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국립국악원 〈처용〉 · 서울시무용단 〈허행초〉
기대와 동떨어진 공공무용단의 작품성
김영희_춤비평가

국공립무용단인 국립국악원 무용단(예술감독 박숙자)과 서울시무용단(예술감독 정혜진)이 공교롭게도 10월 10일부터 12일 사이에 나란히 정기공연을 올렸다. 국립국악원 무용단이 예악당 무대에 올린 〈처용〉과 서울시무용단이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 올린 동무동락(同舞同樂) 두 번째 이야기 〈허행초〉이다.




국립국악원 〈처용〉 ⓒ국립국악원




 〈처용〉은 처용설화를 토대로 프롤로그와 4막이 전개되고 에필로그로 구성된 무용극이었다. 국립국악원 무용단이 근 20년간 하지 않았던 작품 구조였다. 처용(김서량 출연)과 처용의 부인 가야(이하경 최나리 출연), 역신(박상주 출연)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인물간 서사의 완결을 위해 설화 이면의 여러 이야기들을 전개시켰다. 처용의 등장 과정, 처용과 가야가 만나고 혼인하는 과정, 역신이 가야를 범하는 장면, 처용과 다시는 처용 앞에 나서지 않겠다는 역신의 대무(對舞) 과정, 역병의 창궐, 역병에 걸려 처용을 그리워하다 죽음에 이르는 가야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 학연화대처용무를 재구성하고 현대의 인물 군상 속에 있는 처용의 에필로그까지 구성되었다.
 처용설화를 풀어낸 무용극이었던 바, 이야기의 배경으로 추어진 군무들은 국악원 무용단이 보유한 궁중무와 민속춤들로 적절히 배치했다. 그러나 처용, 가야, 역신의 춤은 이야기 전개에 충실했기 때문인지, 각각의 전형성을 온전히 구현했는지는 의문이다. 다른 무용극에서 보았던 인물들의 춤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처용을 현재적 의미로 되새기고자 했다면, 〈학연화대처용무합설〉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보는 시도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처용〉의 연출에 미디어 퍼포먼스 즉 영상이 적극 사용되었다. 전통을 기반으로 하되 현재적 감수성과 공연 기법을 모색한 듯하다. 그런데 영상이 예악당 무대를 가득 채우기는 했지만, 영상은 소재적이었고 설명적이었다. 객석 벽면까지 와이드하고 화려하게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춤꾼의 춤과 함께 시너지를 내지는 못하고 흘러갔다. 어느 경우에는 춤꾼이 춤추는 모습과 춤이 발산하는 기운을 축소시켰다. 마치 게임 영상에서 캐릭터의 움직임 효과를 강화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보이는 효과 영상처럼 장면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국립국악원 〈처용〉 ⓒ국립국악원




 마지막 에필로그로 설정된 ‘우리 시대의 처용’에서 현대로 넘어온 과정과 장면은 약간 당황스러웠다. 4장에서 무용극으로 충실하게 마무리하던가, 아니면 에필로그를 위한 사전 장치를 배치함으로써 내용과 구성을 긴밀하게 연결시켰어야 했다. 통일신라 헌강왕(875~886 재위)대의 처용설화는 시대를 거치며 다양한 의미망으로 해석되어 왔다. 동해 용왕의 아들이면서, 역신을 물리치는 주술적 존재로, 귀족 자제 출신의 화랑으로, 외래문물을 들여온 아랍의 이방인으로, 또는 병신춤을 추는 곱추로서, 그리고 오방의 액살을 물리치는 상징 등으로 설정되었다. 국립국악원 무용단은 〈처용〉에서 처용설화의 의미망을 새롭게 구축하고자 했지만, 시놉시스의 구성과 영상과의 협업에서 구태의연(舊態依然)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서울시무용단 〈허행초〉 ⓒ서울시무용단




 한편 서울시무용단의 정기공연 〈허행초〉는 고 최현(1929~2002)의 레파토리를 재구성한 무대였다. 최현은 해방후 17세에 김해랑(1915~1969)의 춤에 입문해 신무용을 수학하고, 국립무용단에서 여러 작품에 참여하고 안무했으며, 국립무용단장도 역임했다. 당시의 신무용가들과 달리 현장의 민속춤들을 일찍부터 폭넓게 접했으며, 춤 안무에 연기(演技)적 요소를 도입하였다. 일상적이면서 전통적인 미감을 끌어내 작품화하거나, 자신의 인생의 굴곡점에서 느낀 소회를 춤추면서 독특한 작품들을 남겼다.
 이 공연에서 〈기원〉, 〈허행초〉, 〈약동〉, 〈태평소 시나위〉, 〈한량무(흥과 멋)〉, 〈남색끝동〉, 〈신명〉, 〈미얄할미〉, 〈고풍〉, 〈군자무〉, 〈연가〉, 〈신로심불로〉, 〈비상〉의 13 레퍼토리의 춤들이 추어졌는데, 이 작품들을 주르르 나열하지 않고 〈허행초〉에 등장한 노인이 춤의 장면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어쩌면 이 노인(한수문 출연)은 최현 선생이기도 한 셈이었다. 서울시무용단의 춤꾼들이 펼치는 자신의 춤을 살피기도 하고, 다음 순서로 관객들을 이끌기도 했다. 이러한 연출적 발상은 춤의 연기와 설정에 능했던 최현의 예술적 특성과 어울린다고 하겠다. 최현의 독무 작품은 다른 공연에서 이따금 볼 수 있지만, 비교적 규모가 있는 〈군자무〉를 오랜만에 감상할 수 있었고, 서울시무용단의 규모에 맞게 〈비상〉, 〈한량무(흥과 멋)〉 등이 군무로 재구성되었다.
 이렇게 ‘우리 시대의 마지막 낭만주의자’, ‘영원한 춤의 날개’라는 수식으로 기억되고 추억되는 최현의 춤을 다시 감상할 수 있는 공연이었지만, 서울시무용단이 정기공연으로 올리기에 적합했는지 의문이다. 상반기 정기공연에서 보여준 서울시무용단의 재도약의 가능성이 두 걸음쯤 물러나는 듯했기 때문이다. 만약 최현의 유작들을 선보이는 공연이 아니라, 그의 유작들이 품은 다양한 모티브들에서 새로운 해석이나 설정을 뽑아내 형상화하는 무대를 만들었다면, 최현 선생의 작품의 가치만이 아니라 서울시립무용단의 예술적 성과도 재평가되었을 것이다.






서울시무용단 〈허행초〉 ⓒ서울시무용단




 국공립무용단은 공공 영역에서 대표성을 갖는 무용단이다. 또한 국공립무용단은 극장을 갖춘 조건에서 민간무용단에 비해 인적 물적으로 여유롭다. 그래서 국공립무용단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19년 가을 국립국악원 무용단과 서울시무용단의 정기공연은 한편 반가웠지만, 무용계 안팎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새로운 해석과 도전을 기대하며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김영희춤연구소 소장. 역사학과 무용학을 전공했고, 근대 기생의 활동을 중심으로 근현대 한국춤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 『전통춤평론집 춤풍경』을 발간했고, 『한국춤통사』를 책임편집하고 공동저술했다. 전통춤의 다양성과 현장성을 중시하며, 검무의 역사성과 다양성을 알리기 위해 ‘검무전(劍舞展)’을 시리즈로 기획하고 있다.​ 

2019. 11.
사진제공_국립국악원 , 서울시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