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여울목무용단 정기공연 〈순환의 시간〉
부조리를 관통하는 두 가지 방식
김인아_<춤웹진> 기자

 

 

 사회문제를 다룬 젊은 안무가들의 작품은 언제나 기대를 모은다. 젊은 감각으로 무장한 신랄한 주제의식과 신선하고 독창적인 방법론을 목도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여울목무용단의 올해 정기공연에서 2인의 젊은 안무가들은 삶과 사회의 부조리성, 그 속에 몸부림치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렸다(11월 19일, 포스트극장). 그들이 말하는 우리시대의 지난함은 <순환의 시간>이라는 주제에서 명확히 전달된다. 신이 시지프와 프로메테우스에게 선고한 영원의 형벌들, 그 무한반복의 노동과 종착점없는 고통의 시간을 가리키는 것처럼.

 



 형남희 안무의 <달리는 정지상태>는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찾았다. 한 장의 잎도 달려있지 않은 마른 나뭇가지와 원목의자가 덩그러니 배치된 무대는 원작의 첫 장면을 그대로 차용했다.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노재경 옆에 형남희가 자리한다. 나무와 의자, 두 명의 무용수 위치는 암전으로 구분된 세 개의 장면에서 동일한 도입부로 연출된다. 다양하게 변주된 움직임이 암전 이후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은 시작 지점으로 환원되기를 반복하면서 관객은 이것이 고단한 일상의 굴레와 다름없음을 알아차린다.
 두 무용수의 역할을 이성과 감성, 현실과 이상, 타인 혹은 또다른 자아라고 규정지어도 좋겠다. 다만 그들의 관계맺기에 안무가가 집요하게 파고드는 움직임이 접촉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상대는 때로는 한 몸으로, 때로는 대적하듯 서로를 대하며 재단된 2인무를 펼쳐보였다. 이 굳세고 둔탁한 접촉으로 현시대 우리가 겪고 있는 불안의 감정과 우위를 선점하려는 경쟁의 쓰라림이 여러 층위로 노출되었다. 자칫 무겁고 건조해지기 쉬운 주제의식이 두 명의 무용수가 내놓은 영민한 접촉을 통해 생동감을 얻었다.

 



 <달리는 정지상태>를 오롯이 형상화한 마지막 장면은 호소력이 컸다. 질주하고 있는 한 사람의 이면이 그림자처럼 옆으로 누워 느린 발걸음으로 이동하는 움직임이었다. 이상일수도 허상일수도 있는 것을 갈망하며 끊임없이 달리고 있지만 결국 제자리에 멈춰있는 우리들의 불편한 표상을 담은 이 장면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지리멸렬함, 세상과 운명의 부조리한 모순을 직시할 수 있다.

 



 김한송 안무의 <서바이벌>은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사회와 그 내부의 인간 군상을 보다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이 작품은 물질만능주의의 시대,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난무하고 있음을 고발하고 있다. “결국 생존은 내 안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이라는 리플렛의 언급에서 안무가의 자전적 경험과 감정이 영감을 준 것으로 유추된다.
 작품은 유년시절의 순수함과 사회의 냉혹함을 대비시키고 이어 자본이 득세하는 세태 속에 탐욕으로 불거진 잔혹한 사투, 약자의 패배와 파멸이라는 순차적인 기승전결의 경로로 진행된다. 여기서 유년시절의 감성은 술래잡기와 공기놀이로, 인생의 무게는 어깨에 짊어진 2m길이의 두꺼운 각목으로, 자본은 빨간 옷을 입은 거만한 자세의 캐릭터와 그가 소유한 금화로 상징되었다.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자본주의의 일그러진 일면을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주제가 춤으로 발현되지 않고 많은 부분 상징적인 표현과 연출로 이어진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춤에 집중한 장면은 금화를 무대 가운데 두고 사투를 벌이는 작품의 절정 부분으로, 한국 춤사위를 바탕으로 한 여자 무용수 4인의 감정과 호흡이 여과없이 뿜어져 나왔다. 뜨거운 가슴과 강렬한 감성이 절제와 관조로 정돈되지 않는다면 자칫 과잉으로 표현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한 지점이었다.

 



 <서바이벌>은 경쟁사회의 고통을 점차 절정의 상황으로 치닫게 하면서 인간의 본성에 접근하는 미덕이 있다. 이를 보다 다지기 위해서는 자본이 군림하는 부조리함과 인간의 굴복으로 야기된 감정들을 지배-피지배의 관계에서 유기적ㆍ다층적으로 통찰하고, 예측을 압도하는 독창적인 움직임을 구성력 있는 얼개 속에 부각시킬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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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여울목무용단 안무가 형남희 & 김한송

