을 찾아 편안히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간혹 어떤 질문은 당황스러웠다. 대답을 못해서라기보다 이게 나를 심사하는 것과 관련 있는 질문인지 의문이 드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연습실이 따로 있느냐와 같은…. 작품과 상황에 따라 질문이 달라질 것이다. 저는 할 수 있다면 작품에 오래 투자하려고 해서 연습기간을 길게 5~6개월 잡았다. 그걸 보고 어떤 심사위원이 연습실 대여비용으로 지금 얼마를 책정했는데 차라리 그 돈으로 연습실을 임대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취지에서 물은 질문이었다. 인터뷰 과정에서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충분히 답변하고 넘어가기에 15분 정도 심사시간이 너무 짧았다. 하려는 말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압박감이 적지 않았다.




언플러그드 바디즈, 김경신 안무 〈Homo Faber〉 ⓒ옥상훈/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핵심 소통이 미약했던 심사 인터뷰

사회: 짧은 시간 창작 관련 인터뷰에서 굳이 대여비니, 임대료니 하는 따위의 질문은 생뚱맞지 않나 싶고 시간 낭비인 것 같다. 그런 질문은 또 핵심에 어긋나기 쉽고, 질문을 위한 질문인 감도 든다. 게다가 핵심에 다가가는 다른 질문이나 소통을 자르고 훼방 놓는 면도 있다.

김혜라: 앞서 안지형 안무가가 심사과정에서 등장한 ‘공세적’ 질문을 소개했다. 심사를 받는 창작자들이 그렇게 느꼈다는 것에서 심사위원과 제대로 된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인상이 든다. 심사위원은 객관적 시각으로 이야기하고 작품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면 토론하고, 안무가들은 춤을 형상화시키는 데 있어 어려움을 나누는, 그야말로 소통하는 자리여야 한다. 일부 안무가들이 심사과정을 공세적으로 느꼈다는 점은 그 관계성에서 의구심이 들게 한다. 그런 관계에서 안무가들은 심사에 들어가면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회: 건설적인 무엇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부정적인 무엇을 느낀다는 것은 여러 면으로 해석될 수 있다. 쇼케이스가 심사과정이니 부분적으로 무대화된 것을 두고 부정적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이 경우 무대화된 것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한 선에서 제기하는 반박·반대 의견이라면 그래도 수용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심사위원의 아집을 강변하는 식의 부정적, 공격적 질문은 곤란하지 않을까 한다. 이런 지적은 향후 창작산실 지원사업 심사에서 유의해야 할 점으로 중요할 것 같다.

김혜라: 그렇다. 심사과정이 공격적인 질문으로 이어지는지 혹은 상하관계가 아닌데도 돈을 주는 입장, 받는 입장으로 나뉘어 위화감이 감도는지 궁금하다.

안지형: 안무자가 하고자 하는 것을 평가 이전에 궁금해서 물어본다는 느낌이라면 조금 더 편안한 상태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막연하게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면 공격받는다는 느낌이 들 것이고, 그렇지 않고 어떤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으므로 다시 설명해 달라 하시면 저의 생각과 고민의 지점을 말씀드리고 주고받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사회: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나온 듯하다. 창작산실을 비롯한 지원금심사에서 인터뷰를 할 때 심문으로서의 질문이냐, 그렇지 않다면 소통을 위한 대화로서의 질문이냐,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모두 심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그중에 혹여 심문조의 질문이 나옴으로써 창작자의 기운을 꺾는 태도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인터뷰에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무용가 입장에서 질문을 던지느냐, 그러지 않고 심문조의 질문을 던지느냐는 큰 차이가 있다.

김혜라: 개인의 호기심인지, 창작산실 사업 취지에 맞춰 부족한 것을 채우려 하는 것인지 분별 있는 질문이 따라야 할 것이다. 의식을 갖춘 사람들이 심사해야 하고 그리고 문화예술위는 그런 이들에게 심사위원을 맡겨야 한다. 여기서부터 신뢰가 저하된다는 판단이 든다.

권옥희: 내가 당신을 평가하니까 당신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에 심문조의 질문을 하는 심사위원을 쇼케이스 때는 보지 못했다. 오히려 반대로 안무자한테 제대로 된 질문을 못하고 심사위원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경우는 본 것 같다. 심문조의 질문을 하는 심사위원이든, 자신의 사감과 사익에 따라 지원금을 배분해주는 심사위원이든 모두 개인의 양식과 양심의 문제다. 심사를 맡기면 안 된다. 하지만 어떻게 구분하고 가려낼 것인가. 문화위에서 가려낼 생각은 하고 있을까? 의문이다.
 그리고 심문은 고사하고 인터뷰 질문이 너무 피상적이라는 것이다. 작품의 주제의식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는가, 어디에서부터 온 사유인가, 작품 의도를 춤으로 어떻게 구현해낼 것인가, 나아가 왜, 어떻게 관한 질문에 따라 창작자 역량의 유무를 판단하는 논의로 진행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15분이라는 인터뷰 시간은 터무니없이 짧다.

