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춤 국제교류 퇴보시키는 한국의 공공 예술기관 운용
한 명의 전문가가 국가의 춤 경쟁력을 높인다
장광열_춤비평가

오노 신지(Ono Shinji). 그는 일본의 춤 프로듀서이자 무용축제의 감독이다. 평자는 2월 6일부터 2월 15일까지 요코하마에 머물면서 매일 그의 얼굴을 마주 대했다.
 안무경연대회를 포함한 무용축제인 요코하마댄스콜렉션(Yokohama Dance Collection)과 동아시아댄스플랫폼(East Asia Dance Platform)인 HOTPOT에서 그는 행사의 중심에 있었다.




요코하마댄스콜렉션과 동아시아댄스플랫폼의 책임 프로듀서 Ono Shinji ⓒ장광열




 공연예술 마켓인 TPAM(Tokyo Perfoming Arts Meeting)에서는 가장 중요한 미팅 프로그램이었던 Asia Network for Dance(AND +)의 워크숍 세션을 주도하며, 아시아의 무용 프로듀서들 뿐만 아니라 호주, 유럽의 무용 관계자들을 참여시켰다. 실제로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객석과 극장 로비, 행사장 곳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무용 게스트들은 그를 Ono San으로 불렀다. 애써 자신을 부각시키지 않음에도 그의 존재감은 컸다. 지구촌 곳곳의 축제와 극장, 프로듀서, 프리젠터, 그리고 무용가들에게 그의 존재는 일본 무용계를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각인되어 있다.




요코하마댄스콜렉션의 야외공연 프로그램인 커뮤니티댄스 공연을 준비 중인 오노. 그는 이 공연에 다른 한명의 프로듀서와 지역주민들과 함께 무용수로 직접 출연했다. ⓒ장광열




 10년 넘게 그를 지켜본 평자에게 오노 상은 필요한 프로그램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프로듀서로서의 특별한 감각과 부드러운 친화력, 조용한 리더십으로 무용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국제교류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일등공신이다.
 요코하마댄스콜렉션과 HOTPOT의 프로그램 북에 그의 이름은 다른 몇 명의 이름과 함께 Production 항목에 적혀 있다. TPAM의 프로그램 북에는 2020 요코하마댄스콜렉션을 프로듀싱 했고, HOTPOT을 세계 여러 나라의 축제, 극장, 프로듀서, 아티스트들과 함께 프로듀싱 한 사람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는 3년마다 열리는 무용축제인 Dance Dance Dance@Yokohama의 사무국장이자 Dance Nippon Associates의 감독이다. 또 Japan Dance Forum과 Asia Network for Dance(AND+)에도 관여하고 있다. 그의 활동 반경은 요코하마 뿐 아니라 일본 과 아시아, 그리고 세계 전역과 이어져 있다.





HOTPOT 기간 중에는 해외 여러나라의 게스트들과 안무가들을 대상으로 일본 컨템포러리댄스의 현황을 소개하는 렉처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장광열



TPAM의 미팅 프로그램 중 가장 관심을 모았던 Asia Network for Dance(AND + ) 워크숍 세션에서 AND+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오노 상 ⓒ장광열




 올해로 25년째를 맞은 요코하마댄스콜렉션은 젊은 안무가의 등용문이자 일본 국내 유일의 경연 기능을 갖는 페스티벌이란 기본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계속 변화를 시도해 왔다. 2000년에 주일 프랑스대사관의 협력으로 '솔로 X 듀오 컴페티션'을 신설해 일본 플랫폼과 동시에 개최했고, 2005년에는 아시아의 안무가를 알리기 위한 댄스 마켓 구축을 위해 'Yokohama Dance Collection R'로, 2011년에는 과거 15회의 개최 경험을 토대로 참가 안무가들을 널리 소개하기 위해 'Yokohama Dance Collection EX'로 재출발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반영, 사업의 효용성을 높이려 한 요코하마댄스콜렉션의 지난 25년의 탄력적인 운용, 그 중심에 바로 그가 있다.
 오노 신지가 직접 프로듀싱 한 2020년 YDC와 HOTPOT은 성격에 따라 각기 다르게 배치된 프로그램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의 활약으로 물 흐르듯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스태프진들을 구성하는데 있어 외부의 전문가를 적절히 활용, 행사의 원활한 운용과 사업의 질을 높이고 있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했다. 전문가 한 명의 역할이 축제의 성패와 그 효용 가치를 높이는데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그는 현장에서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요코하마댄스콜렉션의 가장 큰 강점은 여타의 국제 무용 페스티벌과 달리 경연에 입상한 안무가들을 방치하지 않고,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새 작업을 할 기회를 마련해주고,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을 꾸준히 유통할 기회를 함께 제공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외국 축제, 또는 기관과의 네트워킹을 축제의 프로그램밍과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었다.
 오노 신지가 수년 전부터 공연 프로그램 못지않게 극장과 페스티벌 간의 네트워크 확장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나 마켓 기능 구축을 위해 국내외의 극장 및 페스티벌 디렉터를 다수 초청, 경연 프로그램의 안무가가 각국의 페스티벌 등에 참가해 공연할 기회를 넓혀주고 있는 것도 그런 일환이다.