진솔하게, 진지하게, 진득하게





김인아
여울목무용단에 대해 소개 바랍니다. 10년이 넘은 단체로 알고 있는데요.
형남희(이하 형) 김동호 예술감독님을 필두로 2001년에 결성된 단체입니다. 한국 전통춤을 바탕으로 한 독특하고 실험적인 컨템포러리댄스를 지향하고 있어요. 한국무용을 전공한 남자 무용수들로 출발했고 몇 년 후에 여자 단원들도 들어왔습니다. 지금은 7명의 정단원이 있고, 객원 무용수들과 기획자 분들까지 합하면 총 15명 정도 되겠네요. 매년 정기공연으로 신작을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창작을 최우선으로 두기 때문에 재공연은 지양하는 편이에요.
김한송(이하 김) 여울목무용단은 2012년까지 총 4회 ‘끼리댄스페스티벌’을 주최하기도 했어요. 처음 안무를 시작하는 무용가들에게 안무 이외에 다른 걱정없이 춤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 만들어졌죠. 안무가에게 공연에 필요한 것들을 모두 무상으로 제공했었어요. 좋은 취지를 아시고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는데 대관이나 지원금 문제 등 사정이 여의치 않아 안타깝게도 작년부터 개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2년을 마지막으로 ‘끼리댄스페스티벌’이 이어지지 못한다는 말씀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안무가 두 분은 여울목무용단 이외에 개인적으로 어떤 활동을 펼치고 계신가요?
: 여울목무용단 활동 이외에 서울예술단에 재직 중입니다. 서울예술단에서는 가무극 혹은 한국적 뮤지컬이라 불리는 작품들을 주로 하고 있어요. 작품마다 국내 유수의 크리에이티브 팀이 참여하고 있어서 연출법이나 공연 제반사항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서울예술단의 경험이 안무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작년에 플로어댄스프로젝트(FLOW Dance project)를 결성해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구요.
: 지난해 에바다무용단(Ephphatha Dance company)을 만들어 올해 4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에바다’는 헬라어로 ‘열다/열리다’라는 뜻이에요. 춤추는 순간 막힌 부분이 뚫어지고 가슴이 열린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지금은 저를 포함해 단원 4명의 작은 단체이지만 앞으로 열심히 해서 이름처럼 열린 무용단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이번 정기공연에서 선보인 작품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형남희 안무가는 접촉 동작으로 이어진 안무법이, 김한송 안무가는 주제전달력이 강하게 느껴졌는데요. 작품에 어떤 이야기와 움직임을 담고 싶었는지요.
: <달리는 정지상태>는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자화상입니다. 열심히 살고 있지만 항상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나, 나아질 것 없는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해보고 싶었어요. 저에게 컨텍은 가장 적합한 표현법이에요. 저의 이야기를 춤으로 형상화해서 보여주기 보다는 두 사람이 부딪혀 만들어내는 것들, 그것으로 상상할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직접적으로 몸이 부딪히고, 전이되고, 흘러가는 접촉의 과정에서 느껴지는 감성을 중시한 작품입니다.
: <서바이벌>이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은 현 시대, 그 속에서 치열하게 싸우며 버텨나가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점차 팽배해져가는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탐욕과 불안으로 얼룩진 사람들, 그들의 생존을 향한 몸부림과 사회의 문제를 담고 싶었어요. 요즘 저의 고민이기도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겪을 법한 시련이죠. 그래서인지 관객 분들도 많이 공감해 주셨어요. 움직임에서는 한국 춤사위의 호흡과 밀도를 중시했구요. 무용수들에게 완벽한 동작을 구현하기보다 안에 있는 감정을 거리낌 없이 표출하라고 제안했어요.

창작과정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신지요. 안무자가 추구하는 창작의 방향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 서울예술단에서 했던 작업들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드라마적인 춤, 작품에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접촉 움직임은 계속 연구해서 발전시키고 싶어요. 컨텍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움직임이라고 생각해요. 부딪힘의 연속성이라던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움직임 자체가 춤에 무한한 가능성을 가져다주죠. 컨텍만으로 이뤄진 작품은 흔치 않은데 한 시간을 통째로 접촉으로만 구성한 적도 있었구요.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이에요. 일 년에 많은 작품을 공연하기보다 시간이 들더라도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진득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저 역시 오랜 시간을 들여 창작하는데요. 여울목무용단이 재공연을 하지 않고 신작공연에 매진하는 이유도 좋은 작품을 위해 창작에 공을 들이기 때문이에요. 작품을 만들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라면 감정 표현과 호흡, 드라마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어요. 안에 집약되어 있는 감정들을 관객에게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전달할 수만 있다면 타장르의 그 어떤 공연보다 춤이 주는 감동은 진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움직임의 근거를 찾고 표현법을 많이 고민하는 편입니다. 앞으로 사람 사는 얘기, 사람 냄새나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앞으로의 활동이 궁금해집니다. 구상하고 있는 다음 작품이 있다면.
: ‘환경’을 주제로 한 작품을 준비하고 있어요. 자료 수집하면서 연구도 하고 대본과 음악을 맡아줄 분들과 얘기도 나누고 있구요. 예산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충실히 준비한다면 언젠가 좋은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다음 작품에는 '내 안에 어린아이가 살고 있어요' 또는 '내 안에 울고 있는 아이'라는 가제가 붙을 수 있겠네요. 우리 안에 있는 상처가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왜 생기는지를 고민한 작품인데요. 아직 구상 중에 있는 거라 구체화하려고 노력중입니다. 무대에서 놀아 볼 수 있는 건 아마도 내년이 될 것 같네요.

오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춤 무대에서 활약하시는 두 분의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2014. 12.
사진제공_여울목무용단 *춤웹진