안지형: 양날의 칼과 같은 느낌이 있는 것 같다. 안무가가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상태에서 서류심사를 받는다면 지원금을 받으려는 욕심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받아야 하는 것 또한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서류를 제출하고 몇 단계 어렵게 통과한 지원자들이 그 공간에 들어가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심사위원이 작품에서 초점을 맞춰 제언할 때 안무자들이 조금 더 신나게, 편하게 답하지만 초점 없이 질문하는 적에 느끼는 온도 차이는 크다.

사회: 쇼케이스 직후 인터뷰 시간은 10~15분 정도인 줄로 안다. 시간 제한이 있어 짧은 시간 내에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으면 대화형이나 소통형이라기 보다는 심문형으로 흐르기 쉽다. 이는 여건의 문제, 기술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시간부터 짧아서, 여유 있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김경신: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먼저 해외의 주목받는 지원금 시스템을 소개하고 싶다. 영국에서 창작 플랫폼을 지원하는 The Place Prize라는 안무자경연대회가 있다. 2004년부터 격년제로 열리고 저도 2008년에 참가한 바 있다. 블룸버그라는 방송국에서 지원해서 1등에게 5천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상금은 또 다른 작품 창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 사비, 말 그대로 상금이다. 호주 내셔널컨템퍼러리무용단 라 파엘 보나첼라 단장도 이 대회를 거쳐 올라갔고 호페쉬 섹터도 그것을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유럽에서는 이 대회에 많은 사람들이 지원한다. 국적은 상관없이 영국에서 살고 활동하면 된다. 1차를 통과하면 2천만원 정도 주어지고 15분 길이의 작품을 짜야 한다. 무용수들에게 급여를 주고 작품을 만들기에 넉넉한 금액이다. 그리고 5일 동안 공연하는데 투표 전자기기를 관객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인기상을 선정해 200만원을 준다.
 창작산실과 The Place Prize를 비교해보았는데, 비슷한 점이 많다. 다른 점을 꼽는다면 무용 특성상 보여지는 것을 봐야 판단하기 쉬워 그런지, 혹은 서류심사가 힘들어 그런지 몰라도 시놉시스를 쓰거나 그림을 그린다거나 시나리오 대본을 올리는 게 아니라 영상을 찍어 올린다는 거다. 몇 백명의 안무자가 지원하는 만큼 영상도 움직임 구성을 보여주는 작품, 이야기 위주의 작품, 매체를 가져온 오브제 작품 등 다양하다. 춤이 아무래도 시각적인 무대예술이므로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3~5분의 영상으로 보이는 건 긍정적이다. 더플레이스에 가면 연도별로 지원자들의 영상 작업을 캡처해서 포스터로 크게 붙여놓았는데 더플레이스의 상징이 되는 듯한 글씨를 만들어 놓았다. 몇 년 전에 공연을 하러 영국에 가서 다시 보았는데, 창작자들이 하고 싶은 것도 다양하고 무용하는 사람들도 참 많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다른 점은 인터뷰 제한시간이 없었던 점이다. 안무자에 따라 짧고 길게, 유연하게 인터뷰가 진행됐다. 요즘처럼 형평성이 중시되는 국내 분위기에서는 시간을 맞춰놓고 그 시간 안에서 인터뷰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이뤄지는 것이 불만을 낳지 않는 방법인지 모르겠다. 저는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것은 맞다고 본다. 그런데 그 시간이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지금처럼 대화할 때 공세적으로 느낄 확률이 낮아질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공격적으로 느낀다기보다 시간 내 어떻게 다 대답을 해야 하나 싶은 난해한 질문이 있었다.

김영희: 저는 지원심사를 위한 영상을 믿지 않는 편이다. 사진과 영상으로 보인 이미지와 실제 작품과는 너무 다른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떻게 구조를 짜는지 얘기를 듣는 편이 훨씬 정확해 보인다. 창작자가 구조를 갖고 있다면 어떤 소재와 형식으로 이뤄지는 작품인지 설명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글로도 말로도 나오지 않는다.

사회: 잠시 참고할 바로서, 무용가들 중에는 말 주변이 없는 사람도 간혹 있다. 비디오와 서류 가운데 선택하라고 하거나, 아니면 모두 제출할 수도 있겠다. 근본적으로 문제라 생각되는 것은, 너무 빨리 진행해서 타이트한 분위기를 자꾸 만드는 습관이다. 그래서 소통형의 대화가 되지 않고 심문형으로 흐르고 서툰 데에다 상대방을 위축시키는 경향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혹시 2020년도에 진행된 창작산실 심사에 대해 주변 참가자들의 후문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현재 창작산실은 1차 서류심사, 2차 대면인터뷰, 3차 쇼케이스의 심사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참가자로서 이 과정이 적절하다고 보는지, 아니면 세부적으로 개선할 점에 대해 의견을 듣고 싶다.

김경신: 한 가지 짚고 싶은데, 요즘은 인터뷰할 때 심문당한다거나 하는 그런 분위기는 못 느꼈다. 예전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더 이상 아니다. 심사장에 들어가면 편안하다. 오히려 내가 긴장해서 그런 것이고 시간 여유가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을 뿐이다. 아무래도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더 할 말이 있으면 불필요한 말은 생략하고 효율적으로 이야기하라는 뜻에서 남은 시간을 카운팅해 주는 거라 생각한다. 진행에 있어 불편한 분위기를 만든다거나 상하관계를 나눈다거나 심문해서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든다거나 하는 것은 못 느꼈다.