HOTPOT의 12개 공연 중 가장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던 무용과 RAP의 융합무대에서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 오노 신지는 이 작품을 일본 세션의 첫 무대에 편성했다. ⓒ장광열




 한 명의 국제교류 전문가가 공공 지원금에 의한 축제의 책임 프로듀서로 지속적으로 일하면서 발휘하고 있는 이 같은 생산성 높은 시스템 구축은, 궁극적으로는 일본 무용계의 경쟁력을 높이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실상을 일본의 춤 현장에서 목격하면서 대한민국 춤계의 국제교류, 그 현주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검증된 민간 전문가에게 오랫동안 권한과 함께 책임을 부여하는 일본 문화예술 기관의 운용 정책은 시시각각 조직을 바꾸고, 사업의 운용 주체를 바꾸고, 사람을 바꾸는 대한민국과 너무나 비교되었다.


요코하마댄스콜렉션의 지속 성장과 잘 나가던 서울댄스콜렉션의 일방적 중단

인큐베이팅과 함께 유통 기회를 동시에 부여해 레퍼토리 작업과 안무가로서의 경쟁력을 차근차근 축적하도록 하고 있는, 곧 경연을 통해 예술성이 어느 정도 검증된 안무가들에게 직접적으로 창작 지원금을 쥐어 주는 대신 작업할 공간과 극장, 홍보를 포함한 제작 전반을 지원해주는 시스템을 가동하는 요코하마댄스콜렉션의 운영시스템은 분명 우리가 본받을 만하다.
 스페인의 MASDANZA 축제도 입상한 안무가들에게 스페인 국내외 투어 외에 레지던시를 통한 국제협업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들 두 무용축제의 인큐베이팅과 유통 지원 시스템은, 지원 대상자가 신작 작업을 할 때나 우수작으로 선정된 작품을 재공연할 때나 똑같이 해당 안무가에게 직접 지원금을 쥐어 주는 우리나라 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산실 지원제도 운용과 비교했을 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요코하마댄스콜렉션 컴페티션I에서 수상자를 발표하는 스페인 마스단자 축제 예술감독인 Natalia Medina. 오노 신지는 올해 Masdanza 안무경연대회 입상자를 초청하는 프로그래밍을 통해 플랫폼 기능을 확장했다. ⓒ장광열




 오래 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예술감독이 만든 서울댄스콜렉션은 젊은 안무가들의 해외무대 진출에 큰 역할을 했었다. 신설 당시 김철리 감독은 해당 사업은 요코하마댄스콜렉션을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밝혔었다. 외국의 주요 무용극장과 페스티벌의 감독을 심사위원으로 참여시키고 입선작들을 해외로 진출시키는 이 사업은 입상작들의 예술적 완성도와 맞물려 해외 춤시장에 한국 안무가들의 경쟁력이 만만치 않음을 인식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꽤 오래 지속되어 온 서울댄스콜렉션은 4년 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운영 주체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재)예술경영지원센터로 이관되고, 프로그래밍을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직원이 맡으면서 갑자기 중단되었다. 춤계의 강한 반발에 당시 담당자는 내년에 재개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이듬해에도 그리고 지난해에도 이 사업은 실행되지 않았다.
 잘 나가던 검증된 사업이 중단되고, 그에 대한 아무런 공식 해명도 없고,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은 이 같은 사례는 전문가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못하고, 사업 담당자가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공공 문화예술 기관 운용의 부끄러운 민낯이 여실히 드러난 경우이다.
 요코하마댄스콜렉션의 성공적인 운용의 핵심은 바로 전문가에 의한 전문성의 발휘에 있음을 현장에서 확인하면서, 대한민국 예술계의 적폐 청산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지를 다시금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2020. 3.
사진제공_장광열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