사회: 2차 대면심사에서는 심사 결과를 어떻게 도출하는가?

김영희: 심사위원들의 평가점수를 집계해서 상위 순으로 가려내었다. 상위 팀들은 관계없는데 아래 팀 중에서 더 붙여줄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한다. 쇼케이스에 올려도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지 않은 경우 논란을 하였다.

권옥희: 쇼케이스 심사도 엇비슷하게 진행되었다.

사회: 대면심사에서 인터뷰하고 점수화시켜 집계하고 그렇게 나온 총점으로 순위를 정한다는 것인데, 그렇게 나온 순위에 대해서는 심사위원들끼리 이의가 없었는가?

김영희: 이의가 있었지만 일단 협의해서 결정을 한 것이니까. 아마 시간이 더 있었다면 이의를 논할 여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선정작이 많아지면 각 팀에 지원되는 지원금 액수가 적어지므로 이왕이면 할 만한 팀에게 더 주자는 생각이었다.

권옥희: 제 경우에는 시연과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잠깐이지만 심사위원들끼리 논의를 거친 터라 어느 정도 수긍할만한 결과가 도출될 걸로 기대했었는데, 아니었다. 그래서 “아무리 애써도 안 되구나...”라며 혼잣말을 했던 것이다.
 얼마 전 아르코극장 측에서 외부에 ‘창작산실발전 방향’에 대한 간담회를 의뢰해서 참석했었다. 외부 의뢰가 있어 참석했었다. ‘창작산실제도’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문화위에서도 인지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때 여러 문제점을 짚으면서 제가 건의한 것이 심사한 심사위원의 점수를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 심의과정에서 투명성은 보장될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 창작산실에 참여한 무용가 입장에서 심사 결과가 의아스럽다고 느낀 부분은 없었는가?

안지형: 저는 없었던 것 같다.

김경신: 답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음… 기준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떨어지면 기분 나쁘고 속상한 것이고, 붙으면 좋고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개인성향에 따라 자신이 부족한 점을 되돌아볼 수도, 다른 이와 비교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간단히 답을 내리기 어렵다.


심사 내용 전면 공개로 부실 심사부터 막아야

김영희: 저는 과정마다 심사 결과표를 공개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책임감 있게 심사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심사위원 명단만 드러난다.

김혜라: 그 공개도 2017년부터 시작되어 2018, 2019년에 있었다. 그 전 심사평을 봤을 때에는 작품계획의 충실성, 타당성, 예술성, 단체역량 등 심의기준을 정해놓고 심사결과를 밝힌 후 심사위원 일동으로 명기했다. 2017년부터는 적어도 심사위원 이름이 나온다. 그렇게 심사위원을 밝혔어도 지금 계속 창작산실에 대한 기대가 떨어지고 작품으로 표출되는 역량이 실망스러워지는 추세다. 창작산실 사업 창작 결과물과 심사위원의 평가내용을 견주어 보면 어떤 대안이 나올 것이다. 심사위원이 책임감을 갖도록 자신이 평가한 점수를 모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장르별 안배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쇼케이스까지는 인터뷰하고 진단하는 근거가 있지만 20분 규모를 지나 60분 길이의 작품으로 완성된 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안무가들과 사후평가와 관련한 소통과 기록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창작산실지원사업이 지금 10년이 되었는데 뚜렷한 결과가 없지 않는가?

김경신: 공개되지는 않아도 평가단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김혜라: 모니터링하는 것 외에 일단은 쇼케이스 끝나고 나서 안무가들이 느끼는 어떤 프레셔가 있는가? 쇼케이스 끝나고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후에는 60분 작품을 만드는 데에만 집중하지 이 작품이 잘못되었을 때를 염두에 둔다던지 사후 평가에 대비할 수 있는 장치들이 없는 것 같다. 1, 2, 3차 심사 이후 60분 규모로 만드는 작품을 제대로 평가하고 진단하는 시스템이 안 보인다. 예전부터 쭉 봐왔는데 심사위원들조차 작품을 잘 보러오지 않는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무책임한 모습이다. 심사한 사람이 작품이 완성된 후에도 보고 제대로 기록에 반영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창작산실의 취지인 레퍼토리 제작과 유통이 10년 동안 제대로 구축되지 못했다. 해외진출이 기준의 잣대는 아니라 하더라도 지방이나 재확산의 관점으로 볼 때, 트러스트무용단의 〈계보학적 탐구〉가 2015년에 프랑크푸르트에 진출한 기록을 확인했고 다른 작품들은 레퍼토리화시킨 사례가 드물다. 그렇다면 10년 동안 창작산실의 성과는 무엇이었나? 창작산실은 춤창작 고취와 육성을 위해 발레부터 시작했고, 한국춤비평가협회 〈춤웹진〉도 초기 여러 차례 진단했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발레창작은 진전이 없다. 창작산실이 연금도 아니고 계속 이렇게 나눠 주어야 하는가? 창작산실의 취지대로 좋은 작품이 계속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런 복합적인 문제점이 반복되고 있다.

사회: 좌담 내용을 되짚어 보면, 일단 모든 심사결과를 공개해야 한다는 방안이 제기된다. 지금까지 그렇게 공개되지 않았다. 심사 공개방법을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는데 첫 번째로는 각 심사위원들이 내렸던 평점결과를 심사위원 이름과 함께 밝히면서 하는 방법, 둘째는 심사위원 이름은 밝히지 않고 평점표나 심사표를 공개하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창작산실을 결산하는 백서가 있어야 한다. 백서 없이 간략한 마무리 보고서만으로는 적당주의와 부실을 조장한다. 그 결과 창작산실 가운데 레퍼토리화가 미미해지는 풍토를 조장한다. 이로써 지원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인데 지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 마련에 중지를 모아야 한다.
 선정 안무가들은 지난해 5월에 쇼케이스를 마치고 7~8개월 동안 작품을 만든다. 지원금 액수는 대체적으로 통보를 받았을 것이고 지원금 수령은 빨리 이뤄졌는지,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안지형: 지원금 수령은 교부신청하기에 따라 달라진다.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던 걸로 안다.

김경신: 대개 PD가 하는 부분이라 안무가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같이 협력해서 하면 일이 늦어지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전임해서 맡기는 편이다. 정확한 내용은 PD만큼은 모르겠지만 지원금 수령이 늦어져서 내 돈을 먼저 쓰고 이러진 않았다. 예술단체에 맞춰서 빨리 해줬었다.

김영희: 쇼케이스의 20분 규모에서 60분 최종 작품으로 확장시킬 때 과정을 듣고 싶다. 이번에 해를 넘겨 올해 초 공연을 했는데 공연 시기는 적당했는지도 궁금하다.

안지형: 저는 처음부터 가장 늦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쇼케이스에 했던 20분 보다 생각해야할 것이 많았는데 작품이 어떻게 흘러가야하고 어떤 색감으로 이야기를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을지 내부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쇼케이스에서 나아가 다른 색감으로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의상, 무대디자인 부분 등 오랜 시간동안 스텝들과 회의하면서 뭐가 제일 좋을지, 어떻게 보여지면 좋을지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좋았다.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열심히 준비해서 한 것 같다.

김영희: 지원금 액수가 모자라지는 않았는지?

안지형: 작품마다 특색이 있는데, 그런 점들을 고려하여 이미 무대디자이너 분들과 조율하고 들어갔기 때문에 금액적으로 부족하진 않았다.

사회: 이번에 공교롭게도 코로나19 때문에 관객 없이 공연했고 영상으로 생중계를 했었는데 기분이 어땠나?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길 관객 없이 공연하면 에너지, 열기가 나오겠는가 싶은데, 기우일 수도 있겠지만.

안지형: 신기하기도 그냥 공연하는 것처럼 했었다. 사실 관객이 있고 없고를 잘 느끼지 못했다. CGV 촬영 때문에 지미집이 위에 있었고 카메라가 너무 많았다. 작품도 집중을 안 하면 안 되는 작품이라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리허설 끝나고 준비하고 공연시간에 맞춰 생중계하고… 특별히 다르게 다가왔던 것은 없었다.




시나브로가슴에, 안지형 안무 〈Hit & Run〉 ⓒ옥상훈/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회: 이번 창작산실은 김경신 안무가가 제일 처음에, 안지형 안무가가 마지막에 공연했다. 쇼케이스 이후 발표할 때까지 에피소드가 없었나?

김경신: 조명, 무대, 무용수들 모두 꼭 하고 싶은 사람과 하려고 1월에 공연하게 됐다. 시일이라는 게 정답이 없는 것 같은데, 한 달 뒤에 한 시간 길이의 작품을 완성시켜야 한다면 그에 맞는 작품이 나오고 일 년 뒤라면 또 그에 맞는 작품이 만들어진다. 창작자 입장에서 장단점이 있다. 짧으면 부담이 있고, 준비시간이 긴 것도 창작에 대해 계속 고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창작산실은 길었고, 지원금이 다른 사업보다 많아서 작품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금액을 가지고 해도 부족하려면 부족하다. 지원금이라는 게 어느 정도 기본만 되면, 다시 말해 최소한 출연진 급여를 줄 수 있다면 그것에 맞춰 살림을 살아가는 거니까 괜찮은 것 같다.
 앞서 서류심사가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영상이 추가된다면 조금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라는 취지에서 말씀을 드렸다. 서류심사에서 단체 역량을 보는 것이 당연한데, 이건 들은 얘기다. 언젠 어떤 팀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어느 년도에 한 시간을 못 짜는 팀이 있다고 했다. 한 시간 길이의 작품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리기 위해 심사위원 입장에서는 창작자가 지금까지 작업을 해왔던 것, 보여 왔던 모습들을 서류상에서 봐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서류심사, 인터뷰, 20분의 쇼케이스, 그리고 나서 한 시간 짜리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서 1년을 투자하고 중간중간 그렇게 많은 심사를 받는 창작산실을 못하겠다고 하더라.
 어느 공연이나 마찬가지지만 저는 이렇게 고생해서 짠 작품을 갖고 다른 곳에서도 공연하고 싶다. 앞서 레퍼토리화가 안 되는 것에 대해 말씀 나누셨지만 창작산실 사업이 다른 사업에 비해 지원금이 많다보니 작품에 욕심내기 마련이다. 창작자에 따라 욕심을 내지 않으려는 입장도 있겠지만, 지원금을 잘 분배해서 이렇게 받을 수 있을 때 짤 수 있는 작품을 짜고 싶은 거지 남으니까 쏟아 붓는 게 아니다. 예산이 있으니 그만큼의 퀄리티와 제작비용이 든 것처럼 알차 보이게 하고 싶은 것이 창작자와 기획자의 욕심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창작산실을 통해 나온 작품들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기 때문에 유통되기는 쉽지 않다. 나를 어필할 수 있는 자료로 써도 결국 유통되는 작품은 움직임 위주, 소품이 없거나 인원이 5명 이하인 솔로나 듀엣 작품이 나간다. 그런 현실이 속상하고 답답하다.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다. 명성이 있어서 제 작품을 1억에 팔 수 있다면 모를까.
 영국에서 더플레이스에서 배출된 아티스트들을 ACE(Arts Council England, 잉글랜드문화예술위원회)가 꾸준히 모니터링하면서 그들이 하는 공연을 찾아가 여러 작품을 묶어 더블빌, 트리플빌 공연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거기서 관객들의 반응과 단체역량을 고려해서 매해는 아니어도 2~3년에 한번 안무가를 선택, 집중 지원한다. 그렇게 아크람 칸, 호페쉬 섹터, DV8, 웨인 맥그리거, 러셀 멀리펀트 등이 자립하게끔 도와주었다. 한화로 5억 정도를 4년 동안 지원했다. 공연이 생기지 않아도 단체를 운영할 수 있는데, 그렇게 4년 동안 좋은 작품으로 레퍼토리를 만들어놓고 나라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다보면 세계 여러 나라 극장과 커넥션이 생긴다. 그 다음번에 공연할 때는 연결된 극장과 손잡고 기획공연을 만들어 나간다. 4년 뒤 ACE에서 손을 놓아도 예술단체는 충분히 자립 기반을 마련해놓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문예위에서 도와준다 해도 유럽과 달리 지리적 특성상 해외 극장과 연계되기가 쉽지 않다. 항공료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다. 차근차근 작은 극장, 작은 도시부터 해나가야 한다. 만약 그 정도로 문예위에서 투자해준다면 충분히 운용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럴 경우 한국을 대표한다는 취지로 객관성을 갖춘 아티스트를 선정해야 할 것이다.

사회: The Place Prize에 2008년도에 참가했는데 경위를 소개해줄 수 있나?

김경신: 2008년도에 서류를 냈다. 더플레이스 극장이 런던 컨템퍼러리 스쿨과 붙어 있는데 제가 클래스를 받을 때 더플레이스 감독으로 존 애쉬포드(John Ashford)가 있을 때였다. 1차로 지원서류를 낼 때 인적사항, 이력서와 함께 영상을 제작해서 제출했다. 한 달쯤 되어 인터뷰가 잡혔다. 레이저를 쏘고 스모그를 뿌려서 무대를 반으로 나누고 싶었고 영상을 활용하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다. 런던에서 무대 디자인을 공부하는 한국 친구가 있어서 무대 세트를 미니멀하게 만들었고 그걸 가지고 인터뷰에서 작품을 이야기했다. 그 결과 15분 길이의 작품을 선보이는 세미파이널 진출 자격을 얻었다. 세미파이널에는 정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나를 비롯해 3~5팀이 올랐다. 최종적으로 2팀이 파이널 무대에 오른다.

사회: 세미파이널에 오른 아티스트에게 지원되는 금액은 어느 정도인가?

김경신: 한화로 2천만원 정도였다. 지금은 파운드 환율이 낮아져 천5백만원 정도일 거다.

사회: 마지막 파이널 수상자는 3만 파운드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김경신: 2만5천 파운드다. 그 당시에는 5천만원이었고 지금은 4천8백만원 정도다.

사회: 국제적 시세를 따져도 상금이 적은 액수가 아니다. 극장 대관료는 본인이 알아서 하는 건가?

김경신: 대관도 홍보도 지원해주기 때문에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다.




언플러그드 바디즈, 김경신 안무 〈Homo Faber〉 ⓒ옥상훈/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허술한 사업 결산으로 사업 부실 방치할 것인가

사회: 이번 창작산실에 긍정적인 작품들이 적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올해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소감 내지는 평가를 김혜라 선생께서 말씀해주시기 바란다.

김혜라: 앞서 레퍼토리화에 대한 말씀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창작산실을 통해 받은 지원금만큼 이번 기회에 최대한의 작품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작품이 레퍼토리화될 수 없는 이유는 그만큼의 비용을 감당하면서까지 불러줄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 지역에서도 버겁다. 지역 문화회관에서도 작품을 선택하는데 그 정도 액수를 선뜻 불러들일 수 없다. 문예위에서 레퍼토리화시키고자 한다면 작품 그대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부분으로 손질할 수 있도록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 이미 신뢰를 받은 단체이기 때문에 그렇게 유동성 있게 작품을 재구성하도록 해야지, 원래 작품 그대로를 레퍼토리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시스템이다. 그런 부분이 경직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창작산실에 참가한 어떤 단체는 공연 마치고 소품을 바로 없앤다고 했다. 우수레퍼토리도 있고 다음에 또 공연할 수도 있을 텐데, 왜 없애냐고 했더니,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보관료가 더 든다고 했다. 창작산실의 레퍼토리 사업이 유명무실해지고 소모적이라고 생각되었다. 어떤 안무가는 한번 하고 말겠다는 생각이지, 발전시켜 레퍼토리로 만들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어보였다.
 그래도 현대무용에서는 너무 과하거나 단순하거나 단체마다 표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대체로 주제의식을 갖고 자가진단을 한 작품들이었고 창작자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읽혔다. 한국무용과 발레는 가면 갈수록 시놉시스에서 있었던 문제가 현장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듯하다. 공연을 위한 공연으로 시의적 주제를 적어놓고 이제껏 해왔던 움직임만 접목시켜 그대로 하는 거다. 연결고리가 단절되어서 저 이야기에 왜 춤을 추는지 이해하기 어렵고, 기본적으로 이 공연을 왜 하는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게 됐다.
 초창기에는 그래도 다시 발레와 한국무용의 창작성을 되찾는 작품을 꽤나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2년 발레와 한국무용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대본부터 미흡하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조차 잘 알 수 없을 정도다. 특히 창작산실은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아티스트를 배려하고 있다. 지원 시스템, 환경, 창작자, 그 어디에서 문제의 요인을 찾아야 할까? 답답하다.

사회: 2019년도 최종 선정작의 결과로서 최종 공연들을 보면, 레퍼토리화될 만한 관심작도 있었고 일부는 무난하다는 것이 나 개인의 판단이다. 다시 말해서 최종 선정작이 모두 실망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액의 사업 규모에 비해 그 정도 성과로는 미진하고, 게다가 사업의 취지는 날로 희미해지며, 특히 심사과정이 부실해서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다. 사업에서 달성되는 선정작들의 작품성보다 사업의 미진한 성과가 오늘 좌담에서처럼 도마에 올려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김영희: 창작산실만의 문제라기보다 무용계 전반에서 한국창작춤과 발레의 생산 역량이 시대를 못 따라가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권옥희: 무엇보다 창작자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창작산실만 보더라도 더 이상 제작 환경이 나빠서라든가, 지원금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좋은 작품을 할 수 없다는 변명이 통할 수 없는 더 없이 좋은 환경이다. 오늘 내내 심의 제도와 심사위원의 문제점을 들었는데, 당연히 개선해야할 문제가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 창작자의 우수한 작품은 어떤 식으로든 걸러져서 올라오게 되어있다. 시놉시스, 포트폴리오, 인터뷰를 거쳐 올라오는 제도가 그렇게 허술하고 만만한 과정은 아니다. 물론 안무자 입장에서 강한 압박이 될 수 있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 정도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창작의 압박은 어떻게 견디며 작업할 수 있겠나. 결국 고만고만한 수준의 작품의 난립과 형편없는 수준의 작품이 창작산실에 같이 묶여 더 한심해보일 수 있다.
 저는 안무가들에게 하는 인사가 “좋은 작품하세요~”다. 같이 잘합시다. 어떤 시도이건 새로운 춤을 고려하고 그 효과의 생생함이 춤으로 잘 구축되는 작품으로, 관객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요소는 무엇보다 작품의 독창성이다. 이번 창작산실 작품에서 독창성, 예술성을 읽어내고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나마 삶을 관조하는 사유의 작품과, 사회 안에서의 개인의 소외와 소통의 부재로 인한 문제를 사회현상과 연결, 확장시킨 두어 작품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발레 창작의 문제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국립발레단의 창작작품은 어떤가.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근래 한국창작도 무너지고 있다. 오히려 지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안무가들의 작품에서 창작의 깊은 고민과 춤의 열정을 볼 수 있다. 저는 간혹 ‘서울에 사는 촌사람’이라는 말을 쓴다. 어떤 이들을 들어 말하는지 짐작할 것이다. 말하자면 끝이 없다.

김경신: 그런 얘기 많이 하지 않나. 현대무용은 창작이요, 창작은 안무, 안무는 현대무용이라는. 이렇게 논법이 순환하고 있다는 것인데 현대무용가들은 그런 걸 많이 경험한다. 결국 교육과정의 차이라는 생각이다. 겨우 4~5년 전부터 컨템퍼러리가 국내 발레계에 인식되기 시작했고 창의적이라고 하지만 움직임에서 정형화된 정서가 있기 때문에 그걸 깨기가 쉽지 않다. 또 어렸을 때부터 발레를 접했다면 창작 소재를 가져올 때부터 틀을 깨기가 어려울 것이다. 제가 보기에 지원제도를 통해 좋은 작품을 만들라 해도, 한국무용과 발레에서 좋은 작품이 쉽게 생겨나지 않는 것 같다. 지원금으로 창작능력을 끌어올리기보다 근본 교육시스템과 함께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사회: 창작산실은 발레 분야 창의력을 고양시킬 목적으로 처음 시작되었다. 그러다보니 한국무용, 현대무용 분야가 왜 우린 지원하지 않느냐고 반발해서 결국 전체 분야를 망라해서 하게 되었다. 이 사업을 통해 창작이라는 것을 적극 보여준 분야는 현대무용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정작 겨냥했던 발레는 지금까지 어쨌든 잘 안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사업을 실제 지켜본 결과 두 가지 물음이 나온다. 지원 사업을 통해 해당분야의 창의력을 고양시킬 수 있는가? 아니면, 근본적으로 교육이나 해당 장르의 능력이나 풍토를 바꾸지 않으면 창의력은 고양되기 어려운 것인가? 지원금이 능사는 아니다. 다만 소수를 대상으로 하지만 소수를 후원하고 다수를 자극하기 위해 이런저런 지원 사업은 필요하다.
 교육도, 그 장르 자체의 풍토나 기질도 나름 조정되면서 지원금 사업과 보조를 맞춰야 하는 것이다. 사실 교육과 그 분야의 풍토는 정체된 상태로 보인다. 이런 맹점은 해당 장르를 대표하는 듯한 심사위원을 비롯해서 심사위원 전반의 노력으로 얼마간 해소될 수 있다.
 심사위원의 역할은 그냥 심사 자체에만 머무는 게 아니다. 심사위원은 특정 분야를 업그레이드시키는, 특정 분야의 창작 풍토를 환기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는 인식이 특히 창작산실 사업 심사위원들에게 요청된다. 자기 전공 장르를 향한 심사위원의 이기주의는 우선은 좋을 것 같아도 곧 해당 장르 현장을 안일하게 만들고 더 길게 보면 좀먹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장르 이기주의에 젖으면 해당 장르를 명분으로 내세우고선 자신의 심사 내용과 처신이 옳았다는 철면피가 되기 쉽다. 2020년도 사업의 심사에서는 그런 적폐가 얼마나 해소되었는지 궁금하다.
 향후에라도 창작산실이 그 분야에 자극을 주거나 창의력을 고양시키는 데 그나마 기여를 할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이 좋을지 계속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한 가지 방법으로 창작산실 지원사업에 신청 제출한 서류를 모두 공개하는 것이 들어진다. 탈락한 단체의 것까지 모두, 공개를 전제로 지원 신청을 접수하는 방법이다. 그럴 경우 지원 신청자들은 시놉시스 단계에서부터 제대로 해야 할 것이고, 혹여 시놉시스가 부실해도 인터뷰에서 잘하면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는 일련의 과정을 확인함과 동시에 그런 심사 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창작산실 사업이 무용가들을 도와주려 한다면, 또 무용가들의 능력을 높여주려 한다면 어떤 방법이 좋을지 계속 연구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개선책을 찾는 노력으로 무엇이 있었겠는가.
 오늘 좌담을 종합하면, 창작산실 사업의 실제 심사과정에서 사업이 왜곡되고 이 거액의 사업에 신청서류가 아주 부실한 경우가 흔하다. 다른 심사위원을 선정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정말 한계가 있어 보인다. 심사과정에서의 왜곡, 부실한 신청서류, 이 두 가지를 예방하기 위해 신청서류와 심사내용까지 전면 공개하는 방안은 분명 이례적일 것이다. 그래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혹시 전례가 없는 제언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이의를 제기하려면 다른 실질적인 개선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 사업은 무용 분야뿐 아니라 연극, 전통예술, 창작뮤지컬, 창작오페라 분야에서도 진행된다. 그러므로 무용 분야의 사정만 내세워서는 안 되겠고, 다른 분야가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 우리는 사실 잘 모른다. 그렇더라도 무용 분야 결과가 시원치 않다는 점은 분명한 현실이며, 신청서류와 심사내용의 전면 공개 같은 특단의 조치 말고 과연 무슨 대안이 있겠는가.

김혜라: 창작산실이 2014년 문예위로 이관되면서 2015년「예술창작산실 육성지원 진단연구」를 제외하고 그 이후에는 계속 홍보, 심사제출 서류 같은 것만 있지 평가에 대한 기록은 웹상에서 찾지 못했다. 그런 점들이 소홀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익숙하게 가던 대로 그냥 흘러가는 것이지, 창작산실을 통해 무엇을 하고 싶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헐렁하니 작품도 가면 갈수록 질이 떨어지고, 믿고 보는 창작산실이라기보다 “위기의 창작산실”이 되어가는 것이다.

사회: 창작산실 사업 자체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 매너리즘에 빠진 지금의 창작산실 사업이 발레나 한국무용 분야에서 미진한 창작력을 진흥시킨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창작산실 사업으로 진흥하기를 고수한다면, 창작산실 사업의 과정이 혁신되어야 하겠다. 그래서 일단 장르 불문하고 심사 단계마다 그 모든 것을 공개한다는 전제 하에 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그나마 대안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창작산실 사업의 3~4단계 심사 과정을 검토해보면, 시놉시스가 굉장히 미흡하다, 이미지로서도 자기의 이야기가 미흡하다, 작품으로서도 미흡하다 등등으로 부족함을 뚜렷이 지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판단된다. 그런 미흡한 단체가 계속 신청지원해서 경쟁률을 높일 뿐 실제 업무를 지연시킨다든지 해서 실질적인 심사를 방해할 가능성도 아주 높다. 2차 대면심사에서 26개 단체의 인터뷰를 반으로 줄여보라. 2차 대면심사는 훨씬 효율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쇼케이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6~7팀이 공연하게 되는데 대면심사를 26개 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그렇게까지 낭비스러운 행정이 필요한가. 행정, 사업의 진행 면에서도 앞으로 어떤 시스템을 가져가야 할지 검토되어야 하겠다.

김혜라: 교육문제나 풍토,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것이지만 노력해야 한다. 창작산실만을 봤을 때 이를 통해 우리가 조금 더 개선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가 핵심인 것 같다. 저는 적어도 3차 쇼케이스까지는 어느 정도 장치가 있기 때문에 그 이후에도 일반적으로 하는 적당한 평가가 아니라 그것 또한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정가, 안무가, 심사위원이 책임을 지고 끝까지 작품을 평가하고 기록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심사과정 전체 공개가 어렵다면 적어도 우수작품으로 뽑힌 작품만이라도 심사위원명, 점수, 평가이유를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사후 진단과 관리를 이제는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시점에서 문예위가 신경 쓰고 체크하지 않으면 창작산실에 대한 기대는 완전히 없어지고 말 것이다. 원래 시스템을 만들면 따라갈 수 있다. 창작할 수 있게, 안무할 수 있게 돈과 시간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심사자와 행정가가 제대로 된 시스템을 다시 구축하면 된다. 창작산실의 취지는 결국 하나라도 좋은 작품을 만들고 레퍼토리화하여 지속시키자는 것이지,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주자는 것이 아니다. 시스템을 만들어 조금 더 지켜보자.

김영희: 영국의 사례에서는 최종 1, 2등을 가렸다고 했는데 창작산실 최종 7작품 가운데에서도 1, 2등을 가려서 그 작품은 문예위에서 약정을 하는 것이 좋겠다. 외국 공연 기회와 레퍼토리 공연을 보장하는 것이다.

사회: 해외 진출의 경우에는 바람직스러운데 국내 몇몇 축제에서의 공연을 지원하는 것은 상당히 생각할 바가 있다. 편파적이라는 등의 구실이 생길 수 있다. 해외에 적극 진출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좋겠다. 가령 파이널 1팀에 대해서 5천만원이나 1억원을 지원한다든지, 또는 7팀 중에서 1~2팀 선착순으로 지원을 신청하면 해주겠다든지 하는 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그래야 레퍼토리화가 시도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창작산실 사업에서 반복된 레퍼토리가 나왔어야 성과가 있고 그렇지 않다면 성과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창작산실은 창작력을 고양시키기 위한 것인데 창작력이 얼마만큼 고양이 됐다, 안 됐다는 판단은 애매한 면이 있어서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체로 작품의 질적 수준이 상당히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래서야 창작력이 고양되겠는가 하는 질문은 남는다.

김영희: 지원 단체들이 공연을 희망하는 극장의 규모, 소극장 대극장을 지원서에 표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품 자체가 변하게 된다. 지원하고 심의하는 과정에서 흐지부지하게 된 소극장, 대극장 구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사회: 두 안무가는 창작산실에 몇 차례 신청 경험이 있으신 모양이다.

안지형: 저는 세 번째 만에 공연기회를 가졌다. 첫 번째는 서류심사에서, 두 번째는 쇼케이스에서 떨어졌다.

사회: 준비가 되어 있고 능력이 있는 무용가들에게 창작산실 사업 자체는 좋은 제도이다.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은 역시나 이 제도를 잘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 안 된 분야를 따라오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더 효과적이겠는지 중지와 지혜를 모아야 한다. 2020년도 사업은 어떻게 개선되어 추진되는지 2020년 연말 이후 마지막 최종 작품들을 열어봐야 알 것이다. 그러면 또 1년이 훌쩍 지나갈 것이다. 창작산실 사업은 상당한 거액의 사업이다. 6억, 7억이 투입되는 이런 사업이 부실하게 운영되는 것은 원래 사업의 취지 상실이라는 문제점뿐만 아니라, 춤계 마인드를 어지럽히는 부작용마저 크다. 이 정도면 총체적 부실 사업이라 해서, 청와대 공개 청원감이 아닌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책임이 크다. 문화예술위는 방치해둘 것이 아니라 사업이 망작산실로 더 악화되기 전에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바쁘신 가운데 그리고 코로나19의 위태로운 상황을 무릅쓰고 춤계 발전을 염두에 두어 창작산실 사업을 주제로 좌담을 가졌다. 오늘 나눈 건설적이며 창의적인 의견이 공유되어서 향후 창작산실이 본래 취지대로 창작력 진흥에 기여하는 사업이 되었으면 한다. 오늘 긴 시간, 소중한 의견을 내어주어 감사하다.

2020. 4.
사진제공_시나브로가슴에, 언플로그드 바디즈, 옥상훈/한국문화예술위원회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